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그만 가자!
진주 지음 / 북극곰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안나푸르나, 그만 가자! - 그 따위로 트레킹 하려면 떠나지 마슈! 


  지난 초여름에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지겨운 밥벌이와 지친 일상을 등지고 네팔 외국인 노동자의 유골을 전달해주기 위해 떠나는 ‘최’의 여정은 영화라기보다는 히말라야 기행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도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고, 고산병에 시달리는 최민식의 리얼한 연기는 ‘진짜 고산병이 아니었을까’하는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짧지 않은 시간동안 계속 보였던 네팔의 산, 산, 산은 잊을 수가 없었다. 산 중턱의 황량한 불모지대不毛地帶를 터벅거리고 걸어가는 최의 등에서 ‘중년의 외로움’이 느껴졌고,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산은 헤쳐나가야 할 험난한 ‘살 날日’로 보였다. 흩뿌리는 돌바람에 피우는 담배 맛은 어떨까? 고생을 사서 떠난 그는 그곳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몹시 궁금했다. 아마도 그 답은 평생 풀리지 않을 것이다. 지인 중에는 외국인노동자도 없거니와 유골을 들고 갈 용기는 더더욱 없으니까... 하지만 꽤나 많이 그곳으로 떠난다고 한다. 유골 대신 배낭 메고 지팡이를 짚으며 ‘트래킹’을 떠난다고 한다. 이런 부류 역시 궁금하다. 그들은 그곳으로 왜 떠날까?

  책 <안나푸르나, 그만가자!>는 그 의문 때문에 집어든 책이다. 아무리 계산을 해보고 머리를 굴려 봐도 내가 내 생애에 그곳을 갈 일은 없을 것 같아서다. 너나 할 것 없이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터라 ‘여행기’는 차고 넘치지만 ‘히말라야 트래킹’을 이야기한 책은 처음 본 듯 하다(더 있는지는 모르겠다). 죽기 전엔 꼭 한 번 해보자고 다짐한 ‘산티아고 순례‘와도 비슷하지 싶었다.

  이 책은 자체가 흥미롭다. 우선 신생 출판사의 첫 책이라는 점, 그리고 ‘북극곰’이라는 출판사의 이름에 걸맞게 ‘생태환경 분야 전문 출판사’를 표방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책의 맨 뒤편에는 “이 책은 환경 보호를 위한 작은 실천으로서 재생지를 사용했으며, 표지에 코팅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저마다 그린 경영을 주창하면서 비닐봉투에 포장해주는 대기업보다 낫다 싶다. 



사진출처 :  영화 - 희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히말라야 트레킹 사진을 보고 싶다면 클릭! : 야크존 ABC 트레킹 포토 앨범 



   이 책 속의 글은 9 년 전에 써진 글이다. 글맛을 보니 20대 초중반에 쓴 듯, 출판을 고려한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트래킹을 하던 그 날 그 날을 적은 듯 체험이 생생히 배어 있었다. 그리고 매일처럼 죽도록 고생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그득했다.

모두 읽고 난 후에 알게 되었는데, 책 제목 ‘안나푸르나, 그만 가자!’는 깊은 속뜻이 담겨져 있었다. 제목을 풀어서 말하자면 “여보슈, 그따위로 크래킹하려면 안나푸르나에 가지 마슈!”라고 해야 할 듯. 태고의 자연이 숨 쉬는 그곳을 찾아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5년 한 해에만 약 20만 개 이상의 빈 생수 병들이 안나푸르나에 버려지거나 땅에 묻혔다고 한다.

  이 책에 주목해야 할 부분은 후반부에 있는 ‘환경 친화적인 모범 트레커‘다. 나와 자연 단 둘이 남겨져 철저하게 자연 속의 나를 경험하고 싶다면 가급적 배낭을 비우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트레커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평생의 한 번이지만 네팔 GDP의 40%를 관광업으로부터 충당하고 있는 히말라야는 산림 훼손과 쓰레기, 매연, 생활 오수 등 서구 문명의 부산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오죽하면 파탄이나 무스탕 제국은 외국인의 출입까지 금지하는 조치를 내릴 정도라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모범 트레커의 기본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식사를 주문할 때, 조리하는 데 연료가 덜 소모되는 달바트를 주문하라. 현지의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적선하지 말라. 통과하는 마을의 생산품을 구매하라. 쓰레기 봉투를 항상 휴대하라. 네팔 사람들의 초상권을 존중해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라. 트레킹 중에 똥을 싸거들랑 똥을 닦은 휴지는 모두 태워 버려라. 볼 일도 성스러운 곳은 피해서 보라. 물이 흐르는 냇가에서는 환경 처리된 비누도 사용하지 말라. 트레킹 도중에 생수를 사 먹지 말고, 물통에 아이오다인을 넣어 정화된 물을 마셔라. 토양의 침식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한 트레킹 길을 벗어나지 말라.



