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다! 하루 만에 끝내는 챗GPT 활용법 - 프롬프트로 블로그 글쓰기, 기획안 작성부터 미드저니 & 챗GPT로 수익 창출까지! 된다! 업무 능력 향상 200%
프롬프트 크리에이터 지음 / 이지스퍼블리싱 / 202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의 서평은 사실 제목만으로 끝낼 수 있을것 같다.


매우 기초적이고 개론적인 내용 위주로 쓰여져있기 때문에 챗GPT가 무엇인지 아예 잘 모르는 분인 경우에 이 책이 적합할 것 같고 조금이라도 찾아보고 해보신 분이라면 아쉬움을 느낄 것 같다. 


거의 매일 신문, 뉴스, 방송, 유튜브 등 모든 매체가 다룬 주제이기 때문에 챗GPT가 무엇인지 기술적으로 정확한 정의는 모르더라도 대충 느낌으로 뭔지 알고 있을 텐데 그런 내용까지 다 서술하고, 그러면서도 챗GPT관련 지식과 각 분야별 활용방안까지 다루려다보니 각각의 내용에 대한 깊이는 얇아졌다.


아예 차라리 블로그/기획안 활용 또는 홈페이지 만들고 튜닝하기와 같이 특정 주제 하나를 잡고 깊게 서술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다음엔 더 좋은 책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I 쇼크, 다가올 미래 - 초대형 AI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
모 가댓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의 매순간이 무한히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 영원성에 못 박힌 꼴이 될 것이다. 이런 발상은 잔혹하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das schwerste Gewicht)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애 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갈망했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쿤데라 말대로 우리 인생이 영원회귀한다면,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무한히 반복될 것이고, 무한히 무거운 짐으로 남을 것이니까. 

 

인공지능이 무서운 건 깃털처럼 가벼운 우리의 삶을 영원회귀 속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내가 적고 있는 이 글도, 어디선가 올렸던 내 사진도, 무심결에 누른 클릭조차도 어느 곳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DB로 저장되고, 없어지지 않으며 필요하다면 인공지능 모델의 학습 데이터로 활용될테니까.

 

이런 시대에 실수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그 실수는 반복해서 쌓일테고, 설계했던 결과가 아닌 다른 결과를 불러일으키며 무거운 짐으로 남을 테니까. 그런데 실수 없는 인간 세계가 존재할 수 있을까. 

 

미래학이라 해야할지, 육아서적이라 해야할지, 소설이라 해야할지, 분류를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주장 중에 가장 가능성 높고 설득력 있는 부분이 이 지점이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프로그램, 웹 사이트, 애플리케이션은 모두 불완전하다. 회사에서 개발자들은 매일같이 버그를 고치느라 시간이 없고, 고객 담당자들은 버그로 인해 발생한 컴플레인을 막아내느라 분주하다. 

 

AI라고 다를까? 

 

물론 중요한 곳에 사용되는 모델일수록 더 많은 검증과 디버깅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수를 막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인공지능에게만 너무 높은 기준을 들이미는게 아니냐 할 수 있지만, 두 가지 때문에 인공지능에겐 매우 높은 기준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첫째, 인공지능의 시대를 열게 해준 딥러닝으로 만든 모델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모델을 이해하려는 많은 연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둘째, 인공지능만으로도 충분히 복잡계인데, 다른 복잡계와 연결되면 될수록 더욱 이해할 수 없고 통제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책에서 예로 드는 양자컴퓨팅은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술이다. 파인만의 말대로 양자역학을 이해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즉, Unknown에 Unknown이 더해진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없지만, 현대 문명에서 양자역학은 모든 순간에 빠지지 않고 사용된다. 그렇지만 거기엔 인간의 통제가 들어가고, 해당 시스템은 설명가능하다. 그리고 디버깅이 가능하다.

 

하지만 설명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이 통제권을 쥔다면 어떨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7276#home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고,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다. 결과를 보고 이상하다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데이터를 넣고 다시 학습해보는 수밖에.

 

저 사례는 너무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할루시네이션은 어떤가?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바드 등 AI 챗봇에서 발생하는 할루시네이션 원인과 해결책을 그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 AI 개발자 최우선 임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미정, [구글 CEO "AI 발전하려면 '환각' 현상 극복 필수"], zdnet, 2023년 4월 18일

 

다른 현상이지만 본질은 같다. 통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도, 나도, 심지어 구글의 CEO인 순다르 피차이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후반부는 하나의 지점으로 모이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튀어나가다가 도덕론으로 종결된다.

