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볶음에 바치다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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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행복한 기억과 슬픈 추억도 요리가 되는 책>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각각 삶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행복과 슬픔을, 기억과 추억에 대응시킨 것과 그것을 요리에 비벼 낸다는 것. 이 모든 걸 섞은게 인생이라는 의미인걸까? 아니면 삶의 행복과 슬픔모두 결국 함께보면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인걸까? 일부러 심오하게 적어서 독자들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이런 저런 생각들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임에는 분명하다. 다른 독자들도 소설을 읽고 나면 이 문구가 주는 느낌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수 있으리라.

 

*

 

이 책의 주인공은 도쿄의 어느 골목거리에서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세명의 여성이다. 코코. 마스코. 이쿠코. 일하면서 수다를 떨다가도,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 공원을 바라보며 잠이 들 때는 캔맥주도 한잔 할 줄아는 감성어린 사람들이기도 하다. 연애 이야기도 좋아하고, 멋진 총각이 오면 적당한 선의 농도 던질줄 아는 유쾌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세분의 나이는 모두 환갑을 넘기셨다는 것. 즉, 세분다 할머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아무것도 모르는게 아닌 것처럼, 나이가 많다고 해서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사람들 누구나 마음속에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아이가 한명씩 남아 있어서, 때론 유치하게 또 때로는 어울리지도 않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나이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혼나는 건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유쾌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인생의 끝이라고만 생각했던 황혼의 나이에도 이렇게 웃으면서 떠들 수 있는 것일까? 나이에 걸맞는 지위와 직업, 아내와 남편과 아들딸과 손자, 손녀들. 큰 집과 은퇴와 같은 것들이 주 관심사가 아니라, 그냥 오늘 만난 사람들과 하루종일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다가 TV도 보고 술도 한잔 하면서 잠들 수 있는 하루 말이다. 삶의 마지막에 이처럼 친구들과 함께, 또 가족들과 함께 재잘거릴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도 없을거란 생각을 해 봤다.

 

*

 

생각해보니 최근에 읽었던 또 다른 일본 소설도 50대 독신 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정적인 느낌이 너무 강해서 잔잔함 밑에 흐르는 외로움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는데, 이 책은 전혀 달랐다. 일본 소설 특유의 잔잔함과 함께 시끌벅적함도 느낄 수 있었다. 또 접해보지 못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좋았고.

 

요리와 60대 할머니들의 일상 이야기라... 따분할수도 있겠다는 예상과는 달리 꽤나 재미있었던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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낢이 사는 이야기 시즌3 1 - 참이슬처럼 여린 서른한 살의 나 낢이 사는 이야기
서나래 글.그림 / 씨네21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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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1.0

 

한동안 바빴다. 2월부터 시작해서 계속 말이다. 결산 이사회 자료 준비, 결산보고서 책자 작성, 제본, 13년도 결산 마무리 작업 등으로 2~3달이 금방 지나가더니 3월 마지막주부터는 1분기 결산 준비, 회계마감, 외부회계감사, 내부거래대사, 연결결산 자료 작성, 주석 작성 등등으로 또 3~4주가 금방 지나가버렸다. 거기에다가 지난주에 있었던 정보처리 기사 실기 시험까지... 다행이도 - 가채점 결과 - 붙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시험에 떨어졌다면 정말 억울할 뻔 했다.

 

그래도... 지난 3주간은 거의 매일 10시쯤 퇴근했던 지라, 피곤하긴 했지만... 덕분에 [결산]의 과정을 큰 틀에서 볼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았다. 투자자본내역이라든지, 내부거래대사 자료 추출, 그리고 계정 매핑 등은 한 회사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한 기업집단에서의 회계처리를 머릿속으로나마 그려볼 수 있었다. 아직, 공시와 사업보고서가 남았지만 그래도 한숨은 돌린 것 같아 다행이다. 또, 다음주에는 휴일도 많으니까 ㅎㅎㅎ

 

일상 2.0

 