 

   외국의 자연을 볼 만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화석연료를 태워가며 떠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가항력은 둘째 치고라도 가능한 부분은 노력할 수 있겠다. ‘나는 곧 죽어 없어지지만 지구는 남는다’는 누구의 말처럼 내가 보는 오늘의 지구와 자연은 잠시 빌린 것 뿐이다. 후세에도 보여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트레킹에 생각이 없던 터라 그곳에서 지켜야 할 자연보호 에티켓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래서 내게는 신선한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어디 자연 뿐이랴? 문화재는 어떤가? 어림없다. 문 밖을 나가면 되도록 쓰레기일랑 만들지 않으려고 해야 할 것이다. 

  식도락가들에게 있어 맛집은 자기만의 '헤게모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잘 이야기해 주질 않는다. 지금이야 디카에 노트북을 들고 '맛집순례'하며 실시간으로 자신의 '순례기'를 세상에 뿌리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 옛날에는 그런 일 일랑 어림없었다. 어디 좋은 곳 추천해달라고 하려면 최소한 그곳에 가서 '식사값'을 치뤄야 하는 조건이 따랐다. 그들은 왜 자신만 알고 있는 맛집을 함부로 소개하지 않았던 걸까? 훼손되기 때문이다. 온전한 맛집은 단순히 음식맛이 아닌 장소와 분위기 그리고 음식맛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알려져서 손님이 많아지면 자신이 예전에 느꼈던 그 풍미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가게가 유명해져서 주인이 돈 버는 것이야 손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다. 오히려 돈 벌어 가게를 넓히고 화려하게 치장해서는 주인장이 '기둥서방'처럼 꾸미고 카운터에 앉게 되면 더 이상 맛을 찾는 단골은 가질 않는다. 더 이상 그 맛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 또한 맛집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문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불리는 중국의 '샹그리라'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야! 너희들 동원훈련 가거들랑 깨끗이 좀 써라. 매주 새로운 애들이 와서 사흘 동안 더럽히고 떠나면, 남은 현역 군바리들이 나흘 동안 치워야 해. 알았어?” 대학 친구 중에 예비군 중대에서 조교로 근무했던 녀석의 말이 생각났다. 네팔 정부가 여행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우연히 뽑아든 여행 책에서 ‘자연환경’을 배웠다. <안나푸르나, 그만 가자!> 여행을 말리는 여행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인상 깊은 책이었다. 

P.S.: 그나저나 영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에서 최민수는 담배를 꾀나 많이 피웠는데...담배꽁초들, 주머니에 따로 넣어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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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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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거세된 숫소가 되고 싶었다!

 

  소설은 필연의 예술이다. 그래서 중간을 읽으면 답을 알 것 같아서 종국엔 독자가 납득이 가능한 결말로 끝나야 소설답다고 느껴진다. 책 속에서 거짓이 용인되고, 해학과 미래가 용인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어차피 현실에는 없을 허구일 테니까. 하지만 때로 현실이 너무나 소설 같을 때가 있다. 소설이 아니고서는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엄연히 존재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니 무슨 일이야 없겠냐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끔찍한 일, 소설에서나 볼 것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화자話者가 제 아무리 현실이라고 항변을 해도 ‘에이~ 지어낸 말이야. 현실에 그럴 리가 있어?’라며 다시 반문할 것이다. 이야기라도 다 들어주고, 위로라도 해 주면 좋겠건만 그들은 애써 외면한다. 이런 답답해서 미치고 펄쩍 뛸 일들이 오늘이라는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 청자聽者의 입장에서 보면 화자話者의 이야기로 현실과 소설을 구분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외면하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해서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기억하면서 현실을 살아가기가 겁이 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돌아서서 귀를 씻으련지 모른다. 그리고 ‘휴우, 끔찍해라. 내가 쟤였다면 어떨 뻔 했어?’ 생각할지도 모른다. 결국 ‘나만 아니면 돼.’라는 에고, 지독한 자기애自己愛로 덮어버릴 것이다. 왜? 잘은 모르지만 난 지금 그러니까.

