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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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잘 만들어진 연극을 방불케 하는 황당 코믹스릴러 소설

 

  “난 지금도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면 옷장에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요.”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진지함이 뭍어났지만, 난 못들은 척 큰소리로 웃으며서 말했다.“뭐야~ 만화영화 ‘몬스터’ 이야기도 아니고...나이가 몇 갠데...하하하” 그리고 그날 밤 난 베개속에 잠겨 한참동안 옷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캄캄했던 방안이 흐릿하게 형체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동공이 커질 때까지...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나도 벽장이 무서워서, 천정이 무서워서 불을 켜고 잤던 사실을...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공포감은 어린이의 몫 만은 아니다.

 

  한 남자가 멈춰버린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낯선 세 사람과 함께. 잠에 깬 듯 일어나 보니 엘리베이터 안이고, 엘리베이터가 급하강하는 바람에 머리를 부딪혀 기절을 했단다. 휴대폰은 사라지고, 시계도 잃어버렸다. 낯선 세 사람도 이런저런 이유로 없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고, 연락할 방법도 없다. 다 큰 어른이 아이처럼 무서워서 울 것이야 없겠지만(아파트의 엘리베이터라 언젠가는 구조될 테니까), 기절했던 사내 오가와에게는 당장 나가야 할 이유가 있다. 임신 9개월의 아내가 진통을 느낀다는 전화를 막 받은 순간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엘리베이터에 갇혀버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빨리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라도...또 나를 위해서라도...소설 <악몽의 엘리베이터>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원제목은 悪夢のエレベーター―Nightmare after a Secret.

 

 



 

 

  엘리베이터를 장소로 추리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베이스인 ‘밀실살인’을 소재한 이 소설은 전혀 추리소설 같지 않다. 연극무대에서 몇 명의 배우가 두 시간 여를 활약할 수 있는 희곡적인 요소가 오히려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긴장감과 코믹함을 겸비하고 있다. 수상한 작품, 빙고! 작가는 코믹 스릴러 극단 '니콜슨즈'를 이끄는 배우, 각본가, 연출가로 알려진 기노시타 한타이고, 이미 연극과 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는 작품이란다. 2009년 가을엔 영화로도 개봉할 예정이라는데, 과연 읽고 보니 그러고도 남을 만한 비주얼 강한 스토리였다.

 

  난 10층 이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가는 편이다. 하루에 ‘만보’는 걸어야 건강에 좋다는 말로 이유를 대충 얼버무리지만,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것을 그리 좋아하질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날 일이 좀처럼 없고, 실내등도 그리 밝지 않은 비상계단을 오르는 기분도 썩 좋진 않지만, 엘리베이터보다는 낫다. 그렇다고 ‘폐쇄공포’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대학 때 ‘건설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실외에 부착된 공사용 엘리베이터에서 인부가 떨어져 사망한 사건을 목격한 바 있고, 실제로 엘리베이터가 서는 바람에 혼자서 30분 여를 공중에 떠 있었던 적이 있어 꺼릴 뿐(한참을 적고 보니 보통 경험은 아닌 듯 느껴지긴 하지만)이다. 일종의 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다시 말해 트라우마인 셈이다.

 

  그래서 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공중에 떠 있는 듯 내내 발이 저렸다. 상황 자체가 꺼름직하니 읽기도 꺼름직 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주인공은 내가 아닌 그들이 아니던가. 철저하게 제 삼자로 그들을 지켜보려 노력했다. 그래도 심해도 너무 심했다. 아내의 진통을 알면서도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는 오가와는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만 동승하고 있는 낯선 인물들은 모두 기분나쁘지만(오가와의 말대로 밖에서라면 스쳐지나가기도 싫을 만큼) 묘한 매력의 사람들이어서 오가와에 대한 안타까움은 급반감되었다.

