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도 이브도 없는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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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인들이 단지 동양의 내밀함에 대한 호기심에 의거한 찬탄으로 어어진 연장선에서 이번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 ‘살인자의 건강법’에서 시작된 노통브의 인간에 대한 회의와 악의 찬미, 그리고 궁극의 연민과 같은 보편성으로의 접근과는 달리 사뭇 서구의 위선으로 점철된 이 작품으로 지금까지 발표된 그녀의 모든 글들이 진실을 상실한 것으로 느껴지기 까지 한다.

성년기에 접어든 21살의 여성 ‘아멜리’의 마냥 신비스럽기만 했던 일본에서의 2년 남짓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속의 아멜리가 말하듯이 ‘사랑’의 이야기까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아니, 분명 사랑이 아니라 연(戀)이자 연(緣)이라고 애매한 자신 나름의 해석으로 동서의 문화적 차이라는 부존재의 언어로 피해간다. 프랑스어를 배우려는 스무살의 청년 ‘린리’를 상대로 한 최초의 만남에서 좋아하는 상대로서의 관계를 성장시킨다.

소위 남녀가 사귀는 과정에서 이국적 관습과 문화에 대한 포용력 넘치는 아멜리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연인(戀人)으로서의 성실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랑받는 기쁨을 사실의 표현으로 객관화하여 자신의 사랑은 존재치 않았음을 시종 암시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자기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여기서부터 그녀의 진정성은 내게 의심의 대상이 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이 작품은 지나치게 이기적 감성을 당연시 한다. 이는 동양과 서양의 단순한 차이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아멜리’의 행동에서는 이해와 배려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배제되어 있으며, 이를 향한 어떠한 노력도 존재치 않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자신의 자유와 자기실현에 대한 상대의 멋스런 이해와 같이 자기식 이해가 완결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 식이다.

벨기에로 어떠한 언급도 없이 일본을 떠난 후, 약혼자인 린리의 구애가 거칠게 요구되지 않은 것을“그는 졸렬하게 요구하지 않았다.”고 지극히 자기중심적 해석을 내리는 지독한 에고를 보인다.

여기에선 그 누구도 죽음에 이르는 자가 없다. 마치 강자가 약자에 선심 쓰듯‘악(惡)’이 없기에 죽음이 필요치 않았다고 아멜리는 떠벌린다.

물론 ‘린리’는 그녀도 인정하듯이 그 순수한 사랑에 악이 게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는 역겨운 악의 오만한 이기심을 아멜리로부터 본다. 그녀가 내건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떠났다는 주장은 공감하기 어렵다. 아니, 결혼은 자유의 반의어라는 황당한 위선일 뿐이다. 교묘한 언어의 장난이고 술책이기에 서구 중심의 시선으론 읽히지 않을 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배신이고 사악함이다. 그래서 노통브가 보다 자기에게 솔직하였다면 린리의 손을 통해 아멜리의 목을 조르는 기쁨을 선사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작품은 비로소 ‘아멜리 노통브’식 소설의 공평한 선택이 될 것이다.

린리 어머니에 대한 아멜리의 태도에서, 약혼의 그 절묘한 유보적 가치의 부여에서, 동양적 집단 가치에 대한 서구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갈등이 진지하지 않지만 스칠 듯 지나간다. 아멜리의 후지산에 대한 찬미와 사도섬의 내경관(內景觀)에 대한 감탄, 청명하고 신선한 도시의 공기까지 모두 자신의 감상에 대한 도취일 뿐 대상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나 경외, 동화된 감상이 아니다. 오직, 자기애(自己愛), 완벽한 개인적 자유의 가치만이 삶의 진실이듯 주절거리는 것은 위선이다. 위선은 악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그녀의 소설이 위악(僞惡)속에 진정의 선을 이야기 했다면, 이 작품은 위선(僞善)속의 악이다.

자유(自由)란 이 추상적 분방함이 타인을 손상시키고, 그 모호함은 오직 주체의 감정적 느낌에 불과한 것일 때, 상대의 관용과 희생위에 선 자신의 자유를 어떻게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인지? 2년간 충분히 사용된 연인(緣人;인연이 있었던 사람)에 불과해버린 린리의 부족한 볼테르의 언어가 빚어낸 유치찬란한 문장 “사무라이의 우애”를 빌어 정당화하는 것은 결국 극도의 이기적 자기위안에 불과한 것이다.