  소설가 공지영은 어느 날 ‘한 줄의 기사’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숨은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 자기를 괴롭히는 일을 또 저지르고 말았다. 있어서는 안 될, 차라리 거짓말이면 좋을 현실의 안개 속으로 스스로 발을 담근 것이다. 소설<도가니>는 그런 안개 속을 헤집은 책이다.



 

   이 소설은 '안개 나루터' 로 풀이될 무진霧津이라는 지방 도시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소재로 했다. 기간제 교사로 내려간 강인호는 '자애'학원이라는 장애인 학교에서 교장과 교장의 동생인 행정실장, 기숙사 사감 교사 등이 장애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실을 알게 되고, 학교 선배인 서유진 간사와 함께 이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하지만 불행한 이 사건이 지역사회나 공권력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고 반대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지역 인권단체에서 자애학원 교장과 교직원들의 파렴치한 장애 학생 성폭행 사실을 고발하지만 무진경찰서 형사, 시교육청 장학사, 시청 담당 공무원, 판`검사, 심지어 영광제일교회 교인들, 지역 시민단체까지 담합해서 이 사건을 은폐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지역사회의 기득권자들의 암묵적인 합의에 의해 가해자인 이강석 교장 등은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도가니>는 수년 동안 장애학생들을 성폭행한 학교 교직원들, 그리고 이를 교묘하고 치밀하게 은폐하는 방식, 무능하고 무책임한 행정, 그리고 기득권자들의 암묵적 합의를 그리며 우리 사회 속에 만연한 사회적 약자의 약탈현장으로 고발했다.

  사실 이 소설을 펴기 전에 온전한 소설이 아니라 고발성 짙은 르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설의 출간 후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던 2007년의 광주의 인화학교 사건이 또 다시 인구에 회자된 것을 몰랐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하지만 좋은 것만 다 못보고 사는 세상, 억지로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써 읽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으려는 자의식은 더욱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것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에고, 지나친 자기애였다.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그리듯 보았다. 그리고 온몸으로 느꼈다. 긴장한 어깨는 움츠려져 펼 줄을 몰랐고, 책장에 지문이 묻을 만큼 땀이 맺혔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에 접어들어서는 차라리 내가 영원히 거세한 수소牛이기를 바랐다. 밖을 나가면 어떻게 눈을 들어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싶었다. 

  ‘이 모든 풍경에서 다른 것은 모두 남기고 오직 사람들만 지워버린다면 여기가 천국일 것이다.’는 강인호의 생각이 곧 내 생각이었다. 정의正義는 사전 속 죽은 단어가 되어버린 세상, 엄한 대상에 용서를 내리는 사람들, 인맥과 관계로 얼룩진 인간세상은 안개 속 세상이 아니다. 안개가 내린 백내장을 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인 것이다. 

  공지영이 그린 무진의 안개와 풍경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온전히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묘사하기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채 피지 못하고 상처받은 영혼들은 말이 없다. 지면 가득히 악을 쓰고, 거짓뿌렁을 외치는 이들만 가득했다. 서유진은 자유로울까. 강인호는 온전히 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현실 속의 무진 사람들은 오늘 어떤 밤을 보냈을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악다구리로 돈을 벌고, 먹고, 싸며 내일을 희망했을 것이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버리고 싶었다. 

  애써 무시했던 진실을 접한 현실은 어제보다 안개가 짙다. 알게 모르게 나 역시 그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얼마나 더 살아야 나도 백내장의 그들이 될까 두렵기만 했다. 서유진은 ’나도 가끔은 뻔히 아니라는 걸 알면서 그것과 타협하고 싶어질 때‘ 내가 불쌍하고 불행했다고 말했다. 난 어제도 오늘도 불쌍하고 불행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녀의 용기를 얻고 싶다. 세상사에 묻혀 버린 소설 같은 진실은 공지영이 지은 글로 현실이 되어 세상으로 돌아왔다. 오래도록 기억될 소설, 하지만 너무 두려워 다시는 읽고 싶지 않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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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정치학 현대시세계 시인선 20
신혜정 지음 / 북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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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라면의 정치학

 

詩人 - 신혜정

 

현대는 엑기스의 시대다

정보의 집합체에 접근하기

혹은 접근 금지의 아고라에 모여들기

농축이 아닌 것들은 천대 받는 시대

 

젊음은 치기라는 농축 엑기스의 집합체로

술을 마셔도

연애를 해도

미친 듯이,

미친 듯이

객체와 영혼의 융화를 이루어내는

 

라면은 현대 식문화의 집대성으로

영양학자와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들이 만들어내는

정치적인 이슈는 스프 속에 감춰진 비밀 레시피

소고기맛 베이스

지미강화육수분말

육개장양념분말

햄맛분말

향미증진제

돈골엑기스......

