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알베르 카뮈 전집 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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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를 휩쓴 전염병, 페스트가 조성한 폐쇄와 억압의 환경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 인간이어서 나타내는 행동과 정신세계를 쫒는다. ‘페스트’는 하나의 커다란 우의(寓意)이며, 추상(抽象)이다. 악이요, 폭압이며, 자유의 박탈이고, 무심함이며, 폐쇄이자, 공포이다. 그래서 카뮈는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상황에 기초하였지만 이것은 그대로 인간이 있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고, 또는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기에 공간적 배경이나 시대적 경계를 넘어서고 확장된다.

페스트의 질병적 징후와 확산의 가능성이 나타났을 때, 권위를 가진 인간이나 조직은 물론 대다수의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올 불행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아마 이것이 인간의 초기 반응일 것이다. 오늘의 인간으로서 말한다면, 석유 피크(Peak)와 같은 화석연료의 고갈, 환경오염과 생태계파괴는 고사하고, 물질적 소비에 대한 광신적 편리성과 욕망의 경쟁지대로 몰아넣는 소비자본주의의 예견되는 결말에 무심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리외’는 바로 이러한 불행의 시작을 알리는 현상들로부터 지방정부인 현청의 공식적 조치를 요구하지만 의사결정권을 가진 고위집단은 시민의 집단적 사망을 야기하는 병세를 페스트로 연결하지 않으려 한다. 자신들의 이익에 방해가 되는 공포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것인데,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려 한들, 더구나 그네들의 이익과 무관한 페스트가 인간의 판단력을 기다려줄리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걷잡을 수 없는 사망자의 증가, 뒤늦게 중앙정부에 지침을 요청했을 때 그 답변은 도시의 폐쇄조치이다. 인구 20만의 소도시‘오랑’의 사람들이 이 상황을 자신들의 상황으로 인식하는 데에는 그것이 실질적으로 개인의 안위에 직접적 관계, 즉 당사자가 되어서야만 가능하다. 정말 어리석지 않은가? 이후에 보이는 인간들의 행동은 어떤 양태를 보이게 될까?

대개 자신만은 그 공포의 죽음을 피해가게 해달라고, 피해 보려는 몸짓을 한다. 미신과 그 은밀한 처방들, 도시의 탈주를 위한 몸부림, 그리고 신을 찾는다. 주술이 무엇을 해결하겠는가, 신을 섬기지 않는 인간들의 죄악을 벌하려는 신의 노여움이라고 말하며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요구한다. 영혼이 설사 있다한들 영혼이 범한 죄악이란 것을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기탁한들 의지가 없는 전염병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더구나 영혼이 정화된들 병 걸린 육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페스트의 공포에 온 도시가 질려있을 때 페스트가 신의 징벌이라고 말하는 신부와 그 앞에서 악의 오염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어린 육체가 페스트의 희생자가 되어 고통 속에 죽어가는 것은 신의 분노의 본성을 의심하게 한다. 이 처절한 모순을 인식한 신부의 행동은 마침내 페스트에 전염된 채 죽어가는 육신으로서 의학적 치료를 거부한 채 자신의 믿음으로 순응하며 또한 항거하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話者는‘리외’의 목소리를 빌어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인류의 구제라니, 너무 과장된 말씀입니다. 나는 그렇게 터무니없는 일은 생각하지 않아요. 나의 관심사는 인간의 건강입니다.”

