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열정이 다하고 쏜살 문고
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임슬애 옮김 / 민음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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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너희는 옷을 걱정하느냐

들판의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 살펴보아라.”

- 마태복음628절에서

 

 

1대 슬레인 백작, 인도총독과 대영제국의 총리를 지낸 아흔네 살의 헨리 라이얼프 홀랜드가 죽었다. 자식들은 미망인이 된 여든여덟 살의 레이디 슬레인을 자기만의 의지가 없는”, “한평생 자애롭고 온화했으며 전적으로 가족의 의지에 따르는 일종의 부속물로 인식한다. 큰 아들 허버트는 어머니는 잘났다고 설치는 다른 여자들이랑 다르잖아.라고 떠벌리며, 슬레인 경의 책상에 놓인 신문처럼 어머니를 치워버려야할 존재로 취급한다. 아버지가 죽자 자식들은 부모의 집인 엘름 파크 가든스의 매각처분과 어머니의 연금을 빼앗기 위해 자신들이 돌아가며 수개월씩 모신다는 데 뜻을 모은다. 어머니의 의지와는 무관하다는 듯이.

 

아버지의 장례도 치러지기 전이다. 자식들은 이러한 뜻을 어머니에게 전한다. 마치 자신들이 통보하면 그대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듯이. 그러나 레이디 슬레인은 이들의 제안을 물리친다. 런던 교외 햄스테드에 보아 둔 집에서 혼자 살 계획임을, 태어난 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운 사람들만 곁에 두고 살고 싶구나.”, 레이디 슬레인은 조용히 맏딸 캐리와 맏아들 허버트의 간섭을 저지함으로써 그들의 탐욕을 궤멸시킨다. 그리고는 자신이 지녔던 보석 모두를 허버트 내외에게 미련없이 주어버린다. 기쁨을 숨긴 허버트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자식들은 혼자 살겠다는 어머니를 비난한다. 그리곤 자신들은 어머니에게 모실 것을 제안한 효심있는 자식이라고 도덕적 기만, 알량한 양심에 만족스러워한다. 남편 헨리의 죽음은 급작스레 레이디 슬레인에게 자유를 선사해 주었다. 70여년의 세월을 남편의 야망을 보조하는 역할, 그 대가로 보호받고 무지를 강요받고, 분리되고 억압당했던 세월에서 해방된 것이다. 여든여덟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화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성의 기쁨과 권리를 포기하고 꿈을 실현하는 존재가 되기위해 변장하고 도망을 꿈꾸던 열일곱 살 데버라 리가 세상이 그녀에게 걸었던 기대를 실현하는 대단하고 즐거운 미덕으로서 홀랜드와 약혼함으로써 인생의 목적이 중지되었던 것이다. 이제 여든여덟의 레이디 슬레인은 분투하는 삶을 살기 위한 그녀 안의 여자를 벗어나 사색하는 삶, 그녀 안의 예술가, 그녀 자기 자신으로 사는 삶을 선택 한 것이다.

 

소란과 경쟁은, 한 사람의 야망이 다른 사람의 야망을 찍어 누르는 상황은 지긋지긋했다. 빈집으로 흘러드는 존재들과 하나가 되고 싶었다.”  -67

 

그녀는 다짐한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은 평온과 사색을 위해 살리라고. 분투하고 계획에 얽매이고 애써야 하는 삶은 거부하리라고.” 그런 거짓된 삶으로 낭비하지 않으리라고. 햄스테드의 집주인이자 중개인 영감 벅트라우트와의 매주 화요일의 친밀한 차 한 잔의 담소, 언덕 위로 갈색 나무와 탁 트인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지극히 아름다운 햄스테드 히스의 산책, 그녀가 원하는 잔잔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간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데버리 리이자 레이디 슬레인은 남편을 위해 살았던 삶을 결코 희생이라 말하지 않는다. 사치스러운 여성주의적 사고관을 탐닉하기에는 너무나 현명한여성이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본질과 운명 사이의 간극을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사이의 간극으로 이해하려 애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상황이 악화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당대 가부장적 권위와 남편의 사회적 지위로 인한 총독의 부인, 총리의 부인이라는 부속적 수식어의 삶이 불가피했으며, 그녀는 그러한 역할을 그 누구보다 잘 수행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그런 삶을 원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녀는 이러한 삶이 자신의 소망을 질식시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잘 살아냈으며 그 삶 또한 언제나 안락했음이 진실이었음을 인정하듯 그녀는 지난 삶을 압축된 하나의 단어로 규정짓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이 소설을 노년의 삶에 대한 이해를 위해, 죽음에 등을 기대고 삶을 곱씹을 수 있는 무색의 풍경을 읽는 시간으로 삼는데 오히려 주력했다. 그래서 나이 많은 한 여인의 시선이 자신의 유년기와 젊음의 시기를 관통하고 인생의 윤곽을 그려보는 작업에 공감하고 동참하며 읽어나갔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부유하다가 죽음이 그녀를 부드럽게 쫓아내고 문을 닫으면 그것으로 끝이기를 바랐다.”는 문장에 나는 시선을 박고 한동안 머물렀다. 이런 평온을 얻으려한다고 모두 얻는 것은 아니겠지만 무엇을 표현하든 상징밖엔 사용할 수 없는 노년의 마지막 소박한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의 실현조차 세상은 결코 그대로 놓아두질 않는 모양이다. 새로이 그녀의 늙은 친구가 되었던 수집가인 백만장자가 죽으면서 그녀, 레이디 슬레인에게 남긴 엄청난 유산으로 다시금 불가피한 소문에 휩싸인다. 이때 장녀 캐리가 형제자매들을 모아놓고 어머니가 젊었던 옛 시절을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배신, 존재하지도 않는 불륜의 추문으로 더럽히면서까지 자신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막대한 유산에 대한 욕심을 부린다. 레이디 슬레인은 상속받은 예술품을 국가에 기증하고 돈은 병원에 기부해버린다. 이때 자식들은 미쳐 날뛰고 온 세상이 들썩인다. 그러나 정작 레이디 슬레인은 무덤덤하게 통과해버린다.