 

엄청난 살육의 엑기스를 분말로 만들어내는

물리학의 기적

 

팔팔 달아오른 냄비는 뜨거운 욕망을 탄생시키고

한 번의 사용을 위해 가지런히 포장된 비닐봉지는

원 나잇 스탠딩

구깃구깃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부패되지 않는 것들을 양산하는 현대의 문명은

한 끼 식사에 30분을 소비하지 않는다

 

냄비가 끓었다면

이제 곧 먹을 차례다

 

정치적인 핵심과 이슈들이 퉁퉁 불기 전에

초스피드 배후설을

완성할 차례

 

역사와 문명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것은

활자처럼 찍혀

좌우로 팔려나간다

 

+ + + + + + + + + + + + + + + +

 

우리가 흔히 즐기는 먹거리 라면에서 인간의 행태를 찾아내는 시인의 안목과

해학적인 표현이 잘 버무려진 시입니다. 제목이 <라면의 정치학>이라네요.

 

정치적인 핵심과 이슈들이 퉁퉁 불기 전에

초스피드 배후설을

환성할 차례

 

라는 부분이 압권이네요.

 

소스가 이슈되고 거기다 소스가 덧붙여져서 범벅이 되면

진위를 파헤친 소수는 바보가 되는 세상

염장질을 누가 더 계속하는냐가 승리의 관건이 된 세상이 오늘입니다.

 

결국 "진위가 무슨 상관이냐, 신문에...포털 메인에 뜨면 그만이지." 라는

푸념이 진리가 된 세상입니다.

 

 

친근한 먹거리가 소재가 되니 문외한인 저도 시를 읽을만해지네요.

제가 먹는 것 하나는 '없어서 못 먹고, 안줘서 못 먹는' 지경이거든요.

 

먹거리는 곧 생生 입니다.

먹거리 때문에 사람이 움직이고 살아가는 셈이죠.

 

먹거리 앞에서는 고귀한 학문도 가르침도 필요없습니다.

최고의 임금은 만백성을 잘 먹이는 임금이요,

최고의 진리는 모든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말씀이 진리가 아닐까요?

 

90년 4.19 의거를 기념하려 수유리에 있는 4.19탑을 수 천의 동지(거창합니다. 선후배)들과

행진을 할 때입니다. 학생수보다 더 많은 전경이 도열을 하며 인도로만 가도록 막고 있었죠.

 

"너...여기 왠일이냐?"

 

앞장 서서 걷던 선배가 걸음을 멈추고 그 놈이 그 놈은 복장의 전경 무리에 대고 말을 겁니다.

피는 땡기는가 봅니다. 눈만 보이는 전경 헬멧 속에서 일 년 전 입대한 '동생'을 찾아낸 겁니다.

 

" 밥은 먹었냐?"

 

"말 시키지 마. 저기 중대장 보고 있어."

 

"아, 그래. 엣다, 있다가 뭐라도 사 먹어."

 

오천원을 건넵니다. 동생이 모른 척 하고 서 있자, 선배는 중대장에게 달려가 뭐라고 이야기를 걸더니

다시 동생에게 달려 왔습니다.

 

"거봐, 이 새끼야. 받아도 된다잖아."

 

"고, 고마워. 형."

 

전경 헬멧을 툭툭 쳐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매맞거든, 전화해. 경찰서 앞에서 대모해 줄라니까." 

 

==========

 

"난 오늘 신촌으로 간다. 그리로는 오지 말아라. 다치지 말고."

 

'기동타격대 반장'인 아버지가 데모에서 전조(데모대에서 선봉을 뛰는 전투조 라죠)를 뛰는 대학생 아들에게 

말을 건넨 곳도 아침상이 차려진 '식탁' 앞 입니다. 고집쟁이 3대 독자를 차마 자신의 손으로 잡을 수는 없었던거죠.

 

묘하게도 이들은 대립되는 이데올리기 앞에서 '먹거리'를 함께 합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사람들의 바람입니다. 문제는 '모두'냐 '소수'냐의 문제겠지요.

