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저술은 분명 흥미롭고 재미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 뿐 아니라 동양의 성선설, 성악설에 이르기까지 인간 본성에 대한 탐색은 21세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논쟁의 근원이 되어왔으니 말이다. 또한 종족번식과 짝짓기라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에서 출발하는 진화론적 접근은 잔뜩 호기심 그득한 인간에게 매우 수월하고 자극적인 인식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무력화시킬 수 있기에 더욱 강력하게 이해에 스며든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은 자칫 인류 갈등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위험요소를 내재하고 있음을 경계하여야 한다. 연구자가 어떤 방향에서 인간 심리를 분석해 나가느냐에 따라 실로 위태로운 측면이 도사리고 있음이다. 인간의 태생적 평등, 후천적 학습과 경험을 주장하는 일종의 양육론(養育論)인 환경결정론으로서의 *빈 서판(Blank Slate)에 대항하는 생물학적 본성론(本性論)인 유전자 결정론과 같이 진화심리학은 자칫 인간의 차별화를 당위(當爲)화하여 인류 최악의 세기인 20세기의 인간 대학살과 살육전의 부활이론화 할 수 도 있음이다.
때문에 흥미로움만으로 접근될 경우, 이론적 부조화, 논증의 불합리성, 설명 불가능함과 같은 이론적 불비(不備)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인류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부정적 측면이 있을 수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저자들은 본 저술의 내용 어디에서도‘당위(當爲)’를 말하지 않겠다고 서문에서부터 다짐을 하고 있으며, 정치사회적, 인종적 편견으로 연계될 여지를 만들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함에도 종교에서의 유전적 근거나, 이슬람국가들의 자살테러의 동인(動因)에 대한 주장과 같이 일부다처제로 인한 번식가능성에서 배제된 남자들의 행동이라는 귀결은 입증되지 않은 억척스럽고 감성적 주장의 예라 할 수 있으며, 이는 학자의 양식을 넘어서는 위험한 담론이라 할 수도 있겠다.
비록 진화심리학의 기초입문서에 불과한 대중심리학서이기는 하지만, 인간 개체에 대한 미시적 접근을 넘어 정치, 경제, 종교와 같은 거시적 조망이 요구되는 분야에 이르는 의기양양한 주장은 많은 논쟁의 기초가 될 수 있으며, 실제 논쟁을 야기한다. 그래서 저자들이 아무리 순수한 대중입문서로서 진화심리학의 저변을 넓히고, 학문적 심화에 일조하려는 의지라고 하여도 이미 순수하지 못하다. 그래서 이 단순하고 작은 책자는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철학, 신경생물학 등 인간의 본성, 즉 정체성을 규명하려는 관련연구 분야의 종사들 뿐 아니라 대중들에게 의미심장한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진화심리학은 과거의 멈춰진 시간에 기초한다. 또한, 진화의 특질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수 십 만년에 이르는 안정적 환경이 지속되어야 하며, 다시 말해 인간의 두뇌가 오랜 기간 전인 1 만년 혹은 그 이상의 시점인 구석기, 이전 선사시대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즉 인간행동은 바로 진화가 정체되어있는 그 시대에 형성된 심리적 기제를 오늘에도 가지고 있다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심리적 기제의 중추는 바로 생물학적 본능인 종족번식, 생명의 유지를 기초로 하고, 이 원초적 기제( 機制)하에 인간의 모든 행동은 유발된다고 주장한다. 금발머리의 가는허리, 긴 머리카락, 풍만한 가슴의 여성을 남성이 선호하는 것이 과연 사회의 끊임없는 학습효과로 인해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남성은 본래적으로 이러한 여성을 찾도록 프로그램화 되어있는 것인가? 왜 포르노에는 끊임없이 돈이 몰릴까? 이 모두 진화가 정체된 인간 뇌의 산물이라는 이라는 것이다. 건강하고 생식능력이 뛰어난 여성으로서의 오랜 학습이 진화의 시간 속에 프로그램 된 결과일 뿐 이라는 것이며, 가상의 공간에 있는 이들 여성에 반응하는 남성은 미처 사회의 변화에 따르지 못한 뇌의 실수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다못해 인류의 결혼제도 역시 인간의 프로그램 된 뇌(수렵시대와 동일한 우리 현대인의 뇌)는 일부다처제에 익숙함에도 대다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일부일처제가 내용상에서는 여전히 지켜질 수 없는 시스템이며, 실상에서도 지켜지고 있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 가장인 남자에서 폭력범인 남자에 이르기 까지 이들의 행위에는 결국 자기유전자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즉, 종족 번식이란 본능의 작동이상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급기야 남성의 성기모양과 섹스의 반복운동까지 자기종족 번식을 위한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증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부모의 이혼이 딸을 사춘기로 빨리 몰아넣는 것도, 아들이 있으면 이혼율이 떨어지는 것도, 젊은 남자가 외국 남자를 경계하고 혐오하는 것도 모두 종족번식을 동인으로 하고 있는 것이며, 남자가 돈도 더 벌고, 정치권력가가 바람을 피우는 것 역시 종족번식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상대인 여성을 가능한 많이 상대하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 이러고 보면 세상에서 우리 인간이 하는 모든 언어와 행동의 근원은 종족 번식을 위한 것 뿐, 그 이상의 어떠한 본질적 의미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역시 흥미 넘치지 않는가? 여기서 과연 우리 인간 행동의 근원에 오직 생물학적 본능만이 작동하는 것일까 하는 회의가 떠오르지는 않는가?
‘본성 대 양육’이란 이제는 한풀 꺾인 환경결정론과 유전적 결정론과 같이 그 본질이 첨예하게 극단화 되어있지는 않지만, 저술내용에서 시종 이론의 비교우위를 지향하기 위해 언급하는 빈서판 즉, 깨끗한 뇌라는 어떠한 것도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은 출생 시의 뇌가 차츰 육아, 교육, 대중 매체, 사회적 보상이란 경험을 통해 학습된다는 이론과 경합하는 것은 다분히 이 저작물이 논쟁을 지향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오늘날 이러한 '빈 書板(Blank Slate)'이 주장하는 환경결정론이 인간행동을 해석하는데 많은 부분에서 취약함과 오류를 노출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모든 행위가 짝짓기와 번식행위로만 설명되지도 못한다.
여전히 우리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정체를 찾아 헤매는 방랑자들의 노력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뇌를 중심으로 한 신경심리학, 분자생물학, 신경화학, 신경세포학 등 바로 현재의 인간의 뇌가 정복되는 날, 우린 우리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유익하고 흥겹고, 생각게 하는 저술이다.
*빈 서판(書板;Blank Slate)은 환경결정론자들이 인간의 뇌는 처음에는 모두 깨끗한 상태에서 동등하고 평등하게 시작 된다는 의미로 사용한 용어이다. 세계적 진화심리학자인‘스티븐 핑거’의 저술인 同名의 책 『빈 서판(The Blank Slate)』은 바로 이러한 환경결정론을 비판한 걸작이다.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의 본문에서 인용되는 ‘빈 서판’은 문자 그대로 비어있는 서판 즉, 깨끗한 뇌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