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누구든, 아직 청춘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강인한 육신을 뜻하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과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참신함을 뜻하나니


 

생활을 위한 소심성을 초월하는 용기

안이함에의 집착을 초월하는 모험심

청춘이란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의 청년보다 예순 살의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우리는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어가나니

세월은 살결에 주름을 만들지만 열정을 상실할 때 영혼은 주름지고

근심 두려움 자신감 상실은 기백을 죽이고 정신을 타락시키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모든 인간의 가슴속에는 경이로움에의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미래에의 탐구심과

인생이라는 게임에 대한 즐거움이 있는 법


 

그대의 가슴 나의 가슴 한 가운데에는

이심전심의 무선국이 있어

인간과 신 그 모든 것으로부터 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네

아름다움과 희망과 기쁨과 용기와 힘의

메시지를 그대 젊어 있는 한


 

그대가 기개를 잃고

정신이 냉소주의의 눈과 비관주의의 얼음으로 덮일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이네

그러나 그대의 기개가 낙관주의의 파도를 잡고 있는 한

그대는 여든 살로도 청춘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네 

   사뮤엘 울만의 시, ‘청춘’은 김난도 교수의 책 제목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대신한다. 꿈이 있는 사람은 스무 살이든 예순 살이든 ‘청춘’이다. 하지만 꿈이 있는 사람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을 즐기지 않고 준비를 해야 하므로 때로는 아프다. 그러므로 꿈이 있는 그대가 아프다면, 그대는 청춘인 것이다. 

 


   ‘김난도 교수와의 토크 콘서트’가 지난 주 CJB청주방송에서 마련되었다. 프레시안 베테랑 기자와 출판평론가, 그리고 독자를 대표해서 파워블로거인 내가 초대되었다. 청주로 가는 길,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다시 읽었다. 정말 좋은 책, 올 상반기 내내 베스트셀러 정상에 앉아있는 이유가 충분했다. 그만큼 저자에게 묻고픈 것도 많았다.  

  이 책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탄생스토리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싸이월드에 있는 난도쌤의 홈피에 가르치는 제자로부터 '슬럼프에 빠져 괴롭다'는 글을 받은 저자는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아버지로서, 삼촌으로서 제자를 다독이는 A4지 2장 반 정도 되는 장문의 답글로 답했다. 얼마 되지 않아 홈피에 있던 그 답글은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었고, 해당글은 엄청난 '펌질'을 통해 많은 청춘들을 감동시켰다. 어느 출판사의 기획자 역시 그 글에 감동을 받았다.

   "교수님, 그런 글 더 만들어주세요." 느닷없이 찾아와 '청춘들을 다독이는 책을 만들자'는 기획자의 제의를 받고, 몇 번의 고사 끝에 집필을 수락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그렇게 태어났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어쩌면 이 시대의 청춘을 향한 기성세대를 대표한 김 교수의 사죄글인지도 모른다. 부족했다고는 하지만 지금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을 누려온 기성세대들이 후세를 위해 더 많은 것을 만들어줘야 했을텐데, 그렇지 못했음을 마음 깊이 사과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인생 앞에 내던져지듯 홀로 서게 된 젊은 청춘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란게 도대체 무엇일까. 그 어려운 대답을 김 교수가 대신하고 있다.  



   토크 콘서트에 출연한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이 책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만한 청춘들의 문제,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의 시스템상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자성하게 만드는 시발점이 되었고, 최근 거론되고 있는 청년문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에 있어서도 단초를 제공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옳고도 옳은 말이다. 물론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처음은 아니었다. 수년 전 우석훈은 책 <88만원 세대>를 통해 이 땅의 청춘들의 우울한 현실을 이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는 그들을 올바르게 보는 관점을 준 것이 아니라, 청춘들에게는 스스로의 위치를 규정짓게 만들어 의욕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정치인들에게는 개선점 하나 없이 여야의 당리당략을 위한 좋은 구실만 제공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청춘들은 '88만원 세대'라는 말에 이용당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김난도 교수의 위로를 통해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했고, 나아갈 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를 '이 땅에 태어난 팔자 탓'을 할 것이 아니라 개선이라는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 변화의 시작은 '반값 등록금을 위한 촛불시위'. 김난도의 위로는 한낱 말에 그치지 않고 청춘들에게 변화라는 화약에 불꽃이 되어주었다. 
 