한 봉지의 라면이 별 생각을 들게 합니다. 모두가 이 잘난 시 한 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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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블루>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크로아티아 블루
김랑 글.사진 / 나무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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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블루 - 파란 세상의 나라를 구경하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가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알랭 드 보통이 그의 여행 에세이 <여행의 기술>에서 한 말입니다. 생전 보지 못한 물건을 사고 음식을 경험하는 것은 멋진 여행의 묘미입니다. 또 자신의 분야와 목적에 어울리는 주제를 따라 ‘순례’를 하는 것도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 알랭 드 보통은 ‘생각을 만드는 여행’을 권하는군요. 생각을 만드는 여행이라...그러면 이렇게 하면 좋겠네요. 혼자서 되도록 멀리가는 겁니다. 내 집으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고립’이라는 단어는 뚜렸해집니다. 세상은 결국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면, 새로운 환경에서 홀로 아침을 맞고 밤을 보내면서 낳은 생각들은 온전히 ‘나 만의 생각’이 되겠네요. 여기에 더한다면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면 더욱 좋겠네요(하지만 저 같은 겁쟁이는 죽을 때까지 시도하지 못할 방법이라죠). 

  여기 한 사내가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손에 쥐고 낯선 땅 ‘크로아티아’로 떠납니다. 저~엉말 낯선 곳이네요. 내 생에 이 단어를 몇 번을 들어봤을까 싶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월드컵 축구를 통해 들어본 것 같네요. 아, 얼마 전 본 영화 <하이레인High Lane>의 촬영장소가 그곳이라 했던가요? 끝이 보이지 않는 계곡 사이에 걸린 ‘죽음의 다리’를 넘어서면서 끔찍깜찍한 일들이 벌어지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이거 세트아냐? 저런 곳이 있단 말이야?’ 생각했던 곳입니다. 아무튼 크로아티아는 제게 어떤 곳일지 상상하기가 힘든 나라입니다. 아니 여행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같은 나라입니다. 이 책을 펼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내게 우주같은 곳을 배낭 하나 덜렁 매고 다녀온 사내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던거죠. 소개합니다. <크로아티아 블루>입니다.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루던 여섯 국가중 하나로 유럽사람들에게도 ‘유럽 속의 아주 특별한 유럽’으로 불리는 독자적인 슬라브 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이곳은 이탈리아보다 잘 보존된 고대 로마의 유적이 가득한 곳이라고 하네요. 저자인 김랑은 ‘랩소디 인 블루‘라는 글로 책을, 크로아티아 여행을 시작합니다.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한 이 나라를 잘 표현하기도 하는 글이네요.

랩소디 인 블루

‘푸름’에는 그 색깔만큼이나 셀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 있다.  

풋풋한 사랑이 있고,  

햇살 같은 웃음과 위안이 있고,

바다 같은 그리움이 있고,

부서지는 파도 같은 아픔이 있으며,

짜디짠 슬픔도 있다.

아드리아가 품고 있는 크로아티아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푸름’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 이름조차 파래서 건드리면 생각만 해도 금세 ‘푸름’이 번지는 곳.

나의 감정을 홀로 만나고,

구겨진 기억을 다려 펴고,

사람의 기억을 매만지는 게 여행이라면,

크로아티아는 여행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세상의 모든 푸름이 다 모여 있는 곳, 크로아티아. 김랑은 크로아티아가 가진 도시들, 이스트라, 자그레브, 디나라 알프스, 달마티아를 돌면서 푸름을 이야기하고, 푸름 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그림에서나 볼 것 같은 낯선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네요. 특별한 색의 더 특별한 구조로 만들어진 건축물 위엔 늘 푸른 하늘이 있습니다. 