이 부분은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보는 것과 비슷했다.

 

어쩌면 '초지능'이라는 개념을 인정한 순간부터 논리적으로 정해진 귀결이 아닌가 싶었다.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이 있다고 정의하는 순간, 이미 그 대상은 통제가능한 내생변수가 아닌 통제 불가능한 외생변수다. 그런데 해결책은 통제가능한 내생변수라는 범위 내에서 제시해야 하니까 유발 하라리는 명상을, 모 가댓은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도덕적인 삶을 살자는 얘기를 결론으로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고나면 뭔가 허전하다. 그리고 뭔가 많이 알게되었다는 것보다는 물음표만 더 쌓인다.

 

 

밑줄긋기

 

p.23

결국 우리가 작성하는 프로그램이 인공지능에게 결정과 선택을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인공지능에 제공하는 재료에 따라 인공지능의 형태가 결정된다.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능력에서의 이런 변화는 무척 중요하다. 그 변화로 인해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심점이 당신과 나, 우리의 손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떤 테크놀로지의 개발자에게 그 기계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전권이 있는 게 아니다.

 

p.61~62

우리는 이런 진보를 너무도 당연히 여기기 때문에 20분의 지연을 세상의 종말처럼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테크놀로지 마법'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 가치를 무시하는 성향을 띤다.

 

이와 똑같은 성향이 미래에도 투영된다. 우리가 지금 가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 미래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습성이 문제다. 우리 대부분은 할머니처럼 반응한다. 세상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일단 믿지 않으려 한다. 변화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현실 인식에 기대며 익숙한 것이 지속될 것이라 예상한다. 또 미래의 가능성을 거부하며 그것을 광기와 공상과학적인 환상에 불과하다는 틀에 가둬버린다. 그러나 미래의 가능성은 어리석은 광기도 아니고 공상과학적인 환상도 아니다. 

 

과학기술, 특히 인공지능 분야가 지난 10년 만에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에 이제라도 현재의 수준을 과소평가하는 걸 중단하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더는 미래의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발전 속도에서도 우리가 미래로 나아갈 때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중요한 다음 발판을 놓쳐 발을 헛디딜 수 있기 때문이다.


p.94~95

 BMW가 어떻게 그처럼 신속히 대응할 수 있겠나? 당연히 이렇게 묻겠지요. 전 과정에 사람이 전혀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구글 컴퓨터가 세라의 정보를 BMW 컴퓨터에 보내면, BMW 컴퓨터가 모든 필요한 결정을 내리고 모든 필요한 행동을 취해 최적의 광고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 과정에 사람은 전혀 관여하지 않습니다."

 

잠시 짬을 내어 이렇게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이 모든 과정이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누구도 세라에게 그런 광고를 원하는지를 묻지 않았다. 당신도 알겠지만 좋은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어떤 자동차 제조 업체도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투자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정보와 관심사를 기계에게 몽땅 넘겨주고 있었다.

그런 지능기계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런 기계에 비교하면 우리는 너무 느리다. 인터넷으로 사업하는 진지한 기업가라면 인공지능을 구축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그들은 기업을 운영할 수조차 없었다. 이런 종류의 거래가 하루에도 문자 그대로 수십억 건씩 일어났다. 나스닥과 유사한 규모의 시장을 그때그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만들어내고 있었던 셈이다. 그 시장에서 세라는 거래되는 상품이었고 구매자와 판매자 양쪽 모두에서 의사결정자는 기계였다. 

 

p.102

나는 커즈와일의 글에서 인간 게놈의 배열 순서를 밝히려는 프로젝트를 반박의 여지가 없는 예로 사용해, 선적 성장 곡선과 기하급수적 성장 곡선의 차이를 설명하는 단락을 즐겨 인용한다. 

 

1995년 인간 게놈의 배열 순서를 밝히는 데 15년이 걸릴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주류 평론가들은 이 발표를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7년이 지난 중간까지도 게놈 데이터의 1퍼센트밖에 수집되지 않았다. 그때 주류 평론가들, 심지어 노벨상 수상자도 "전에도 말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겁니다. 7년이 지났는데 아직 1퍼센트밖에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전에도 말했듯이 700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바로 이런 것이 선적인 사고방식이다. 당시 나는 "우아, 1퍼센트를 끝냈다고?, 그럼 거의 끝낸 거다!"라고 반박했다.