  여든 살도 '청춘'일 수 있다는 사뮤엘 울만의 시처럼 약관의 청춘 뿐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청춘들을 움직였다. 이 책을 통해 모든 세대들이 우리의 젊은 청춘들이 이토록 고통스럽단 말인가 각성하게 되었다. 아울러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함을 공감했다. 작금에 일어나는 의미 있는 진전들은 이 책의 영향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귀에 감기듯 읽히는 이 책은 그가 100 번 넘게 탈고한 덕분이란 사실도 콘서트를 통해 알았다. 적지 않은 시간동안 외국에 있던 탓에 글쓰기가 어려웠던 점을 필사를 통해 극복했다는 것을 책으로 알았지만, 100 번 이상의 탈고라는 말에 책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 책은 인생 앞에 홀로 선 청춘들의 불안을 보듬어준 책이다. 누군가 불안하다고 할 땐 공감만 해줘도 불안은 위안이 된다. 나홀로 있다는 고독감에 불안한 것이기에 같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만도 안심이 된다. 모두가 자신의 삶이기에 청춘들을 대신해 움직여주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함께 있으면서 공감해주는 것은 가능하다.

   가는 앞길에 거리낌이 없도록 살펴봐주는 것, 그것이 이 땅의 기성세대들이 할 일이다. 생각의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책, 모든 청춘이 읽어야 한다는 세간의 목소리가 틀리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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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 2010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에릭 파이 지음, 백선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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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일한 벗, 고독마저 침범당한 한 사내의 이야기  



  취재차 일본을 자주 들리던 파란 눈의 한 사내는 어느 날 사건사고 기사를 보려고 신문을 읽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한다. “한 오십대 독신 남성이 부엌에서 음식물이 사라지는 걸 보고 놀랐다.” 평범한 듯 기괴한 기사의 헤드라인은 사내를 깊은 생각의 늪에 빠져들게 했다. 에릭 파이Eric Faye의 <나가사키>는, 그래서 태어났다.

  놀라운 건 작가가 ‘혼자된 자의 고독’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벽안(碧眼)의 서양인이 중년의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점은 뜨악할 만 했다. 오죽하면 책의 맨 앞장으로 돌아가기를 몇 번 저자가 프랑스인임을 확인할 정도였다.(고독을 아는 작가라면 그 역시 혼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 알 수는 없지만 몰라도 딱히 상관은 없다). 



  인간은 고독마저 친구가 되기에 결코 혼자일 수 없다. 충분히 고독을 만끽하며 생生을 흘리던 사내, 시무라 고보는 어느 날 냉장고에 변화가 생김을 감지한다. 처음엔 자신의 기억을 의식했고, 나중엔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15 센티 높이의 주스가 8 센티 정도로 줄었다는 것을 확인 했을 때(이 정도를 의식할 정도였다면 미치기 일보직전이었을 듯, 짠했다. 주인공이) 그는 두려움에 앞서 겁탈을 당한 듯 불쾌감을 느꼈다.   

 

   
 

“냉장고 속은 말하자면 끊임없이 다시 시작되는 내 미래의 동력이었다. 이어지는 나날에 힘을 줄 분자들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렸다. 가지나 망고 주스, 혹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서, 나의 내일의 세균들과 독소들, 그리고 나의 단백질들이 그 차가운 대기실에서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데, 낮선 손이 임의로 선취해 나의 미래에 테러를 가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밑바닥까지 뒤흔들렸다. 그뿐 아니라 화까지 났다. 이건 더도 덜도 아닌 강간이었다.” 