‘적의 화장법’, ‘황산’, ‘제비일기’에 이르는 근작(近作)들의 세련미 넘치는 인간본성에 대한 성찰이 이 한 편의 위선(僞善)투성이 연애담론으로 붕괴되는 듯하다. 그녀가 바로 악이다. 어설픈 자기연민으로 타자를 희생해서라도 자신의 초인성만 상처입지 않는다면, 그것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비열한 서구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에덴동산의 무화과를 사도의 감에 비유한 기발한 언어잔치, 이외에는 어떠한 읽을 가치도 없는 허위(虛僞)다. 진정한 동양의 아담 린리와 위선의 이브 아멜리가 있을 뿐이다. “아담도 이브도 없는”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과연 동양인들이 서구인의 이 교묘한 위선을 찾아내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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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데이비스의 미술투자 노하우 미술시장 올가이드 1
론 데이비스 지음, 최리선 옮김 / 아르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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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회화소품이라도 한 점 장만하기 위해 미술관, 화랑에 발걸음 하기 전, 미술품에 대한 나름의 감식안을 갖기 위해 시동을 걸던 완전 초보자의 미숙함과 두려움으로 주저하던 순간에 이 저작을 대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미술품 투자가로 나설 정도의 미술전문가나 재정적 여력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며, 재력 있는 컬렉터도 물론 아니다. 정말 좋아하는 그림을 형편이 닿는 대로 구입하여 벽에 걸고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호사를 누려보고 싶은 소박한 기대뿐이다.

이 저술의 제목이 미술품의 투자를 통한 경제적 이익의 실현을 전제로 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또한, 미술품거래를 통한 투자수익을 주된 사업으로 하려는‘딜러’를 위한 기초매뉴얼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 소개된 미술품 초보자 등 애호가를 위한 많은 저작들이 미술품의 소장에 대한 기쁨과 그 미술품의 작품성이 보여주는 감동, 조금 나아가서 화랑이나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용기를 불어넣어주는데 그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실제 미술품을 구입하기 위한 지식이나, 방법론, 위험요소, 미술시장의 동향, 정보와 자료수집의 방법, 미술품 가격정보와 그의 추정등과 같은 좀체 접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어 실전용으로 탁월한 저술이라 할 수 있다.

당장 전시장이나 화랑, 또는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그림 한 점을 구입하려는 초보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막막하기 그지없다. 어떤 그림을 구입할 것인가? 그 그림의 가격은 과연 얼마가 적정한 것일까? 혹 그 그림이 위작은 아닐까? 가지고 있는 동안은 충분히 즐기겠지만, 언젠가 팔아야 할 때는 팔수 있는 작품일까? 그땐 어떻게 팔아야 하는 것일까? 이왕 그림을 구입할 때 가치 있는 그림은 어떻게 구별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많은 의문들이 떠오른다. 그야말로 이 저술은 이들 내용 즉, 미술전문가들만이 지니고 있는 노하우를 숨김없이 소개하고 있으며, 어느 영역에서는 상당히 심화된 단계로까지 안내하여 여차하면 단순 애호가에서 전문딜러로의 길로 나아갈 정도에 이른다.

뛰어난 작품의 특징이란 무엇일까? 뛰어난 “그림은 해부학과 원근법, 구성, 색채와 콘트라스트가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점점 더 의미 있게 다가오면서 우리 눈을 자연스럽게 이끈다고 한다. 우리의 시선을 이끌고 감동을 주는 그림이라면 그래서 내가 좋아 할 수 있는 그림이라면 충분 할 것이라고.