  디나라 알프스에서 이 사내는 한 일본 여행객을 만납니다. 물론 혼자죠. 영화 비포 선 라이즈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네요. 홀로 떠나는 모든 여행객의 로망이 아닐까요? 그녀가 이곳에 온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사막은 너무 아플 것 같았어요. 난 겁이 많은데. 그래서 여기였어요. 사무실 책상 맞은편에 늘 이곳 사진이 붙어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여행사에서 일한 그녀가 이곳을 온 이유는 7년 간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회사를 관두고 이곳으로 온 것이 ‘여행의 이유’였습니다. “난 태어날 때부터 반쪽짜리였어요. 그 반쪽을 메워줬던 사람이 떠나고 나니까, 나는 다시 반쪽이 돼버렸어요. 이곳에 오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반쪽일 뿐이에요.” 싸구려 와인 두 병을 비우고 이들은 돌아서 다시 혼자가 됩니다. 새벽녘에 부는 바람은 그녀의 한숨 같았다고 하네요. 그녀에게는 ‘채움’보다는 ‘비움’이 필요한 여행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자가 어디에서 잠을 자고 어디서 먹고,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또 그런 종류의 사진들이었다면 이 책을 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가 생각한 내용들에도 별로 관심은 없었죠. 난 그를 모르니까요. 하지만 그가 담은 사진들은 내 눈을 사로잡습니다. 내가 그곳에 간다고 해도 남기지 못할 것 같은 사진들이 매력적이었습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크.로.아.티.아. 낱말 하나 하나가 맞춰지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나를 생각합니다. 난 파랑색을 좋아합니다. 특히 인디고 블루를 좋아하죠. 가슴에 ‘콕’ 심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색입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가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참 가보고 싶어지는 나라더군요. 그의 사진이 절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뽀샵처리를 해도 이렇게 나올까요? 알 수 없죠.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한 보름 정도만 있다가 오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까무러치게 파란 하늘과 터키옥 같은 바다를 보면서 마음을 파랗게 물들여오면 좋겠습니다. 

  흑백의 바다를 바탕으로 그가 쓴 글이 마음에 듭니다.  

  “모든 게 정리됐다고 해도 떠나고 보면

아무것도 정리된 것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기억들도 분명 있습니다.

인간이기에 내일도 어제와 똑같은 기억을 안고 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지구를 몇 바퀴쯤 돌아온 이곳에서,

내일은 오늘과는 분명 다를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

  만약 여행을 떠난다면 카메라 없이 떠나볼까 합니다. 눈과 마음에 담아 아무에게도 보이지 못한 채 말로만 설명할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아마 그녀가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기억을 오래 담지 못하는 편이라 결국 아무 말도 못할 거라 흉볼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입으로 말하는 여행담은 거의가 거짓말이다‘라는 말이 있죠. 기억하지 못하면 꾸며서라도 해야죠. 여행은 원래 그런 거잖아요. 아무리 사실대로 설명한다 해도 듣는 사람은 또 다시 상상으로 들을테니까요. 결국 떠나본 사람들에게만 존재하는 ’특별한 경험‘. 그게 여행이 아닐까요? 잠시 크로아티아에 다녀왔습니다. 내가 있는 천고마비의 하늘보다 조금 더 파란 하늘을 구경했습니다. 즐거운 상상은 덤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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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가져요
모 로지에 지음, 박소진 옮김 / 펼침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친구에게 위안을 주고 싶을 때 어울리는 책!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물구나무 선 것처럼 머리가 빙빙 돌때…


나는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을 갖고,


삶을 배우기 위한 시간을 갖고,


또한 엄마가 껴안아줄 때, 눈을 감고 그 따스함을 느끼는 시간을 가져요.


그리고 찬바람이 나의 볼을 따갑게 스쳐갈 때 그것을 그대로 느끼는 것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느껴요.


그러고 나서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을 하기 위해 시간을 가져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괴로움에 빠져 있는 친구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뭐라고 말을 건네기가 참 어렵습니다. 먼저 이야기를 하면 좋으련만 좀처럼 이야기는 하지 않고, 지켜보기는 안쓰러울 때...그 때 이런 책을 선물하면 좋겠네요. 책 앞 장에 몇 자 적어서 건네준다면 참 좋겠다...싶습니다. 그림이 들어간 동화책 같은 작은 에세이 집입니다.

 

  공간이 넉넉해서 끄적거리기에도 좋겠고, 그냥 두면 넉넉한 공간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네요.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것 만큼 좋은 위안은 없습니다. 따뜻한 손길도 좋고, 살짝 안아서 등을 톡톡 두드려 줘도 좋겠죠. 그런 작은 위안같은 선물이 될 수 있는 책입니다. 물론 그런 일이 없으면 더욱 좋겠죠.

 

 



 

 

  남자들에게는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닙니다.

가까운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쐬주 한 병 시켜서 잔을 나누고 그냥 조용히 있는게 더 좋은 방법일 것 같네요. 같이 마시고, 뭐라도 먹이면 그게 장땡인 게 단순한 남자에겐 제격인 위로가 아닐까요? 유독 없던 생각도 생기는 계절, 가을입니다. 주위에 시름에 잠긴 지인이 있다면 이 책 한 번 권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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