페스트가 현실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것, 도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관련되어 있는 사건으로 등장하고서야 비로소 인간사회의 선악의 구체성, 미덕의 생생한 실체가 조명된다. 특히 카뮈는 비록 실존주의자임을 부정하지만 관념주의의 공허함을 비판하며 페스트에 대항하는 인간의‘성실성’이나‘건강’이라는 덕의 실체 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죽음의 공포가 무겁게 내려앉은 곳에서 사람들의 생명, 삶을 지켜내기 위해 묵묵히 자신들의 신념을 수행하는 행동의 실천자들,  의사‘리외’, 보건봉사대 ‘타루’, 하급관리 ‘그랑’그리고 도시의 폐쇄가 만들어낸 사랑하는 아내와의 이별을 수긍하지 못해 탈출 의지를 접지 않지만 결국에는 봉사대로 잔류하는 기자 ‘랑베르’등을 통해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인지를 물으며, 관념의 추상성이 인간들에게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함을 역설하고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죽음의 그림자가 모든 사람들의 주위를 맴돌 때, 사랑이란 한낱 추상적 의미이상이 되지 못한다. 자기를 주체하기도 버거운 상황, 곧 자기 존재의 보존이란 명백한 가치는 평상시에는 노출되지 않는 은폐된 진실이다. 끊임없는 죽음과 격리의 행렬, 죽음이란 평등한 그림자가 도시를 뒤덮지만 사람들은 더욱 에고(Ego)에 몰입한다. 그러나 타루의 억압과 폭력에 대한 집단적 저항정신과 평화를 향한 소망이나 도시폐쇄의 해제를 맞이한 후 이별의 해후를 즐기는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이 항상 바라고, 가끔씩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고 말하는 리외로부터 사람간의 유대와 애정이라는 찬미해야 할 인간의 덕목을 말하게 하는 것은 카뮈식 요청일 것이다. 『이방인』의 부질없음에도 반항하는 부조리한 숙명을 살아가는 ‘뫼르소’의 깨달음, 관계성의 회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아랍인을 살해한 젊은이의 얘기, 재판을 받는 청년의 모습처럼 이러한 의미의 연장선임을 알리는 장치가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카뮈의 인간상에 대한 소망이고 의지랄 수 있는 “언제나 침묵 속에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라는 리외의 어머니에 대한 연대의식이 그것일 것이다.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하는 숭고함이 절로 읽히는 작품이다. 그리고 밑줄 그며 읽게 하는 소설이다. “인간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흔들어 깨운”카뮈의 정신에 새삼 겸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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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잠 재의 꿈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0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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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도쿄올림픽 준비 등 일본의 전후(戰後) 고도성장기인 1963년 9월을 시간적 배경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경제발전 중심의 급속한 변화의 추진은 사회 저변에 대한 균형적 관심을 쏟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인권이나 자유와 같은 기본적 시민권리가 희생되고, 인간의 소외로 인한 사회적 병리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우리의 1988년을 전후(前後)한 격동의 시기쯤으로 이해하면 얼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시기에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표현되는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회적 분노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평범한 대중에게 향하는 것인데, 아마 사회적 불균형을 의미하는 하나의 표지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당시에 일본을 발칵 뒤집은 동일인 소행으로 추정되는 연쇄적인 다중 사상(死傷)사건인‘소카 지로’사건은 이러한 시대상을 상징하고, 더구나 미해결 사건이어서 사회학적으로도 중요한 이슈였던 모양이다.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공공장소나 공공시설에 폭발물을 장치하여 다수의 사람들에게 손상을 가하는 악질적 범죄이다. 주간지의 특약기자인‘무라노 젠조’는 소속사인 <주간담론>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폭발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낯익은 이름‘무라노’는 여탐정‘무라노 미로’시리즈에 아버지로 등장했던 그 인물이다. 바로 미로의 아버지, 야쿠자의 조사역으로 탐정 일을 했던 사람이다. 당연히 반가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의 기막히게 정교한 플롯이나 탄탄한 구성이 압도적으로 탁월한 것은 물론이지만,  미로의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의 배경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은‘무라노 미로’를 알고 있는 독자에게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미로의 출생에 관한 비밀(秘密)이라 할 내용이 담겨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흥미로운 소설 외적 정보만으로‘무라노 미로’시리즈의‘걸작’외전(外傳)이라는 격찬을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소재의 독보적인 선택은 차치하고라도 본전(本傳)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박진감, 그리고 짙은 인간애와 끈끈한 남자들의 우정까지 가세하여 작가의 여느 작품에서 느낄 수 없었던 깊은 감동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무라노 젠조, 일명 ‘무라젠’은 스물여덟의 잘나가는 특종꾼이다. 중앙언론사가 아니어서 경시청은 물론 사회에서 푸대접을 받지만 그의 민완한 사건의 조사능력은 동종 업계에서 이름을 떨칠 정도이다. 범인이 남긴‘소카 지로’라는 닉네임 탓에 사건명이 된 연쇄 사건은 해를 넘기며 범인을 잡지 못한 경찰을 괴롭히고 사회를 불안하게 한다. 특종사건 기자인 무라젠은 사건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몰입하고,  <주간담론>의 가장 친한 동료이자 친구인‘고토’와의 우정을 쌓아간다. 여기서 고토가 자신의 연인인‘사에이’를 무라젠에게 소개하게 되지만 곧 그녀가 고토의 여자임을 알게 된다. 이는 친구에 대한 무라젠의 유일한 질투가 된다.