 

  정장 차림의 몽키스패너를 든 빈집털이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니트족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사내, 그리고 인근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찾아 자살을 하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는 은둔형 외톨이 아가씨등 낯선 이들의 정체는 재미를 더했다. 설정은 알프레드 히치콕인데, 최근에 만나는 최근에 만나는 오쿠다 히데오 소설 속의 주인공들 같았으니 주인공의 시선이 옮겨질 때마다 안쓰럽다가 재미있고, 불쌍했다가도 웃겼다.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을 누가 본다면 딱 미친 사람이 아니었을까.

 

  내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심리도 변덕스럽게 움직였다. 소설의 초반부에는 출산진통을 겪을 아내를 두고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는 상황의 청년 오가와 준에게 무한한 연민에 동일시되는가 싶더니 낯선 이들의 면면에 빠져서는 그들과 어울린다. 함께 갇혀 있으면서도 그 상황을 마치 운명처럼 여기는 듯 자신들의 처지는 잊고 오가와를 조롱하는 그들에게 동조하는 나를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주인공들의 심리와 희극적 대사들은 불안함 속에서 느끼는 헛웃음까지 짓게 했다. 거듭되는 반전에 기함을 하고, 막판에 펼쳐지는 역전극의 반전이란... 직접 읽으란 소리 밖에는 차마 설명을 다할 수가 없겠다.

 

  책의 말미에 <해설>을 쓴 나가에 아키라는 주인공 오가와의 상황, 그리고 나머지 주인공들이 겪는 마지막 상황을 장이 좋지 않은 자신의 배탈에 비유했다. 배탈난 사람에게 주위에 화장실이 없는 것은 식은땀나게 하는 ‘악몽’이듯, 등장인물 모두가 겪는 엘리베이터는 제목처럼 <악몽의 엘리베이터>였다. 잘된 작품이었다고 해야 할까? 재미있고, 웃기는 작품이었다고 말해야 할까? 총평하기도 곤란한 묘한 작품, 등장인물의 소개 자체가 어쩌면 스포일러로 욕먹을 수 있는 묘한 작품이다. 이런 소설에 대한 리뷰를 쓸 때가 가장 난감하다. 더 난감한 건 여전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서다. 연극같은 소설, 영화같은 소설이다. 읽는다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소설을 읽은 후 앞으로 엘리베이터를 편하게 탈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 탈 때마다 이 소설이 생각날 테니까. 난 이제 10층 이상도 걸어가려고 마음 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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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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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설. 잘가요, 언덕! 

 

  한숨에 읽어내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다. 오히려 유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가 제작된다면 그걸 쫓는 편이다. 두 시간 남짓의 영화로는 소설 속 전부를 보여줄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주인공, 배경 모두 감독이 의도한 설정일 뿐 소설을 읽는 독자의 상상 속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하다는 것도 물론 안다. 큰 맘먹고 소설 몇 권을 집었다가도 구입을 하는 것은 경제경영서다. 많지 않은 구입비로 최대효과를 느껴야 한다는 경제원칙이 늘 적용되고 한다. 그렇다고 아예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뭄에 콩 나듯 읽는 소설은 재미있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촌구석에 왔다가 사라지는 써커스 유랑단에 빠진 아헤들처럼 잠을 설칠 지경이다. 그래서 내가 읽은 소설은 다 재미있다고 한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정말 재미가 있어서 재미있었다고 한다. 내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도 내가 말하는 소설이야기는 잘 듣질 않는다. 소설을 읽은 숫자가 저희들보다 적으면 적었지 절대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사람 말은 한 귀로 흘린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재미있다. 이번엔 진짜다. 진짠데....  

워낙 소설을 읽지 않는 터라 혹 읽을라치면 명성이 자자한 소설을 찾아 읽는다. 유명한 소설가의 작품, 근래에 말이 많은 작품들을 읽는다. 이말은 곧 그렇지 않은 작품은 잘 읽지 않는다는 말인 셈인데, 이 소설은 유명한 작가도, 잘 알려진 소설도 아니다. 대신 유명한 연예인이 썼다. 책을 잡았을 땐 말 그대로 시큰퉁했다. 하지만 몇 장 넘기지 않아 ‘오호, 이것 봐라?’ 놀랐다. 그리고 단숨에 읽었다. 차인표의 <잘가요, 언덕>를 그렇게 읽어내려갔다.

