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더링
앤 엔라이트 지음, 민승남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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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야기의 흐름에서 시간은 멋대로 역전되고, 회상과 비유가 난삽하게 연결되며, 모든 것이 화자의 의식 내에서 사실로 변조되어 있어, 그 진실을 알아차리기가 수월치 않다. 아니, 진실이란 없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수없이 다양한 장치와 기법을 통해 숨겨놓은 이야기들을 연결시키려면 한 번의 독서만으로는 무리가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두 번 아니 세 번 읽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그래서 작가가 전달하려 애쓴 그 무엇들을 남김없이 밝혀내고 싶어진다.

화자(話者)인 나,‘베로니카’자신의 기억과 상상의 모호한 경계선을 위태롭게 거니는 이야기들은 그녀의 미분화된 자의식으로 더욱 긴장되게 한다. 바로 과거와 현실의 경계를 와해시켜 그녀의 의식의 흐름을 쫒아가야 하는 독자를 정말 수고스럽게 한다. 흩어져 있는 기억들을 쥐어짜듯이 모아놓는 구성이기에 제목은 오히려 이 작품의 기법이기에 가깝다.

희미하고 비어있는 엄마,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엄마, 12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낳은 그 왕성한 번식활동, 그리곤 항상 신경증에 시달리고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존재이지 못했던 엄마로 인식하는 베로니카에게서 우울한 증오를 목격하게 된다.

이 작품의 커다란 플롯은 베로니카보다 11개월 먼저 태어난 오빠‘리엄’의 죽음에 따른 나와 가족의 삶에 대한 기억이다. 그 기억은 리엄의 장례일로부터 5개월에 걸친 가족의 삶에 대한 자의식의 잔인할 정도의 해체이다.

번식과 신경증의 엄마를 위해 할머니 에이다의 집에 옮겨진 세 아이, 리엄, 베로니카, 키티, 그리곤 할머니 에이다의 처녀시절인 1925년, 호텔에서 마주하는 너전트와 에이다의 존재치 말아야 했을 만남의 암시, 그리고 두 딸 레베카, 에밀리의 엄마인 나, 베로니카의 구조는 나를, 나의 삶을 성찰하기위한 근간이 된다.

자식의 출산이‘번식’으로 표현되는 것은 사랑과 섹스의 개념적 분리와 그 의미를 극명하게 하기위한 수단이다. 또한, 할아버지 찰스와의 짧은 기억보다는‘에이다의 집’에 주인처럼 행세하던 너전트와 에이다와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그 끈질긴 욕망에 대한 탐색을, 그리고 영원히 씻지 못할 너전트의 추악한 모습에서 세상의 악을 발견한다.

이 주요한 이야기의 구조는 이렇듯‘욕망과 증오(desire and hatred)’에 대한 탐색이다. 이는 부커상 수상 직후,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엔라이트’의 작품 의도이기도 하다. 작품의 종교적 색채는 구교(카톨릭)이지만, 베로니카의 작품 초반의 선언처럼 종교를 던져버리며, 아버지의 신앙태도와 베로니카의 식탁에서의 에피소드에서처럼 그 믿음에 회의의 눈초리를 보낸다. 또한 위선적인 성직자로서의 오빠 어니스트를 통해서도 종교의 허울을 조롱하기도 한다.

이는 카톨릭이란 종교의 그늘아래서 반복되는 무능하고 파렴치한 자신들의 탐욕스런 행위와 교차되어 그들의 오래된 종교적 갈등(신교와 구교)에 대한 냉소적 회의와 어울려 묘한 정치적 여운을 던지기도 한다.

한편 베로니카의 섹스에 대한 의식은 혼선을 빚는다. 마이클과 섹스, 남편과의 섹스, 너전트와 에이다와의 섹스, 에이다와 찰스의 섹스, 아버지와 엄마의 섹스, 이들의 섹스에서 사랑을 발견하지 못한다. “결국은 그냥 섹스에 불과한 것이다.”처럼 그저 욕망으로만 해석된다. 이러한 의식이 시종되지만, 작품의 종국에는 “다시 남편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省略”에서와 같이 “前略~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자기연민과 같은 위안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작품이 이렇듯 절대적 이념을 거부하고, 어린시절 에이다의 집에서 벌어진 리엄의 성적학대에 대한 잔상을 시발로 한 자의식적 서술, 그리고 불쑥 “나는 독자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이야기를 바꿀 수 있다.~ 생략”는 식의 메타픽션식 의식흐름은‘진실을 찾으려 했던’독자들에게 다시금 책장을 거스르게 만든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안성맞춤의 뛰어난 소설이 될듯하다. 읽을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는, 세월이 흘러도 풍화되지 않을 걸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화려한 수사와 극명하고 다양한 주제를 모두 토해 낼 수 없음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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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 인간의 잔인한 본성에 관한 에피소드 172
기류 미사오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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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건, 제도 등을 배경으로, 인신(人身)이 사물(事物)적 대상으로 취급되어온 사악한 탐욕의 문화사적 조명이라 할 수 있을까?