최근에 본 웹툰 중에서 재미있는 걸 몇개 고르라면, <낢이 사는 이야기>는 꼭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공감되는 내용이 많을 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글자체도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특유의 나긋나긋한 유머 코드까지. 무엇보다도 과하지 않은 재미를 느낄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사실 일상을 소개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모든 사람들이 보는 웹툰이라는 공간을 통해 표현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어느 정도 자기 절제가 들어갈 수 밖에 없고, 자신의 고민거리와 맘 속 깊숙이 들어있는 생각들을 무작정 소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는 일부 사람들의 지나친 SNS 중독으로 인한 문제점들도 이슈가 되고 있기에 이래저래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일상을, 그리고 하루하루의 기록을 남기는 과정을 통해 말하기 어려운, 그리고 일시적인 감정의 흔들림으로 생긴 사소한 문제들을 웃음으로, 또 하루의 유쾌한 추억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 분명한 - 장점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말해놓고 실은 인상을 찌푸리거나 술로 푸는 것보다는, 더 유쾌한 해소법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일상 3.0

 

바쁜 일들이 다 지나고 나서 가장 좋은 점중 하나는 한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점. 일주일의 특정 시간은 항상 책을 읽고, 또 공부할 시간을 정해두는 나에게 있어서, 이 같은 여유는 정말 감사한 시간들이다. 일상이 일상처럼 느껴질 때, 그리고 집에 와서 갖는 이 느긋한 시간..

 

마지막으로 책을 읽다가 가장 공감했던 프로이트의 말(119페이지)을 소개하면서 리뷰를 마칠까 한다. 

정상인의 범주는 약간의 편집증, 약간의 강박증, 약간의 히스테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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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문장론 -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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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작가들은 자신만의 문장론과 독서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조지 오웰의 경우 <나는 왜 쓰는가>라는 책에서 글과 정치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밝히고 있고,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이라는 책에서는 지나친 다독의 해로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 파리 리뷰 인터뷰를 편집하여 출간한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는 작가들의 인생관과 작품 의식,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생각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는 움베르트 에코, 하루키, 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작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책에 대한 깊은 사유를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무엇보다도 수십년간 글을 써오면서 터득한 그들만의 독서법과 문장론은 다른 어떤 조언들보다 더 살아있고 깊이있는 것임에는 틀림 없다.

 

이번에 읽은 책은 헤르만 헤세가 쓴 글들을 모은 <헤세의 문장론>이라는 책이다. 글쓰기와 작가로서의 삶, 그리고 독서에 대한 헤세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인데, 내가 알고 있던 헤세의 이미지와는 다른 깊은 강단을 느낄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또한 책을 편역한 역자의 머리말 또한 인상깊었다. 헤세의 글속에 스며들어 있는 깊은 성찰의 의미를 알기쉽게, 또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먼저, 인상깊었던 머리말의 문구들을 몇가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ㅇ 나는 모든 글 중에서 자신의 피로 쓴 글을 가장 많이 사랑한다.

ㅇ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거저 얻지 않고 자신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ㅇ 책은 삶으로 이끌어가고 삶에 도움이 되고 유익할 때에만 하나의 가치를 지닌다. 약간의 힘, 되젊어지는 예감, 새로이 원기가 솟는 느낌이 생기지 않으면 책을 읽는 시간은 모두 낭비되는 셈이다.

ㅇ 아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보다는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ㅇ 예술작품에서 진리, 성실성, 우아함, 깔끔함이 중요하다. 자잘한 것을 우아하고 극도로 깔끔하며 세심하게 묘사할 줄 아는 것, 엄격한 훈련과 성실성으로 우아한 숙련된 기예와 유희정신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헤세는 독자들에게 책에 관한 많은 조언을 들려준다. 먼저, 기본적인 책 정리. 먼지가 없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습기가 차지 않도록 잘 정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책장을 정리할 때는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주제별로 정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 또, 책을 살 땐 가급적 실로 꿰메어진 형태의 도서를 선택하라는 조언도 재미있었다.

 

이어서 번역과 책을 선물하는 것에 대한 의미, 그리고 피서지에서의 읽을거리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우리들이 흔히 책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고민들을 하나 둘씩 다 들어주고, 또 해결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 부분이었다.

 

또 잠자리에 어울릴만한 책에 대한 언급이나, 가장 좋아하는 책을 고르라고 했을 때의 막막함에 대한 부분도 재미있었는데, 이는 다른데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이야기인데다가 나역시 공감하는 부분이였기 때문이다. 책이란 인간의 삶과 뗄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이처럼 삶에 얽힌 책에 관한 조언들은 너무나도 유익했다.

