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문장들 - 굳은 마음을 말랑하게 하는 시인의 말들 문장 시리즈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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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에 담긴 생각, 시의 문장들


그러니 시를 쓰는 건 몰라도 시를 읽는 것만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시라는 형식에 문학적 조예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시를 즐기기 위한 남다른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 안에 있는 오래된 유전적 본능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즐겁거나 슬플 때 노래를 부르듯이 자기 마음속에 차오르는 감정을 따라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읽으면 되는 것이다. (p.14)


소설이나 에세이는 즐겨읽는다. 하지만 시는 모르겠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갈 때마다 시집도 한 번 보고는 싶지만 너무 많아서 어떤 시를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 마음을 움직일 시를 찾는 건 너무 힘들다.

그래서 아직은 특정 시인의 시집보다는 여러 가지 시가 묶여 있는 책들을 읽게 된다. 다양한 시를 접하다 보면 더 궁금해지는 시집을 찾게 될테니까.

<시의 문장들>은 거기서 한걸음 더 쉽게 시에 다가갈 수 있는 책이었다. 시 전체가 아닌 시의 단 한 문장들. 그리고 그 문장들에 엮인 이야기들이 한페이지씩 담겨 있는 책이다. 부담없이, 특별하다는 생각하지 않고 시에 다가서기 좋은 책이다.

왼쪽 페이지는 문장, 오른쪽 페이지는 글. 이런 구성으로 되어있다. 오른쪽 페이지의 글도 길지 않아서 가볍게 들고다니며 잠시 읽기 좋은 책이라서, 이 책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기 좋을 것 같다.

108개의 문장들. 그리고 그 문장들이 이끌어낸 이야기. 그리고 더불어 궁금해지는 그 문장이 담긴 시 108편. 그 시들이 담긴 시집 108권.

물론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달빛에 퍼득이는 수면은 재빠르게 페이지를 넘긴다

여기 달 귀퉁이는 언제나 접혀 있다 (p.124, 윤의섭, '세상에 없는 책' 에서)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p.142, 이성선, '별을 보며' 에서)


매력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 문장들이다. 달, 별에 관한 문장은 언제나 내 시선을 붙잡는다.

시도 꼭 읽어보려고 한다. 올해 안에, 혹은 내년에.

그러고보니 이런 경우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꿈꾸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p.130, 오은, '1년' 에서)


이 문장의 경우, 마침 소장하고 있던 시집(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에 실린 시였기 때문에 전문을 바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시의 문장들>에서 문장 하나만 읽었을 때의 느낌과, 시 전체의 맥락 속에서의 문장을 읽었을 때 느낌이 전혀 달라져서 신기했다.

다른 문장들도 이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새로운 의미들을 발견하는 것도 또다른 시 읽기의 즐거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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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갑니다
아오야마 유미코 지음, 정지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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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이 다가올 때 먹고 싶은 것, 잘 먹고 갑니다


최근 읽은 책들을 살펴보니 '죽음'과 '고양이'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음을 깨달았다. 일부러 주제를 정해 고른 책들이 아니었는데 자연스레 그렇게 된 걸 보니 뭔가 신기했다.

<잘 먹고 갑니다> 역시 큰 틀에서는 '죽음'과 맞닿아 있는 내용이다. 한 호스피스 시설이 배경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입원한 환자들이 '요청식'을 먹을 수 있다. 그들의 몸 상태를 고려해서 만들었지만 맛없어서 먹기 힘든 병원식과는 다르다. 환자들이 스스로 먹고 싶어하는 것을 정성들여 요리해 제공하고, 그렇기 때문에 환자들이 더 행복한 마음으로 식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게 환자들의 요청식과 그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한 인터뷰, 그리고 요청식을 제공하는 시설 관련자들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다르다. 먹는다는 것은 단지 영양을 섭취하는 작업이 아니다. 또한 아무리 소박한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그 안에 마음이 담겨 있다면 본인에게는 소중한 시간이며, 그 시간의 식사는 만찬이나 다름없다. 열네 명의 말기 암 환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나는 그렇게 느껴갔다. (p.16~17)


책 속에 소개된 환자들의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밝고 명랑한 분위기였다. 그들이 '행복'하다는 게 전해져 왔다. 누군가에게 존중받는다는 것,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활기차게 만들 수 있는지 생각했다.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인지 소개된 음식들도 다 너무 맛있어 보였다. 거창한 음식도 아니다. 소박한 음식이 많았다.

