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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 나이듦의 의미와 그 위대함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홍상희.박혜영 옮김 / 책세상 / 2002년 7월
평점 :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던 그 첫 시간이 그것을 거두기 시작했다.
(Prima, quae vitam dedit, hora, carpsit)”
- 세네카, 아우구스트, 몽테뉴 ,장켈레비치, 『죽음, La mort』에서
도래하지 않은 먼 미래의 사건으로서 노쇠를 자신에게는 오지 않을 비현실로 여기는 인간적 시간 사유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으로 책의 감상을 시작하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책의 서론에 적절한 이야기가 있는데, “한 농부는 자기의 늙은 아버지를 가족과 격리시켜 놓고 조그만 여물통 속에 음식을 담아 먹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어린 아들이 나무판자를 짜 맞추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어린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건 아빠가 늙었을 때 쓸려고 만드는 거야.’”
필요한 것을 조달할 능력이 없는 노인은 언제나 짐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알고 싶지 않아도 노인에게 설정하는 조건이 바로 자기 자신의 내일의 인간의 조건임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일 것이다. 절대 자신에겐 노쇠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여기지만 그 누구도 이를 피한 인간은 없다.(젊어서 우연한 질병이나 사고에 의해 죽지 않고서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노년에 관한 에세이인 이 책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참 이상한 생각도 하셨군요!”라고 비아냥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한다. 이 말에는 대다수의 인간이 노인이 된다는 사실, 즉 삶의 이 자명한 큰 변화를 사전에 직시하는 사람이 거의 없음을 의미한다. 저런 일은 내겐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망상은 늙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만 관계있는 것으로 몰아간다.
이 책은 노년에 이른 사람들의 운명이 어떠한가를 밝히는 것을 본질적 목표로 한 에세이다. 그것은 시공을 넘어 민족지학적, 인류사적 자료들의 탐색, 문학과 사회학적 각종 지표들과 저술들, 정치경제적 국가별 정책들을 아우르며, 노년을 대하는 사회와 개인의 이해를 생물학적 현상을 넘어 문화적 현상을 포함하는 총체적 조망을 한 770여 쪽의 묵직한 노작이다.
사람들, 우리네 사회는 노년에 대해 상당히 이중적이고 모순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마치 평등성이라는 윤리를 으스대듯 모든 차원에서 젊은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한다. 그러나 막상 경제적 지위나 욕구와 감정들에 대한 판단으로 다가서면 아주 차별적인 분류로 범주화하고 이질적 종류의 인간으로 취급한다. 이 사회는 노인들이 예전에 가졌던 인간의 자질과 결점들을 고스란히 가졌음을 모른 체하며 노인이 똑같은 욕망과 감정, 요구들을 표명하면 빈축을 사게 된다. 노인이 사랑하는 것은 추하며, 성행위는 혐오스러운 것이 되고, 무엇보다 노인은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존재이기를 요구한다.
노년기란 모든 인간의 직접적인 가능성의 일부라는 것을, 자신들의 내면에 이미 미래의 노인이 살고 있음을 생각지 못하는 이러한 가치관과 관점들은 마치 자신들은 결코 늙지 않을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노년은 이렇게 단순하게 인간의 신체적 감각의 본질에서 비롯되는 문제만은 아니다.
사실 노년기에 접어드는 분명한 연령 계층이란 것이 존재치도 않는다. 시작되는 순간은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도 않을뿐더러, 시대와 장소, 사회적 계층에 따라 엄청난 차이와 변화가 있다. 잘나가는 시인, 고위 정치권력 계급, 축적된 상당한 부를 지닌 은퇴자 등 사회적 부와 권력이라는 지위를 지닌 자들은 노인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노년이란 나이가 많은 특정 개인에 대한 보편적 호칭이 아니다. 이들 계층은 무덤에 들어 갈 때까지 사회적 지위와 행세를 하며 노년을 인식하지 않은 채 죽는다. 어쩌면 장켈레비치의 말처럼 이러한 자들은 영원히 산 존재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죽음이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니 말이다.
OECD 노인 자살률 1위를 놓치지 않고 유지하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고려장이란 옛날 고대의 풍습이라며 마치 지금 한국사회는 그 같은 문명이전의 비윤리적 야만성과는 거리가 먼 사회라고 자기기만을 떨어대지만 이 지표는 사실 세계에서 가장 냉혹하고 반도덕적인 차별사회임을 쉽게 반박하기 어렵게 한다. 노인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지극히 취약하고, 생활에 필요한 것을 조달할 능력이 없는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말년의 불행이 휩쓰는 사회, 그것은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착취제제임을 강경하게 고발하는 하나의 표징이라 할 수 있다.
