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도 이브도 없는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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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인들이 단지 동양의 내밀함에 대한 호기심에 의거한 찬탄으로 어어진 연장선에서 이번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 ‘살인자의 건강법’에서 시작된 노통브의 인간에 대한 회의와 악의 찬미, 그리고 궁극의 연민과 같은 보편성으로의 접근과는 달리 사뭇 서구의 위선으로 점철된 이 작품으로 지금까지 발표된 그녀의 모든 글들이 진실을 상실한 것으로 느껴지기 까지 한다.

성년기에 접어든 21살의 여성 ‘아멜리’의 마냥 신비스럽기만 했던 일본에서의 2년 남짓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속의 아멜리가 말하듯이 ‘사랑’의 이야기까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아니, 분명 사랑이 아니라 연(戀)이자 연(緣)이라고 애매한 자신 나름의 해석으로 동서의 문화적 차이라는 부존재의 언어로 피해간다. 프랑스어를 배우려는 스무살의 청년 ‘린리’를 상대로 한 최초의 만남에서 좋아하는 상대로서의 관계를 성장시킨다.

소위 남녀가 사귀는 과정에서 이국적 관습과 문화에 대한 포용력 넘치는 아멜리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연인(戀人)으로서의 성실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랑받는 기쁨을 사실의 표현으로 객관화하여 자신의 사랑은 존재치 않았음을 시종 암시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자기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여기서부터 그녀의 진정성은 내게 의심의 대상이 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이 작품은 지나치게 이기적 감성을 당연시 한다. 이는 동양과 서양의 단순한 차이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아멜리’의 행동에서는 이해와 배려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배제되어 있으며, 이를 향한 어떠한 노력도 존재치 않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자신의 자유와 자기실현에 대한 상대의 멋스런 이해와 같이 자기식 이해가 완결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 식이다.

벨기에로 어떠한 언급도 없이 일본을 떠난 후, 약혼자인 린리의 구애가 거칠게 요구되지 않은 것을“그는 졸렬하게 요구하지 않았다.”고 지극히 자기중심적 해석을 내리는 지독한 에고를 보인다.

여기에선 그 누구도 죽음에 이르는 자가 없다. 마치 강자가 약자에 선심 쓰듯‘악(惡)’이 없기에 죽음이 필요치 않았다고 아멜리는 떠벌린다.

물론 ‘린리’는 그녀도 인정하듯이 그 순수한 사랑에 악이 게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는 역겨운 악의 오만한 이기심을 아멜리로부터 본다. 그녀가 내건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떠났다는 주장은 공감하기 어렵다. 아니, 결혼은 자유의 반의어라는 황당한 위선일 뿐이다. 교묘한 언어의 장난이고 술책이기에 서구 중심의 시선으론 읽히지 않을 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배신이고 사악함이다. 그래서 노통브가 보다 자기에게 솔직하였다면 린리의 손을 통해 아멜리의 목을 조르는 기쁨을 선사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작품은 비로소 ‘아멜리 노통브’식 소설의 공평한 선택이 될 것이다.

린리 어머니에 대한 아멜리의 태도에서, 약혼의 그 절묘한 유보적 가치의 부여에서, 동양적 집단 가치에 대한 서구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갈등이 진지하지 않지만 스칠 듯 지나간다. 아멜리의 후지산에 대한 찬미와 사도섬의 내경관(內景觀)에 대한 감탄, 청명하고 신선한 도시의 공기까지 모두 자신의 감상에 대한 도취일 뿐 대상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나 경외, 동화된 감상이 아니다. 오직, 자기애(自己愛), 완벽한 개인적 자유의 가치만이 삶의 진실이듯 주절거리는 것은 위선이다. 위선은 악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그녀의 소설이 위악(僞惡)속에 진정의 선을 이야기 했다면, 이 작품은 위선(僞善)속의 악이다.

자유(自由)란 이 추상적 분방함이 타인을 손상시키고, 그 모호함은 오직 주체의 감정적 느낌에 불과한 것일 때, 상대의 관용과 희생위에 선 자신의 자유를 어떻게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인지? 2년간 충분히 사용된 연인(緣人;인연이 있었던 사람)에 불과해버린 린리의 부족한 볼테르의 언어가 빚어낸 유치찬란한 문장 “사무라이의 우애”를 빌어 정당화하는 것은 결국 극도의 이기적 자기위안에 불과한 것이다.

‘적의 화장법’, ‘황산’, ‘제비일기’에 이르는 근작(近作)들의 세련미 넘치는 인간본성에 대한 성찰이 이 한 편의 위선(僞善)투성이 연애담론으로 붕괴되는 듯하다. 그녀가 바로 악이다. 어설픈 자기연민으로 타자를 희생해서라도 자신의 초인성만 상처입지 않는다면, 그것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비열한 서구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에덴동산의 무화과를 사도의 감에 비유한 기발한 언어잔치, 이외에는 어떠한 읽을 가치도 없는 허위(虛僞)다. 진정한 동양의 아담 린리와 위선의 이브 아멜리가 있을 뿐이다. “아담도 이브도 없는”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과연 동양인들이 서구인의 이 교묘한 위선을 찾아내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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