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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사라진 날 ㅣ 저학년 읽기대장
고정욱 지음, 허구 그림 / 한솔수북 / 2022년 3월
평점 :
나 역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의 승패를 보면서 '학교'가 사라질 거라는 상상을 했더랬다. 왜냐면 단편적인 지식은 더는 '암기'할 필요가 없어지고 '검색'만 하면 누구나 지식을 '소유'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대'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인공지능' 덕분에 힘든 노동을 할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단순 노동'의 경우에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24시간 쉼없이 일을 '대신'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인공지능 로봇'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만 감독하면 그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인간이 단순 암기의 고통과 고된 노동에서 해방되면 마냥 놀고 쉬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노동을 하는 '직업'을 갖는 까닭이 바로 '임금'을 얻기 위해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는 인간이 필요치 않게 되면 '노는 인간'은 임금을 한 푼도 벌 수 없게 되고, 그러면 '경제'의 주체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공장에서 물건이 만들어져도 그 물건을 살 수 있는 '소비자'도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은 몇몇 소수만 풍족하게 살아가고 나머지는 살아갈 쓸모도 없고, 의욕도 잃게 되어 끝내 버림받고 말 것이다. 더구나 멀쩡한 사람도 버림받을 지경에 이르면, 장애를 갖고 있거나, 병들거나 늙은 '사회적 약자'들은 아예 폐기처분해버릴 수도 있다. 이런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발달'을 멈추거나 늦추자는 주장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책에서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학교'가 사라지고, 배움을 잊은 사람들이 오직 '인공지능의 명령'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초등 저학년을 위한 어린이책이므로 그보다는 조금 덜 심오하게 '학교가 사라져서'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지만, '학교'가 사라지고 난 뒤의 슬픈 현실을 조금이나마 미리 엿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왜냐면 학교를 대신해서 집에서 '인공지능이 짜준 스케쥴' 대로만 따라야 하는 일상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공지능의 첫번째 의무'는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인 까닭에 집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막으며 '현관문'을 잠궈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공지능'은 인간을 위한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활동'조차 감시하고 짜여진 계획표대로만 움직여야 하는 끔찍한 감옥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런 갑갑하고 끔찍한 곳에서 아이들은 하나둘 탈출해서 옛날 학교가 있던 자리의 '지하창고'로 모이게 된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학교가 필요없는 곳이란 '판단'을 내리게 되자 인공지능은 '학교'를 철거하고 그 위에 '공장'을 만들어서 어른들의 직장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들도 즐겁진 않다. 그 공장에서도 '인공지능의 감시(?)'는 물 샐 틈도 없이 철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하창고에 '또 다른 교실'을 만들어서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학교를 만들자 아이들은 좋아했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은 하나둘 사라지는 아이들이 늘어나자 '아이들이 모여있을 만한 곳'을 찾아냈고, 그곳에 경찰을 투입해서 어린이들을 체포하기에 이른다. 또다시 '감옥'으로 되돌아오게 된 아이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깐따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깐따야'는 누규?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책이 사라지고, 학교가 사라지면 아이들은 왜 즐거워하는 걸까? 작가 고정욱은 책도 좋아하고, 학교도 좋아하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사라져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는 이야기를 전개했다. 그렇지만 현실의 어린이들도 그럴까? 십중팔구 아닐 것이다. 어른들이 책과 학교가 소중하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그것들의 진정한 즐거움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른들도 책을 안 읽고, 학교 가기 싫어한다. 그런데도 어린이들에겐 그렇게나 싫을 것을 '강요'하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니 어린이들에게 '왜' 책읽기가 즐거운 일이고, 학교에 가서 '어떻게' 해야 재미난 곳인지 제대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책과 학교'는 모르는 것을 알고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니 몰랐던 것을 '알아내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면 된다. 그런데 그런 '즐거움'을 느끼기도 전에 가르쳐준 것을 무조건 '암기'시키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을 치루고 평가를 내린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고, 상을 주고 벌을 내린다. 옛날처럼 모른다고 때리진 않지만 안다고 상을 줘도 그 '즐거움'이 오래가지 않는 것이 문제다. 또한 '배운 것'은 적절하게 써먹어야 배움의 즐거움이 새록새록 솟아날텐데, 써먹기는커녕 외우고, 또 외우고, 또또 외우고, 장장 12년 동안 외우기만 시켜놓고 '수능(사고력)시험'을 치르고, '취직시험'을 또 치른다. 그렇게 어렵사리 회사에 취직을 하면, 그동안 배운 것은 써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고서는 또다시 새롭게 배워야 한다. 당췌 왜 외웠는지도 모를 지식만 잔뜩 머리에 남을 뿐이다. 이러니 '책과 학교'가 재미나 즐거움이 가득할리 없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좀 나아질까? 우선, 단순암기 평가는 무의미하므로 '기존의 지식'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창의성', 이것과 저것을 어떻게 해서 뭐라도 만들어내는 '융합성'을 평가의 새로운 잣대로 삼아야 하겠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능력'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기초지식'을 배우는 학교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적어도 '초등학교'까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교육현장의 모습은 많이 바뀔지라도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지식'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생활하는 '학교'는 분명히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학교에는 기본적으로 '책'을 교과서로 삼을 것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