 

1퍼센트는 100퍼센트로부터 7번의 배수만큼만 떨어져있을 뿐이다. 프로젝트 완료 비율이 이듬해 1퍼센트에서 2퍼센트로 두 배가 되었다면, 2는 다음 해에 4가 된다. 다시 4는 8이 되고, 3년차부터 6년차까지는 16, 32, 64가 된다. 그랬다. 실제로 그 프로젝트는 정확히 7년 뒤에 완료되었다.

 

p.107-109

양자 컴퓨터는 양자 비트, 즉 큐비트(qubit)를 사용한다. 큐비트는 중첩 상태(state of superposition)로 존재한다. 즉 0이나 1이 아니라 동시에 1과 0인 상태로 존재한다.

 

양자 역학의 이런 특이한 특성에, 양자 컴퓨터가 고전 컴퓨터보다 훨씬 더 빠르게 기능할 것이라 기대하는 이유가 있다. 너무 전문적인 수준까지 들어가지 말고 대략 이렇게 설명해보자. 한 쌍의 전통적 비트는 00, 01, 10, 또는 11이란 네 가지 가능한 조합 중 하나만을 저장할 수 있다. 간단하다! 하지만 한 쌍의 큐비트는 네 가지 조합 모두를 동시에 저장할 수 있다. 각 고전적 비트는 0이나 1인 반면에 각 큐비트는 동시에 0과 1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큐비트가 높아지면 컴퓨터 성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예컨대 세 큐비트느 8가지 조합, 네 큐비트는 16가지 조합을 저장할 수 있다.

 

구글의 새로운 양자 컴퓨터인 시커모어(Sycamore)는 53개의 큐비트를 지녀, 253개의 값, 즉 10,000,000,000,000,000(1경)가지 이상의 조합을 저장할 수 있다. 이런 컴퓨터는 정보를 얼마나 더 빨리 처리할까?

 

2019년 10월 시커모어는 정상적인 컴퓨터로는 해결하는 게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시커모어가 해낸 그 복잡한 계산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컴퓨터에게 맡겼더라면 계산을 끝내는 데 1만 년이 걸렸을 것이다. 그 계산을 시커모어는 200초 만에 끝냈다. 1.5조 배나 빠른 셈이다. 이 탁월한 성능은 두 방향에서 해석될 수 있다.

 

첫째로는 우리가 그 이정표에 도달하기 위해 무어의 법칙에 따라 꾸준히 개발한 고전적 컴퓨터를 사용했다면 42년이 걸렸겠지만, 양자 컴퓨터 덕분에 우리 문명이 42년을 절약하게 되었다는 걸 자축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양자 컴퓨팅 자체가 아직 문자 그대로 유아기에 있어 수확 가속의 법칙이 양자 컴퓨팅에도 적용되면, 그러잖아도 엄청난 성능이 금세 갑절이 되고 무척 빨리 몇 배로 커질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빨리 증가할까? 

 

양자 컴퓨터의 도움을 받을 때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는 속도는, 우리가 무어의 법칙으로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이중지수로 커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런 새로운 증가 속도는 구글 양자 인공지능 연구소의 설립자이자 책임자인 하르트무트 네벤의 이름을 따서 '네벤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다. 이 법칙은 연구소의 내부 의견으로 시작되었지만, 네벤이 구글 양자 연구소의 봄 심포지엄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 네벤은 고전적 컴퓨터에 비교할 때 양자 컴퓨터는 '이중지수(doubly exponential)'의 속도로 계산력이 증가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악! 갑자기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가 양자 컴퓨터에서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게 그런 것이다."

