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살인자의 쇼핑몰 - 강지영 장편소설 새소설 5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y Review MDCCLXVI / 자음과모음 39번째 리뷰] 범죄와 폭력을 예술적으로 그린 작품을 흔히 '느와르(noir)'라고 부른다. 검다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인데, 1950년대 헐리우드 영화가 '암흑가'를 배경으로 어둡고 우울한 느낌으로 표현한 것을 비꼬는 의미로 쓰던 용어였다. 하지만 20년 뒤에 홍콩영화가 액션을 가미해서 '홍콩 느와르'를 선보이며 '킬러들의 사생활'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영화나 소설을 '느와르'라고 부르곤 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느와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장군의 아들>를 비롯해서 코믹 영화 <두사부일체>, <조폭마누라> 같은 장르가 극장가를 점령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한국 느와르'는 총칼이 난무하기보다 '맨주먹'으로 승부를 내는 색다른 맛을 선보이기도 했다. 허나 2000년대가 넘어서면서 우리 영화도 액션이 화려해지며 총칼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범죄도시>, <아수라> 같은 영화는 피가 난무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등 점점 잔혹한 장면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이는 드라마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여성작가가 쓴 <살인자의 쇼핑몰>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스토리도 배경이 한국이라는 점만 빼면 그다지 색다른 면모는 없다. 살인자나 킬러가 등장했고,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었다. 이런 '느와르 장르'가 돋보이기 위해선 '살인자'가 저지른 살인에 정당성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가 흥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색다를까?

  이야기는 시작부터 사람이 죽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아빠와 엄마가 죽고 느닷없이 고아가 된 '정지안'이란 소녀가 등장한다. 이 소녀에겐 삼촌이 유일한 혈육으로 남았는데 묘사된 꼬라지가 영락없는 '백수'다. 그렇게 백수 삼촌과 소녀는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살아간다. 그런데 이 삼촌이란 사람이 아주 능력이 없지는 않는 모양이다. 소녀가 굶어죽지 않을 만큼 생활비를 마련해 오고, 대학등록금에 서울 자취방까지 때가 되면 착착 준비해서 부족한 것이 없게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넉넉하지도 않게 딱 필요한 만큼 말이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소녀는 누가 보더라도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너무 평범하다는 것이다. 살면서 크고 작은 '트러블'은 있기 마련이고, 인생의 걸림돌이 되는 사람을 만나 '맘고생'을 하는 일도 있을 법 한데, 정지안의 주변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아니 그런 일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며칠 지나고 나면 그런 사람들이 정지안의 주변에서 말끔하게(?)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 이상하다면 이상한 점이었다. 그런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삼촌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된다.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니 '신원 확인'을 해달라면서 시체안치소까지 방문해달라는 경찰의 연락까지 받았다. 이제 정지안이 믿고 의지할 가족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된 것이다.