  



 
 

백두산 자락의 호랑이 마을에 평화로움을 깨고 나타난 황포수와 용이‘ 마을 주민과 순이 그리고 훌쩍이, 나라의 부름으로 위안부를 모집하러 온 가즈오 마쯔에다 대위, 이들이 엮어내는 이 이야기는 아이 엄마이자 아내의 원수 육발이를 찾아나선 복수극이기도 하고, 순이와 용이의 애틋한 러브스토리기도 하며,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명령을 받은 가즈오 대위의 번민을 그린 소설이기도 하다. 스토리는 절묘하게 서로에게 엮여 있고, 주인공 한 명 한 명 의 마음이 애절하고 간절해 읽는 내내 손을 뗄 수 없는 흡인력으로 다가왔다. 

열 여섯의 나이에 위안부로 강제 징용되어 캄보디아에 끌려갔다 지난 1997년 돌아온 훈할머니의 스토리를 듣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 차인표의 말처럼 제 인생을 송두리째 망치게 한 사건에 대해 쌓인 원한이 얼마나 깊을까 고민을 하게 한다. ‘내가 저렇게 당했다면, 그들 같을까’ 오히려 더 하진 않을까? 이 소설은 절대 잊지 말하야 하는 역사의 순간이지만, 마음은 용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서하지 않으면 마치 용이가 엄마별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의 생도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작가 차인표는 철저하게 제 3자가 되어 있다. 대신 자신의 코멘트는 새끼 제비가 되어 자신을 나타냈다. 카메라에 익숙한 그는 소설에서도 마치 카메라를 들이대듯 페이지마다 장면을 그려냈고,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없을 만큼 플롯 구성도 치밀했다. 도저히 신인작가라고 할 수 없을 만큼의 유려함이 그를 의심하게 한다. 많이 읽은 탓일까? 많이 고민한 탓일까? 이토록 유려한 글을 어떻게 지금까지 참고 있었을까?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한다. 두 번째 이야기가 그의 진실을 말해주리라. 그만큼 훌륭한 소설이었음을 말하는 것이니 의심에 탓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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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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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범인이 밝혀진 추리소설. 이것이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

 

  추리소설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된다. “에게, 그럼 재미없어서 어떻게 읽어?”라 생각이 들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범인을 알면 추리소설은 끝장난다는 내 편견, “스릴러는 영화로도 충분하다.”는 생각마저 무너뜨린 소설이 있다. 스릴러 영화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맛이 있더란 말이다. 하긴 출간하는 작품마다 일본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될 정도이니 두 말 하면 입아프다.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소설, 악의惡意를 읽었다.

 

  어느 날 유명한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처음 사체를 발견한 사람은 결혼한 지 막 한 달이 된 아내와 피해자의 가장 친한 친구. 목격자이자 용의자가 된 두 사람은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사건을 추적하다 목격자중 한사람, 동화작가인 친구를 유력한 용의지로 지목, 추궁 끝에 자백을 받는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라면 정통추리소설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짐작할 수 있는 뻔한 내용, 뻔한 결말이다. 하지만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노의 진가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왜 죽였을까? 어떻게 죽였을까? 형사와 범죄자의 불꽃튀는 머리싸움을 지켜보기는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이다.