주술적, 종교적 권위의 유지와 같은 위선적이고 이율배반적인 미명하에 인간을 잔인하게 살육하거나, 약자로서의 여성에 가해진 성적 편견의 희생, 또한 귀족 및 가진 자와 같은 권력을 장악한 세력에 의해 자행되어온 강자들의 극악한 행동에서 인류의 본성을 목격하게 한다.

 

인간의 잔인성 이면에는 쾌락이라는 그칠 줄 모르는 욕구가 흐르고 있음을 이 저술은 역사의 편린들 속에서 하나씩 꺼내들어 인간본성을 악마적 잔혹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사람의 피로 목욕하는 공작부인, 여성의 가슴을 도려내어 피부로 가방과 의자 등 소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귀족, 산채로 화형에 처해지는 죄수들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에 열광하는 대중들과, 단두대에 목이 잘려나가는 처형장면을 훔쳐보며 섹스에 탐닉하는 귀족들의 모습에서 자괴감을 금할 수 없게 된다.

 

프랑스 혁명광장(콩코드광장)의 단두대에서 처형이 있는 날이면 영국 등 유럽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과 군중들이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단두대가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인기리에 팔리는 것과 같은 놀이, 유흥으로서의 인식은 역시 인간의 사악한 잔혹성과 쾌락의 의식이 서로 다른 본성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로서 사디즘과 마조히즘으로 대변되는 학대와 흥건한 피의 향연에 이어지는 쾌락으로서의 섹스, 나치정권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자행된 무수히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 인간에 대한 엽기적 행태 등이 열거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잔혹함 뒤에는 항상 변주된 합리주의와 권력자의 탐욕이 있다. 바로 법과 제도, 종교, 이성이란 이름으로 위장된 살육의 정당성이다. 인류의 질병으로부터의 구제를 위한 나치의 인체실험, 세수(稅收)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재산의 몰수방편으로 자행된 마녀사냥과 같은 종교의 위선, 여성귀족, 왕비, 여제(女帝)들의 성 욕구 충족을 위해 성적도구로 사용된 후의 무차별적 살인, 그리고 채찍질, 신체의 수집 등 그 역겨움의 무수한 잔혹성과 같다.

 

인간의 잔인성을 포함하는 비틀어진 탐욕의 역사편린들이 한두 쪽의 짧은 글로 190여개나 실려 있다.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는 이러한 인간본성의 심연에 도사린 이것들이 과연 우리인가? 이 저술을 보는 시각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일 듯하다. 구토를 일으키는 추악함으로만, 악마적 본성에 대한 지적 탐구로, 인간탐욕의 본질에 대한 사적증거로, 철학적 사유의 일면으로 등 다양할 것이다. 내용의 구성이나 주제의 분류가 다소 산만하여 문화사적 성찰이나 인간본성의 본격적 모색에는 부족하지만 인간의 잔혹성과 성적탐욕의 나름 집약된 자료로서의 가치까지 부인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진정 누구인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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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은 조선의 시를 쓰라 인물로 읽는 한국사 (김영사) 3
이이화 지음 / 김영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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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24인의 문인(文人), 예인(藝人)들의 내면세계를 중심으로 한 인물사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사대부와 유교라는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기득권중심의 역사가 아닌 민중(백성)의 삶을 역사의 중심에서 조명한 사관이기에 이 저작은 새롭다.

이 저술이 고려말 조선초의 대신이었으며, 명문장가로 알려진 변계량의 “철저한 사대적, 유교적 명분”에 사로잡힌 교조적 가치관의 비판에서 시작되고, 거론되는 인물 중 민족을 핍박하고, 민중의 삶을 외면하였으며, 자신의 안위에 열중했던 문예인들도 일부(3인) 소개되기도 하지만, 전편에 흐르는 역사의식은 분명 민중의 삶과 그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연민이라는 문학과 예술의 지향점에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시각은 저술자의 문학 작품을 보는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극명해진다. “작품을 이야기할 때 이를 만든 인간의 삶도 함께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 시대와 호흡하는 산물이며, 그것이 제아무리 작품성이란 순수주의자들의 시선을 들이대더라도 민중과 국가와 보편적 인간의 삶을 훼손시키는 인물들의 것일 경우에는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래서 김시습에서부터 임제, 허균, 장혼, 이상화에 이르는 백성에 대한 연민을 그치지 않았으며, 사대적이고 형식적인 유교적 권위에 저항하고, 시대의 개혁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부당한 외세에 맞선 문인들의 이 새로운 접근은 사상적, 지적 기반이 날로 취약해지기만 하며, 보편적 가치의 혼란에 휩싸인 오늘의 우리에게 역사의 시선을 어떻게 정립하여야 하는가를 시사(示唆)한다 할 수 있겠다.

