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강의 노트 3/e - 인문학과 실생활에서 배우는 행동경제학, 2023년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도서
에릭 앵그너 지음, 이기홍 옮김 / 에이콘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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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 책은 제법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일반독자를 위한 교양서적이다.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로 사용할 만한 책은 찾기 어렵다. 그런데 <행동경제학 강의노트>가 나왔다. 교양과목 강의로 행동경제학을 가르치던 나같은 사람에게는 전공과목으로 행동경제학을 개설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했다. (지방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원서 강의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번역서는 정말 쓰레기다. 번역이 너무 형편없어서 할 말을 잃을 정도다. 한국의 번역 출판시장에 불만이 많고 그래서 리뷰에다가 그런 불만을 쏟아내곤 했지만, 이 정도면 거의 번역계의 이그노벨상이라도 주어 길이길이 박제해야 할 수준이다.


서문(Preface) 격인 "들어가며"를 보자.


"훌륭한 선생님들께 배웠음에도 프로젝트의 본질과 중요성" --> 프로젝트(project)라는 단어에는 a part of a school or college course that involves careful study of a particular subject over a period of time이란 뜻도 있다. 이제는 외래어가 되어 뭔가 일을 할 때마다 등장하는 프로젝트의 의미가 아니라. 그러니 본문에서 프로젝트는 행동경제학 대학원 강의를 뜻한다.


"내가 학생으로서 갖고 싶은 책이자" --> I wish I had had as a student. 내가 대학원생 시절에 이런 교재로 공부했더라면 할 정도라는 말이다. 이건 그냥 번역자가 한국어를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개념과 이론을 알려주며" --> 이 문장 앞에 원문이 누락되어 있다. While behavioral economics is a research program as opposed to a unified theory


"다양한 상급 과정과 프로그램의 글과 연계해서도 보기 좋다." --> 학부 강의용으로 이 책을 썼지만 석박사 과정에서도 다른 교과서나 논문과 함께 보면 좋을 것이라는 말이다. with books for articles.


"사회, 행동과학, 인문, 사업, 공중보건 등에 걸쳐 선진 학부생들에게도" --> 여기서 사업은 비즈니스를 뜻한다. 선진 학부생들은 advanced undergraduates이다. 웃기는 번역이다.


"진지한 경제학이 위협적일 필요는 없다." --> ㅎㅎㅎ 경제학이 위협적인 것은 얼마간 사실이다. 탐욕스러운 사기꾼들에게는. 하지만 원문은 intimidating이다. 경제학이 어렵게 느껴질 수는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겁이 나서 경제학 강의를 듣지 않는 학생들이 많으니 하는 말이다.


"이 책은 경제학을 증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오, 쉣! 경제학을 증명한다니... 우리는 문학을 증명하고, 철학을 증명하나??? 원문은 this book aims to prove it이다. 경제학에 겁을 먹고 회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증명하겠다는 뜻이다.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자료는 점차적으로 더 어려운 방식으로 도입되는데" --> Abstract, formal material is introduced in a progressively more difficult manner, 추상적, 형식적 내용은 차근차근 쉬운 단계부터 어려운 단계로 소개하겠다는 뜻이다.


"가능한 한 근본적인 직관을" --> underlying intuitions, 수많은 예와 연습문제를 풀면서 근저를 관통하는 행동경제학의 직관적인 핵심을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각 부는 두 개의 장을 포함한다. 짝수 1장은... 홀수 1장은..." --> 지랄하고 있다. contains two chapters : an even-numbered one... an odd-numbered one..." 각 부(part)의 홀수 장에는... 짝수 장에는...이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 중요한 신고전학파 이론은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 The non-trivial amount of neoclassical theory in this book may warrant explanation. 현대 경제학의 주류는 1940-60년대에 성립한 신고전파 종합에 기반을 두고 있다. 행동경제학은 여기에 도전하는 내용이 꽤 많다. 그러니 행동경제학을 가르치려면 사실 교양서적 수준의 책만 읽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주류경제학의 핵심내용을 알아야 그에 대한 반론과 도전과 변용과 개선을 더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자는 행동경제학 교과서이지만 어쩔 수 없이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스탠다드 이론)을 많이 설명할 수밖에 없음을 토로한다. non-trivial이니까 꽤 많이 경제이론 이야기를 풀어낼 수밖에 없으니 이해해 달라는 뜻이다.


"그들은 종종 표준 이론으로 받아들이다." --> a normative theory 표준이론은 standard theory라고 한다. 여기서는 규범적인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이론을 뜻한다. 사실 이 오역이 들어간 문장은 매우 중요하다. "둘째, 행동경제학자들은 표준 이론을 기술 이론으로 거부하지만 한편 그들은 종종 표준 이론으로 받아들이다." 신고전학파의 표준이론(standard theory)에서 기술적인 (사실이 어떠한가 정확히 서술하는 descriptive) 면이라면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인)이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며, 체계적인 (반복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여기에서부터 모든 가설과 이론이 쏟아져 나온다. 경제주체가 이러한 행동과 선택을 하는 것은 저러한 이유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당연히 이러한 상황에서는 저러한 행동과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 된다. (합리적 선택이 된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에서는 신고전학파 표준이론의 가정을 상당부분 부정한다. 그러니 기술적인 (서술적인) 측면에서는 궤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 맞는 것은 아니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는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선택과 행동을 해야하지 않은가! 그래서 저자는 규범적 측면에서 행동경제학이 표준이론이 지시하는 규범적 이론을 받아들인다고 말한 것이다.