 

 

  최근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곧 영화로도 개봉되는 ‘용의자 X의 헌신’이다. 물리학과 교수와 천재 수학자의 치열한 머리싸움을 지켜보다 그 매력에 빠져 저자의 전작을 만난 소설이 악의였다. 그래서인지 두 작품은 묘하게 닮은 데가 있다. 범인이 빨리 드러난 점, 불륜코드가 섞여 있는 점, 범상치 않은 지능을 가진 두 사람의 공방전, 사건의 내용을 완전히 엎어버리는 반전 등 아직 제대로 파악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풍의 사건전개방식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메이드 인 재팬‘의 냄새가 확연하다는 것. 노총각의 때늦은 사랑, 학교에 만연한 왕따문제, 노숙자문제등 현재 일본에 만연하고 있는 사회문제들은 일본에서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사회문제양상들이 소설속에 제대로 녹아 들어 있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읽었을 때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라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도 이런 사건들이 심상치 않게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특히 작가라는 직업 세계에 주목했다. 범인의 자백과 사건경위서 그리고 형사의 일지까지 스토리의 진행방식 역시 서로 번갈아가며 글로써 나타낸 점도 독특하다. 이 점이 사건을 전모를 흐리게 한 시발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결정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우리의 현실에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범인이 자백을 했다면 ‘옳다쿠나’하고 종결지어야 할진대, 소설 속의 형사는 그 점을 물고 늘어진다. 가가형사의 이 집요함은 “현상에는 항상 논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일본 드라마 갈릴레오 박사를 생각나게 했다.  ‘충동에 의한 우발적 살인’은 ‘치밀한 계획에 의해 주도된 살인’임을 입증하게 된다. 같은 살인자이지만 한 순간의 실수를 할 수 있는 인간의 우발성을 내세워 일말의 동정을 얻을 수 있었던 가해자는 형사의 논리적이고 집요한 수사 끝에 ‘희대의 살인자’의 전모를 밝혀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현실속에서 ‘살인사건’이라는 현상은 종결은 언젠가는 이뤄지겠지만, 사건의 진실은 과연 얼만큼 밝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살인을 당한 피해자는 가해자의 자백에 의해 선과 악의 줄타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죄질에 의한 형량을 떠나 ‘진실’을 밝히는 것이 형사의 도리라면, 살인의 원인을 끝까지 추적함으로서 억울한 망자亡者의 한을 풀어주는 가가형사같은 진짜배기 형사는 과연 얼마나 있을까? 현실에서도 과연 그렇게 집요하게 수사할 수 있는 환경일까? 생각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살인자의 심리 즉, 인간의 잔혹한 면에 주목한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인간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 지에 집중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으면 통쾌하기 보다는 씁쓸한 여운이 항상 느껴진다. 한편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고스트라이터와 비슷하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절대로 혼자서 쓰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각해 보면 이럴 것 같다. 자신의 러프한 초고를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누군가 초고의 허점들을 일일이 짚어낸다. 그다음 피드백으로 수정을 거듭해가며 소설을 쓰는 것만 같다. 러프한 초고는 현상에 보이는 사건의 모습이고, 허점은 바로 형사의 시선이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스토리는 물흐르듯 진행되고, 스토리는 점점 탄탄해져갈 수 있도록 하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고는 작가가 '지킬 과 하이드'가 아니고서는 전혀 상반된 양극의 심리를 이렇게 치밀하게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로 그가 혼자서 글을 써내려 갔다면 무서우리만치 놀라운 소설가가 아닐 수 없다.

 

  대단한 추리소설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늪에 허리만큼 빠져버린 기분이 든다.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성격의 나는 지금, 그의 원작을 바탕으로 구성된 일본 드라마 <갈릴레오>를 보고 있다. 그가 쓴 작품들이라면 모두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2009년 4월의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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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과학적으로 사랑을 한다? - 과학사 7대 수수께끼를 찾아 떠나는 환상 여행 에듀 픽션 시리즈 1
다케우치 가오루.후지이 가오리 지음, 도현정 옮김 / 살림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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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클라이튼 풍의 소설을 즐기는 이과적 사고를 지닌 독자를 위한 과학연애소설!