이 탁월하고 진솔한 저자는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쉽게 정리된 실질적 현장론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어떤 그림을 구입하여야 할까? ‘리스트에 오른’작가의 작품을 사도록 하라고 주문한다. 즉, 미술품 경매시장이나 전시장, 화랑 등과 같이 이미 미술시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라는 조언이다. 그리고 미술운동을 스스로 창시하였거나, 그 운동을 따르는 특정 화파(畵派)에 속해 있는 작가의 그림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정말 중요한 핵심적 관점을 꼼꼼하게 정리하여 주고 있다.(내용을 모두 기술하는 것은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듯하여 생략함)

엄청나게 많은 화파와 작가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초보자인 내가 이들 모두에 대해 감식안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각자 마음이 가는 화파나 소재, 작품의 주제가 있다면 해당 분야에 속한 10명의 작가들을 조사하여 연습하라고 한다. 그들의 이름, 활동연대, 작품 가격수준, 서명, 전체 작품목록, 심지어 그들이 사용하던 액자까지 기억하도록 꾸준히 학습하고 해당 작가들의 회화전에 방문하여 비교하고 감상하면서 실전 감각을 키우면 기초적 준비가 완료 될 것이라고 단계화되고 구체적 설명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초보자가 일류작가의 작품을 구입하려다가는 구매금액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실수하면 단지 장식용에 불과한 작품가치가 떨어지는 작품을 구입하게 되는 위험까지 안을 수도 있다. 이류작가의 최상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오히려 보다 안정되고 투자가치까지 확보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즐거운 주제의 작품을 구입하라. 등등... 정말 너무 실제적이어서 감히 남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보석 같은 조언들이 이 까다로운 초보자에게 감동을 줄 정도이다.

작품의 진위의 판단을 위한 기초지식들로 캔버스 기저재(基底材)에서 나무패널, 아교, 제소에 이르는 각종 미술품 기저재에 대한 식견에서부터 시장의 이해를 위한 업계소식지, 경매 카다로그, 미술잡지의 구독의 당위성, 카다로그 레조네의 그 조심스러움과 중요성 등 헤아릴 수 없는 미술품 투자에 대한 지혜들이 가득하다.

미술품의 구매전략에서 판매방법까지도, 분명 우리 대다수의 서민들은 단순히 미술품 애호가에 이르기도 쉽지 않다. 구매력도 여의치 않을 뿐 아니라, 전문성 또한 간단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 점의 마음에 드는 회화나 소품을 구입하려 할 때 훗날의 투자가치를 고려치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다. 저자의 조언처럼 구입한 후 7~8년 후에 팔게 되면 상당한 투자수익을 실현 할 수도 있다. 그림이란 것이 천년만년 소장 할 것이 아니고 내 집에 걸어놓고 가족과 친지들이 기쁘게 즐기고, 적절한 시기에 팔아 또 새로운 그림을 구입하여 감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랄 수 있겠다.

미술 시장의 추세, 현재의 유행, 재정적 계획이 아니라 내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미술작품이야 말로 오랜 시간 관심과 즐거움을 유지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미술작품에 대한 초보자 뿐 아니라 투자가, 딜러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이 저술은 진정한 참고도서로서의 역할에 어떤 모자람도 없다. 다만, 이 저작물이 ‘론 데이비스’라는 미국인에 의한 미국미술시장을 기준으로 기술되어 있어,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시스템이나 현실과 다소 괴리가 있어 부분적으로 국내의 현실을 따로이 파악해야 될 요구가 발생하는 점이 아쉽다. 다만, 이 저작물의 후속으로 발간 될 한국 미술시장‘올 가이드(All Guide)’의 출간을 기대하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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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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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가이도 다케루’의 전작(前作)을 주름잡았던 ‘다구치-시라토리’콤비와 도조대학 의학부, 살인과 추리라는 등식이 없다. 그러나 의료소설로서의 성격은 보다 선명해졌고 참여문학의 형태까지 지향한다. 장소는 동경의 명문 데이카대학 의학부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의료정책에 대한 직접화법을 구사하고 있기까지 하다. 행정 관료의 정책적 무능과 무력한 의료계, 그리고 붕괴되어가는 비참한 지방의료 체제의 문제와 인공수정, 대리모(代理母)로 대표되는 생명탄생에 대한 윤리적 타당성의 공론화라는 뚜렷한 문제제기를 양대 주제의식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작품의 주제의식이 너무 분명해서 허구의 재미가 반감될까 우려 할 필요는 없다.

음모, 고발, 시기, 갈등, 섹스, 그리고 분자생물학, 인공수정, 대리모, 기성과 신진, 관료행정의 부패와 무능, 페미니즘, 도덕적 윤리 의 다채로운 소재와 구성요소들이 매혹적인 미모의 여주인공 32세의 인공수정 전문의이자 발생학 강사인 ‘소네자키 리에’의 주도면밀한 행동, 거침없는 추진력이 어울려 탁월한 소설적 재미를 안겨준다.