한편 조카와 도와주기를 요청하는, 한 소녀에 대한 내키지 않는 도움의 인연은 그녀의 죽음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고, 살인 용의자 선상에 오르게 된 무라젠은 스스로 사건의 배후를 조사하여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살해된 소녀의 폭력적인 주정뱅이 아버지, 이상한 강박 증세를 보이는 그녀의 오빠, 조카를 찾으러 갔다가 목격하게 된 유명작가 저택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현장과 그곳의 사람들, 신설잡지사의 편집자로 가는 친구 고토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힘, 야쿠자 세력, 그리고 가정의 폭력으로 인해 집을 등지고 수면제와 각성제에 의존하는 아이들, 이들을 이용하는 어둠의 세력들, 게다가 해결하지 못한 소카지로 사건으로 독이 오른 무능한 형사와 경찰집단까지 무라젠은 이들과 탐색하고 맞서며 사건의 배후와 진실로 한걸음씩 다가간다.  

 

그러나 사건의 조사를 위해 감행한 한 현장에서 형제 같은 친구 고토를 잃게 된다.  이처럼 사건을 객관적으로 좇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당사자로서 직접 개입되는 것은 감성의 출렁거림을 크게 느끼게 한다. 더구나 하나의 중심 사건에 지류의 사건들이 어느 순간 물밀듯이 몰려들어 거대한 실체를, 그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게 될 때, 그 카타르시스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기리노 나쓰오’는 이것을 그 어느 작가보다 잘 이해하고 멋지게 만들어 낼 줄 아는 것 같다. 또한 그녀만이 쓸 수 있는 소재의 전형이 있다. 잠든 여자를 눈으로만 범하는 기이한 관찰자의 시선은 바로 이 작품의 그것이다. 그리고 그 소재로서의 잠의 어둠을 뚫고 타버린 재(災)속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탄생은 외전으로서의 책임을 지닌 소설임을 확인시켜준다. 미로의 아빠, 무라젠의 저돌적이고 추진력 넘치는 남성적 매력이 더해져 시리즈의 본전과는 또 다른 감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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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헤더 구덴커프 지음, 김진영 옮김 / 북캐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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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상처를 입히기 쉬운 사람들은 누구일까? 뒤집어 말하면 우린 누구로부터 가장 커다란 상처를 받는 것일까? 아마 우리에게 세상의 빛을 보게 한 사람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신뢰를 확인시켜주는 사람들, 부모이고 그리고 자매와 형제들일 것이다.

의지해야 할 대상인 이들이 신뢰를 배신하고 이기적이며,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온통 불안과 불신, 두려움의 상처를 안고 암흑 같은 세상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듯하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법, 좋은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해 그리 자신하기에는 부족함을 느낀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족과 부모형제에 대한 신뢰의 기대는 그 무엇보다 삶을 지탱하는 첫째가는 요소이다. 하물며 부모의 사랑과 보호에 의지하며 세상을 조금씩 이해하고, 불안을 여과하는 법을 배워가는 아이들에게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란 거의 절대적인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의 삶의 현실은 이러한 상황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맞벌이 부부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축소되고, 또한 경쟁에 경쟁을 거듭하는 그래서 오로지 물적 자본과 과시적 명예자본을 축적하는 데에만 골몰한다. 이것은 그대로 아이의 양육방식에 이전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 뛰어난 인간을 만드는데 열중한다. 아이들의 성품과 인격은 오직 성공이란 기준 하에서만 재단된다.