 

 

  ‘시간을 거꾸로 돌려 스무 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무엇을 다시 할까?’ 모두가 한번 쯤 생각하는 공상이지만, 내게는 거의 습관적으로 한가할 때 마다 궁싯거리는 생각중 하나다. 과거로 돌아갈 수야 없겠지만,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가장 바꾸고 싶은 세 가지를 궁리해 보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현재 내가 절실하게 부족하거나 결핍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온 세상을 누빌 수 있다면 비행기 바퀴에라도 걸터 앉아서라도 떠나고 싶고, 고3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백발머리에 원형탈모를 무릅쓰고라도 입시에 매달리고 싶다. 무엇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젠 없고 만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술자리를 자주 만들어 좀 더 살가운 관계로 만들고 싶다. 불가능하기에 더욱 절실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헛한 상상으로 그림만 그려도 즐거우니 이 습관을 좀처럼 떨치기는 힘들다.

 

  얼마전 읽은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타임 리와인더’란 이름의 쿠키가 있다. 어느 제과점에서든지 흔히 볼 수 있는 머랭쿠키 모양의 과자인데, 그 신비의 과자는 ‘시간을 되돌려주는’ 마법이 있다. 단 이 놀라운 과자는 판매 전에 언제로 시간을 되돌리느냐에 따라, 즉더 오랜 과거로 되돌릴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부작용이라면 ‘시간은 되돌려주되’ 기억을 안고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는 것. 다시 말해 시간을 되돌리던 순간의 기억을 깡그리 잊는다면, 지금 내가 이루고 싶은 꿈들도 잊게 되어 막상 그 때로 돌아갔을 때 ‘꿈’들은 다른 것들이 되어있지도 모른단다. 돌아보고 싶은 시간대로 돌아가 바꿀 확률, 50%의 과자가 매우 고가라면...난 사서 먹을까? 과자를 살 만큼 큰 돈을 벌까? 그토록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과연 있기는 할까?

 

  오늘의 뉴스를 가지고 어제로 돌아간다면 빌 게이츠에 버금가는 부자가 될 수 있고, 지금의 무기들을 옛날로 가져간다면 칭기스칸을 무찌를 지도 모른다. 인간이 오늘을 기억하며 과거로 돌아간다는 소리는 과거의 역사를 변화시킬 것이 틀림없고, 좁쌀만한 작은 변화는 세상을 뒤바꾸는 큰 변화를 부를지도 모른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타임 리와인더’란 과자를 만든 마법사는 그것을 경계했다. 가격도 엄청나게 고가인데다가, 구입 전에 꼭 상담을 해야 했다. 그래서 꼭 바꾸지 않으면 안될 상황을 먼저 들은 후 과자를 팔았다. 역시나 ‘소설같은 이야기’지만 과거로 가려면 기억도 잊어야 한다는 설득력은 작은 충격이었다.

 

  일주일을 차이로 또 다시 ‘시간을 거슬르는 이야기’에 관한 소설을 읽었다. 이번엔 제과점도, 마법사도, 과자들도 나오질 않는다. 한 마리의 고양이. 오드아이 캣, 즉 양쪽이 서로 다른 색깔의 눈빛을 가진 녀석이 과학사의 7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떠나는 타임머신 역할을 한다. 과학을 쉽게 소개하는 유명한 과학 저술가인 다케우치 가오루가 쓴 소설, <고양이는 과학적으로 사랑을 한다?>이다. 이 기기묘묘한 고양이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에 의해 양자법칙이 거시세계까지 확장된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고실험에 등장하는 고양이다.

 

 



 

 

  타고난 문과(文科)적 사고, 문과적 체질(문과적 성향이 강하기보다는 이과적 성향보다 더 약해서 선택했지만)인 내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이해하고 또 다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냥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고양이’라고 이해했다. 도오루와 묘하게 동거하게 된 중국 아가씨 샨린은 에오윈이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저자는 이 소설에 ‘연애 과학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설 속 연애부분은 ‘연애소설’ 장르보다 약하다. 과학부분도 특별할 것이 없다. 둘이 절묘하게 엮여 있다는 특징은 다분히 일본적인 ‘그들만의 영화’를 닮았다.