페미니즘을 전면적으로 부상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주인공 ‘소네자키 리에’의 남성 중심적 의료세계와 기성권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여성의 모습에서, 그리고 생명의 잉태와 출산이라는 여성고유의 내면화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내재화되고 있다.

‘리에’는 데이카대학이 지원하는 마리아클리닉에 외래교수로 지원을 나간다. 그녀가 담당하는 5명의 임산부(姙産婦)가 출산을 완료하는 시기를 마지막으로 마리아 클리닉은 폐원하게 되어있다. 2명의 인공수정에 의한 임산부와 3명의 정상적 임산부인 이들 5명의 여성은 리에와 함께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우는 사건들의 전개를 같이한다. 낙태를 하려는 거리의 소녀, 임신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워킹우먼, 5년에 걸친 인공수정 노력을 기울인 30대중반의 불임여성, 50대중반의 부조화스런 인공수정 임신, 무뇌(無腦)상태의 태아를 가진 여성은 각기 생명잉태에 대한 윤리적 잣대와 사회제도에 대한 긴장된 문제를 제기하게 한다.

출산율 저하에 대한 출산장려책이 행정 관료들의 오만과 무지로 오히려 지방의료체제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후생성의 관료정책에 대항하여 리에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는 불임 부부를 지원하는 것이 진정한 의료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윤리적으로 첨예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체외수정과 같은 인간의 수정란, 배아의 배양이 신(神)의 영역을 건드렸다는 종교적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타인의 수정란을 생물학적 부모가 아닌 인간의 몸을 빌려 출산하는 행위가 과연 윤리적인 것인가? 와 같은 대리모출산에서부터 남성의 동의 없는 정자수집과 임의 인공수정 행위, 체취 된 난자의 임의사용 등 이 작품에서 리에가 말하는 불임자들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란 감성적 호소에 귀 기울인다 하더라도 그녀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러한 윤리적 문제는 빗겨나고 있다. 단지 과학으로서의 의학기술에 열광하고, 부패한 의료정책을 비판하는데 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한편, 관료행정에 영합하고, 기성권위에만 의존하는 구태스런 사람들의 표본으로‘야사키’교수란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중립적 인물로 리에와 두 번의 잠자리와 한 번의 묘한 접촉이라고 기억을 더듬는 ‘기요카와’부교수가 있다. 이들과 벌이는 리에의 갈등과 설전은 이 작품의 재미를 견인하는 톡 쏘는 청량음료의 맛을 선사한다. 이 권위적 인물인 야사키를 면전에서 완벽하게 짓누르는 소네자키의 당찬 논리에서 얏호~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다. 이후 대학과 후생성이라는 거대한 기성체제에 대한 일전을 불사르는 리에의 모습에서 소신과 정의 앞에 의연한 한 여성을 찾을 수 있다.

소네자키가 매료된 DNA염색체에서 울리는 3화음의 조화를 시작으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독자의 시선은 무수한 의료문제를 당면하고, 생명의 신비로움과 존귀성을, 관료의 부패와 무능, 기성권위의 안이함, 지방의료체제의 붕괴와 같은 사회적 이슈와 마주하게 된다. 결국 작가의 의도는 성공적인 셈이 된다. 빠져나갈 곳이 없이 재미 속에 주제를 명료하게 언급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여기에 우리사회가 어떠니 저떠니 하는 종언은 사족에 불과할 듯하다. ‘가이도 다케루’는 다음에는 어떤 병동으로 넘어갈까? 다시‘부정수소외래’로 회귀할까? 아님 데카이대와 소네자키의 새로운 세상이 열릴까? 그의 차기작이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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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 데이트, 쇼핑, 놀이에서 전쟁과 부자 되기까지 숨기고 싶었던 인간 본성에 대한 모든 것
앨런 S. 밀러.가나자와 사토시 지음, 박완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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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술은 분명 흥미롭고 재미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 뿐 아니라 동양의 성선설, 성악설에 이르기까지 인간 본성에 대한 탐색은 21세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논쟁의 근원이 되어왔으니 말이다. 또한 종족번식과 짝짓기라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에서 출발하는 진화론적 접근은 잔뜩 호기심 그득한 인간에게 매우 수월하고 자극적인 인식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에 더욱 강력하게 이해에 스며든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은 자칫 인류 갈등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위험요소를 내재하고 있음을 경계하여야 한다. 연구자가 어떤 방향에서 인간 심리를 분석해 나가느냐에 따라 실로 위태로운 측면이 도사리고 있음이다. 인간의 태생적 평등, 후천적 학습과 경험을 주장하는 일종의 양육론(養育論)인 환경결정론으로서의 *빈 서판(Blank Slate)에 대항하는 생물학적 본성론(本性論)인 유전자 결정론과 같이 진화심리학은 자칫 인간의 차별화를 당위(當爲)화하여 인류 최악의 세기인 20세기의 인간 대학살과 살육전의 부활이론화 할 수 도 있음이다.