환자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추억이 담긴 요청식을 가족들과 함께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다고 한다.

이렇게 요청식을 먹으면서 상태가 좋아진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고 했다.

인간의 의지가, 마음가짐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도 생각해보게 했다.


나는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죽음을 앞에 둔 말기 환자에게 호스피스로 행해지는 케어는 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표현 방법이라고 들었다. 나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라고 인식하게 되면,사람은 자신의 삶을 소중히 생각할 수 있다. 즉 호스피스는 죽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살기 위한 장소다. (p.197)


이 말이 좋았다. '호스피스는 죽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살기 위한 장소'라는 것.

그나저나 내가 만약 생의 마지막이 보이는 시간에 다다르게 된다면 무엇이 먹고 싶어질까?

아직은 확 하고 떠오르는 게 없다. 앞으로 음식과 함께 하는 특별한 순간들을 경험하고 싶어진다. 생의 마지막에 강렬하게 떠올릴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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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밑바닥에서 고양이가 가르쳐준 소중한 것
다키모리 고토 지음, 이경희 그림, 손지상 옮김 / 네오픽션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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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자꾸 눈물이 나, 슬픔의 밑바닥에서 고양이가 가르쳐준 소중한 것


책 읽는 내내 펑펑 울어버린 건 꽤 오랜만의 일이다.

어쩌면 제목을 보고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렴풋이 생각했었을지도.

<슬픔의 밑바닥에서 고양이가 가르쳐준 소중한 것>이라는 조금 긴 제목은 어쩐지 마음을 착 가라앉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4부로 구성된 책이다. 1부는 '울지 않는 고양이', 2부는 '인연의 조각', 3부는 '투명한 출발선', 4부는 '기적의 붉은 실'이라는 제목이다.

1부의 내용을 읽으며 펑펑 울다가 겨우 눈물을 닦아내고 2부를 읽다가 결국 또 펑펑 울고, 다시 수습하고 3부를 읽는데 또 눈물이 나고, 다시 가다듬고 4부를 읽는데 제일 많이 눈물이 났다.

네 편의 이야기는 모두 슬픔의 밑바닥에 빠져버렸던 사람들이 고양이와의 사건을 통해 다시 일어설 마음을 갖게 되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과정에서 엿보인 그들의 '슬픔의 밑바닥'을 보며 눈물이 났고, 이후 그 슬픔의 밑바닥에서 벗어나도록 '계기'가 되어준 부분을 읽었을 때 전해져 오는 따뜻함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1부에서 4부까지 같은 인물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마음에 있던 슬픔을 털어낼 수 있게 한 구성이 좋았다.

상처를 가졌던 사람들이 구원받는 네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까지 눈물을 쏟아내면서 마음이 깨끗히 정화되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글.


이 세상에 태어난 기적.

오늘을 사는 것도 기적.

사람은 왜 태어난 것일까.

사람은 왜 살아야만 할까.

작디작은 인간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슬픔의 밑바닥을 헤매던 우리는 고양이에게 소중한 것을 배웠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살면 우리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p.224)


계속 곱씹게 되고, 소리내어 읽어도 본다.

앞의 이야기들을 모두 읽고, 충분히 감정을 쏟아냈기 때문에 더 깊이 다가오는 글이, 길게 여운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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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늘도 울지 않고 살아낸 너에게
장재열 지음, 소윤정 그림 / 슬로래빗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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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글들, 오늘도 울지 않고 살아낸 너에게


전자책을 읽을 땐 아무래도 짧은 에세이 위주의 글을 많이 읽게 된다.

<오늘도 울지 않고 살아낸 너에게> 역시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편안하게 조금씩 읽어갈 수 있는 글들이 가득 담긴 에세이였다.

하지만 가끔은 조금 공감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이런 글들을 많이 읽어서 너무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아서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스쳐 지나간 누군가가 삶을 일으켜줄 수 있다.

삶의 길벗들은 생각하지 못한 순간,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그렇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찰나의 만남, 따뜻한 한마디의 말이 인연의 시로 엮여가는 게 어쩌면 우리의 인생인가봐. (책속에서)


그래도 책 속에서 읽었던 이 글처럼, 이 책에서 읽은 글과 이야기들이 기억 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다가 힘든일이 있게 되면 떠올라 나를 위로해줄지도 모른다.

삶의 길목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인해 위로받을 때, 맞아, 그때 그런 책도 있었는데. 그런 말도 읽었었는데. 하고 생각날지도 모른다.