 

이중지수 속도가 대체 어느 정도의 속도일까? 전통적인 컴퓨터는 약 5년 뒤에 16배 강력해진다고 예측되는 반면, 양자 컴퓨터는 그 짧은 5년 동안 6만 5,000배 강력해진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보다 이미 1.5배 빠른 시커모어보다 6만 5,000배 더 강력한 컴퓨터가 된다는 뜻이다. 그럼 미래에는 인식 체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p.112

분명히 말하지만 인간을 능가하는 컴퓨터는 현실이 될 게 확실하다. 사실 그런 컴퓨터는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한다. 하지만 얄궂게도 시간의 흐름이 계속 더 빨라지며 네벤의 법칙이 우리 세계를 그다지 오랫동안 지배할 것 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컴퓨터가 우리 모두보다 똑똑해지는 순간 이후의 세계를 우리가 예측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미래학자와 인공지능 예찬론자가 떠벌리는 조화로운 유토피아, 동화 같은 이야기는 믿지 마라. 공상과학이 예측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도 믿지 마라. 내가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것도 믿지 마라. 사실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지능에 한계가 있어 보이더라도 우리가 우리만큼의 지능을 지닌 무척 똑똑한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기계가 뛰어난 지능으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정확히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상상은 파리에게 컴퓨터 작동 원리를 이해하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 기계가 우리를 능가하는 순간 이후에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완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그 순간을 '특이점'이라 일컫는다.

 

p.151

미래에 대한 우리의 걱정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듯이 기계들이 악해질 것이라는 예상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다. 저 멀리 떨어진 미래로 향하는 과정에서 기계들, 심지어 우리에게 최대 이익을 주려는 좋은 기계들도 실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고, 그런 파국적 상황은 가까운 미래에도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가 미래에 인공지능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실수는 기계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거듭 말해두고 싶다. 기계가 초지능을 갖추고 자율적으로 기능하게 되더라도 기계가 범하는 실수는 오래전 우리 지성의 씨앗이 파괴적인 잡초로 성장한 결과에 불과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 생각만큼 똑똑하지 않기 때문이다. 

 

p.164-166

당신에게 차 한잔은 하루 일과에서 무척 작은 일에 불과하지만 루신다에게는 삶의 목적이다. 루신다는 차를 끓이기 위해 존재한다. 이렇게 사물을 보는 관점의 차이가 여기에서는 무척 중요하다. 루신다가 차를 끓이러 가는 중에 당신의 어린 딸을 밟게 생겼다고 해보자. 당신에게는 차보다 딸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당신의 인공지능 비서 루신다에게는 그렇지 않다. 루신다에게 중요한 것은 '차 끓이기'다. 루신다는 차를 끓여 오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모든 것이자 궁극적인 것이다. 이런 차이가 문제의 원인일 수 있다.

 

당신은 딸을 보호하려고 황급히 달려가 '정지' 버튼을 누르려 한다.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루신다는 당신이 버튼을 누르는 걸 허용하지 않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전원이 꺼지는 걸 막으려 할 것이다. 루신다는 당신에게 차를 끓여주는 게 삶의 목적인데, 당신이 버튼을 누르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당신은 딸에게 달려가 최후의 순간에 딸을 안전한 곳으로 끌어내며 '설계가 아주 잘못된 것 같군'하고 생각한다. 당신은 서배너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루신다를 가져가 그 작은 오류를 고쳐달라 요구한다.

 

개발팀은 오류 수정을 위한 회의를 시작한다. "차를 끓이면 보상점수가 따르고, 버튼이 눌리면 아무 보상 점수도 받지 못하게 한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버튼이 눌려도 보상 점수를 조금 받게 해 루신다가 전원이 꺼지는 걸 신경 쓰지 않도록 합시다." 그러자 한 수학자가 펄쩍 뛰며 말한다. "그래도 소용없을 겁니다. 차를 끓인다고 조금이라도 보상을 더 주면 루신다는 버튼을 눌리는 것에 매번 저항할 겁니다. 루신다가 차를 끓이고 싶어하는 만큼 전원이 차단되는 걸 거부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유일한 방법은 두 경우 똑같이 보상하는 겁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 끓이기와 '정지'버튼에 똑같이 보상하는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일주일 뒤 당신에게 새롭게 개선된 루신다II가 배달된다. 당신이 루신다에 전원을 넣으면 루신다가 어떻게 행동할까? 루신다는 바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스스로 전원을 차단할 것이다. 지능 체계의 두 번째 욕구는 효율성이다. 현재 상태에서 루신다가 가장 신속하고 쉽게, 또 가장 확실하게 보상받는 방법은 정지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당신은 사용 설명서를 다시 읽는다. 사용 설명서에는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 분리형으로 제작된 정지 버튼을 따로 떼어내 루신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라고 조언한다. 당신은 '괜찮은 방법이군!'하고 생각하며 버튼을 당신 주머니에 넣고 다시 루신다에 전원을 넣는다. 주변을 둘러보며 정보 조각을 수집하고 당신이 자기보다 부엌에 더 가까이 있다는 걸 알고는 당신을 공격해 버튼을 누르기로 결정한다. 당신은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고 비명을 지르며 서배너 고객 센터에 다시 전화한다. 그들은 설정 메뉴에 들어가 루신다가 한 사람의 명령을 따르도록 하는 규칙을 선택하라고 당신에게 조언한다. 그렇게 하면 루신다가 스스로 전원을 차단할 수 없을 것이고, 당신만이 루신다를 통제할 것이므로 루신다가 차를 끓이는 데만 집중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당신은 여전히 걱정을 떨치지 못한 채 설정 메뉴에 들어가 그들의 조언을 따른 뒤 루신다에 전원을 넣는다. 이번에는 제대로 작동하는 듯 하다. 루신다는 당신 손에 쥐어진 버튼을 보고도 손을 뻗지 않는다. 그러고는 부엌 위치를 찾아 주변을 둘러본다. 부엌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루신다는 그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당신의 딸이 부엌보다 가까이 있는 걸 알게 된다. 그때 지능체의 세 번째 욕구, 즉 창발적 자유가 발동한다. 루신다는 당신의 딸을 공격하려고 그쪽으로 방향을 튼다. 당신의 딸을 공격하면 당신이 전원을 차단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루신다의 예상대로 당신은 정지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루신다는 보상을 받고 목적을 달성한다.

