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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 인간의 잔인한 본성에 관한 에피소드 172
기류 미사오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인물, 사건, 제도 등을 배경으로, 인신(人身)이 사물(事物)적 대상으로 취급되어온 사악한 탐욕의 문화사적 조명이라 할 수 있을까?
주술적, 종교적 권위의 유지와 같은 위선적이고 이율배반적인 미명하에 인간을 잔인하게 살육하거나, 약자로서의 여성에 가해진 성적 편견의 희생, 또한 귀족 및 가진 자와 같은 권력을 장악한 세력에 의해 자행되어온 강자들의 극악한 행동에서 인류의 본성을 목격하게 한다.
인간의 잔인성 이면에는 쾌락이라는 그칠 줄 모르는 욕구가 흐르고 있음을 이 저술은 역사의 편린들 속에서 하나씩 꺼내들어 인간본성을 악마적 잔혹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사람의 피로 목욕하는 공작부인, 여성의 가슴을 도려내어 피부로 가방과 의자 등 소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귀족, 산채로 화형에 처해지는 죄수들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에 열광하는 대중들과, 단두대에 목이 잘려나가는 처형장면을 훔쳐보며 섹스에 탐닉하는 귀족들의 모습에서 자괴감을 금할 수 없게 된다.
프랑스 혁명광장(콩코드광장)의 단두대에서 처형이 있는 날이면 영국 등 유럽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과 군중들이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단두대가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인기리에 팔리는 것과 같은 놀이, 유흥으로서의 인식은 역시 인간의 사악한 잔혹성과 쾌락의 의식이 서로 다른 본성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로서 사디즘과 마조히즘으로 대변되는 학대와 흥건한 피의 향연에 이어지는 쾌락으로서의 섹스, 나치정권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자행된 무수히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 인간에 대한 엽기적 행태 등이 열거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잔혹함 뒤에는 항상 변주된 합리주의와 권력자의 탐욕이 있다. 바로 법과 제도, 종교, 이성이란 이름으로 위장된 살육의 정당성이다. 인류의 질병으로부터의 구제를 위한 나치의 인체실험, 세수(稅收)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재산의 몰수방편으로 자행된 마녀사냥과 같은 종교의 위선, 여성귀족, 왕비, 여제(女帝)들의 성 욕구 충족을 위해 성적도구로 사용된 후의 무차별적 살인, 그리고 채찍질, 신체의 수집 등 그 역겨움의 무수한 잔혹성과 같다.
인간의 잔인성을 포함하는 비틀어진 탐욕의 역사편린들이 한두 쪽의 짧은 글로 190여개나 실려 있다.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는 이러한 인간본성의 심연에 도사린 이것들이 과연 우리인가? 이 저술을 보는 시각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일 듯하다. 구토를 일으키는 추악함으로만, 악마적 본성에 대한 지적 탐구로, 인간탐욕의 본질에 대한 사적증거로, 철학적 사유의 일면으로 등 다양할 것이다. 내용의 구성이나 주제의 분류가 다소 산만하여 문화사적 성찰이나 인간본성의 본격적 모색에는 부족하지만 인간의 잔혹성과 성적탐욕의 나름 집약된 자료로서의 가치까지 부인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진정 누구인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