한편, “수양대군이 임금의 자리를 빼앗을 때 그는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다는 서거정이지만, 민초들 깊숙이 스며있는 삶의 조명으로서, 온갖 우스개소리를 모아놓은 우리나라 최초의 골계집인 그의 ‘태평한화골계전’의 소개에서, 방외인(方外人)으로 자처하고 한마디로 세상을 등지고 살았던 김시습편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인 ‘금오신화’뿐 아니라 그의 두 권의 시집, 관서록, 관동록의 시(詩)를, 그리고 임제의 알려지지 않은 시편들,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시평론이라 할 수 있는 허균의 성수시화, 학산초담과 같이 교과서적이고 획일적인 사대부들의 충효나 음풍농월의 편협한 주제를 넘어서는 민중 문학적 소개와 성찰은 뜻 깊은 노력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아무리 고생한들 가슬 할 보람없네 / 온 논배미 다 거두어도 한 솥이 못 차누나 / 관청의 세금 갈수록 심하여서/..中略(중략).../ 남쪽으로 울력가고 북쪽으로 징병가네...”와 같은 임제의 시편인 ‘전가원(田家怨)’의 몇 구절이나, 매월당(김시습)집의 ‘고산가고’에 한 편인 “이리 같은 벼슬아치 만났으니 백성은 정말 가엾구나 / 어찌 주리고 얼어 죽는 것이 풍년이 아니기 때문이랴”에서 조선조를 내내 관통하는 우리 백성들의 삶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고 이 저술이 내내 심오한 사상적 의지만을 전개하는 그러한 구성이거나 내용은 아니다.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의 詩(시), “지난해엔 귀여운 딸을 잃더니 ... 中略(중략)...가슴 메어지도다. 광릉의 흙이여” 처럼, “인간의 내면세계를 노래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시가 지닌 가치는 높다.”는 문학적 평가는 물론, “남녀의 정욕은 하늘이 준 것이요, 윤기(倫紀)의 분별은 성인의 가르침이다. 하늘이 성인을 일등으로 높였으나 나는 하늘을 따르지, 감히 성인을 따르지 않겠노라.”하는 허균의 파격적이고 이단적인 사상을 엿 보게도 하여준다.

또한, 우리에게는 김삿갓으로 더욱 잘 알려진 김병연이 “‘柳柳花花’(버들버들하다가 꼿꼿해졌다)라고 부고장을 써준 에피소드에서 삶의 유쾌한 웃음을 던져주기도 하며, 이이암(而已庵)이자 공공자(空空子)로 부른 장혼의 맑고 큰나무와 같은 삶에서 신분을 뛰어넘는 학문적 지향을 보며, 새삼스러운 자기성찰을 넌지시 제시하기도 한다.

오늘의 중국 ‘인민해방군가’의 작곡자이자 중국의 3대 현대음악가로 칭송받는 ‘정율성’ 이란 인물의 발굴이나, 임꺽정의 작가인 월북작가인 ‘홍명희’의 재평가, 조선후기 3대 화가임에도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만큼 알려지지 않았던 현재 심사정의 독립된 드러냄은 신선한 구성으로 여겨진다.

더구나 일제 식민시대에 민족시인으로서 그리고 저항시인인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누락된 6연의 소개는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중인의 신분으로서, 소외된 민중으로서, 나라를 잃은 식민지의 국민으로서 문학과 예술을 통한 우리 선조들의 한(恨)과 그 승화된 삶의 언어들, 풍자와 해학(諧謔)을 통한 정화의 역사를 읽게 된다. 그들에게서 우리는 처절한 자기성찰을 통한 진보적 지식인으로서의 삶과 얼굴을 본다.