노동인구로 활동하여 획득한 소득의 많은 부분이 최상위 계층의 주머니에 들어감으로써 사회안전망의 자원이 되어야 했던 것들이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사적 부가 되는 자본주의의 착취적 속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윤에 종속된 문명은 인간이라는 도구도 이익을 가져오는 한에서만 관심의 대상이므로 늙은 여자와 남자는 사회적 관심에서 배제된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마치 노년을 “항해를 다 끝마치고 도착한 항구의 감미로운 즐거움을 떠벌려 예찬”하는 책들이 염치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실제 대부분의 수많은 노인들에게 사회가 부과하는 생활수준은 너무도 비참해서 ‘늙고 가난한’ 이라는 표현은 이제 중복 표현에 불과할 정도이다. 천박한 극우집단의 정치적 앞잡이가 된 자유주의 수구 경제학자는 이렇게 지껄인다. 노년의 그 많은 여가시간에 뭐라도 창의적이고 생산적 활동을 하지 않는 게으름 탓이라고 말이다. 여가시간이 많다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이 해방되는 순간 그 자유를 활용할 수단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작금의 이 사회의 정책이 소수의 특권층만을 위한 것이다보니 대다수인 인민을 위한 정책이 극성스럽게 훼손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인간은 절대로 자연 상태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노년기에도 한 개인의 지위는 그가 속한 사회가 그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노년기라 생산 활동에서 배제시키고선 그 배제됨을 비난하는 특권층의 악의가 날로 기승을 부린다. 지금도 고독과 권태 속에서 그럭저럭 목숨을 부지하며, 인수를 거절당한 불량품으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즐비하다. 이 사회의 문명적 실패의 징후이다. 아니 야만의 실체적 표지이다. 한국 사회는, 특히 현재의 정치지배 권력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이해도 없으며 오히려 노년의 비인간화를 윽박지른다. 개인은 사회가 그에게 취하는 실제적이며 관념적인 태도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이 책을 통해 우리사회의 현실을 판단할 수 있다. 무수히 노정되는 사회적 난점을 해결하기 위한 처방들과 사회가 책임져야 할 몫이라는 것이 무언지를 말이다. 이 사회의 중산층의 신화는 점점 노년을 타자화하며 자신들과는 무관한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노화란 변화의 한 유형이다. 불가항력적이며 불리한 변화, 이러한 변화를 우리는 노화라 부르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숙기 이후 뚜렷해져서 마침내는 확고부동하게 이르는 불리한 변화의 점진적 과정이다. 이를 피할 수 있는 인간은 그 어느 누구도 없다. 모두 노년기를 거치며 늙는다. 다만 노년을 맞게되는 방식이 계층에 따라 다를 뿐이다. 그 다름은 10%와 90%의 두 다름이다. 90%의 대다수 노인은 결코 황금인생이라거나 풍부한 경험을 지닌 예지의 인간이 아니다. 늙은 여자, 늙은 남자,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을 단지 비경제 활동 인구로서의 짐이라 인식한다면 우리 모든 인간의 미래 역시 비경제 활동인구가 될 것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부양할 책임을 맡음으로써 자신들의 미래를 오히려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동물적인 생존, 그것은 죽음보다 못하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노년의 인간들에게 죽음 보다 못한 인간으로 내치고 있는 중임을 각성해야 할 때이다. 노년은 다른 연령층처럼 사회적 목소리를 지니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노인일 뿐이다. 설혹 그들의 목소리가 잡음으로 들려올지라도 그것은 결코 귀 기울여 들을 주제로 인식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욱 다가가 들으려 애써야 겨우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문명인, 윤리적 인간이기를 멈추는 것이 될 것이다. 20, 40세에 자신이 노인이 된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마치 타인을 생각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타인인 그 미래의 노인을 어루만질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인간이기를 너무도 많은 부분에서 놓치고 있다. 아니 놓으려 하고 있다.
책은 노쇠에 대한 어떤 환상적 수사로 기만적 찬사를 하는 엉터리를 말하지 않는다. 단지 노년의 모습 그대로, 그 자체를 삶의 한 순간으로 어떻게 지혜롭게 관리해 나갈지 개인적 태도의 사유를 돕고 있으며, 또한 사회, 문화적 정책과 기능, 역할에 대해 보다 총합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사례와 방법론들을 제공하고 있다. 노인을 인간 조건의 영역 밖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인간의 오래된 한계를 자각하는 깨어남의 시간이 된다. 노화라는 불행의 표적이 된 삶을 어떻게 견디느냐에 대한 유익한 문화 산책의 시간도 될 것이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나이듦의 의미에 대한 이 위대한 저술을 모든 인간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