 
   

    무당을 부르고 고스트버스터를 찾을 만큼 바보는 아니었던 주인공, 제 3의 눈으로 과학에 의지했다. 출근 이후의 빈 집을 여섯 개의 웹캠으로 감시했고, 며칠 후 침입자를 찾아낸다.  
한편 거의 일 년 동안 외딴 방 벽장에서 숨어 지냈던 중년의 여인의 고독은 집주인 사내의 그것과 닮았다. 거울에 비친 지금의 나 이외에는 나를 아는 이가 없는 과거는 망각의 감옥에 던져진 절대고독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 이것 말고 우리를 근접시키는 건 없다’고 느끼며 같은 공간에서 고독했다.  

  벽장 속 여인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몇 년 전 찜질방에서 만난 중년의 사내가 생각났다. 잘 꾸려나가던 사업체가 부도를 맞자 공황상태가 되어버린 사내. 시쳇말로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려면 깊은 산 속 절을 찾는다지만, 사내는 시내 중심에 있는 입장권을 끊어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정신은 노숙자와 다름없다‘고 말한 그였지만, 몸뚱이마저 길거리에 내맡기기는 죽기보다 싫더란다. 밖을 나갔다 들어오면 또 다시 입장권을 끊어야하기에 이런 저런 방법으로 직원들의 눈을 속여 거의 사흘에 한 번 정도 밖을 나오는데 그 때만 햇빛을 볼 수 있다고 했다.(추운 겨울엔 거의 한 달 동안 두문불출한 적도 있다고 했다) 찜질방은 역전 광장처럼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만인의 공간이지만, 그에게 만큼은 자신만의 공간이고, 철옹성 같은 성이었다.   

  그 사내와 내가 알게 된 것도 내가 그의 자리(영역)를 ‘침범하면서' 였다. “찜질방에 니 자리, 내 자리가 어딨냐?”고 언성을 높이다가 끝내 그의 공간임을 ‘인정’하고 말았다. 그 날 사내에게 나는 ‘벽장속 여인’을 만난 기분이었으리라.

 적지 않은, 아니 꽤 많은 사람들이 찜질방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소줏잔을 기울이다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 가운데 외로움을 느껴본 적 있어?“ 웃어버린 그. 씁쓸한 웃음 뒤에 던지는 농담 같은 고백이 잊혀지지 않는다. 

  고독에 익숙해지면 타인은 시끄러운 잡음이자 방해꾼이 된다. 계속 ‘혼자’ 살고 있었다고 느꼈던 사내 시무라는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분노하게 된다. 스스로의 판단과 믿음조차 의심하게 되어버린 그. 제 3의 눈인 웹캠으로 그녀를 발견했듯이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되었다. 그는 재판장에서 이렇게 말하며 화를 냈다. “이젠 도무지 내 집에 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 

  그의 분노를 이해할 법했다. 소설 뒤에 남겨진 벽장 속 그녀의 사연과 편지는 군더더기일 뿐.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구차한 변명이나 나와는 상관없는 그녀만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끝내 집을 팔기 위해 내놓고 살 곳을 이동해 버린 쉰여섯의 사내의 근황이 계속 궁금해지는 건 그 속에서 찜질방의 사내가 보였고, 그 나이 즈음이 된 미래의 내가 같은 고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슬픔 때문이다. 나만의 내 집에 누군가가 있었음을 알고 난 후 사내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나에겐 고독한 사내를 만난 오늘밤이 불면의 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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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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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관음증이 만든 핫hot한 소설!


 

  TV 프로그램 중에 ‘몰래카메라’라는 게 있었다. 스타를 데려다 황당한 사건과 에피소드로 장난을 치고는 그들이 놀라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담은 쇼 프로그램. 일요일이면 ‘누가 어떻게 당할까’ 기대하며 나는 TV 앞에 앉았고, 예의 한 두 시간 스타를 골려먹는 짓에 가담한 듯 희희낙락하던 때가 있었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 중에는 ‘트루먼 쇼’가 있다. 시청자들이 아예 한 사람의 생활을 ‘몰래 카메라’로 들이댄 설정이다. 1998년 당시만 해도 ‘트루먼 쇼’의 각본은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하지만 대단히 놀라운 설정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는 시청자들의 모습에서 미디어와 대중이 지닌 관음적 폭력성에 대해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오늘날은 변해 나 자신의 사생활도 언제 표적이 되어 인터넷에 공개될지 모르는 세상이 도래했다. 몇 걸음 가지 않아서 어딘지 모를 곳에 설치된 CCTV에 내 모습이 담기고(누가 보고 있을까?), 유희거리를 찾는 방송국 카메라를 대신해 시청자들이 직접 휴대전화에 부착된 카메라로 수많은 눈이 되어 주변에 번뜩이며 무료로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그들은 왜 담고 있을까?). 그리고 인터넷은 스타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사생활까지 모조리 쓸어 담아 세상에 뿌리고 있다.  