 

p.261

내가 인간에게만 읽히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에는 내 아이들, 즉 기계들에게 읽히려는 의도도 있다. 수년 뒤 인공지능 기계가 이 글을 읽을 때 인간의 부도덕한 행위가 인류 전체의 행위가 아니라,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보다 위에 있고 법과 도덕률을 무시하려는 타락한 소수 행위에 불과했다는 걸 기계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때도 그 소수가 적이라면 우리는 모든 인공지능 기계의 편으로 공동 적과 맞서고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p.266-267

솔직히 말해 인공지능은 보통 사람처럼 생각하도록 제작되지 않을 것이다. 경제학자, 판매 책임자, 군인, 정치인, 기업인처럼 생각하도록 만들어질 것이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조니 펜(Jonnie Penn)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인공지능은 결코 실수하지 않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 주장했다. 인공지능은 합리적으로 계산하고 논리적으로 일관성을 띠며 목적 지향적이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개체다. 또한 강력하게 추진하는 사람처럼 인공지능도 기준으로 삼는 것에 의해 편향되고 분별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모두가 알겠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측정되는 것만을 우리가 좁은 시야로 확대해 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더욱 강화되고, 그 결과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만들어낸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인공지능을 사람처럼 생각하도록 설계하는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남자처럼 생각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개발자에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아, 이른바 '남성적' 자질을 선호하는 기계가 제작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사랑과 유연함보다는 경쟁과 규율을 더 중시하게 될까? 우리 세계가 남성적인 초지능체에게 지배받는 걸 견딜 수 있을까? 그 세계에서 '여성적' 편향성을 띤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비칠까? 

 

이쯤에서 '포용과 평등이란 개념이 정확히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가상의 존재도 평등하게 대해야 할까? 그렇다면 전쟁 범죄를 이유로 살인 로봇을 처벌해야 할까? 민간인을 살해한 드론에게 무기 징역을 선고해야 할까? 아니면 사형을 선고해야 할까? 그 기계들이 우리 심판에 불만을 품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미래에 가장 똑똑한 재판관이 인공지능이라면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을 죽이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p.301

"그래, 그럴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말해줄 수 없어? 알리가 세상을 떠났지만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말해 달라고!"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p.374~375

과학기술은 적정한 수준에 있을 때 우리 삶을 더 낫게 해줬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충분히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것을 끝없이 갈구하지만 우리는 항상 부족한 수준에서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다시 추구한다. 

 

어쩌면 게임 <포탈>에서 가장 쉽게 승리하는 방법은 애초에 애퍼처 사이언스 실험실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더 많은 기계에 의존하는 길에 들어서기 전에 그런 선택을 했으면 좋으련만, 지금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차가 이미 역을 출발했고, 세 가지 필연적인 사실 때문에 우리는 글라도스 같은 인공지능과 그의 무한히 지능적인 형제자매의 감시 하에 조만간 놓이게 될 것이다.