 

마지막으로 낭만주의와 철학에 대한 논의, 표현주의와 같은 문학적 사조, 한 시대를 - 진정으로 - 살아갔던 지식인으로서의 시선, 그리고 인생과 타인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은 읽고, 느낄수 있었지만 진정으로 공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허나 이 책을 통해 헤세에 대해, 그리고 책읽기라는 평범하면서도 깊이를 가진 일상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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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사는 집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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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집과 갖고 싶을 만큼 예쁜 디자인의 제품들을 소개하는 책은 언제나 봐도 즐겁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마치 좋은 일만 생길 것 같고 또 행복해질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물론 이렇게 멋진 집과 제품들의 모습은 전문적인 포토그래퍼에 의한 촬영과 포토샵 기술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것들이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가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가질 수 없는, 일상에서 자유자재로 소비하기 힘든 것들이기기 그럴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일상과 가족들의 삶과 함께 보내는 공간이기에 더 소중하고 특별하게 여겨짐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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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책은 일본의 건축가이자 작가인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지은 <건축가가 사는 집>이라는 책이다. 일본의 건축 관련 잡지에 약 4년간 연재된 글들을 모아서 출간한 것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소개된 집들은 모두 건축가 자신이 건축주가 되어 지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본인이 살 집을 본인이 직접 지었으니 분명 잘 만들었을 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건축주"의 입김을 받지 않고, 건축가의 의지가 반영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 다른 집들과는 다른 건축가만의 철학과 인생관이 담긴 특별한 집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아마도 저자는 호기심을 느꼈을 듯 싶다. 건축가들은 과연 어떤 공간에서 살기를  원했을까? 그리고 그들이 배치한 도면과 동선은 어떠할까? 마지막으로 그들은 지금 그 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건축가가 사는 집>은 이 같은 독자들의 궁금중을 도면과 사진, 그리고 멋진 글과 함께 친절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책에 소개된 모든 집들이 아름다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요소들을 꼽아보라면 모두 건물들이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전망을 갖추고 있다는 점. 넓은 집은 넓은 집대로, 좁은 집은 좁은 집대로의 멋진 경관을 감춰두고 있었다. 가령, 정원이 딸린 넓은 집은 거실의 창을 크게 만들거나, 시선의 위치에 맞게 정원수와 창을 배치함으로써, 집안에서도 멋진 경치를 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또, 그 지역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거실과 창, 보이드를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었고. 넓은 집의 중앙에 실내 정원이나 중정을 배치한 집도 멋져 보였다. 반면에 좁은 집들은 겉에서 봤을 때와는 달리 안에 있을때 쾌적함을 느낄수 있도록 잘 설계되어 있었다. 복도와 계단의 폭이나 배치를 다르게 하여, 탁 트인 느낌을 주게 했고, 보이드를 설치하여 좁은 평수라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설계되 집들이 많았다. 특히, 부지값이 비싼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효율적인 공간 활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작업실과 서재였다. 직업적 특징을 떠올려 본다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집이라는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느껴지게 도와주고 있었다. 매일 회사에 갔다와서 잠만 자고 다시 출근하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노동과 여유, 휴식과 가족이 함께 공존하는 그런 공간 말이다. 작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그 외에도 손님을 위한 공간과 가족과 나를 위한 공간의 분리. 작은 공간들을 수납공간화하여 불필요한 낭비를 최소화한 인테리어, 그리고 건축주 특유의 유머(?)까지. 가정 방문이나 견학이 아닌, <순례>라는 표현이 정말 어울리는 책이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책의 재질이 참 좋다. 만약,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일단 사고 싶어진다는 점에서(물론 난 선물로 받은 것이지만...) 합격점을 주고 싶다. 그리고, 친절한 도면들도 참 좋았다. 나중에 집을 지을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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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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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난 친구들에게 <응답하라 1994>는 전혀 낯설지 않다. 농구대잔치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와 룰라. 중간중간에 흘러나오는 익숙한 OST와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당시의 광고들과 드라마들까지. 청남방과 현진영의 티셔츠도 익숙하고, 누르스름한 사진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어렸을 적 추억들이 그렇다. 무엇보다도 50~60년대의 경제성장기와 70~80년대의 정치적 성장기를 거치면서 어느정도 안정된 90년대에 들어와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행복한(?) 세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어디 그뿐인가?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변화했던 시대였고, 대중적인 컴퓨터의 보급이 이루어진 때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기억에 남을 만큼 좋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큰 변화라는 의미이다.) 것은,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재개발, 신도시 건설과 같은 <도시의 변화>이다.

