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집단심리치료
어빈 얄롬 지음, 이혜성.최윤미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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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를 (너무 어려워서 끙끙대며) 열심히 읽다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좋은 책이다. 책 내용이야 당연히 훌륭하고, 글은 지적이면서 멋지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대학 교재 전문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서답게, 이 책도 전공자(박사 and/or 교수)가 번역을 맡았는데, 그 번역 솜씨가 정말 형편없다.

 

첫 몇 페이지를 읽다가 슬슬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어 번역문을 읽으면서 이상하다 싶으면 오역일 가능성이 80퍼센트 이상이다. 그래서 원문을 찾아봤다.

 

(p.6) 나는 자네와 나 사이의 이전 관계가 지금의 우리 관계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아네. “Look, Bob,” replied Julius, “I know our previous relationship makes this hard for you, but please don't ask me to do your work.” --> 과거의 우리 관계 때문에 자네가 나를 환자로 대하는 걸 힘들어하는 것은 나도 알겠네만

 

(p.7) 그래서 첫 번째 단계는 조직검사를 하고 병리학자들에게서 표본을 얻는 일일세. So, first step is biopsy and getting a specimen to the pathologist. --> 그러니 우선 생검으로 떼어낸 조직을 병리학자에게 넘기세.

 

(p.7) 이제 곧 일반 외과의사를 불러서 그 장애부위를 검사하도록 하겠네. Soon as we finish I'll call a general surgeon to excise the lesion. --> 상담을 마치는 대로, 외과의를 불러 환부를 떼어내도록 하겠네.

 

(pp.7-8) 나는 이런 경우를 수천 번이나 치료했지. Trust my judgment on this; I've been involved with hundreds of these cases. Okay? --> 수천 번이 아니라 수백 번.

 

(pp.8) 얼떨떨한 기분으로 살았다. For the next week Julius lived in a daze. --> daze의 사전적 의미 2번에 멍하게(얼떨떨하게) 하다가 있지만, 숙어로 사용되는 in a daze는 멍하니.

 

(p.8) 거울을 보면... (중략)... 서로 응시하고 있다. --> 이 문단은 번역서에선 한 문단으로 묶었지만 원서에는 문단 네 개로 나뉘어 있다.

 

(p.8) 입술은 지금 이 절망적인 순간에도 가장자리에 따뜻한 미소를 품고 있다. He looked at his lips. Full, friendly lips. Lips that, even now in his time of despair, were on the edge of a warm grin. --> 따뜻한 미소가 피어오를 것만 같은 (미소를 짓기 직전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입술.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문제가 꽤 심각한 편이다. 그러나 결정타는 다음에 온다.

 

(pp.11-12) 그러나 지금, 그 명상하던 여인을 생각하면서 그는 부드러운 느낌을 받았다. 그 여인과 자신을 포함한 인간 전체에 대해 연민의 정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인간은 변덕스럽고 뒤틀린 삶을 살아야 하는 일시적인 존재다. 그 고통을 감내할 심리적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자기를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엾은 희생물들인 것이다. 그런데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잔인한 생명의 유한성을 부인하도록 수년, 수세기, 수천 년을 통해서 훈련되어 왔다. 영원히 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누가 감히 추구했는가!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도록 신이 주신 지침서나 종교적인 의식이나 기념식에 대해 인간은 완벽하게 연구해 왔는가?

 

... 엄청난 오역이다.

 

But, now, as he thought about that meditating young woman, he experienced softer feelings--a flood of compassion for her and for all his fellow humans who are victims of that freakish twist of evolution that grants self-awareness but not the requisite psychological equipment to deal with the pain of transient existence. And so throughout the years, the centuries, the millennia, we have relentlessly constructed makeshift denials of finiteness. Would we, would any of us, ever be done with our search for a higher power with whom we can merge and exist forever, for God-given instruction manuals, for some sign of a larger established design, for ritual and ceremony?

 

일단 for his fellow humans가 어떤 존재인지 이어지는 who are 절에서 설명한다. 진화의 얄궂은 비꼬인 전개의 희생자가 되어, 자기인식을 하게 되었으되 필멸의 존재라는 고통을 감당하기에 필수적인 심리적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우리 인간이여! 그래서 오랜 세월에 걸쳐, 아니 수백 년이나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은 유한성을 거부하고자 다양한 임시방편을 (일종의 꼼수들을) 쉼없이 만들어냈다. (여기부터가 정말 중요한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우리 중 그 누구라도 합일을 이루어 영원히 존재하고자 더 상위의 힘(존재)을 찾아 헤매는 짓을 그만 둔 적이 한 번이라도 있던가? 신이 주신 계명을 찾아 헤매는 짓을 그친 적이 있던가? 더 장대한 신의 설계도의 흔적은 찾아 끝없이 헤매고 다니지 않았던가? 온갖 종류의 의식과 예배는 또 어떻고?


뭐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이쯤에서야 나는 결심했다. , 번역서는 안 되겠구나. 시간이 걸려도 원서로 읽어야겠다. 어차피 쇼펜하우어의 저작도 영어판본과 국내 번역본을 나란히 놓고 낑낑대면서 읽던 차였다. 뭐 그보다는 쉽겠지. Yalom의 이 소설을 읽을 때는 가끔 모르는 단어를 찾는 정도의 어려움일테니.

 

그나저나 원문을 읽으면서 탄복했다. 대단한 글솜씨다!

 

그런데 번역문을 보라. 싸구려다. 천박하다. 내용만 오역인 것이 아니라 옮긴 한국어 수준을 보라. 부끄럽다.

 

공부를 잘해서 석박사도 하고, 유학도 가고, 교수도 된다. 나도 박사이고, 그것도 미국 박사이고, 교수다. 그런데 이런 지식인들이 꼭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대충 알아는 먹는데 (공부에 큰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게 전부인 경우가 많다. 한국어??? 공부만 하느라 교양 수준이 얕은 경우도 흔하다. 그러니 구사하는 한국어는 그 수준에 맞게 유치하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솜씨는 더욱 엉망이다. 아무 학술논문이나 찾아서 읽어보라. 제대로 한국어를 한국어답게 쓰는 연구자가 얼마나 드문지 금세 알 수 있다. 그러니 책을 번역한다는 작업에서는 이런 문제가 왕창 터져 나오기 마련. 공부에 적절한 수준의 (매우 스탠다드하고 고리타분한 영어만 읽으면 되니까) 그저그런 독해능력에 형편없는 한국어 수준과 글솜씨가 결합을 하니, 그나마 일반인보다 나은 전문지식에서의 능력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 소설의 번역은 정말 눈뜨고 봐주기 어려운 꼴이 난다. 

 

우리나라 심리학과 학생들이 이 책을 부교재로 많이들 사겠지? 내가 산 이 번역본에는 20061쇄 발행 후 2016년까지 5쇄를 발행했다고 적혀 있다. 이 정도면 교재 출판시장에서 대박 수준이다.

 

우리나라 심리학과 전공 학부생들이 불쌍하다.

 

여러분도 그냥 Yalom의 책을 원서로 읽기 바란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게 낫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라도 원문을 음미하면서 깊은 깨달음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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