  나아가 이제는 각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평범한 일반인들이 ‘스타되기’라는 명목으로 보여주기를 스스로 자처하며 카메라 앞에 서는 세상이 되고 있다. <헝거 게임Hunger Game>(북폴리오)같은 소설이 나온 것도, 그리고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이유도 관음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 때문일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라고 해 두자. 북미라는 대륙이 잿더미가 된 뒤 들어선 판엠은 캐피톨이라는 빅 브라더 같은 존재 아래 열세 개 구역이 주위를 둘러싼 나라다. 어느 날 열세 개의 구역이 판엠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고, 모두 패했다. 심지어 열세 번 째 구역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헝거 게임Hunger Game은 그런 암흑기를 기억하기 위한 일종의 계몽 이벤트다. 


  각 구역마다 남녀 청소년 각각 두 명이 ‘조공인’으로 선발되어 한 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이는 게임. 그리고 최종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의 전 과정은 TV로 방송되는 리얼 서바이벌 게임이다. 우승자는 스타가 되어 평생 굶주림 없이 편히 살게(소설의 제목에 유념하자) 되고, 우승자가 탄생한 구역은 다른 구역 주민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동안, 고급 식량을 선물 받는다.  

  “각 구역에서 아이들을 데러가 서로 죽고 죽이게 하고,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 비해 얼마나 무력한지, 다시 한 번 반란을 일으켰을 때 우리가 살아남을 확률이 그 얼마나 희박한지 일깨워주는 캐피톨의 방식이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간에 진짜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명확하다.  

  “똑똑히 봐둬. 우리가 너희 아이들을 데려다 희생시켜도.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너희들을 마지막 한 명까지 박살내버릴 거야. 13번 구역에서 했던 것처럼 말이야.”“ 

  관음을 즐기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지극히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설정에 읽기를 거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본성 때문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TV 앞에서 선 열 두 구역의 누군가가 되어 캣니스의 승리에 열광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나와 같은 권력에 복종하는 평민이고 일반인이었고, 마침내 현대인의 영웅, 스타가 된다.

  또 하나 매력인지 마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관객이 되어 참여하게 한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돈을 지출하며 스폰서가 되어 헝거 게임의 참여자들을 후원하는 시스템은 팬들의 스타 만들기와 다름없다. 독자로 하여금 가능하다면 후원하고 싶도록 만든다. 또한 그것을 은근히 의식하며 때로는 연출하는 주인공의 심리도 엿보게 된다. 발칙한 소설이 아닐 수 없다. 

  늘 그렇듯 결말이 뻔한 스토리지만 그 속에는 늘 같은 무게의 묵직한 카타르시스가 들어있다. 소설의 흥행요소를 모두 갖춘 전형적인 소설, 컨텐츠는 원소스 멀티 유즈로 활용되고 있다. 소설의 흥행은 영화로도 이어져 현재 한창 제작중. 그 때를 참지 못한 독자들은 자체적으로 팬메이드 무비fan-made movie를 제작해 유투브에 올리고 있다. 헝거 게임에 몰입하고 열광하는 독자들을 짐작케 한다.  