때문에 흥미로움만으로 접근될 경우, 이론적 부조화, 논증의 불합리성, 설명 불가능함과 같은 이론적 불비(不備)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인류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부정적 측면이 있을 수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저자들은 본 저술의 내용 어디에서도‘당위(當爲)’를 말하지 않겠다고 서문에서부터 다짐을 하고 있으며, 정치사회적, 인종적 편견으로 연계될 여지를 만들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함에도 종교에서의 유전적 근거나, 이슬람국가들의 자살테러의 동인(動因)에 대한 주장과 같이 일부다처제로 인한 번식가능성에서 배제된 남자들의 행동이라는 귀결은 입증되지 않은 억척스럽고 감성적 주장의 예라 할 수 있으며, 이는 학자의 양식을 넘어서는 위험한 담론이라 할 수도 있겠다.

비록 진화심리학의 기초입문서에 불과한 대중심리학서이기는 하지만, 인간 개체에 대한 미시적 접근을 넘어 정치, 경제, 종교와 같은 거시적 조망이 요구되는 분야에 이르는 의기양양한 주장은 많은 논쟁의 기초가 될 수 있으며, 실제 논쟁을 야기한다. 그래서 저자들이 아무리 순수한 대중입문서로서 진화심리학의 저변을 넓히고, 학문적 심화에 일조하려는 의지라고 하여도 이미 순수하지 못하다. 그래서 이 단순하고 작은 책자는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철학, 신경생물학 등 인간의 본성, 즉 정체성을 규명하려는 관련연구 분야의 종사들 뿐 아니라 대중들에게 의미심장한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진화심리학은 과거의 멈춰진 시간에 기초한다. 또한, 진화의 특질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수 십 만년에 이르는 안정적 환경이 지속되어야 하며, 다시 말해 인간의 두뇌가 오랜 기간 전인 1 만년 혹은 그 이상의 시점인 구석기, 이전 선사시대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즉 인간행동은 바로 진화가 정체되어있는 그 시대에 형성된 심리적 기제를 오늘에도 가지고 있다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심리적 기제의 중추는 바로 생물학적 본능인 종족번식, 생명의 유지를 기초로 하고, 이 원초적 기제(  機制)하에 인간의 모든 행동은 유발된다고 주장한다. 금발머리의 가는허리, 긴 머리카락, 풍만한 가슴의 여성을 남성이 선호하는 것이 과연 사회의 끊임없는 학습효과로 인해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남성은 본래적으로 이러한 여성을 찾도록 프로그램화 되어있는 것인가? 왜 포르노에는 끊임없이 돈이 몰릴까? 이 모두 진화가 정체된 인간 뇌의 산물이라는 이라는 것이다. 건강하고 생식능력이 뛰어난 여성으로서의 오랜 학습이 진화의 시간 속에 프로그램 된 결과일 뿐 이라는 것이며, 가상의 공간에 있는 이들 여성에 반응하는 남성은 미처 사회의 변화에 따르지 못한 뇌의 실수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다못해 인류의 결혼제도 역시 인간의 프로그램 된 뇌(수렵시대와 동일한 우리 현대인의 뇌)는 일부다처제에 익숙함에도 대다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일부일처제가 내용상에서는 여전히 지켜질 수 없는 시스템이며, 실상에서도 지켜지고 있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 가장인 남자에서 폭력범인 남자에 이르기 까지 이들의 행위에는 결국 자기유전자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즉, 종족 번식이란 본능의 작동이상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급기야 남성의 성기모양과 섹스의 반복운동까지 자기종족 번식을 위한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증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부모의 이혼이 딸을 사춘기로 빨리 몰아넣는 것도, 아들이 있으면 이혼율이 떨어지는 것도, 젊은 남자가 외국 남자를 경계하고 혐오하는 것도 모두 종족번식을 동인으로 하고 있는 것이며, 남자가 돈도 더 벌고, 정치권력가가 바람을 피우는 것 역시 종족번식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상대인 여성을 가능한 많이 상대하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 이러고 보면 세상에서 우리 인간이 하는 모든 언어와 행동의 근원은 종족 번식을 위한 것 뿐, 그 이상의 어떠한 본질적 의미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역시 흥미 넘치지 않는가? 여기서 과연 우리 인간 행동의 근원에 오직 생물학적 본능만이 작동하는 것일까 하는 회의가 떠오르지는 않는가?

