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왕의 사회학 - 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
최종렬 지음 / 오월의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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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저자의 관찰과 고민을 10년간 해오고 있는 지방대 교수입니다. 학교는 다르지만 실상은 거의 판박이입니다. 오히려 학과나 전공과 무관하게 너무나 똑같은 현상과 문제에 어지러워져 주저앉을 지경입니다. 여러 이유에서 배움을 포기한 지방의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아파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시절을 저렇게 "찌질하게" 보냅니다.


이 젊은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면서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죠. 꼭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 전망이 암울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나간다는 것, 아니 꾸려나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고민과 성찰과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책의 내용과 방법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연구도 이 땅의 젊은이들을 일거에 분석하고 그들이 떠안은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특수성으로 몰아가는 순간, 우리는 현재 대다수 젊은이들이 품고 살아가는 그리고 앞으로 오랫동안 그로 인해 고통받을 문제를 외면하는 셈이니까요.


저자는 문화사회학적으로 현상을 분석합니다. 물론 그것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잡아내거나 그 해결책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거기에는 심리학과 후생유전학과 경제학과 정치학 등의 다양한 시각을 통한 통합적인 이해가 필수적일 것입니다. 특히 사회경제적 요인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실 상당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의 경제력과 문화자본은 자녀의 사회경제적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경상도 지역이나 전라도 지역의 젊은이들이 봉착한 문제는 그 범위와 심각성이 사실 충청권이나 수도권으로 상당히 퍼진 상황입니다. 심지어 수도권의 젊은이들도 상당수 동일한 처지에 놓여있다고 봅니다. 그걸 지역적 특성이 일부 보완해주고 있거나 가리고 있는 상황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저자의 접근법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지점인 듯도 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설명하는 주된 가설과 이론들 이외에도 마이클 루이스의 아이슬란드의 문화적 분위기 분석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태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중요한 성찰을 제공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저자가 사용한 질적 방법론은 계량경제학처럼 확고한 통계적 증거를 제시하기 위한 방식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분석결과가 타당하지 않은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런 자료는 통계학을 이용한 분석이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을 제대로 건드려주니까요. 그러니 독자 개인의 경험과 합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거나, 지방대생에 대한 마타도어라거나, 지식인의 우월한 가르치려 드는 자세라고 비난하는 것은 편협한 반응이라고 봅니다.


젊은이들은 이르면 중학교 초반, 대개는 고교 진학과 함께 배움을 놓아 버립니다. 정작 배움이 중요해지는 시기에 배움의 가능성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됩니다. 거기에는 학교의 책임이 크겠지요. 교육정책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대다수 가정이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무능한 정부와 무능한 학교와 무능한 부모로 인해 망가집니다. 그리고 그걸 아이들도 잘 압니다. 하지만 살아남아야 하기에 아이들은 변합니다. 희망을 버리는 방식으로, 자신을 낮추는 방식으로, 비슷한 부류끼리 어울리는 방식으로, 부(-)의 외부성과 파급효과를 주고받으면서 말이죠. 


스무 살에 대학생이 됩니다. 그때의 모습은 모두가 찌질합니다. 저도 30년 전에는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점은 스무 살의 찌질함이 아닙니다. 스무 살의 찌질함이 계속되고 악화된다는 것입니다. 새출발이 불가능해질 만큼, 크리스마스 캐롤의 쇠사슬에 묶인 유령처럼 찌질함이 아이들을 옭아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찌질했던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에 나아가서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 것이고, 또 나아지기도 할 것입니다. 정부는 더 많은 지원을 아까지 않을 태세이고 앞으로도 젊은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환경으로 조금씩 변하겠지요.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이 이미 포기했다면 어떻게 하지요? 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 배움을 놓은지 오래된 탓에 어디서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 지 당황하고 방황하면 어떻게 하지요?


저자는 그 점을 잘 보여줍니다. 무서운 것은 현실이 아니라 이런 현실이 영속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에 도움이 별로 주지 못하는 부모들은 주구장창 공무원이 되라고 되뇌입니다. 뭔가 해보려면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도 지원을 해주고 싶어도 경제적 문화적 자본이 부족하거든요.


좋은 부모, 훌륭한 정부, 건강한 사회가 아이들의 성장을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좋고, 훌륭하고, 건강하다는 수식어의 숨은 의미도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봐도 좋지 못하고, 훌륭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부모와 정부와 사회에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기대하는 일은 부질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슬프게도 부모는 교사는 정부는 찌질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훌륭한 아이들을 기대합니다. 노력을 하지만 너무 더딥니다. 대학입시를 둘러싼 맴돌이 결과를 보세요. 그렇게라도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으되 분통이 터지는 것을 어찌하지 못하겠군요.


이 책은 단지 공부를 썩 잘 하지 못해서 지방대에 온 젊은이들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제대로 배우고 성장하는 법을 전수받지 못하고 훈련받지 못한 아이들이 안타깝게도 찌질한 생존전략을 구사한 끝에 도달한 슬픈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 현실을 뒤바꾸는 것이 단 한 가지 전략이나 정책으로 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삶은 수천 수만의 눈물겨운 노력과 영웅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니까요. 이제 쉰이 넘은 지방대 대학교수가 뼈저리게 느끼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책을 이미 읽은 독자들 그리고 읽을까 고민 중인 분들은 단순히 성적을 올리고 취직 가능성을 높이는 공부가 아니라 "성장하는 삶"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분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함께 고민해 봅시다. 성찰해 봅시다. 그런 삶이 또 다른 이의 삶을 성장하게 합니다. 그들이 자녀일 수도 있고, 후배일 수도 있고, 부하일 수도 있습니다. 성장한 이들이 모여 사회가 되고, 그런 사회야말로 살만 한 곳이 될테니까요.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사회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무수한 발걸음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참고로 2017년 시사IN 기사를 링크합니다.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9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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