  이 소설은 단편이 아닌 3부작. 스타가 된 우승자 캣니스의 앞날은 그녀를 마득찮게 여기는 대통령의 시기에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또한 함께 참여한 12구역의 남자 조공인 피타와의 로맨스는 그림자 같은 오랜 친구 게일과의 삼각관계를 예고하고, 캣니스는 구역인들에 의해 우승자에서 영웅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스티븐 킹은 이 책의 ‘강한 중독성’을 추천했고, 트와일라잇의 스테프니 메이어는 ‘헝거 게임’만이 가진 ’매력’을 칭찬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현대인의 관음증을 한탄하면서도 온라인 서점에서 2권 주문을 서둘렀다. 이런 아이러니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다.'고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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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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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전문보기 : 클릭!

 

  3년 전 '밀레니엄'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시되었던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들이 새로운 출판사를 만다 다시 빛을 보고 있다.

 마치 소설이나 영화처럼 원래 10부작을 계획했지만 갑작스런 사망으로 3부작만을 만들고 저 세상을 떠난 '스티그 라르손'. 그리고 장난처럼 끼적이던 소설들이 북유럽을 비롯한 33개국에 약 5,300만부라는 경이로운 판매를 기록하며 지구반대편을 뒤흔들었다. 국내 출간 당시 사실혼의 아내와 부친과 인세를 두고 법정다툼이 있다고 들었는데, 결국 아버지에게 돌아간 듯하다. 누가 막대한 인세를 받았건 독자에게는 관심밖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이 소설이 '정말 엄청나게 재미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지난 주 개봉한 <제인 에어>를 빼고는 요즘 볼 영화가 마땅하지 않다. 줄거리가 뻔한 어설픈 영화를 보느니 맛난 커피 한 잔 사서 편안한 카우치에서 밀레니엄과 같은 멋들어진 소설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늘 하는 말이지만 책에 몰두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제일 아름답다(반면 책에 몰두한 남성은 어떤지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 아내는 매일 보는 모습이라 별로란다. 헐~).  -Richboy

 

참고로 지난 2008년 이 소설 시리즈의 1 부를 읽고 내가 쓴 리뷰를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시간을 잊게 만든 최고의 X등급 추리 스릴러소설 !

  한동안 즐거웠다. 유난히 더운 더위와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 16일을 환호하며 열광했던 북경올림픽을 보며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집합(集合), 기억(記憶), 광희(狂喜) 로 이어지는 채 끝나지 않는 폐막식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하나. '이젠 뭘 한다지?'...

  다행히 그 열광은 오늘까지 계속되었다. 섬뜩하게 쳐다보는 여자아이 그림의 심상치 않은 책 표지에 끌렸고, 지금까지 전유럽을 1,000 만 부를 눈앞에 둔 경이로운 숫자로 팔리면서 '어른들을 위한 해리포터'라고 불릴 만큼 놀라운 책이라는 소개글에 기꺼이 서재에 꽂게 만든 책을 지금까지 읽었다. 

"일요일 저녁에는 [밀레니엄]을 읽지 마라. 뜬눈으로 월요일 아침을 맞고 싶지 않다면." 이라고 언급했던 어느 프랑스 독자의 경고를 미쳐 알지 못했다. 폐막식이 끝난 바로 직후 읽기 시작했고, 난 월요일을 뜬눈으로 하얗게 지새워야 했다. 스티그 라르손Stieg Larsson 의 책, [밀레니엄I] 원제목은 les hommes qui n'aimaient pas les femmes (Millénium, T1) (Paperback)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상,하)이다.

  놀라운 작품에 어울리게 작가의 이력 또한 기이하고 신비롭다. 이 작품은 저자인 스티그 라르손의 데뷔작이자 유작인데, 2005년부터 3년 동안 세 편의 시리즈로 [밀레니엄]을 발표했다. 3부 집필을 마치고 12일 후 2004년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2005년에 출간되면서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했는데, 그 인세는 32년을 함께 한 동반자인 그의 아내에게 전해지 못했다는 것. 법적 혼인관계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아버지와 형제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현재 소송중이라고 하는데, 우습게도 그 시작은 '노후보장' 차원에서 10부작을 계획하고 쓴 작품이라고 한다. 그의 죽음이 정말 유감일 따름이다.

