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저녁 식사중에 명섭이 말했다.
" 나, 우리말 할 수 있었어요. 배행기에서 한국어로 '코라(콜라 Cola) 주세요.'라고 하니까, 스튜어디스가 코라(콜라 Cola) 가져와 주었어요. "
그 말을 들은 아내가, 아들이 대견스러워서 그런지, 말하였다.
" 애들을 우리말 학교에 보낼까? "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이 주최하는 " 토요일 우리말 학교 " 말이다.
그러나 그건 쉽지 않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수요일을 빼놓고 여러가지 학원에 다녀야 해서 애들이 정말 바쁘다.
더구나 " 토요일 우리말 학교 " 는 나고야까지 가야 되고 토요일 오전밖에 수업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일본어에 익숙한 명섭,선화에겐 우리말도 외국어나 마찬가지다.)
외국어를 배우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나라에 가서 사는 것. 아니면 그 나라 출신 사람(그러니까 Native) 곁에서 오랜 기간 매일과 같이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
또한 자신이 노력해서 필사로 배우는 것.
이 세가지 어느 하나도 어린 아이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고야에 있는 " 조선학교 " 에 다니면 어느 정도 수준에는 도달할 수 있다.
실은 나도 아내도 학생시기 " 조선학교 " 에서 체계적으로 우리말을 배웠다.
나는 16년 이상, 아내는 12년 이상단 " 조선학교 " 는 북한을 모국으로 삼는 조선총련 산하 학교여서 그 교육방침에는 지금 생각해 볼 때 많은 문제가 있다고 아니 할 수가 없다.
(오랜 기간 학교에서 우리말을 배우기는 배웠지만 " 국어 " 를 가르치는 교원도 재일교포여서 Native의 우리말을 쓰지 못했다. 그들도 제1언어는 결국 일본말이다. 더구나 수업시간 이외는 모든 생활에서 거의 일본말을 썼으니까 우리말을 잘 익히지 못했다. 좀 핑계.)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다고 들었지만 우리가 학생시기는 학교에서, " 장군님 만세 " 란 말을 당연한 일처럼 되뇌었다.
또한 " 사회주의공화국 "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 우리나라 " 로 인식하였고, 대한민국을 " 남조선 " 이라 불렀고, 대한민국은 1990년대 이전에는 민주화도 실현하지 못한 자유없는 나라라고 인식했었다. 북한의 비참한 상황을 잘 모르면서 말이다.
이 모든 것이 북한식 " 세뇌적인 교육 " 의 결과라는 걸 당시 우리는 인식하지 못했다.
내가 아들을 " 조선학교 " 에 보내지 않았던 까닭도 이 세뇌적인 교육 방침이 큰 원인의 하나였다. 현재 이런 교육 방법은 많이 완화되었다고 들었지만.
물론 " 세뇌적인 교육 " 을 한다 해도 자본주의, 자유주의 사회인 일본에 사는 청소년이 공산주의자가 되기는 힘들다. 당시도 지금도 나는 공산주의자는 물론 아니고 무슨 정치적 지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한 후 오랜 기간 계속 북한을 " 우리나라 " 라고 불렀고 계속 대한민국을 " 남조선 " 이라고 불렀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 장군님, 수령님 " 을 그저 이름만으로 부를 수 있게 될 때까지 몇년이 더 걸렸다.
지금도 그 " 세뇌적인 교육 " 의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었다고는 말하지 못할망정 나를 해외국민으로 받아들여준 대한민국을 마음속으로부터 감사하고 있고 북한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기에 자유를 빼앗기고, 즐거움을 빼앗기고, 삶을 지배당한 그곳 사람들을 생각할 때 절로 가슴이 아파지게 되었다.
적지 않은 재일교포들이 지금도 자녀를 " 조선학교 " 에 보내고 있다.
그 목적은 분명 우리말을 배우기 위해서다.
" 세뇌적인 교육 " 이라고 비판하면서 모순되는 말을 하지만, 사실 내가 학생시기,
" 자신이 민족의 성원이라고 주장하려면 적어도 나라 말과 역사는 알아야 한다. "
이 말을 몇백번 들었는지 모르고, 당시 " 조선학교 " 의 교육 내용에 많은 문제가 있었기는 하나, 이 주장만은 천만번 옳은 말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 조선학교 " 의 우리말과 역사에 관한 그 교육방침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 자기의 민족에 긍지를 느낄 수 있게 되었고 한심하기는 하나 어느 정도 우리말을 할 줄 알게 된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내가 16년 민족교육을 받았던데 우리말 능력이 이 꼴이라서 정말 한심하고 우리말을 배워주신 선생님에게 죄스럽다.)
명섭,선화가 일본학교를 다니도록 한 것에 후회는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애들에게 어떻게든 우리말을 가르쳐 주고 싶다.
앞으로 그런 기회가 따로 있을지 모르지만, 없으면 애들이 고등학교 정도 나이가 되면 우리나라에 1년,2년 유학(귀국?)을 보내는 일도 검토대상으로 해야겠다고 지금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겁쟁이인 명섭이 혼자 유학을 갈 수 있을까?
계획도 없는데 벌써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