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의 교양 - 내 손목에 있는 반려도구의 인문학
시노다 데쓰오 지음, 류두진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명품을 즐겨하지 않는다. 명품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몸에 두르고 있는 물건'이 값진 것보다 '나 자신'이 값진 것이 더욱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내 겉모습은 비록 못 생기고 후줄근해 보일지라도 나와 몇 마디 말을 섞어본 이들은 '나의 뛰어난 가치'에 놀라 깜짝 놀라기도 한다. 이런 나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늘 손에서 놓지 않는 한 권의 책'을 보고 유추하는 것이다. 늘 손에 들고 있는 책이 일주일 동안 서너 번씩 바뀌는 모습을 눈여겨 본다면 나의 교양이 얼마나 차고 넘치는지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어릴 적만해도 한 번에 한두 명씩은 꼭 도서관에 파묻히다시피 살아가는 '문학소년'과 '문학소녀' 들이 있곤 했다. 내가 그 당시에 이처럼 책을 파고 들었더라면 그 친구들과 일찌감치 '지음(知音)'이 되어주었을 것을 안타깝게도 나는 서른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책을 즐겨 읽기 시작했고, 뒤늦게 교양을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간이나 책을 읽기만 했더니 마흔 살 즈음에야 겨우 글을 술술 쓸 수 있게 되었다. 말인즉슨, 무엇이라도 술술 풀어낼 수 있게 되기 위해서 이토록 오랜 시간이 쌓이고 또 쌓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 <손목시계의 교양>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명품시계'를 낱낱이 분석해낸 책이다. 다시 말해, 명품이 왜 명품일 수 있는지 그 소상한 내력을 풀어내었단 말이다. 그래서 명품시계를 좋아라하는 분들이 읽으면 참 좋을 책일 수도 있겠으나 명품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독자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쏙쏙 감춰진 책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교양이 없으면 절대로 보이지 않는 고급정보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명품시계의 가치'는 비싼 값으로만 따지곤 한다. 적게는 몇 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 억에 이르는 다양한 명품의 세계를 알아볼 수 있다면 소매끝에 슬쩍 보이는 시계만으로 그 사람의 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명품'도 세월의 풍파를 직격으로 맞으면 부서지고 망가질 수 있기에 '고침(수선)'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인데, 10억 원에 상당하는 명품시계의 순정부품 가격만해도 몇 천만 원이 훌쩍 넘으며, 거기에 전문가의 '수리비'까지 청구가 되면 '유지비'만 수 억 원씩 들기 마련이라 웬만큼 부를 쌓지 못했으면 감히 손목에 두르고 외출할 용기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명품시계의 가치'가 고작 가격만으로 평가된다면 명품이랄 수 있을까? '다이얼'에 수놓인 화려한 보석과 복잡한 '무브먼트'가 정교하게 맞물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조그맣고 얇은 '케이스' 속에 감춰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수(?)들 사이에서는 짜릿한 전율까지 느낄 수 있어야 명품이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뭔소린고 하니, 값싼 전자시계와 최고급 명품시계의 차이는 단지 '겉모습'에만 있지 않다는 얘기다. 보통 유리덮개 아래로 보이는 '화려함'만으로 그 차이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대개 금속으로 이루어진 '뒷덮개'를 열어서 볼 수 있는 '복잡하지만 정교한 부품'들이 그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값싼 제품일수록 뒷덮개를 열었을 때 '단순함'을 한 눈에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명품시계'라면 확실히 다르다.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백여 개가 넘는 톱니바퀴 따위의 '부품(파츠)'들이 그 복잡함과 정교함을 자랑하며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러도 아주 근소한 오차만을 보여주어야 비로소 '명품시계'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이런 복잡한 '무브먼트'와 정교하고 정확한 '시간'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두께'도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명품시계'는 그 두꺼움조차 허용하지 않고 '최대한 얇게' 도전하고 있다. 이때 얇으면 얇을수록 슈트 안쪽에 쏘옥하고 자연스럽게 감출 수 있기에 '패션'에 민감한 명품애호가들 사이에서 더욱 각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교하고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명품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비결인 것이다.

 