‘본성 대 양육’이란 이제는 한풀 꺾인 환경결정론과 유전적 결정론과 같이 그 본질이 첨예하게 극단화 되어있지는 않지만, 저술내용에서 시종 이론의 비교우위를 지향하기 위해 언급하는 빈서판 즉, 깨끗한 뇌라는 어떠한 것도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은 출생 시의 뇌가 차츰 육아, 교육, 대중 매체, 사회적 보상이란 경험을 통해 학습된다는 이론과 경합하는 것은 다분히 이 저작물이 논쟁을 지향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오늘날 이러한 '빈 書板(Blank Slate)'이 주장하는 환경결정론이 인간행동을 해석하는데 많은 부분에서 취약함과 오류를 노출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모든 행위가 짝짓기와 번식행위로만 설명되지도 못한다.

여전히 우리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정체를 찾아 헤매는 방랑자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뇌를 중심으로 한 신경심리학, 분자생물학, 신경화학, 신경세포학 등 바로 현재의 인간의 뇌가 정복되는 날, 우린 우리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유익하고 흥겹고, 생각게 하는 저술이다.

*빈 서판(書板;Blank Slate)은 환경결정론자들이 인간의 뇌는 처음에는 모두 깨끗한 상태에서 동등하고 평등하게 시작 된다는 의미로 사용한 용어이다. 세계적 진화심리학자인‘스티븐 핑거’의 저술인 同名의 책 『빈 서판(The Blank Slate)』은 바로 이러한 환경결정론을 비판한 걸작이다.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의 본문에서 인용되는 ‘빈 서판’은 문자 그대로 비어있는 서판 즉, 깨끗한 뇌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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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서평을 써주세요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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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평범한 범부로서의 추억,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 그리고 작가로서 작품에 투영하였던 의지와 시선, 인간 본성과 언어에 대한 사유가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때론 시의 잔잔한 여운과 함께, 때론 강직한 신념과 이성의 목소리로 정리되어 있는 이 땅의 부재한 소통을 복원하기 위한 제언집(提言集)이라 할 수 있겠다.

부산 피난열차의 지붕에 닥지닥지 붙어, 떨어져 죽음에 내몰리는 지옥 같은 피난의 대열에 끼었던 무수한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고관대작들은 하물며 그네들의 개새끼, 가제도구 일체까지 실어 나르던 넉넉하게 차지한 그 열차 객실 안 다른 세계의 조명은 평범한 장면이 아니다. 순진무구했던 백성들과 몰염치와 사악함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의 후안무치(厚顔無恥)의 그 인간들이 시간의 장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에도 이어지는 것을 볼 때 수치스러움이 불길처럼 훅하고 엄습해 옴을 느낀다.

딸아이의 선물에 감격하는 아빠의 소박함과 “아버지를 묻던 겨울은 몹시 추웠다.”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연륜이 더해지면서 우린 어느 순간 ‘생명의 개별성’에 대해 보다 실체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아버지를 동토(凍土)의 지하에 묻던 그 절절한 슬픔은 시간 속에 바래지고,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中略 ~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라고 했다.