소설은 이처럼 사회적 지위라는 명예자본을 중시하는 부모로부터 성장하는 두 소녀의 빗나간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학업, 운동, 미모...모든 것에서 최고여야 하는 아이, 그래서 부모의 허영심을 충족시켜주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그 관심과 지원에서 차별된다. 우등생인 첫째 딸 ‘앨리슨’, 민감한 감수성과 섬세한 성격으로 그런 잘난 언니를 배려하는 둘째 딸 ‘브린’,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에 무심한 브린은 부모의 관심으로부터도 배제된다. 열등감과 신뢰에 상처를 확대시킨다. 그러나 끊임없는 경쟁 레이스는 열여섯 살 고등학생 소녀 앨리슨의 평정심을 손상시키고 뜻하지 않는 임신으로 이어진다. 오직 경쟁의 우위에만 관심을 가진 부모는 속이기가 쉽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아니라 성과에 열중하는 이들에게 아이의 신체나 감성의 변화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가 없는 집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앨리슨, 가문의 명예를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환경은 이 사실이 은폐되어야만 하는 까닭이다. 고통스러움 속에서 언니의 출산에 어쩔 수 없이 휘말리는 브린, 그리고 아기는 강보에 싸여 강물에 버려지지만, 영아 살해죄로 앨리슨은 5년의 형기를 마치게 된다. 자신들의 명예만을 중시하는 부모들은 앨리슨을 그들의 삶 속에서 지워버리고,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브린 역시 부모의 무대에서 배제된다. 한편 불임으로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던 작은 서점을 꾸려가는 ‘클레어’는 소방서 앞에 버려진 사내아이 ‘조슈아’를 입양하고 그 아이를 세상의 축복으로서, 지극한 사랑으로서 양육한다. 혹여나 그 극진한“사랑이 세상에 대한 아이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자신의 사랑을 의심할 정도로.
 

