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悔先に立たず. 번역하면 "후회는 미리 서지 않는다". 대체로 맞았을 거다.
뜻은 말 그대로. 후회할 것을 미리 알고 그에 미리 대처할 수있다면 모든 사람이 자기의 희망, 꿈, 야망을 완벽하게 성취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후회할 것"을 미리 예측하지는 못한다.
얼마전에 세벌식 자판님이 “Chin Pei 님 취미가 그림 그리기였군요”라고 댓글에 쓰셨다.
그에 대해서 나는 좀 당황하면서 “어린애의 낙서나 마찬가지 수준이에요”라고 썼다.
실은 아니다. “네, 그래요”라고 쓸까 말까 망설이다가 “어린애의 낙서”라고 썼지만 실은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뿐만아니라 일상시 그림을 전혀 그리지 않는 사람에 비하면 훨씬 잘 그린다고 혼자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그림”에 관해서는 나에 있어서, 그야말로 “後悔先に立たず = 후회는 미리 서지 않는다” , 그 말 그대로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정말 좋아했다.
그리는 것도 좋아했고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는 것도 정말 좋아했다.
초등학교 학생였을 때. 8살, 9살 정도 때. 자기 어머니한테 부탁을 했다. “그림 그리기를 가르치는 학교에 가고 싶어”.
어머니 말하긴 “그런 학교가 이 동네 어디에 있냐?”
“몰라”
“그런 학교는 없어”
12살 때. 그림을 가르치는 “통신학교”를 알게 되었다.
이 때는 어머니에 상담하기 전에 제멋대로 입학원서를 보냈다.
며칠 후에 이를 알게 된 어머니가 “그렇게 그림을 배우고 싶다면 한번 해보지”. 허가해주었다.
정말 기뻤다.
그러나 나는 몃달 후엔 벌써 실망하게 되었다. “통신학교”라는 형식을 미리 이해하지 안했기 때문이다.
교재는 두툼한 텍스트와 수채화도구.
텍스트에 있는 과제를 집에서 혼자 묵묵히 해 내고 한달에 한번 지정 과제를 “통신학교”에 제출한다. 며칠 후에 “통신학교”부터, 제출한 과제에 대한 평가가 보내온다.
A, B+, C- 하면서. 그리고 내가 그린 그림에 “여기는 이렇게, 여기는 이렇게”라고 어드바이스가 조금.
어린 나는 실망했다. 적어도 한달에 몇번은 “통신학교”에 직접 스스로 가서 “선생님”의 지도를 직접 받을 수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어린 나는 “선생님”의 뛰어난 작품을 보고 “선생님”의 다정한 지도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통신학교”란 그런 것이다. 오히려 직접 스스로 “학교”에 가지 안해도 좋다는 점이 “통신학교”의 가장 좋은 점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다.
그 때 나는 아직 사회를 모르는 어린 아이였다.
(이 이야기는 後悔先に立たず(2)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