  정교함에 대해서 말이 나왔으니, 손목시계에 '시각' 뿐만 아니라 '달력'까지 담아내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도 '명품의 가치'에 포함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레고리우스력'은 4년마다 '윤년'이라 2월에 하루를 보태 29일까지 표기하곤 한다. 그런데 명품시계는 그런 4년마다 찾아오는 '이벤트'까지 특별한 조작 없이도 정확히 표기한단다. 보통 '윤년'은 4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에 하루를 더해 366일로 치는데, 4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일지라도 1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평년으로 쳐서 365일로 친다. 그러나 1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라도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다시 윤년으로 치는 복잡한 셈법을 톱니바퀴에 오롯이 담아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정확히 표시하겠다는 시계장인의 열정과 수고가 담겨 있어야 비로소 '명품의 가치'가 돋보인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정확한 시각'을 나타낼 수 있는 시계가 필요하게 되었을까? 그건 시대와 나라의 사정마다 서로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대표적인 이유로는 '하늘의 변화'를 시간으로 표현하였기에 저마다 '하늘의 자손'이라 일컫던 왕실에서는 '천문의 변화' 또한 정확히 관장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테면, 해와 달이 가려지는 일식과 월식의 '정확한 예측'이 왕실의 존폐를 정할 정도로 중요시되었기에 '정확한 시계'가 필요했던 셈이다. 또 하나는 '대항해시대'를 열어야 했던 유럽의 각국에서는 망망대해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정확한 목표지점까지 항해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는데, 그때 항해에 참고했던 것이 하늘에 떠 있는 천체인 '해, 달, 별'이었다. 즉, 해와 달, 별이 떠있다면 자신이 타고 있는 배가 지구의 어디쯤을 항해하고 있는지 정확한 '위도와 경도'를 셈할 수 있어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지만, 망망대해에서 아무런 육지나 섬도 보이지 않는데, 날씨까지 흐려서 '천체'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도'는 잠시잠깐이라도 해나 별자리를 보는 것으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으나, '경도'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던 셈이다. 이때 '정확한 시간'을 알면 항구에서 출발한 지 '얼마나' 지난 것인지 셈할 수 있게 되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기에 '정교한 시계'를 서로 만들기 위해 각축을 벌였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계들이 '명품시계'의 원조격이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니 '손목시계'는 겨우 시계일 뿐이 아니라 그 안에 '우리가 한 눈에 알아보기 힘든 숨은 가치'를 품고 있게 된다. 여기에 '기술력'까지 헤아릴 수 있게 된다면 '시계에 담겨진 교양'도 한층 더 깊이 쌓을 수 있게 된다. 흔히 '방수시계'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 손목시계를 차고 수심 100미터, 200미터를 잠수하는 이들이 차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방수기능'은 왜 필요한 걸까? 그건 '정교한 부품'이 물로 인해서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뿜어낸 기술력인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명품시계 고장의 원인 1순위는 '빗물'과 '땀'이 시계안으로 스며들어서 망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목시계에는 수심 몇 백미터의 압력에도 끄떡없는 '방수기능'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방수기능'보다 '자성'에 특출한 내구성을 띤 명품이 등장하고 있단다. 왜냐면 우리가 쓰는 일상용품에 '자석'이 달린 것이 너무나 많고 '자기장'을 뿜어내는 전자기기들도 너무나 많기 때문에 '정교한 시각'을 나타내야 하는 복잡한 무브먼트가 쉬이 '자성'을 띠면서 망가지기 때문에 '명품의 가치'에 흠집을 내곤 한단다. 이렇게 '명품시계'는 망가지기도 쉬우므로 쉽게 망가지지 않는 튼튼함(?)까지 돋보여야만 하게 되었다.

 

  또한, 방수기능을 위해 '금속케이스'가 많이 쓰이는데, 대표적인 금속이 '스테인리스'다. 하지만 요즘엔 보다 튼튼함을 보완하기 위해 '텅스텐'을 쓰기도 하고, '골드'를 쓰기도 하는데, 텅스텐은 조금만 연마를 하려해도 불꽃을 튀기며 폭발하기 때문에 매끈하게 거울처럼 광을 내기 위해선 스치듯 한 번 연마한 뒤에 충분히 식혀주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또한, 순수한 골드는 너무 무르기 때문에 '다른 금속'과 섞어서 쓰곤 하는데, 여기에도 섞는 비율에 따라 '광채'가 사뭇 달라지기 때문에 '옐로골드'와 '레드골드'로 나뉘고, 또 다른 금속을 적절히 섞는 비결로 '색다른 빛깔의 골드'를 만들 수 있기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다고 한다. 물론, 그 비법은 비밀에 부치고 말이다.

 

  어떤가? 고작 손목시계에 담겨진 교양이 참으로 다채롭지 않은가. 물론 몰라도 그만, 알아도 그만인 '정보'들이다. 한편, 시계의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쓸데없는 정보'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의 참 진리는 '교양'과 맞물려 있다. 교양은 아무런 지식이나 많이 쌓는다고 높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양은 '가치'를 높일 때 비로소 드높아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교양은 구중궁궐의 담벼락만큼 높게 쌓아올린다고 빛나지 않는다. 그토록 높게 쌓아올린 담벼락을 채우고 넘쳐흐를 때 비로소 찬란하게 빛나기 때문이다. 고작 손목시계 따위가 '명품의 반열'에 오른 까닭도 마찬가지다. 그 작은 손목시계에 인류가 쌓아올린 '교양의 가치'를 담뿍 담아내고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게 만들었기에 비로소 '명품시계'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니 단순히 값비싼 물건을 명품이라 부를 게 아니라 '교양의 가치'를 높인 물건에 '명품'이란 이름을 붙여주어야 할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