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 Love - 섹스와 음식, 여자와 남자를 만나다
요코모리 리카 지음, 나지윤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너스레를 떨 까닭이 없을 정도로 작가는 진솔하다. 자신이 경험한 세상만큼은 그대로 투영하고 싶었던듯하다. 그래서 6개의 연작으로 구성된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각기 1인칭‘나’를 통해 자기만의 고유한 색채를 타인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더욱 선명하게 그려내게 하고 있으며, 타인의 에피소드에 등장되는 1인칭 나의 대상으로서의 시선과 교차하게 하여 바로‘우리’는 어떠한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이 작품의 제목‘이트 앤드 러브(Eat & Loive)'가 상징 하는 바와 같이‘먹는 것과 욕망’을 동일선상의 인식에서 풀어나가는 작가의 일관된 역량은 능청맞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교감을 형성케 해준다. 잘나가는 일류 크리에이터를 남편으로 둔 연예스타이자 요리연구가인 40세의 중년 여성,‘에구치 미라이’가 하는 음식과 섹스가 교묘히 결합된 다음의 표현은 이 작품의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중년 여성은 싸구려 카페의 부실한 음식으론 만족하지 못한다. 고급 재료, 제대로 된 세심한 맛, 향기로운 냄새..., 게다가 그릇, 테이블 세팅, 서비스까지 모두 완벽해야 하는 것이다.”이는 하루 밤 침실로 유혹했던 남성의 부실함에 몸서리치며, 자신의 섹스에 대한 품격을 한껏 치장하여 의미를 나열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관능적 풍미, 고급스러운 미각을 지닌 성숙한 어른만이 아는 섬세하고 농밀한 맛.”, “조금 더 달고 뜨거운 느낌...”은 원초적 욕망으로서의 음식과 섹스에 대한 동일 감각으로 표현되고 있다.

36세의 160센티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키의 카피라이터‘노자키’만이 남성이다. 그리곤 40세,34세,26세,22세,20세의 여성들이 그녀들만의 욕망을 쫓는다. 20세의‘기시타 미오’를 제외하면, 모두 노자키와의 로망을 꿈꾸었던 여성들이다. 노자키란 볼품없는 인물임에도 카피라이터 유망주로서의 신인상의 수상을 계기로 형성된 여성들의 의식의 변화는 그야말로 원초적이다. 그러나 바로 이 원초성이 음식의 차별, 섹스의 차별이란 동의어로 서로 다름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본질적 아이러니이다.

이는 노자키와의 하루 밤에 진저리쳐대는 미라이의 남편과 연결되는 작품의 대단원 격인 미오의 이야기에서 먹는 것에 대한 차이가 불러온 섹스의 차이, 삶의 차이를 대비하는 에피소드에서 극명해진다.

“인간은 먹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이야. 그래서 맛없는 것을 먹으면 안 돼. 늘 맛있는 것, 잘 갖춰진 것을 먹어야 해. 지나친 듯해도 그것이 바로 좋은 인생을 만들어 가지....,반찬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온갖 희귀한 걸 먹어보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이니까. 욕망은 끝이 없는 법이지.”하는 에구치의 기성세대로서의 시선에 대해, 20세 미오의 “항상 격식만 차리는 식당에 끌려 다니고, 하루하루가 피곤해. 기껏 밥 한 끼 먹는 것 뿐 인데. 이젠 지쳤어.”하는 반란은 욕망에 대한 정말 신선하고 통쾌한 해석으로 다가온다.

한편,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엄마, 낙태와 계류유산, 일주일에 한번 나타나는 남편에 대한 생활에 대한 의존감등 세대를 불문한 여성으로서의 연민과 그네들의 불안과 고통이 커다란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여성들의 행동에서 홀연히 남성을 털어내고 분연히 홀로이 세상에 선다는 식의 페미니즘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작가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시련이 남성에게 있다는 식의 책임전가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자아를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자신을 보다 냉정하고 세심하게 바라보는 성숙하고 균형 잡힌 - 서로 지원하고 협조하는, 그러나 서로 다르고 독립적인 객체로서 인정하는 - 성(性)개념으로 진화되어있다. 별거형 부부로서 소원한 관계이지만 결국 이탈리아 여행을 속삭이며, 그 안전하고 안락함이란 평형을 찾는 것이나, 자기의 작은 아파트로 돌아와 비로소 평온을 찾고 남성의 지원을 부탁하는 미오에게서 다르지만 같은, 화해의 미덕을 보게도 된다.

이 작품의 구석구석에서 묘사되는 발칙한 섹스는 솔직함으로 오히려 담백하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다채로운 음식들의 향연과 섹스의 절묘한 조합, “음식의 진정한 맛을 가려내지 못하는 남자는 여자의 수준도 가려내지 못”한다는 유머가 독서를 내내 즐겁게 한다.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부부 서로의 원초적 욕망을 인정하면서 또 서로의 성에 충실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별거형 부부가 우리사회에 안착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작품을 읽은 여성들이‘먹는 것으로 알아보는 남성 수준의 구별법’으로까지 이 작품을 유행시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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