 

  재미있는 부분은 에오윈과 떠난 과거로의 과학여행에서 주인공들은 전리품을 얻어온다는 것. 선물을 받거나, 우연히 뭍어서 오거나, 훔쳐온 것일 지언정 그들의 여행 끝에는 손에 뭔가가 들려 있었다. 토오루의 방은 작은 과학역사 박물관이 되는데, 그들이 얻어온 물품들을 상상하자니 부럽기보다 작가의 수집욕과 그로 인해 변해 버린 역사의 끝이 현재일 때 어떻게 변하게 될 지는 소설 못지 않는 여운을 남겼다. 외국인 과학자들이 일어를 알아듣고,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주인공들, 주인공들이 청해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에오윈에게 이끌려 빨려들어가는 여행 등 다소 어설픈 설정은 눈에 거슬리지만, 재미는 쏠쏠했다.

 

  제 아무리 설명을 해도 문과적 사고로는 이 소설을 온전히 평가하기 힘들다. 단지 나 혼자만이 과거로의 여행을 상상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런 책들이 눈에 띄는 것은 나처럼 작금의 현실이 그닥 재미가 없었나 보다 하는 추측 뿐. 마이클 클라이튼 풍의 소설을 즐기는 이과적 사고를 지닌 독자라면 재미있다 할 법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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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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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섬뜩하지만 매혹적인 글맛이 있는 판타지 소설  

 

  지난 월요일 집안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소동의 발단은 동생녀석이 아끼는 아이팟을 잃어버린 일. 두 달여를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결별을 선언한 후 아픈 마음을 달래서 '소주'를 마신 게 화근이 되었다. 한 잔이 두 잔되고, 한 병이 두 병 되면서 정신을 잃을 지경까지 마셨단다. 취할 정도로 마셨으면 배도 부르련만 '허기'를 느낀 녀석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었단다. 바늘에 실 가듯 라면엔 김치가 필요하다며 일 이분 자리 비워 볶음김치를 사러 간 사이 녀석의 가방이 털린 것이다. 신분증과 몇 만원의 돈이 든 지갑과 함께 녀석의 애장품이 도난당한 것이다. 
 

  취해서 집에 왔을 때는 몰랐단다(알았다면 취했겠는가?). 콩나물 국에 해장하고, 외출을 준비하던 중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 없어지자 '어딨냐?'며 소란을 피웠고, 날짜 지나 찢어진 신문같은 어제의 기억을 더듬고는 심증을 굳힌 것이다. 그 후엔 소란은 잠잠해 졌다. 대신 한 숨 섞인 녀석의 푸념만 있을 뿐. "술만 안마셨어도...라면만 안먹었어도, 김치만 안샀어도...가방만 들고 있었어도..."  
 

  후회는 선택한 것에 대한 미련이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개울의 물이 흐르듯 시간의 선상에 놓인 인생에 후회는 참 부질없다. 후회했던 과거의 시간마저 후회할지도 모르기에 '그 단어'를 잊으려 애쓴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의 선택의 상황이 있는 만큼 잦아드는 후회심은 어쩔 수가 없다. 난 사람이니까. 사람이니까 후회하고, 그럴 수 밖에 없다면 시간을 줄이고, 얼른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상책일 터, 그게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 고민이다. 특히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만난 후 드는 그것은 내가 싫어질 만큼 날 괴롭힌다. 이럴 땐 후회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머리를 콩콩 쥐어 박으면서 이렇게 말할 뿐이다., "딱 오분 전으로만 돌아간다면, 고칠 수 있을텐데..."
 