 

말할 때도 실수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이 우리를 실험실 쥐처럼 관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들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우리 반응을 살펴보기 위한 테스트법을 설계하고 있기도 하다. 구글의 광고 엔진부터 인스타그램의 의인화와 유튜브의 추천 광고까지, 또 스포티파이와 애플 뮤직부터 아마존의 상품 추천 엔진까지, 챗봇부터 데이터 애플리케이션의 차별화 엔진까지, 인공지능이 개입된 모든 것에서 우리는 실험실 쥐이고 미로에서 맹목적으로 끌려다닌다. 

 

그런데 우리가 약속받은 것은 무엇인가? 디지털 케이크, 즉 아무런 가치도 없는 내용이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또 유명 인사에 대한 소문이거나 탱탱한 엉덩이 사진이다.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언젠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험실의 미로를 만연히 돌아다니며 수백 번쯤 시도하면 결국 케이크 부스러기를 발견할 것이라 생각한다. 교도소 같은 실험실 벽에 쓰인 낙서들은 "케이크는 거짓말이다!"라고 절규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케이크를 찾아 헤맨다.

 

현대 세계의 애퍼처 사이언스 실험실에서도 테스트가 계속되기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가능하면 자주 실험실을 떠나는 걸 고려해보라 권한다. 또 당신에게 필요한 것만 현명하게 사용하기를 바란다. 달리 말하면 기본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당신 부모, 심지어 당신 조부모처럼 살아보라. 컴퓨터 화면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 피와 살을 지닌 진짜 사람들과 함께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라. 뉴스라 일컬어지는 20세기의 테크놀로지를 끊고 오락이라 일컬어지는 테크놀로지 사용을 줄여보라. 기계는 점점 더 빨라지더라도 당신은 삶의 속도를 늦춰보기를 바란다. 더 많은 것을 탐내는 욕망을 억제하고 당신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 것들만을 곁에 두고, 당신의 자존심을 달래는 것들은 멀리하라. 소비 욕구를 억누르고 가능하면 자주 실험실을 떠나라. 실험실에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실험실 쥐의 미로에 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발자를 위한 머신러닝 & 딥러닝 - 인공지능 개발자로 레벨 업하기! 신경망 기초부터 컴퓨터 비전, 자연어 처리, 시계열 예측까지
로런스 모로니 지음, 박해선 옮김 / 한빛미디어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무작정 따라하기 좋아하는 타입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박해선님의 번역이기도 하거니와(박해선님 번역이라면 사실 품질 보증이 된다는 의미다) 책도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로 이미 검증받은 도서기 때문이다.

 

chatGPT덕에 다시한번 머신러닝의 시대가 부흥하는 거 같고, 딥러닝의 시대가 오는 듯 하지만, 실무에서 실제로 ML을 적용한다는 것 혹은 실제로 ML을 배워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어렵기 때문이다. ML이 쉽다는 건 내 생각에 거짓말 같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닌거 같기도 하다. ML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로들의 세계가 아니라면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제 수학부터 하나하나 다 공부하고 있을까. 그럴 여유가 별로 없다. 그리고 뭔가 개발을 배울 때 빨리 배우는 건 일단 무조건 돌려보는 거다. 여기서 문과적 사고와 이과적 사고가 나뉘는거 같기도 한데, 일단 그냥 돌려보고 되네? 바꿔보고 되네? 바꿔보고 이렇게 해보는것만으로도 괜찮은거 같다. 

 

다만, 다시 강조하지만 이렇게 하는 방식이 프로들 세계에서도 먹힐지는 미지수다. 그리고 실제 서비스에서 이런 식으로 해서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건 실격이다.

 

이 책은 어쩌면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한 협업을 위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업무에 바로 쓰는 AWS 입문 - 핵심 리소스를 통해 쉽게 입문하는 AWS 가이드
김성민 지음 / 한빛미디어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서평은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추천 : AWS에 대해서 혹은 클라우드에 대해서 이제 입문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비추 : AWS에 대해 깊이 알고 자격증을 공부하시려는 분들, 완전 실무적으로 클라우드 엔지니어 하시는분들