겨울철이면 유난히도 많이 들려오던 소방차의 사이렌소리에서 타인의 구원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이타적 시스템의 긍정성에 감사하는 작가의 타자에 대한 연민이 진정으로 다가온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이 내재한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소방대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화마(火魔)에 무너져 내리는 건물에 묻혀버린 소방대원들의 고귀한 희생에 우리들의 시선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생명을 담보로 한 소방대원들 간의 신뢰와 의지에서 타인이 없는 내가 존재할 수 없음을 이해한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 中略 ~ 다가오는 인기척, 그것이 인간의 희망인 것이다.”

크게 세 단원으로 묶여있는 글 중에서 나는 ‘말과 사물’의 장(章)에 수록된 ‘회상’과 동명의 ‘말과 사물’, 이 두 글에 유난히 공감으로 머리를 끄덕여 댔다.

그의 몇 몇 작품을 접했던 독자로서의 공감뿐 아니라, 우리사회, 나아가 인간사회에 닿은 그의 시선에 대한 동의가 더욱 크다. ‘난중일기’와 이순신 장군을 배경으로 한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이란 좁디좁은 울타리 안에서 조차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이 땅 사대부들의 졸렬하고 이기적 당파의 그 적나라함이 그려진 『남한산성』에서 오늘, 우리사회의 무능함을 반복해서 읽는다.

“사실에 입각하는 것, 인간이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이순신의 승리 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의견이란 것들, 이 사회의 당파 자들은 자기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에 소속되지 않는, 탈정치성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재앙자로 처단하곤 한다. 바로 탐욕으로 인한 불안함이리라. 이것이 한국사회가 지금에도 고스란히 재연하고 있는 현상이다. 사실에 대한 인식도 없는 자들, 자기가 편에 속한, 자기의 의견이란 것으로 보수니, 진보니, 좌니, 우니하며, 자기집단의 이익을 쫓고, 마치 무슨 대단한 투사인양 되먹지도 않은 주둥아리를 놀리는 인간들의 행세와 이에 열광하는 무지한 추종자들을 보면 입맛이 쓰디쓰다.

“이 사회적 담론이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에, 대체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 中略 ~ 이런 언어는 인간의 소통에 기여 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이런 언어가 횡행 할수록 인간 사이에는 소통이 아니라 단절이 심화되는 것이고 이 단절이 지금 거의 완성되어 잇는 것 같아요.~ 中略 ~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시대의 언어가 폭력의 수단인 무기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작가의 진단은 그래서 사실이며, 사실이기에 안타깝다.

“이 세상의 바탕을 이루는‘펀더멘털 베이식(Fundamental Basic)’이 있다면 악과 폭력이라는 작가의 시선에서, 나는 문득 1만 년 전의 수렵과 채집, 그리고 약탈에 적응하고 멈춰진 오늘날 인간의 심리적 기제를 말하는 진화 상태를 말하는 글이 떠오른다. 생물학적으로 틀리지 않은 성찰이다. 그래서, 인간의 이성, 자유와 평화에 대한 열망, 도덕율이 인간이란 차별성을 규명하는 중요한 특질이 된다.

그러함에도 우리사회는 당파적 의견만이 난무하고, 이 무지막지하고 상대에 냉담하며, 폭력적이기까지 한 언어의 무늬만을 띤 독설들이 이젠 완벽하게 소통을 차단해 버렸고 그저 벽에 대고 각자 떠들어대는 비극적 현상으로 치닫고 있기만 하다. 그 잘난 무슨 무엇하는 논객이란 작자들은 소통이란 걸 알지도 못하며, 지금도 여전히 제깟 녀석의 목청만 높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작가 김훈선생의 소설가로서의 소명의식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 더욱 나의 정신에 공감의 떨림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내 언어는 남의 언어에 부정당하면서 소통의 문을 겨우겨우 열어나가는 것이죠.” 그렇다. 힘겹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언어의 허약함이 아무리 본질적이라도 작가의 표현처럼 소통의 힘이 내장되어 있지 않은가?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완전한 언어로 불완전한 세계에서 사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서 쓴다는 것입니다.”라는 선생의 철학에 백번 만번 아니 천만번 공감한다. 작가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삶의 시선을 확장해 주는, 그리고 우리의 글과 소통으로서의 언어에 대한 정말 귀한 사유를 얻었다. 선생에게 해금의 소리가 항시 울려 퍼져, 우리들에게 선생의 고귀한 언어들이 지속하여 많이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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