이 한편의 인물사는 저자 이이화선생이 우리의 역사를 대중에게 가까이하고자 하는, 그래서 우리를 자각하고 지성인으로서의 튼튼한 가치를 정립하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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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 & Love - 섹스와 음식, 여자와 남자를 만나다
요코모리 리카 지음, 나지윤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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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스레를 떨 까닭이 없을 정도로 작가는 진솔하다. 자신이 경험한 세상만큼은 그대로 투영하고 싶었던듯하다. 그래서 6개의 연작으로 구성된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각기 1인칭‘나’를 통해 자기만의 고유한 색채를 타인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더욱 선명하게 그려내게 하고 있으며, 타인의 에피소드에 등장되는 1인칭 나의 대상으로서의 시선과 교차하게 하여 바로‘우리’는 어떠한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이 작품의 제목‘이트 앤드 러브(Eat & Loive)'가 상징 하는 바와 같이‘먹는 것과 욕망’을 동일선상의 인식에서 풀어나가는 작가의 일관된 역량은 능청맞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교감을 형성케 해준다. 잘나가는 일류 크리에이터를 남편으로 둔 연예스타이자 요리연구가인 40세의 중년 여성,‘에구치 미라이’가 하는 음식과 섹스가 교묘히 결합된 다음의 표현은 이 작품의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중년 여성은 싸구려 카페의 부실한 음식으론 만족하지 못한다. 고급 재료, 제대로 된 세심한 맛, 향기로운 냄새..., 게다가 그릇, 테이블 세팅, 서비스까지 모두 완벽해야 하는 것이다.”이는 하루 밤 침실로 유혹했던 남성의 부실함에 몸서리치며, 자신의 섹스에 대한 품격을 한껏 치장하여 의미를 나열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관능적 풍미, 고급스러운 미각을 지닌 성숙한 어른만이 아는 섬세하고 농밀한 맛.”, “조금 더 달고 뜨거운 느낌...”은 원초적 욕망으로서의 음식과 섹스에 대한 동일 감각으로 표현되고 있다.

36세의 160센티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키의 카피라이터‘노자키’만이 남성이다. 그리곤 40세,34세,26세,22세,20세의 여성들이 그녀들만의 욕망을 쫓는다. 20세의‘기시타 미오’를 제외하면, 모두 노자키와의 로망을 꿈꾸었던 여성들이다. 노자키란 볼품없는 인물임에도 카피라이터 유망주로서의 신인상의 수상을 계기로 형성된 여성들의 의식의 변화는 그야말로 원초적이다. 그러나 바로 이 원초성이 음식의 차별, 섹스의 차별이란 동의어로 서로 다름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본질적 아이러니이다.

이는 노자키와의 하루 밤에 진저리쳐대는 미라이의 남편과 연결되는 작품의 대단원 격인 미오의 이야기에서 먹는 것에 대한 차이가 불러온 섹스의 차이, 삶의 차이를 대비하는 에피소드에서 극명해진다.

“인간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이야. 그래서 맛없는 것을 먹으면 안 돼. 늘 맛있는 것, 잘 갖춰진 것을 먹어야 해. 지나친 듯해도 그것이 바로 좋은 인생을 만들어 가지....,반찬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온갖 희귀한 걸 먹어보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이니까. 욕망은 끝이 없는 법이지.”하는 에구치의 기성세대로서의 시선에 대해, 20세 미오의 “항상 격식만 차리는 식당에 끌려 다니고, 하루하루가 피곤해. 기껏 밥 한 끼 먹는 것 뿐 인데. 이젠 지쳤어.”하는 반란은 욕망에 대한 정말 신선하고 통쾌한 해석으로 다가온다.

한편,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엄마, 낙태와 계류유산, 일주일에 한번 나타나는 남편에 대한 생활에 대한 의존감등 세대를 불문한 여성으로서의 연민과 그네들의 불안과 고통이 커다란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여성들의 행동에서 홀연히 남성을 털어내고 분연히 홀로이 세상에 선다는 식의 페미니즘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작가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시련이 남성에게 있다는 식의 책임전가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자아를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자신을 보다 냉정하고 세심하게 바라보는 성숙하고 균형 잡힌 - 서로 지원하고 협조하는, 그러나 서로 다르고 독립적인 객체로서 인정하는 - 성(性)개념으로 진화되어있다. 별거형 부부로서 소원한 관계이지만 결국 이탈리아 여행을 속삭이며, 그 안전하고 안락함이란 평형을 찾는 것이나, 자기의 작은 아파트로 돌아와 비로소 평온을 찾고 남성의 지원을 부탁하는 미오에게서 다르지만 같은, 화해의 미덕을 보게도 된다.