여기에 상처를 준 유일한 사람으로서 끊임없이 남자를 갈구하고, 그 남자들로부터 어린 딸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신의 이기심만을 좇는 엄마를 말하는 스물한 살의‘챠메인’은 엄마가 버린 남자,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쳐준 폐암으로 죽음에 임박한 전직 소방관인‘거스’를 간호하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가족의 신뢰와 따뜻함이 무엇인지를 전령처럼 황폐해진 오늘을 일깨운다. 소설은 이렇듯 좋은 부모, 좋은 가족, 좋은 사람의 의미를 환기시키는데 열중하는 것 이상으로 소설로서의 견고한 구성과 속도감, 긴장감과 같은 요소로 이야기로서의 즐거움을 놓지 않는다. 소도시의 작은 서점, 다섯 살 소년 조슈아, 그의 양부모인 클레어와 조나단, 앨리슨, 차메인, 브린 등을 한 무대에 집결시킴으로써 가족의 갈등과 유대, 사랑과 용서, 그리고 더 이상 아이들의 양육이 개인사가 아닌 사회적 관심으로서 이해되어야 함을 밀도 높은 감성과 긴박감 속에 그려낸다. 더구나 앨리슨과 브린 자매의 영아 살해와 관련한 진실을 쫓게 하는 또 하나의 시선은 거대한 비극으로서의 구성적 축이 되어 소설을 더욱 풍성하고 조용한 웅장미를 창출해 내기도 한다. 섬세한 여성적 문체와 이야기로서의 아름다움 속에 부모란 무엇인지, 또한 가족이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조심스럽게 다시금 생각게 하는 진중하고 충실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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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 내 안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공감과 위로의 심리학
일레인 N. 아론 지음, 노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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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가 던지는 왠지 친근한 어감, 아니 무엇보다 내 성격적 특성을 말하는 것만 같아 냉큼 읽게 된 책이다. 심리학에서는 특별한 이유 없이 계속 불안해하는‘신경증’이라는 질병적 해석이 있긴 하지만, 이는‘민감함(sensitive)'과는 전혀 다른 것임에도 사회적, 학문적 관심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인류의 공격적인 문화, 즉 충동적이고 저돌적인 전사(戰士), 확장과 이익에 관심을 갖는 전사중심의 문화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신중하며, 자극에 민감한 사람들을 정상적 고려의 대상으로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략 전체 인구의 20~25퍼센트는 유전적으로 '매우 민감한(highly sensitive)'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외부의 소음(noise; 정신적, 물질적)에 대해서 75~80퍼센트의 사람들보다 훨씬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는 것인데, 이는 정신적 긴장을 차단하는 신경계가 긴장하는 정도차이로 자극을 걸러내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소음이나 자극에 노출되면 그것을 견뎌내는데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결국에는 완전히 탈진해 버려서 이후에 어떠한 행위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수선한 주변을 무시해버리고, 복잡한 놀이시설이나 쇼핑공간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도 저녁에 다시금 술자리를 하기위해 나갈 준비를 한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뻗어서 그저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이러한 성격상의 특성은 주위에서 내성적이라든가 사교성이 떨어진다, 또는 숫기가 없다는 식으로 정의되곤 한다. 그런데 매우 민감하다는 것은 이러한 표현들처럼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성격적 특성이 아니다. 다수의 권력과 힘의 관계에 열중하는 사회성이 만들어낸 왜곡된 정의일 뿐이지 바로 지금의 인류사회가 그나마 존재하게 한 고귀한 유전적 특성이다. 신중함, 침착함, 사려깊음, 민감함을 불안, 어색함, 두려움, 억압됨과 동일시하는 공격적 충동성이 지배하는 폭력적 문화의 속성이 만들어낸 편견일 뿐인 것이다. 이 책은 인류의 1/4을 구성하는 바로 이러한 내면적 소리에 보다 관심을 갖는 매우 민감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 다수의 그릇된 시선과 상황에 종속되지 말고 고유의 성격적 특질을 발휘하고, 또한 정신적으로 억압되어있던 심리적 기억들을 재구성해서 긍정적 자기실현으로 견인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기 위해 유아기에서부터 성장기(사춘기)는 물론 성인으로서의 제반 사회적 상황과 직장, 직업인으로서의 장애와 극복, 연애와 사랑 등에 걸쳐 마주하게 되는 자극과 고통, 현상을 통해 이를 이해하고 장점을 실현하는 방법들을 심층심리학적 기반 하에 섬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매우 민감한 특성은 신경계적 유전의 산물이지만 영유아기는 물론 성장기에 부모의 양육방식 등 환경적 여건이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태어나서 최초로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고통이 긴장이란 것인데, 이는 세상에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멈추어진다고 한다. 여기서 애착심리, 회피심리, 불안심리 등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 즉 부모의 보살핌이 무관심과 과잉보호의 사이에서 여하하게 제공되는가에 따라 일종의 자극에 대한 반응체계인 아이의 행위억제시스템(멈춤 확인시스템)에 대한 숙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는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하기 전에 미리 젖병을 물려주는 것이 좋은 것인가? 어떻게 부모가 반응하는 것이 아이에게 세상에 대한 안전성, 신뢰를 높여주는 것이 되는 것일까를 배우게 된다. 이처럼 매우 민감한 당사자가 아니어도 아이를 양육하는 모든 부모들을 위해서도 이 책은 아주 중요한 심리학적 가르침을 준다.

한편 이 책이 말하려 한 것, 즉 내가 관심을 갖게 된 내성적 또는 숫기 없음과 같은 부정적 시각을 포함하는 민감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겪는 곤란함과 편견적 시선의 극복에 대한 실례(實例)를 포함한 방법론은 매우 민감한 사람으로서의 저자의 체험적 기술방식으로 인해 더욱 친근하고 진실하게 다가온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신체적 활동에 참여하기보다는 구경할 때가 많았다는 저자의 체험담으로부터 자신감과 희망을, 모험을 하지 않음으로서 발생하는 실망감과의 대체를 고려해보라는 조언으로부터 시작해서, 민감한 사람들의 성격인 자극의 회피나 우선순위 설정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일들을 타인의 일들보다 나중으로 미루거나, 인생의 의미와 죽음과 복잡한 세상사에 대한 생각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 직관적이고 반의식이나 무의식으로부터 정보를 찾아내려하며, 정치놀음을 좋아하지 않는 탓에 영악하지 않으며, 가면을 쓰지 않는 순수함과 양심적 결벽성 등이 오늘의 주류적 사회 문화에서 수용되지 못하고 소외되는 원인을 탐색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과 사회의 속성을 이해함으로써 어떻게 세상과 조화하고 그러함으로써 자기, 즉 자신의 개성을 찾을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그 길을 안내한다.
 

