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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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열면 고개를 들어 흰 눈을 받아들이면 속눈썹이 초설(初雪)을 가로막았다.” 라는 영상미 그득한 이미지들로 독자의 지각이 깨어날 것을 독촉하는 문장들과 마주하게 된다. 동시에 잠속 꿈과 회상인가 하면 현실의 삶이 펼쳐지고 그 두 공간 경계의 시차에 적응하느라 안개 속을 거니는 기분에 휩싸인다. 그런데 이 당혹스러운 지각의 놀라움은 이내 영화 속 플래시백 장면처럼 익숙해지고, 세월에 훼손되어 찢어진 기억들이 마치 디지털 고해상도로 복원된 영상처럼 마술적 회복과 더불어 시차의 곤혹은 곧 융해되어 사라져버린다. 영화를 관람하듯 지각은 적응하여 소설 속 두 주인공이 찾으려는 물음, 그 진실의 여정에 무난히 동행하게 된다.

 

영화감독이기도 한 작가의 기교가 마음껏 발휘된, 기억과 현재의 경계를 붕괴시키는 상황과 장면들의 배치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다. 눈물의 여정은 꿈에서 시작하여 가을의 첫날 아침 파리에 도착했다.”는 독백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타이베이의 여자는 파리의 작은 아파트 매트리스에서 깨어난다. 형식의 구성과 상황 내용의 절묘한 합치는 아마도 이 소설의 독특한 매력일 것이다.

 


잠자지 못하는 여자, 타이베이의 고위 정치인인 남편의 가부장적 권위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그런 남편에게 언제나 차분하고 성실한 아내임을 가장하기 위해 여자는 충분히 자고 난 몸 상태를 연기해야 했다. 자신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영화자료관의 복원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낭트 영화제에 여자는 초대된다. 여자는 자지 못한 잠을 자기위해서, 그리고 사람을 찾기 위해 함께 초대된 복원 영화에 출연했던 남자가 있는 파리로 찾아간다. 여자는 남자의 팔꿈치를 매만지며 비로소 오랜만에 잠을 이룬다. 남자의 팔꿈치는 어린 시절 침대 매트리스 광고를 위해 함께 잠들었던 여자에게 평온한 잠을 가져다주는 그런 유일한 위안의 감각 매체이다. 소설은 이렇게 두 사람의 기억을 점진적으로 쫓아나간다.

 

현재로 소환되는 기억들의 점진적 여정에 따라 여자의 불면과 그 불면의 근원인 굴종과 속박을 요구하는 세상의 왜곡된 시선들과 아이의 상실과 미완에 그쳐지도록 강요된 애도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런데 이 말 되지 못하고 묻혀있던 진실의 기억들은 남자의 기억들과 교호하며 메워지지 못했던 진실의 틈새를 완성해 나간다. 여자는 강간과 임신, 임신중절, 그리고 저열하고 파렴치한 협박과 임신, 불법 약물을 통한 강제유산, 이 과정에서 여자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고통을 옆에서 그 어떤 진실도 묻지 않고 나누어 져주었던 친구, 하지만 여자가 자신의 배우자가 되기를 기대했던 남자가 동성애자임을 알게 되었던 그 어느 날의 기억, 그리고 윌슨병으로 쓸쓸히 죽어가야만 했던 딸아이에 대한 엄마로서의 죄의식, 성년이 된 아들의 정체성을 알게 된 어느 날의 장면들이 파리의 작은 공원, 아파트 창 밖 풍경, 그리고 파리 골목의 산책길, 투르의 들판과 루아르 강변에서의 현재의 모습과 융화하며 스크래치 가득한 옛 영화 필름에서 비춰지는 화면처럼 비가 되어 내린다.