"외국어에 대한 연구가" --> The study of a foreign language 연구까지야... 외국어 공부를 하면


"행동경제학을 현대 이론화한 공식 기록물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 does not aspire to be a complete record of contemporary theorizing in behavioral economics. 이 책은 교과서니까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벌어진 모든 이론화 작업과 그 결과를 일일이 다 백과사전식으로 수록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이 책에 제시된 자료는 대개 논란이 없으므로" --> on the whole, uncontroversially part of the canon. 캐논은 전범을 뜻한다.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 4대 비극. 행동경제학 교과서인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 이론, 결과는 이미 경제학계에서 (잠정적인) 진리로 받아들인, 그래서 교과서에 포함시켜도 문제가 없을만큼 믿을만한 내용들이라는 뜻이다.


"데이터, 증거 표준, 경험적(실험적) 방법론 및 통계 기법" --> standards of evidence 증거에 대한 기준을 논의하겠다는 뜻이다. 실증(실험) 연구결과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통계적)으로 꼼꼼히 살피겠다는 뜻.


"양식화된 사실" --> stylized facts 거시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예를 들면, 실업률이 높아지면 임금상승률이 (인플레이션률)이 낮아진다. 경기변동을 포함해서 거시경제적 현상에서 되풀이 나타나기에 그 현상을 설명하고자 노력하는 정형화된 사실들을 뜻한다. 경제학자는 그냥 스타일라이즈드 팩츠라고 부를 정도로 입에 붙은 용어다.


"이런 점에서 한 가지 예를 들어 이 책은 미시경제학에 대한 어떤 표준 서론과도 다르지 않다." --> no different from any of the standard introductions to microeconomics, to take one example. 표준적인 <Intro to Microeconomics>로 끊어 읽어야 하는데, 미시경제학 교과서의 표준 서론이라고 오역했다. 기초인데 이런 걸 틀리다니, 이건 그냥 뭐 성의가 엉망이라는 말 밖에. (혹시 구글 번역기 돌린 뒤에 대충 끼워맞추기를 한 것일 수도.)


"연습(및 정답 키)이 가장 도움되는 요소인 것을 알게 된 후로 더 넓은 범위의 난이도인 연습 문제를 추가했다." --> 이런 걸 한국어라고 부르면.... 한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워 죽고 싶다. 이런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한국이니라니 정말... Since the exercises (and answer key) turned out to be one of the most appreciated features of the original edition, I have added even more — and of a wider range of difficulty levels.  이 책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독자들이 (학생들이) 가장 좋아한 점이 바로 연습문제(와 해답)이었기에, 다양한 난이도의 연습문제를 더 많이 추가했다 라는 뜻이다.


"모든 장은 인용 고전, 리뷰 기사, 고급 교과서들을 제공하는 추가 참고문헌 절로 끝난다." --> every chapter ends with a further reading section, which offers a selection of citation classics, review articles, and advanced textbooks. 엄선한 고전, 리뷰 논문, 그리고 고급 과정 교재들을 엄선하여 '더 읽을거리'를  각 장의 독립적인 절로 실었다.


"나의 희망은... 않기를 바란다." ---> 이건 그냥 주술 관계가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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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하겠다. 겨우 <서문>만 검토한 결과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자. 정말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83쪽에 캘리포니아 고속철도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 3.23)

"비평가들에 따르면 당시 브라운은 '향후 의회가 주요 인구 중심지에 도달하기 전에는 이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계산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 According to critics, the New York Times reported at the time, Brown calculated “that future legislatures would not be able to abandon the project before it reached major population centers". 비평가가 아니다. 정치비평가도 아니고 문학비평가도 아니다. 그냥 비판하는 이들이다. 그 당시 뉴욕타임스가 보도하기를, 비판자들은 주지사 브라운이 계산적으로.....했다는 것이다. 무엇을? 향후 주의회에서는 외곽지역에서 건설을 시작한 고속철도를 어쩔 수 없이 시내중심가로 연결하는 정치적 결정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도대체 이 번역자는 뭘까? 정말 영어를 잘 하기는 하는걸까? 저런 식으로 머릿속에서 한국어로 옮기면 내용을 제대로 이해는 할 수 있는 것일까?


번역자는 카네기-멜론에서 석사과정을 하고 피츠버그에서 finance로 박사학위를 딴 뒤, 여러 기업에서 매니저로 일했다고 한다. 훌륭한 경력을 자랑하는 인재인 듯 하다. 하지만 한국어를 못한다.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이 번역을 (아마도 바쁘겠지, 엄청?) 날림으로 하면, 그리고 대학교재 전문 출판사가 아닌 곳에서 검수와 편집을 엉망으로 하면, 이런 책이 나온다.


겁이 나서 도저히 교재로 채택을 할 수가 없다.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저 위의 별 다섯 리뷰는 뭔가?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리뷰를 썼다는데... 리뷰를 도대체 어떻게 한 걸까? 이런 식의 마케팅 행태가 도를 넘었다. 거의 피싱(phishing) 수준이다. 출판계가 썩어간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혁신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냥 쓰레기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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