때론 물리적 피난처로 긴장을 피해 도피하는 것이, 그리고 보이지 않는 피난처를 만들고 의지하는 법을, 세상을 견디고 기꺼이 참여할 수 있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는 법, 좋은 페르소나를 의식적으로 만들고 사용하는 것이 결코 민감한 사람인 우리가 거부하는 위선이 아니라 적당히 솔직한 것으로서 필요하다는 것, 내면의 이상을 마비시키는 세속적 요구를 떨치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개성화 과정에 대해서, 다수자의 모임에서 말없는 행동은 그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며 그래서 그들에 표현하여야 할 긍정적 신호의 발신에 대해서, 조직 내 상사와 주변인들에 대한 신뢰와 의심에 대한 용기에 대해서처럼 매우 민감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격적 특성을 발휘하는 구체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나아가서 매우 민감한 사람들의 사랑이 “바깥세상으로부터 소중한 내면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에너지를 안으로 쏟는” 특성 탓으로 안에 쌓였던 에너지가 터져 나오면 한 사람, 한 장소나 물건에 기착해서 물불을 가리지 못해 상처를 커다랗게 받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자신들의 속성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사랑으로 그리고 치유법을 세심하게 알려주기도 한다.

제각기 살아오면서 쌓은 그 경험의 무게가 다르겠지만 우리들의 지나간 기억, 경험을 민감성이 지닌 재능, 그 장점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삶의 기대치를 높여주는 적응성 높은 현실적 심리프레임을 제시한다. ‘매우 민감함’이란 성향이 획일적인 어떤 것이 아닌 만큼 정도의 차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사교적이며 수다스러운 민감한 사람도 있겠지만 혹여 사회가 무차별적으로 발산하는 자극을 회피하기만 했던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지닌 엄청나게 놀라운 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 그 빛나는 재능을 사회에 마음껏 발휘하는 작은 불씨가 되어줄 수 도 있다. 내적인 경험은 보이지 않기에 비교가 되지도 않으며 타인들이 알 수도 없다.  단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미묘한 차이까지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편견에 의해 억압의 기제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내부로 침잠한 많은 민감한 사람들에게 안도와 구원을 주는 책이다. 주변에 민감한 친구나 동료, 부하직원을 두신 분들, 민감한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에게도 이 책은 귀중한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민감한 자아를 확인하고 돌보는 방법을 말해주는 최초의 심리학 연구서이자 치유서로서 감동스럽고 고마운 저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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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우리 차 - 계절별로 즐기는 우리 꽃차와 약차
이연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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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맛, 우리의 신체를 다스려 온 전통의 음료를 까맣게 모르고 산다는 것이 불현듯 꽤나 모순처럼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더구나 차(茶)라 하면 왠지 고풍스럽고 다례(茶禮)니 다도(茶道)니 하여 까다롭게 느껴져 불편한 심사에 가까이 하지 못한 연유도 있다하겠다. 