골똘히 생각해보니 책에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분명 크고 작게 영향을 끼쳤다.

기억에 꽤 강렬하게 남은 이야기가 있다.

빌라의 관리인을 하던 아저씨가 크게 다쳐서 입원했다 돌아와보니 이미 그의 일자리는 없었다.

그는 욕을 하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아저씨를 다시 만났는데 행복해보였다.

알고보니, 빌라의 관리인보다 더 좋은 일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걸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있을법한' 이야기라서, '가까운' 이야기라서 더 그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강하게 다가왔다.


그래. 오늘 갑자기 쾅! 닫혀버린 문이 있듯 선물처럼 스르륵 열리는 문이 있을지도 몰라. 문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낯선 어딘가에. (책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까,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리며 고민이 되는 시간들.

다른 누군가나 처한 상황 때문에 떠밀리는 게 아니라, 자기자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실천은 참 힘들다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되도록 오래 이 생각을 놓쳐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도망'이 아닌 '길'을 가자.

땀흘리며 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야.

잊지마. 내 길을 알고 천천히 걷는 한 걸음이

두려움 속에 달리는 열 걸음보다

훨씬 크고 넓은 한 걸음이야. "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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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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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내용 스포가 조금 있으니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은 리뷰 읽지 마세요*


네 소녀 실종 사건의 비밀,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이제는 한국 추리물에 대한 선입견을 버릴 때가 온 것 같다.

'선암여고 탐정단 시리즈' 두 권에 이어, 이번에 읽은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를 읽으면서 선입견을 지우게 되었다.

한국 추리물에도 시선을 돌리게 되었으니 이제 읽고 싶은 책이 더 쌓이게 생겼다. 기분좋은 고민이지만.

작가 소개를 보니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데뷔해 '연애시대', '얼렁뚱땅 흥신소', '화이트 크리스마스', '난폭한 로맨스', '청춘시대'를 썼으며 이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가 첫 장편 소설, 소설가 데뷔 작품이라 한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의 대화라던가 전체적인 인물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느껴졌던 건 저자가 극본을 쓰던 경험이 있는 작가였기 때문이었을까, 생각했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네 명의 소녀가 한 날에 사라진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겹의 미스터리가 덧씌워져 있는 책이다.

제목을 보면 '시체'가 중심이 될 것만 같지만 사실 시체는 꽤 나중에 등장하고 오래전 일어난 '실종사건'의 비밀이 중심이 되고 있다.

비밀이 한꺼풀 한꺼풀 제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면서 나머지 비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 계속 읽게 된다.

같은 날 사라진 네 명의 소녀. 하지만 그건 단순히 '우연'이었고 네 명 각각 다 다른 사연 때문에 사라진 것이라는게 나름 반전이기도 했다.

사라진 네 명의 소녀 중 가장 중심이 되는 소녀는 종갓집 딸이었던 '유선희'다.

주인공 강무순이 발견한 '보물지도'의 보물 중에 그녀가 만든 것이 있었고, 때문에 그 목각인형의 모델이 된 인물을 찾으며 실종 사건도 함께 되짚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종갓집 딸인 동시에 아름다워서 모두의 동경의 대상이었기에 사라졌을 때의 충격이 더욱 컸던 것이다. 그녀의 비밀은 가장 마지막에 밝혀진다.

한편 초반부터 등장하는 '주마등'이라는 제목으로 이어지는 회상의 화자, '범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내가 초반에 짐작한 사람이라서 놀랐다.

추리소설을 꽤 읽은 보람이 있는 걸까나.

비밀이란 건 대체로 이와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숨겨 놓은 것은 아닌데, 눈에 띄지 않는 어떤 것들. (책속에서)


책 속에 나오는 이 글이 정말 이 책에서의 '비밀'을 꿰뚫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네 소녀 실종 사건의 비밀은 딱히 누군가 숨기려 한 게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말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대로 비밀이 되어버린 것이다. 애써 숨기려 한 게 아니었는데, 너무 상황이 맞아떨어진 나머지 다른 가능성은 생각치 못했던 것이다.

비밀들이 밝혀진 후, 네 소녀 실종 사건을 주인공이 조사할 때 그녀들의 이름을 올리는 것도 어려워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각자의 비밀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과거에 묶인 채 오랜 시간 살아가게 되었다는게 조금 씁쓸했다.

그래도 늦게나마 비밀이 풀리고, 유선희의 마음도 제대로 전해지는 마지막 부분이 더해져 여운을 길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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