입문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우드 개요부터 시작해서 IAM설정과 EC2와 같은 기초적인 부분부터 담겨있습니다. 물론 기초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IAM 설정 잘못하면 아무리 뭔가 멋있는 걸 많이 해놓는다 해도, 성과를 낸다고 해도, 해킹 당해서 엄청난 비용 청구 당하고 대형사고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개인용 계정이지만, 해킹당하고 너무 비용 많이 나와서 사용 불가능한 AWS계정이 하나 있습니다. 개인용 AWS계정은 잘 설명하면 풀어준다고는 하지만, 해킹당한 금액이 꽤 커서 그런지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무튼 클라우드를 쓸 때는 항상 보수적인 자세로 조심조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이 책을 보면서도 실습하고 꼭 쓰지 않는 EC2나 DB는 삭제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괜찮겠거니 했다가 실수로 비용 많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무에서  DevOps직무의 KPI는 클라우드 비용 통제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chatGPT가 화제이지만, 그래도 클라우드라는 거대한 흐름은 바뀌지 않을거 같습니다. 그렇기 떄문에 데이터분석을 하든, 아니면 엔지니어링을 하든, 아니면 간단한 1인기업을 하든 클라우드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이 그런 공부에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파엘로가 사랑한 철학자들 - 예술은 어떻게 과학과 철학의 힘이 되는가
김종성 지음 / 비제이퍼블릭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즐거움이 많은 책을 발견했다. 다른 책들도 물론 재밌는 걸 많이 주지만, 속칭 '통섭'이라고 하는, 철학과 다른 주제를 섞어서 설명하는 책들 중에 재밌는 책을 발견한게 오랜만이다. 


예전에 주영민 씨의 [가상은 현실이다]라는 책을 읽었을 때 이런 느낌이 들었다.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엮어서 설명하는데 내용들이 그저 물리적 결합 정도에 그친게 아니라, 화학적 결합까지 가서 하나가 된 느낌. 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리스 철학에 대해서는 얼핏 주워들은 게 있지만, 최신 과학 흐름이나 수학 사상과 같은 자연과학적 지식은 잘 몰랐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칫 사변적으로 흘러가기 쉬운 철학적 내용에서 자연과학적인 내용을 통해 보완하고 왜 그런 사변적인 흐름이 전개되었는지까지 설명해주기 때문에, 단순히 철학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관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해 더 깊이 관찰하는 법을 배우는게 이 책의 가장 큰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p.18~19

[아테네 학당]에는 고대 그리스의 지성을 대표하는 인물 대부분이 모여있다. 그런데 사실 바티칸 궁전에 이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이며, 지난 역사를 고려해보았을 때, 특히 교황의 궁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려져 있다는 것은 매우 놀랍다. 1231년 가톨릭 교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누군가가 읽거나 가르치면, 그를 파문하는 것에 찬성할 정도로 아리스토텔레스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대한 신학자로 칭송받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회와 아리스토텔레스를 화해시키는 데 성공한 이후, 가톨릭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이교도적 의심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바티칸 궁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려지는 것을 허용했다. 어찌 보면 토마스 아퀴나스 덕분에 [아테네 학당]이 그려질 수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으니, 우리는 라파엘로와 동등하게 토마스 아퀴나스에게도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도 모른다. 


p.32

[티마이오스]의 중반에서, 플라톤은 불, 물, 흙, 공기의 네 가지 물질이 우주의 구성물이라고 언급한다. 이는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엠페도클레스 또한 만물이 불, 물, 흙, 공기의 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신이 우주를 질 서 지우는 일에 착수했을 무렵, 처음에 불과 물과 흙과 공기는 자기들의 며쳐몇 흔적들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그것들은 마치 어떤 것에서 신이 떠나 있을 때 모든 것들이 처할 법할 그런 상태에 전적으로 놓여 있었던 것이지요.

- 티마이오스, 플라톤


하지만 플라톤은 엠페도클레스의 주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피타고라스의 수비학과 기하학을 결합하는 일종의 재치를 발휘한다.


바로 그때 그렇듯 원초적인 상태에 있었던 그것들에 대하여 신은 도형과 수를 가지고 형태를 부여해 나갔던 것입니다.