 

그래, 세상은 정글같으며 결과와 업적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세상에서 재물의 유혹에 무심한 채 자기만의 뜨거운 열정으로 은밀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을 세상은 참지 못한다. 그들은 이른바 쓸모없는 존재로 간주되어 무능한, 무력한, 무지한, 게으른, 배제되어야 할 비난의 대상으로 몰아붙이기 일쑤다. 레이디 슬레인의 이름을 물려받는 증손녀 데버라는 마치 그녀의 생의 의지를 닮은 듯 예술가를 꿈꾸며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면에 돌처럼 견고한 솔직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음에도 세상은 쓸모없는 존재로 간주한다고 자신이 마주한 딜레마를 말한다. 이때 레이디 슬레인은 효모(leaven)같은 존재들이야. 세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지.”라며 그들도 쓸모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여기서 구태의연하게 진부한 도덕적 인생론을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삶의 모습이야 천태만상 아니겠는가? 다만 나는 레이디 슬레인이 바라는 제 기력으로 살 수 있는 그런 평온과 사색의 삶, 젊음의 분투가 온몸에 새겨진 소란만큼은 피한 암묵적이고 상호배려로 가득한 관계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고 싶어진다. 그리곤 언젠가 조용히 죽음이 나를 쫒아내 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년 (La Vieillesse)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의 노쇠는 언제나 사회 안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노쇠는 그 사회의 성격과 그 사람이 그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와 밀접한 종속 관계에 있다. ...노인의 조건은 결코 생물학적 여건들에만 달려있지 않다. 거기에는 문화적 요인들이 개입되어 있다....노인들에게 지정되는 자리는 어떤 것이며, 사람들이 어떤 노인상()을 품고 있는가에....”

 

레이디 슬레인의 자식들, 세상과 분투하며 자기 이익에 몰두하는 인간들은 자신의 시선이 위치한 자리를 망각하기 일쑤인 것 같다. 노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 지금의 사회가 가진 노인상은 노인을 한낱 물질, 하나의 종속적 양태로 여기는 듯하다. 그들이 하나의 동일한 인간 존재임을 잊는 한 진정한 화해는 불가능할 것이다. 끝까지 세상에 굽히지 않았던 인간, 모든 것을 누렸지만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것들이었으며, 들판의 백합이기를 바랐던 한 인간의 마지막 삶의 기록이 아름답게 흐르는 작품이다. 정말 열정이 다 할 때까지 더 기민한 정신과 깨어있는 감각으로 살아 갈 수 있기를, 그러한 마지막 시간을 꿈꾸어 보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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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7-31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타 색빌웨스트의 글이 궁금했는데... 보고 싶네요.

필리아 2023-07-31 18:22   좋아요 1 | URL
편견과 관습적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에 예민한 경계를 보인, 그리고 자신에게 진실하려 했던 생의 신념을 고수한 인물이랍니다. 소설 속 노년의 레이디 슬레인에게서 이러한 전념의 열정이 보인답니다. 생전에 10편의 시집과 12편의 장편, 무수한 단편과 산문을 남겼으며 계관시인으로 거명되었던 작가였음에도 우리에게는 고작 버지니아 울프와의 관계정도로만 소개되고 있는 것이 아쉽지요. 즐겁고 건강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그레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