책에서 차(茶)에 대한 정의를 소개하고 있기도 하지만, 다산선생이 『아언각비』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강차, 상지차, 송절차, 오과차 등 차가 아닌 탕을 마시면서 관습적으로 차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차나무 잎으로 만든 것을 차라 해야 옳다.”와 같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조 27년에 이르러 “차를 마시는 것과 탕제와 약은 하나다.”라고 “가벼이 마시는 음료를 아우르는 표현에 차(茶)를 사용”함으로써 오늘에는 잎차뿐 아니라, 열매, 뿌리, 꽃을 사용하는 모든 음료를 차라고 부르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고유의 차 잎으로 우려낸 차를 모르고 차를 말할 수 있겠는가. 해서 책에는 차나무에서 차 잎을 채엽하고 그리고 덖고 발효하는 정도와 찌는 과정의 유무 등의 과정에 따라 구분되는 녹차에서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의 특성과 산지(産地), 향, 맛, 성분, 효능, 우려내는 법을 소개하여 그 성능 및 취향에 따른 관심을 갖도록 안내하고 있기도 하다. 이중 우리나라는 녹차가 주로 생산, 제다(製茶)되는 모양인데, 그중 곡우(穀雨; 양력 4월20일)전후하여 채엽되는 어린 새싹을 최상품으로 친다고 한다. 이후 채엽 시기에 따라 세작, 입하차등으로 나뉘어 불리는데, 역시 잎사귀 뒷면에 흰털이 보송보송 달린 일명 첫물차를 따르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이와 같은 차나무 잎차를 즐겨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명약도 한 가지만을 오래 취하면 해가 따른다”고 하듯이 차도 바뀌는 계절마다 그 계절에 맞는 재료를 이용하여 자연과 생체 리듬의 조화는 물론 계절 특유의 맛과 기능을 즐기는 것은 또 하나의 멋스런 지혜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각 계절 특유의 꽃과 과실을 통해 계절에 어울리는 색감과 효능을 간직한 60여 종의 차에 대해 차를 만들고 우려내는 방법은 물론 각기의 의학적 성능 등 실용적 지식과 함께 친절하고 유용한 길을 안내를 해주고 있다.

생꽃 그대로 우려내도 좋다는 봄이면 제일먼저 어디에서나 피어나는 개나리꽃, 그리고 신비한 향기와 은은한 차색이 일품인 꽃 잎 아홉 장짜리 토종 목련의 꽃 잎차, 생강향이 나서 이름인 생강나무꽃차, 그리고 진달래, 복사꽃, 민들레 꽃차가 봄철 차들을 수놓는다. 그래도 잎차인 제철의 차나무 녹차인 햇차를 빼 놓을 수는 없다. 값이 다소 비싸지만 가장 먼저 딴 어린 차 잎으로 만든 우전차는 효능과 맛에서 최고라니 말이다.

한편 성큼 다가온 여름에는 갈증이나 속 열을 시켜주고 탈나기 쉬운 내장을 다스려주는 차들이 그만일 것이다. 그래서 장미꽃, 아까시아꽃차부터 식후에 마시면 위의 자극으로 소화를 촉진시켜주는 박하차, 설사, 해열에 특효인 청매실차,  레몬보다 비타민C가 스무 배나 많으며, 더위로 오른 혈압을 내려주고 갈증 날 때 속 열을 풀어주는 것은 물론 카페인 성분 또한 없어 위에 부담도 주지 않는 감잎차는 진정 여름철 차로서는 제격인 듯싶다.
그리고 칡꽃, 맨드라미, 국화꽃이 피어나는 가을에는 이들 꽃차와 포도차, 내장 통증을 다스려주는 우엉차, 송이차가, 겨울에는 중풍, 고혈압 예방에 좋은 송화차, 동백꽃차와 꽃차의 백미라 하는 입안  가득 퍼지는 청향이 그만인 매화차가 우릴 기다린다.

꽃차에는 투명한 유리 다기가, 잎차에는 우리 전통장인의 얼이 담긴 도자기 다기로 조합을 맞추어 차를 우려내면 차 마시는 즐거움에 품격과 멋이 더해져 분위기와 차 맛이 한층 우아해질 것 같다. 소개되는 모든 차마다 어울리는 다기세트와 우리는 방법이 화려한 화보와 어울려 그 시각적 즐거움도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이라 하겠다. 게다가 물맛이 절반이요, 나머지 절반은 정성이라고 하는 차 맛이 살아나게 하기위해 물이 끓으면 뚜껑을 열어 한 김 날려 보내는 세심한 방법들까지 더해서 이 책은 우리의 건강은 물론 세련된 미감을 살려주는데 더 할 수 없는 산 정보를 준다. 가정에 한 권씩 비치해두고 계절별로 차를 끓여낼 때마다 참조하면 아주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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