  흘러버린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그때부터 '시간'이란 이미 무의미한 단어가 될른지 모른다. 후회의 연민에 빠져 있는 인간을 한심스럽다 하는 것은 지금 보내고 있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도 과거의 그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기에 '당장'에 충실하는 법이 최고일진대 '과거의 늪'에 빠져버린 그것을 끄집어 내려 애쓰니 그보다 한심한 일이 또 어디 있겠나? 소설 < 위저드 베이커리>는 후회로 얼룩진 인간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그리고 되돌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한 걸음 다가서서 '만약 되돌렸다면? 그 다음은 어쩔건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해리포터>의 판타지를 닮은 묘한 느낌의 소설, 시큰퉁해 몇 장을 넘기다가 마지막을 읽기를 거부할 수 없었다. 신선하고 독특한 소설이다. 

 


  제가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인간은 없다. 그리고 부모를 닮고, 부모의 환경에서 태어난 '작은 인간'에게는 일정기간 선택권이란 많지 않고, 또 있다고 해도 별로 중요한 것도 없다. 주인공 소년 또한 무형의 의지라는 것이 자신의 삶의 자리를 결정할 수 있다면, 많은 선택을 했을 법한 환경에 있다. 하지만 어리고 학생이다. 그리고 애써 고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아버지와 죽은 엄마를 대신하는 새 엄마 '배선생', 그리고 배선생의 딸과 가족입네 하고 살아가는데 큰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다만 소년이 원했던 바는 '각자가 들이마실 공기의 부피를 침범하지 않기' 어짜피 독립할 수 있는 그 때는 떠나려고 했으니까.
 

  소년은 '단지 거기에 있었을 뿐'이었다. 여섯 살에 엄마가 소년을 버렸을 때도, 새 엄마 '배선생'이 엄마이기를 자처하며 들어왔을 때도, 배선생의 딸 '무희'가 몸씁 일을 당해 '배선생'의 입에 게거품이 일어날 때도 단지 '그곳에 존재'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존재만으로 억울함을 당하고, 피해를 입는다. 진실이 아니기에 대답할 필요도, '항변'할 이유도 찾지 않았을 뿐인데, 그것을 알아줘야 할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졸지에 쫓기는 신세의 소년은 단골 빵집 'Wizard Bakery'에 머물게 되고, 마법사 제빵사와 파랑새, 그리고 마법에 걸린 빵과 그 빵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소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고 해리포터가 되어 현신을 잠시 잊는다. 
 

  시선이 주목되는 인물은 '마법사 제빵사'였다. 마치 신인듯 슈퍼맨과 같은 '시대의 영웅'들처럼 그의 정체성은 '나약한 인간'을 전제로 하는 것 같다. 그는 인간에게 친절하지 않다. 한심하고 답답한 인간들, 저 혼자 처리하지 못해 마법의 빵으로 해결지으려 하는 그들이 영 마득찮다(주의사항도 읽지 못한 인간들인데도...). 하지만 그는 부작용을 호소하는 인간을 꾸짖고 투덜대면서도 꾸준히 돕고 있다. 그를 보노라면 여엿쁜 인간들을 위해 '하지 않아도 될'일을 자처하는 영화 <와치맨>의 영웅들이 엿보였다. 또한 실수투성이의 인간을 부러워하는 듯한 모습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을 부러워하는 영화 <벰파이어와의 인터뷰>의 톰 크루즈를 닮은 것도 같다. 
 

  이 소설은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간에 대한 생각'에 태클을 건다. 그리고 표현하지 않는 의지는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는 무의미한 생각에 지나지 않음을 말해준다. 살아오면서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야 왜 많지 않겠는가? 하지만 되돌릴 수 없고, 되돌린다 하더라도 또 다시 반복할 개연성이 충분한 것이 인간이다. 후회와 탄식으로 첨철된 것이 인간이라면 이 또한 인간의 운명이 아닐까? 하지만 차라리 행동한 후에 후회하기는 아무것도 하지 안고 '그냥 거기에 있어서' 후회하기 보다는 낫겠다 싶다. 기기묘묘한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온타 리쿠'를 생각나게 하지만, 스토리와 메시지는 여느 판타지 소설보다 낫다. 기대하지 안았던 소설, 하지만 소설가 구병모의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위저드 베이커리... 집 부근에 있다면 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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