 

학년이 지나고 한해가 바뀌면, 항상 근처의 옛날 집들이 부서지고 새로운 주택이 들어서곤 했다. 유채꽃이 피어있거나, 작은 논과 텃밭이 있던 곳은 순식간에 메워지고 또다른 상가가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뒤엔 15층 짜리 아파트가, 그리고 몇년 뒤에는 20층대의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상 주차장밖에 없었던 아파트 단지 옆에는 지하 주차장을 갖춘 또다른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고, 신도시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세워지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제대로된 도로를 본 기억이 없다. 항상 지하철 공사중이었기 때문이다. 도로 바닥은 항상 철판으로 뒤덮여 있었고, 자동차와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이리저리 피해다니는 형국이었다. M마트가 생겼다고 해서 동네 사람들과 같이 장을 보러 간게 엊그제 같은데, 몇년뒤에는 부도심마다 대형 마트와 큰 규모의 쇼핑몰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남포동과 서면에 있는 영화관들이 하나씩 문을 닫더니, 이름도 괴팍한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30대가 된 요즘에는 초고층 빌딩과 화려한 오피스텔, 그리고 온갖 종류의 프랜차이즈 가게들로 거리가 뒤덮여 있다. 80년대 생들에게는 부동산의 변화는 시각적으로도,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계속해서 변화의 압박을 주고 있는 셈이다.

 

*

 

정세랑 씨가 지은 <이만큼 가까이>라는 소설은 파주라는 도시의 변화와 함께 그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여러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저자의 어릴적 경험들을 모티브로 해서 지었다고 하는데,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요즘의 감각적인 느낌만을 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과거의 향수에만 사로잡힌 누르스름한 빛깔만을 담은 것도 아니다. 군부대와 서울 근교 외곽 마을에서부터, 출판문화단지와 신도시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변화를 중심에 두고 서술하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현재의 감각과 과거의 향수가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는 점. 재미있다라는 단조로운 표현이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이러니 하지만.

 

주인공의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어렸을 적부터 조숙했던 민웅이. 통통하고 공부만 잘했지만, 커가면서 스키니해지고 멋져지면서 어느새 훈남이 된 찬겸이. 남자아이들 중에서 조숙한 친구가 민웅이라면, 여자 아이들 중에서 조숙한 편이었던 송이와 해외에서 살다온 주완과 주연. 그리고 수미와 동네 사람들. 서로 성격도 다르고, 집안의 분위기와 자라왔던 환경도 달랐고, 서로 다투었다가 다시 화해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반복되었지만, 파주라는 공간에서 지내온 공통의 시간들이 그들을 서로 묶고, 연결시켜 주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함께 시간을 지낸다는 것. 평범한 단어이지만, 그 속에는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일들을 감추고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다.

 

시끌벅적함속에서 느껴지는 생기발랄함과 종종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서, 최근에 읽었던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이 떠올랐다. <이만큼 가까이>에서는 고독감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만큼의 사건들로 넘쳐난다. 계속해서 영상을 찍어야만 한다. 반면, 후자는 몇 안되는 등장인물과 특별한 사건마저도 없다. 같은 모습의 사진만이 찍힐 뿐이다. 자세히 쳐다보지 않으면 뭐가 바뀌었는지 모를 정도로.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상실감과 세상에 관한 부조리를 느끼는 주인공과 송이, 주연의 모습에서는 내적인 고독감과 외로움이 늘씬 풍긴다. 제주로 떠나는 발걸음에는 아픈 기억을 잊으려는 도피의 마음이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그들에게는 아키코가 가진 내적의 편안함에 대해 한번 정도는 이야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또 그런데 말이다. 이런 복잡함들이, 그리고 이런 신경쓰임이 지금 우리가 너희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하나의 증명이, 표식이 되지 않을까? 심사평에서는 이 소설을 두고 지난 시절에 대한 애도의 서사라고 말하고 있다. 부끄러운 기억들도 잊어버릴 추억도 아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더없이 고마운 선물이자,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성찰의 시간이 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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