  능력이 그리 많지 않아 보였던 삼촌은 외모도 그저 그랬다. 어릴 적부터 심한 노안으로 중학생때 이미 '30대 밑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탈모도 일찍 시작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머리'가 될 정도였단다. 노안에, 대머리에, 덩치까지 한 덩어리한 삼촘이 난데없이 '자살'을 했다고 하니 온통 의심스러움 투성이였다. 그래도 시신을 확인하니 분명 자신의 삼촌이 맞았다. 정지안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서둘러 장례식을 치뤘고, 시신을 화장을 해서 납골함을 들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삼촌이 운영하던 '쇼핑몰 창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지안은 삼촌의 납골함을 들고 삼촌이 자주 다녔던 장소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간만에 고향방문을 해서 오랜만에 동네를 돌아다녀보니, 의외로 삼촌의 장례식에 참석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아생전에 삼촌의 도움을 받았다면서 말이다. 정지안은 이것이 의외였다. 삼촌의 생김새가 영락없는 백수에, 술담배에 쩔어서 어디 도박장에나 들락거리는 한량으로만 보였는데, 삼촌은 '은인'으로 여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정지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삼촌이 운영하던 쇼핑몰을 둘러보게 되었다. 삼촌이 자살한 장소이기도 했고, 정지안이 '상속'으로 물려받을 재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정지안은 오랜만에 만난 고교 동창생 남자도 만나게 되고, 수상쩍어 보이는 모습의 30대 여자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삼촌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백수인 줄로만 알았고, 장사도 드럽게 안 되는 쇼핑몰이라 여겼던 곳이 '킬러들에게 무기를 공급하는 암흑세계의 쇼핑몰'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정지안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바로 '살해협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하세계의 보스격이던 삼촌이 죽었으니, 삼촌이 무서워서 잠잠하던 뒷골목의 살인자와 킬러들이 정지안을 죽이고, 삼촌의 쇼핑몰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정지안은 졸지에 '암살자들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쇼핑몰은 느닷없이 '벙커'로 돌변하게 되었다. 어차피 '무기'는 많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총 한 번 쏴보지 못한 평범한 여대생 정지안이 무슨 수로 '벙커'에서 몰려드는 암살자들을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의외의 인물들이 정지안을 '보호'하기 위해 쇼핑몰로 달려왔고, 정지안을 대신해서 싸우기 시작했다. 쇼핑몰 안팎에 꼼꼼하게 부착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생생히 전달되는 가운데 의문의 인물이 속속 등장하며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화려한 액션으로 가득하게 된다. 그리고 삼촌의 자살에 관한 '감춰진 비밀'이 서서히 풀어지면서 암흑가끼리의 대결 상황이 전개되며, 삼촌이 그 암흑가 보스와 맞서 싸우는 '정의의 보스(?)'라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삼촌을 죽인 진범이 밝혀짐과 동시에 삼촌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니 '시신'까지 확인했으니 죽었어야 마땅할 삼촌이 살아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밝혀지는 거대한 음모로 인해 이야기는 점점 스케일이 커지게 된다.

  이 책의 초반부는 너무나도 지루해서 읽다가 덮을 뻔 했다. 하지만 '삼촌의 죽음'과 함께 전개되는 스토리가 점점 흥미를 돋우기 시작하더니,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몰입감'이 장난이 아닐 정도다. 더구나 킬러의 세계라는 어둠의 세계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도 '디테일'해서 마치 대한민국이 킬러들의 천국이 아닐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거기에 글로벌한 범죄집단이 대한민국을 '아시아 거점'으로 삼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나, 이를 막기 위해 수많은 범죄자들(?)을 적절히 통제해가며 '살인자들'인데도 나쁜 짓은 가급적 삼가고 착한 일을 많이 하도록 만든 인물이 '삼촌'이었다는 설정은 얼핏 '말이 안 되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설정이라, 매력적이었다.

  그럼에도 범죄는 범죄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어떤 '정당성'을 갖다 붙이더라도 범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선한 일'을 한다해도 널리 장려할 일도 아닌 것이다. 프랑스엔 '괴도 아르센 루팡'이 있고, 우리에겐 '의적'이라 불리는 홍길동과 '장길산', '임꺽정'이 있으나, 결국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죄목을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악한 짓으로 배를 불린 사람들을 골탕 먹이고, 이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며 빼앗긴 재산을 돌려받는다해도 '공명정대한 공권력'이 아닌 '사적인 복수'로 일을 해결하게 되면 더 큰 문제를 낳기 마련이다. 바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희생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지안의 엄마 아빠도 삼촌을 죽이려는 킬러에게 '인질(?)'이 되었다가 애꿎은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런데도 삼촌은 부모를 잃은 조카에게 사과를 하지도 않고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다. 또 다시 '희생자'를 만들 수는 없다는 핑계(!)로 조카에게 철저히 비밀로 감추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다 그 킬러에게 자신조차 당하게 되면서 조카를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 이런 일은 자꾸 반복된다. 삼촌을 돕던 '배달원'도 죽임을 당하고, 통신두절로 인해 복구를 하러 현장에 도착한 'A/S 기사'와 마침맞게 우연히 쇼핑몰로 택배를 배달하러 온 '우체국 직원'도 죽고 말았다. 정녕 '살인자의 쇼핑몰'은 대한민국에서 필수불가결한 '필요악'이라도 된단 말인가? 작가는 이런 것에 대한 속시원한 답변도 없이 그저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을 오로지 '흥미요소'로 삼아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글쎄, 필요악에 대한 '당위성'을 적절하게 밝히지 않으면, 독자들을 '설득'할 수도 없게 되고, 결국 독자들에게 '외면'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2권에서는 그 '당위성'이 조금이라도 밝혀지지 않을지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