이 작품의 구석구석에서 묘사되는 발칙한 섹스는 솔직함으로 오히려 담백하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다채로운 음식들의 향연과 섹스의 절묘한 조합, “음식의 진정한 맛을 가려내지 못하는 남자는 여자의 수준도 가려내지 못”한다는 유머가 독서를 내내 즐겁게 한다.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부부 서로의 원초적 욕망을 인정하면서 또 서로의 성에 충실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별거형 부부가 우리사회에 안착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작품을 읽은 여성들이‘먹는 것으로 알아보는 남성 수준의 구별법’으로까지 이 작품을 유행시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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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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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맡기 힘든 토속의 냄새가 솔솔 피어납니다. 이 짧고 당찬 동화 속에 등장하는 한가로워 보이는 백양나무와 참을 이고 가는 어린 소녀의 무채색의 모습, 된장찌개의 구수한 보글보글 거리는 소리, 도란도란 초롱불에 흔들리는 소박한 가족들의 창호 문에 비친 그림자 모두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두엄더미와 사립문, 외양간, 헛간, 뒷간, 토담, 아담한 기와지붕, 굴뚝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그리워집니다.

이 가을, 어린 시절의 잊혔던 기억이 새록새록 잠든 감성을 깨워댑니다.‘양지마을’을 깨우는 낯설고 앙칼진 기적소리가 문명이란 소리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듣기 싫고 괴롭지만, 기관사인 마을이장의 아들이 지날 칠 때 인사 올리는 소리라 이해합니다. 우린 그렇게 낯설음을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입니다.

똥친 막대기는 그래서 어미백양나무에서 꺾여 농부 박기도씨의 손에 들리게 됩니다. 기적소리에 놀란 새끼 밴 암소를 몰기 위해서였습니다. 백양나무의 어린 새끼가지의 파란만장한 여정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열두 가지의 연작 에피소드는 각기 우리네 소박한 일상의 아름다움과 교훈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미 백양나무에서 부러져 나온 ‘나’(똥친 막대기)는 어미로부터 무심코 받아왔던 영양분과 삶의 안락의 고마움을 새롭게 느낍니다. 어린 딸 재희에게 회초리를 든 엄마 최씨와 아빠 박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가족의 평온이 따뜻한 시선으로 중첩되어 보여 집니다.

나는 회초리에서 측간의 똥친 막대기가 됩니다. 그래서 항아리(똥통)에 담긴 인분을 휘 젓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나는 미래에 낙담합니다. 나뭇가지로서 살아가기 위한 물관과 채관이 오물 찌꺼기로 막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기적을, 삶의 미래에 대한 꿈을 접지 않습니다. 재희의 손에 내가 들렸습니다. 나는 마을의 악동들을 물리치는 기막힌 도구가 됩니다. 그리곤 봇도랑 개흙 속에 던져집니다. 나의 막혔던 물관의 찌꺼기가 봇도랑 물에 씻겨 나는 잠시 싱그런 물길을 빨아들이는 행운을 가집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의지로 세상에 참여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부모와 형제, 가족의 무조건적 사랑 속에서 성장합니다. 그러다 우린 어느 순간 부모에게서 분리됩니다. 정말 미미한 존재인 나는 세상, 우주를 향해 어느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회는 내 의지를 꺾어대기 일수입니다. 불어난 물에 휩쓸려 나는 정처 없이 떠내려갑니다. “햇살이 비치고 있는데 나는 갈증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내 몸속 물관에는 충분한 자양분이 축적되어있었겠지요.” 홍수에 시달리며 떠내려 온 고통스런 시간이었지만 똥친 막대기에게는 영양분과 생존의 식수가 되었습니다.

이 아름답고 소박한 한편의 이야기는“정말 위대한 발견”을 하게 합니다. “나는 비로소 내가 뿌리내리고 서 있어야 할 장소에 도달 한 것입니다.”살랑거리는 가을바람과 따사로이 내리비추는 햇살이 삶을 깨끗하고 파랗게, 그리고 신선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이 계절,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없는지, 무엇을 잃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게 합니다.

재희의 껑충한 치마와 단발머리가 귀엽습니다. 새끼 밴 암소와 뒤를 따라가는 재희의 뒷모습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사라진 우리네 농촌의 풍경이 그리워집니다. 이 투명하고 맑은 이야기와 그림들이 찌든 나를 청명하게 만들어 놓은 것만 같습니다. 책을 읽는 순간만이라도 나는 오염되지 않은 세상에 있었던 듯 상쾌합니다. 올 가을 나는 이 작은 책을 한동안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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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리나 2008-10-1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만큼 아름다운 리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