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기다린다.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누구도 다가오지 않는 시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은 형벌의 시간이며 동시에
축복의 시간이다.

당신, 지금 기다리고 있는가?


- 조병준의《따뜻한 슬픔》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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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生) 풍화되었다.


       - 천양희의 시〈너에게 쓴다〉(전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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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입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해서 남해안으로 내려왔더니 그 두 달 전에 원균의 함대가 칠천량에서 대패해서 조선 수군은 전멸하고 남해에서 조선 수군의 깨진 배와 송장이 떠돌아다니고 그 쓰레기로 덮인 바다에 봄이 오는 풍경을 묘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에서 버려진 섬이란 사람들이 다 도망가고 빈 섬이란 뜻으로, 거기 꽃이 피었다는 거예요.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면서 고민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나의 문장과 소설은 몽매해집니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의미의 시계와 사실의 세계를 구별해서 끌고 나가는 그런 전략이 있어야만 내가 원하고자 하는 문장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본문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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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인 것 이상의 목표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십시오.
너무 도덕적이 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삶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자신을 속이게 될 것입니다. 도덕적인 것
이상의 목표를 가지십시오.
그저 좋은 사람이 되지는 마십시오.
무언가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십시오.

 

 -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구도자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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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 씨는 인도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로 귀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연수구의 어느 공원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오전에 전화가 왔습니다. 연수구의 공무원입니다. 공원에서 노숙을 하는 외국인이 있어서 만났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태어난 분인데 우리나라 분과 결혼하고 귀화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부인과 딸이 사라지고 어쩔 수 없이 공원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움을 줄 길을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민들레국수집을 알게 되어서 전화한다는 것입니다. 함께 민들레국수집으로 와 보시라고 했습니다.

 

점심무렵에 연수구의 공무원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만난 공무원 중에 제일 멋있는 공무원입니다. 좋은 공무원을 만나서 참 기분이 좋습니다.

 

마니 씨는 아주 맛있게 식사를 합니다. 한국에 온 지 칠년이나 되어서 우리나라 말을 아주 잘 합니다. 식사 후에 민들레 가게를 들렸다가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로 갔습니다. 마니 씨가 샤워를 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층에서 사워를 하는 동안 함께 오신 분들과 옥상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니 씨가 마음에 든다고 한다면 민들레국수집 근처의 여인숙 방을 하나 얻어서 지내게 하면서 진료도 받아보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드린다면 좋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마니 씨가 겨우 샤워를 했을 뿐인데, 속옷을 새로 갈아입었을 뿐인데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모릅니다. 기뻐서 춤을 춥니다.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상쾌하다고 합니다. 세상에!

 

보건소에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마니 씨가 마음을 정했습니다. 국수집 근처에 있으면서 건강을 되찼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명신여인숙에 월 20만원에 방을 얻었습니다. 마니 씨가 아주 마음에 들어합니다.

 

민들레식구들이 잘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국수집이 쉬는 날에는 자기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겠다고 합니다. 멋진 공무원께서는 마니 씨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도록 기꺼이 돕겠다고 합니다. 

 

마니 씨도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마니 씨도 이제 민들레 식구가 되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민들레소식 6/12 인도에서- 에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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