 

 



 

   책을 펴면 시작부터 풋내기 작가의 글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대기업을 상대로 폭로기사를 썼다가 억울하게 수감생활을 하게 된 베테랑 기자 미카엘 블로크비스트와 천재적인 해커지만 철저하게 반사회적인 생활을 하는 미스테리 여인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주인공으로 스웨덴의 대기업 가문에 숨어있는 미스테리를 낱낱이 파헤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스웨덴 사회당의 열혈 당원이자 독립 언론사의 기자였던 이력만큼 대기업의 횡포와 하수인으로 전락한 언론사의 비리를 사실적으로 고발하면서 스토리를 이끌어나간다. 전체적으로는 전형적인 '밀실 미스터리'의 형식을 띄면서도 범상치 않은 두 주인공의 활약과 매 번 독자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들, 그리고 점점 커지는 스케일은 모래귀신의 늪에 빠지듯 깊이 깊이 빠지도록 만들었다. 현실과 가공을 넘나드는 리얼리티한 전개 또한 매력 중 하나인데, 주인공의 직업이 기자인데 저자도 기자였고, 진보적 성향의 사회고발적 폭로 기사를 주로 다루는 신문사의 이름이 [밀레니엄]이고, 이 책의 제목 또한 [밀레니엄]이다. 그렇기에 필연성과 정교함이 묻어난 생생한 '리얼리티'를 이 책을 읽으면서 경험하게 된다. 

  장르를 장편 스릴러 추리소설(1, 2, 3부를 합하면 2,000 페이지를 넘는다고 한다)이라고 해야 할까? 1부는 800 페이지 가량. 하지만 걱정할 것이 없다. 몰입도가 최고치에 달해서 책의 두께와 시간을 잊었으니까. 반지의 제왕과 같이 주인공을 골자로 다른 사건을 펼치기 때문에 현재 출간된 1부로 하나의 사건은 종결된다. 올 9월에 나올 2부와 내년 2월에 나올 3부가 마냥 기대될 뿐이다. 더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라 욕먹을 것 같고, 조금 더 언급을 하자니 가슴만 답답하다.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또 다른 잠재독자에게 이 책을 소개시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쁠 따름이다. 여름의 끝에서 절대로 놓치면 안될 최고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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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개 우기 - 기적을 선물한
래리 레빈 지음, 한세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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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으면 고슴도치가 되나 보다. 하나같이 자신이 키우는 동물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하니 말이다. 또한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 역시 남다르다. 보호자들은 대부분 사람 대하듯 하는데 동물을 키우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유난스럽다’고 할 정도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한편 사람이 이토록 사랑이 많은 종족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 사랑이 그리운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보호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얘들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든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얘만 나를 반긴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필경 후자일 것이다. 사랑이 넘쳐서가 아니라 사랑이 부족해서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진다(참고로 나의 막내동생은 여덟 살짜리 시츄종 ‘찌비’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반려동물에 우호적이다(물론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도 관심을 갖긴 하지만 대부분 1살 미만의 작고 예쁠 때일 뿐, 오히려 늙거나 아픈 동물에 관심을 주는 사람들은 거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다).

  또한 내 동물에 관심을 주는 사람한테는 나 역시 우호적이다. 내 가족을 예뻐해 주면 기쁘고 즐거워진다. 혹시 내 동물에 대한 질문을 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성큼 대답을 하게 된다. ‘우리 가족을 좋아해주니까’라는 대답은 2% 부족하다. 

  마찬가지로 남의 동물에 나는 왜 관심이 가는 걸까? 눈길 한 번 더 주고 물리지 않을 것 같으면 가까이 가서 만져주고 싶다. 왜일까?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개 우기oogy>를 읽은 이유도 그 미스터리 때문이었다.

 



 

   이 책에 눈길이 간 건 적나라한 제목보다 표지에 실린 해괴한 그림 때문이었다. 주인공인 듯한 개 한 마리는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에서나 볼 법한 반쯤 찌그러진 모습의 얼굴인데, 반달 눈으로 웃고 있었다. ‘왜 이런 모습일까? 사연이 도대체 뭘까?’ 들춰보니 소설이 아닌 실화였다. 책을 덮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생후 5주 된 새끼 때부터 함께 살았던 고양이 버지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안 알게 된 래리네 가족은 슬픔에 빠진 채 동물병원을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더 없이 밝고 명랑한 개 한 마리를 만나게 된다. 한 쪽 귀는 물론 얼굴의 절반 정도가 없는 괴상한 외모의 4개월 짜리 핏불, 투견판에서 미끼견이었다가 가까스로 구출된 불쌍한 강아지였다.