 

한편 남자는 사랑하던 연인 J의 죽음을 떨쳐내지 못한 채 그 그리움에 대한 무기력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다. 그럼에도 남자는 여자가 자신의 아파트로 찾아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리곤 여자와 함께 걷는 파리 골목의 산책에서 목적지가 되어야 하는 낭트로 향하는, 그러나 불분명한 여정을 함께한다. 이 동행의 시작에서부터 여자는 남자에게 내 아들을 돌려달라고 악을 써대기 시작한다. 뜬금없이 아들을 찾아내라고? 소설의 치밀한 장치들을 독자는 다시금 세밀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 사라진 존재의 자취와 그 경로를 찾을 수 있도록 흩뿌려진 빵 부스러기가 무엇이었던가? 이것은 남자가 찾고자하는 J의 흔적을 헤매는 경로와 더불어 여자가 찾고자하는 애도와 사랑에 대한 물음과 결합하여 진실, 그 고통과 상처들을 형성했던 주변의 것들, 알지 못했던 배려와 사랑, 알리고 싶지 않거나 알릴 수 없었던 사실들이 수면으로 떠오른다.

 

아버지의 거침없는 외도, 그 외도 현장을 엄마와 함께 목격해야만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 그리곤 버리듯 어린 자신과 지금은 정치인의 아내가 된 여배우인 소녀를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엄마, 남자의 동성애에 대해 폭언과 폭력, 저주의 욕설을 뱉어내며 홀로 죽어갔던 아버지,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소년과 함께 매트리스에서 잠자는 광고에 대해 부녀자의 도리를 지키지 않았다, 구역질나는 변태같은 짓거리를 한 여자아이라고 비난을 퍼붓던 세상을 감당해야 했고, 아이의 고통을 외면하고 아이를 이용해 돈 벌이와 명예의 대리충족만을 욕망했던 엄마와 남성의 권위에 대한 신앙적 신념을 가진 시어머니와 남편의 가부장적 태도, 그리고 그네들의 위선과 허위의식으로 인한 질식과 같은 속박, 자기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한 어미로서의 죄의식이 쓸쓸히 소환된다. 그래서일까? 소설의 장면들마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다.

 

그들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그들이 찾아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자에게 여성으로서의 굴종과 속박을 당연시 요구하는 뒤틀린 성의식이 지배하는 타이완, 동성애법이 형식적으로 인정되었지만 그네들에 대한 변하지 않는 질시의 시선들은 노출되지 않은 폭력과 살육의 의지와 다른 것이 아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세계의 양상 속에서 여자의 고통에 대한 귀 기울임과 발설되지 않는 목소리, 묵묵히 돌봄과 보호로 여자를 지켜주었던 남자의 또 다른 슬픔이 교차한다. 여기서 나는 게이미(Gay)’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여성들이 세상에 할 수 없는 심연의 목소리를 들어주며, 고통에 공감하고 보호하는 동성애 남자를 지칭하는 타이완에서 통용되는 신어인 모양이다. 여성과 성소수자들의 연대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언어로 여겨진다.

 

소설은 영상미 넘치는 현재와 기억이 수없이 반복되는 플래시백 장면들이 쌓여가며 이 세계에 맴도는 끈질긴 성적 약자의 상처와 고통을 한없이 파내려간다. 그들의 반점으로 얼룩진 기억의 테이프를 현재로 가져와 흐려진 화면에 새로운 색, 생을 지속할 수 있는 묻힌 진실의 복원을 통한 위로를 입혀낸다. 아마 이 소설은 한 편의 곰팡이 핀 두 사람의 낡은 인생을 복원함으로써 시차를 없애는 복원 기술로 그네들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깊은 탐색일 것이다. 읽어 나갈수록 선명해지는 이 세계의 음험한 악의로부터 탈주하려는 두 사람의 현재에 떠오르는 비밀의 이야기들에 끝없이 빠져들게 된다. 우리의 타자에 대한 이해와 포용의 역량은 어디쯤에 도달해 있을까? 소설은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우리네 사회와의 관계와 비판에 대한 정말 조심스러운 질의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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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2024-10-01 0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너무 매력적인 리뷰네요. 글을 정말 잘 쓰시는 것 같아요!

필리아 2024-10-01 07:29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초록비님~
비 내리는 아침입니다, 좋은 일 많은 하루 되시기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