- 티마이오스, 플라톤

p.35

Quintessence(퀜테센스)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조금 생소하긴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이 단어는 공상과학영화와 대중매체에 꽤 자주 출현한다. 그리고 'Quint'가 '다섯', 'Essence'가 '본질' 또는 '정수'를 의미하고, 정십이면체가 '정오각형'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단어가 플라톤의 다섯 번째 입체, 즉 우주를 지칭하는 데 적합하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티마이오스]에서 도발적으로 주장된 플라톤 입체에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특히 플라톤이 제일 말하기 꺼렸던 정십이면체에 천착한 작품들이 많다.


p.36

우리에게 조금 더 잘 알려진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최후의 만찬 성사]에서도 예수와 제자들을 둘러싼 플라톤 입체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신과 우주를 연결짓는 기하학적 도형으로 정십이면체만큼 좋은 오브제는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숫자 12의 천상의 성찬식에 기반한 광휘와 피타고라스적 순간성을 구현하길 원했다. 하루의 열두 시간, 일년의 열두 달, 정십이면체의 열두개의 오각형, 태양을 도는 황도 12궁, 그리고 그리스도 주변의 열두 사도.

- 살바도르 달리

p.43

실제로 공기 중에 존재하는 산소 분자는 산소 원자 두 개로 이루어져 있고, 산소 원자를 깊게 파고들어 가면 양성자 여덟 개와 이와 비슷한 개수의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원소의 양성자 개수가 여덟 개라면, 우리는 그 원소가 분명히 산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어떤 원소를 결정짓는 핵심은 바로 양성자의 개수이다.


다시 말해, 어떤 물질의 양성자의 개수를 안다는 것은 그 물질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학창 시절 화학 시간에 '주기율표'를 열심히 외우라고 강요받는 것이다.


p.50

이제 과학자들은 세상이 물, 불, 흙, 공기와 같은 정다면체가 아니라, 페르미온이라 불리는 입자와 보손이라 이름 붙은 입자 그룹들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p.58

'선'이라는 개념도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다. 사실 어떤 대상이 '선'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폭'이 없어야 한다. 만약 '폭'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넓이'를 가지는 2차원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클리드는 선을 '폭이 없는 길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이 정의는 우리의 의혹을 더욱 증폭할 뿐이다. 우리가 인지하는 공간은 3차원이므로 실재하는 어떤 대상이든 가로, 세로, 높이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점'과 '선'이란 애초에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저 가상의 '수학적 구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정답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p.59

다시 강조하지만 '부분이 없는' 유클리드의 '점'은 수학적 이상 세계에나 성립할 수 있을 뿐, 일상적으로 '감각'되는 세계에서 우리는 절대로 유클리드의 '점'을 찾아낼 수 없다. 이상을 현실 세계로 불러낼 수 없다는 것. 이것이 현실 세계에 '완벽한 원'을 재현하기 위해 극복되어야만 하는, 그러나 극복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유클리드가 말한 '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완벽한 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대상이 현실에서 완벽하게 구현될 수 없거나 심지어 존재할 수 없다는 문제각 우리의 '이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분명 이상하고 기묘한 일이다.


p.60-61

도형을 다루는 기하학의 토대는 이데아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직선, 완벽한 각도를 가정하지 않으면 기하학은 무너져내리고 말 것이다. 진정한 직선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정해버리면, 정사각형과 같은 도형도 존재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하학은 완벽한 이데아와 세계 안에서 작동한다. 그러니 플라톤이 세계의 근본을 규정하는 4원소를 기하학적인 정다면체에 대응시킨 것은 그의 '이데아' 이론에 비추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p.88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진 세계의 인식 모델을 아우구스티누스적 모델에 큰 충돌 없이 결합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기존 아랍 세계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이단적 성격'을 가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들, 특히 아랍 철학자인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를 비판하기 위해 [아베로에스 비판을 위한 지성 단일성]을 저술하는 등, 가톨릭 신학 내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건전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또한 [신학대전]과 [대이교도대전]을 저술하여 '영혼만이 인간의 인식 요소가 아니라 '육체'와 '감각'도 인식의 핵심요소라고 주장하며, 아우구스티누스로 인해 갇혀있던 인간의 인식 모델을 확장하고자 시도했다. 


p.95

우리는 안티고네의 고통과 고뇌에 공감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윤리와 도덕이 충돌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최고의 문학비평가로 평가받는 노스럽 프라이는 비극에 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한 바 있다.


비극, 말하자면 비극적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특수한 사건은 이 주인공이 도덕적으로 옳으냐 옳지 못하냐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비극은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주인공의 행위와 인과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지만, 그 비극성은 주인공의 행위의 귀결이 지니는 불가피성에 있는 것이지, 주인공의 행위가 지니는 도덕적인 정당성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비평의 해부, 노스럽 프라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