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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 내 안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공감과 위로의 심리학
일레인 N. 아론 지음, 노혜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표제가 던지는 왠지 친근한 어감, 아니 무엇보다 내 성격적 특성을 말하는 것만 같아 냉큼 읽게 된 책이다. 심리학에서는 특별한 이유 없이 계속 불안해하는‘신경증’이라는 질병적 해석이 있긴 하지만, 이는‘민감함(sensitive)'과는 전혀 다른 것임에도 사회적, 학문적 관심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인류의 공격적인 문화, 즉 충동적이고 저돌적인 전사(戰士), 확장과 이익에 관심을 갖는 전사중심의 문화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신중하며, 자극에 민감한 사람들을 정상적 고려의 대상으로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략 전체 인구의 20~25퍼센트는 유전적으로 '매우 민감한(highly sensitive)'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외부의 소음(noise; 정신적, 물질적)에 대해서 75~80퍼센트의 사람들보다 훨씬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는 것인데, 이는 정신적 긴장을 차단하는 신경계가 긴장하는 정도차이로 자극을 걸러내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소음이나 자극에 노출되면 그것을 견뎌내는데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결국에는 완전히 탈진해 버려서 이후에 어떠한 행위를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수선한 주변을 무시해버리고, 복잡한 놀이시설이나 쇼핑공간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도 저녁에 다시금 술자리를 하기위해 나갈 준비를 한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뻗어서 그저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이러한 성격상의 특성은 주위에서 내성적이라든가 사교성이 떨어진다, 또는 숫기가 없다는 식으로 정의되곤 한다. 그런데 매우 민감하다는 것은 이러한 표현들처럼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성격적 특성이 아니다. 다수의 권력과 힘의 관계에 열중하는 사회성이 만들어낸 왜곡된 정의일 뿐이지 바로 지금의 인류사회가 그나마 존재하게 한 고귀한 유전적 특성이다. 신중함, 침착함, 사려깊음, 민감함을 불안, 어색함, 두려움, 억압됨과 동일시하는 공격적 충동성이 지배하는 폭력적 문화의 속성이 만들어낸 편견일 뿐인 것이다. 이 책은 인류의 1/4을 구성하는 바로 이러한 내면적 소리에 보다 관심을 갖는 매우 민감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 다수의 그릇된 시선과 상황에 종속되지 말고 고유의 성격적 특질을 발휘하고, 또한 정신적으로 억압되어있던 심리적 기억들을 재구성해서 긍정적 자기실현으로 견인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기 위해 유아기에서부터 성장기(사춘기)는 물론 성인으로서의 제반 사회적 상황과 직장, 직업인으로서의 장애와 극복, 연애와 사랑 등에 걸쳐 마주하게 되는 자극과 고통, 현상을 통해 이를 이해하고 장점을 실현하는 방법들을 심층심리학적 기반 하에 섬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매우 민감한 특성은 신경계적 유전의 산물이지만 영유아기는 물론 성장기에 부모의 양육방식 등 환경적 여건이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태어나서 최초로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고통이 긴장이란 것인데, 이는 세상에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멈추어진다고 한다. 여기서 애착심리, 회피심리, 불안심리 등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 즉 부모의 보살핌이 무관심과 과잉보호의 사이에서 여하하게 제공되는가에 따라 일종의 자극에 대한 반응체계인 아이의 행위억제시스템(멈춤 확인시스템)에 대한 숙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는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먹을 것을 달라고 하기 전에 미리 젖병을 물려주는 것이 좋은 것인가? 어떻게 부모가 반응하는 것이 아이에게 세상에 대한 안전성, 신뢰를 높여주는 것이 되는 것일까를 배우게 된다. 이처럼 매우 민감한 당사자가 아니어도 아이를 양육하는 모든 부모들을 위해서도 이 책은 아주 중요한 심리학적 가르침을 준다.
한편 이 책이 말하려 한 것, 즉 내가 관심을 갖게 된 내성적 또는 숫기 없음과 같은 부정적 시각을 포함하는 민감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겪는 곤란함과 편견적 시선의 극복에 대한 실례(實例)를 포함한 방법론은 매우 민감한 사람으로서의 저자의 체험적 기술방식으로 인해 더욱 친근하고 진실하게 다가온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신체적 활동에 참여하기보다는 구경할 때가 많았다는 저자의 체험담으로부터 자신감과 희망을, 모험을 하지 않음으로서 발생하는 실망감과의 대체를 고려해보라는 조언으로부터 시작해서, 민감한 사람들의 성격인 자극의 회피나 우선순위 설정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일들을 타인의 일들보다 나중으로 미루거나, 인생의 의미와 죽음과 복잡한 세상사에 대한 생각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 직관적이고 반의식이나 무의식으로부터 정보를 찾아내려하며, 정치놀음을 좋아하지 않는 탓에 영악하지 않으며, 가면을 쓰지 않는 순수함과 양심적 결벽성 등이 오늘의 주류적 사회 문화에서 수용되지 못하고 소외되는 원인을 탐색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과 사회의 속성을 이해함으로써 어떻게 세상과 조화하고 그러함으로써 자기, 즉 자신의 개성을 찾을 수 있는지 설득력 있게 그 길을 안내한다.
때론 물리적 피난처로 긴장을 피해 도피하는 것이, 그리고 보이지 않는 피난처를 만들고 의지하는 법을, 세상을 견디고 기꺼이 참여할 수 있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는 법, 좋은 페르소나를 의식적으로 만들고 사용하는 것이 결코 민감한 사람인 우리가 거부하는 위선이 아니라 적당히 솔직한 것으로서 필요하다는 것, 내면의 이상을 마비시키는 세속적 요구를 떨치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개성화 과정에 대해서, 다수자의 모임에서 말없는 행동은 그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며 그래서 그들에 표현하여야 할 긍정적 신호의 발신에 대해서, 조직 내 상사와 주변인들에 대한 신뢰와 의심에 대한 용기에 대해서처럼 매우 민감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격적 특성을 발휘하는 구체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나아가서 매우 민감한 사람들의 사랑이 “바깥세상으로부터 소중한 내면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에너지를 안으로 쏟는” 특성 탓으로 안에 쌓였던 에너지가 터져 나오면 한 사람, 한 장소나 물건에 기착해서 물불을 가리지 못해 상처를 커다랗게 받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자신들의 속성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사랑으로 그리고 치유법을 세심하게 알려주기도 한다.
제각기 살아오면서 쌓은 그 경험의 무게가 다르겠지만 우리들의 지나간 기억, 경험을 민감성이 지닌 재능, 그 장점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삶의 기대치를 높여주는 적응성 높은 현실적 심리프레임을 제시한다. ‘매우 민감함’이란 성향이 획일적인 어떤 것이 아닌 만큼 정도의 차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사교적이며 수다스러운 민감한 사람도 있겠지만 혹여 사회가 무차별적으로 발산하는 자극을 회피하기만 했던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지닌 엄청나게 놀라운 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 그 빛나는 재능을 사회에 마음껏 발휘하는 작은 불씨가 되어줄 수 도 있다. 내적인 경험은 보이지 않기에 비교가 되지도 않으며 타인들이 알 수도 없다. 단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미묘한 차이까지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편견에 의해 억압의 기제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내부로 침잠한 많은 민감한 사람들에게 안도와 구원을 주는 책이다. 주변에 민감한 친구나 동료, 부하직원을 두신 분들, 민감한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에게도 이 책은 귀중한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민감한 자아를 확인하고 돌보는 방법을 말해주는 최초의 심리학 연구서이자 치유서로서 감동스럽고 고마운 저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