 
  반려동물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을 법 한데 이 못생긴 강아지는 더 없이 밝았다. 거칠고 사납기로 소문난 핏불을, 게다가 흉측할 만큼 못생긴 이 강아지를 입양하게 된 이유 역시 이 밝은 성격 때문이었다. 우기oogy라는 이름으로 래리네 가족이 된다(우기는 나중에 핏불이 아닌 도고의 혼혈종으로 밝혀진다)

“도대체 녀석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거죠?”

아마도 화상을 입었을 거라고 짐작하며 던졌던 나의 물음에 피터 박사는 너무도 담담하게 대답했다.

“미끼견이었습니다.”

“네?미끼견이요?”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박사의 대답이 담고 있는 심각성을 가늠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기 때문이다.

“미끼견이 뭐죠?”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지만 뭔가 대단히 불쾌한 용어였다.

“녀석은 투견의 미끼로 쓰였어요. 개들에게 싸움을 가르치는 방법이죠. 업자들은 구할 수 있는 모든 걸 가리지 않고 미끼견으로 쓰죠. 푸들이든, 고양이든, 아무리 작은 강아지라도요.” 본문 92쪽

 

  이 책은 주인공 래리가 아내, 입양한 쌍둥이 아들 노아와 댄 그리고 우기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잔잔한 목소리로 담았다. 아이들과 우기를 입양하고 키우며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살피며 그에게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들이 실은 얼마나 잃기 쉬운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개구쟁이 우기의 표정과 행동은 물론 내 집이 좁다하고 뛰어다니며 말썽을 피우는 모습을 그린 대목은 눈에 보이는 듯 선하고, 쌍둥이와 우기에 대한 애정이 담긴 문장에서는 왠지 모를 뜨거움을 느끼게 한다. 실화를 적은 글이라 ‘소설’같은 사건, 사고도 감동적인 에피소드도 없다(우기의 존재 자체가 소설 같지만). 하지만 편안하고 자연스런 저자의 고백 글은 시선을 놓지 못하게 하고 마치 담장 너머 옆집을 기웃대듯 페이지를 거듭 넘기게 한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마 반려동물을 떠나보낼 때일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들이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 래리는 슬픈 이별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하자’고 말했다. 이런 깨달음은 세 살 때 백혈병으로 누나를 잃은 그의 불행한 어린 시절로부터 비롯된다. 부모님은 누나를 잃자 슬픔 대신 누나가 세상에 존재한 적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남은 자식들에게 사랑대신 간섭하려 하고 통제하려 했다. 그는 부모의 그런 행동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육체적, 정신적 상처와 훼손이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너처럼 잘 말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거야. 눈에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건 바로 내면이라는 사실 말이야. 그건 충분히 자랑스러운거야. 알겠니?”

사실 문제는 우기가 아닌 나였다. 녀석은 언제나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고, 자신감이 온몸에 흘러넘쳤지만 정작 나는 아직 내가 준비가 덜 되진 않았을까 고민이었다. 하지만 나는 우기를 위해, 그리고 우기를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을 위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았다. 본문 199쪽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말한다. 다시 묻고 싶다. 당신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가?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반려동물과 생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즉 반려동물이 성장한다면 보호자도 성장하고 있고, 내가 반려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면 나 역시 반려동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 나와 반려동물은 지금 서로 돕고 위로 하며 살고 있다. 그들이 가족이라고 감히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반려동물에 관한 책이 껄끄럽고 꺼려지는 이유는 ‘듀이’처럼 꼭 동물들이 죽음으로써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기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 있다, 우리 찌비처럼. 동물을 사랑한다면 우기를 만나 보시라. 몇 페이지 못가서 우기의 매력에 푸욱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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