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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ㅣ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평점 :
생각이 가득 뻗어나가는 감성 미스터리,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여러 가지 테마가 담겨 있는 것 같다고.
어느 요소에 집중하냐에 따라 감상도 여러 갈래로 흩어질 것이다.
그러니 읽고, 또 읽어봐도 좋겠지.
먼저 간단히 줄거리를 써볼까. 굳이 따로 요약할 필요는 없다. 책 뒷부분에서 주인공이 정리해서 말해주니까.
"내가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의 이야기야."
이 아르바이트는 최악이지.
시간 외 수당은 안 나와.
교통비도 없어.
아무렇지도 않게 이른 아침부터 불러내지.
게다가 유령 같은 '사자'를 저세상으로 보낸다는 상식밖의 일을 시켜.
무엇보다 시급이 300엔이야.
300엔이라고.
어이없는 수준을 넘어서 웃음이 날 정도지.
정말로 돼먹지 못한 아르바이트라니까.
"하지만 말이야."
그래.
하지만.
"그래도 너한테 이 아르바이트를 추천할게."
묘비처럼 우두커니 선 그에게 나는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 아르바이트는 최악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소중한 무언가도 붙잡을 수 있었다.
내 앞에서 사라져간 많은 사람들.
모두가 빛나는 희망을 주었다.
"알아주었으면 해. 이 세상에 멋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p.344~345)
주인공 사쿠라는 같은 반 친구로부터 '사신 아르바이트'를 제안받았다.
시급은 300엔 뿐이면서 시간외수당도 없고 교통비도 없는데 이른 아침부터 일하게 하는 최악의 아르바이트.
'추가시간'을 살아가는 사자를 도와줘야 한다.
찜찜함은 있었지만 돈이 필요했기에 그는 아르바이트를 승낙한다.
그런데, 돈만 벌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했던 아르바이트는 의외의 '계기'가 되어주었다.
기억.
사자에게 주어지는 '추가시간'은 일종의 IF의 세계. 주어진 시간이 끝나 사자가 사라지면, 세계는 수정된다.
사자가 끼친 모든 영향은 없던 일이 된다. 모두에게서 잊혀진다. 그들과 관련된 소중한 기억을 잊어버린다.
기억에 대한 의심. 혹시, 우리의 기억도 어딘가 비어있는 게 아닐까, 수정된 건 아닐까.
소중했던 무언가를 잊고 살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애초에 기억이라는 건 믿을 게 못된다고 한다. 자신의 관점으로 수정된다고 하니까.
"말도 안 돼. 그런."
절망하며 깨달았다. 아아, 또 실수했구나.
사람은 언제나 잃고 나서야 후회한다.
언제나 잃고 나서야 소중했음을 깨닫는다.
알고 있었는데. 행복은 반드시 망가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또 실수하고 말았다. (p.60)
생각해본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다른 미래를 맞았을까. 아니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을까.
이제는 알 수가 없다. (p.63)
후회.
등장인물들은 모두 후회를 한다. 인간이라면 끊임없이 후회하게 되는 것일까.
주인공 사쿠라는 첫번째 일을 후회로 마치게 된다.
'추가시간'을 얻은 사자들은 후회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죽기 전 간절히 원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추가시간 동안 아무리 노력한들 완벽한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없다.
그들이 죽은 후 얻은 놀라운 초능력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추가시간은 신의 선물이라 생각하기엔 가혹하다.
"추가시간은 몹시 잔혹해. 죽음이라는 운명에서는 절대 못 벗어나고, 아무리 발악한들 남의 기억에 남지도 못하지. 해소할 길 없는 미련을 조명해서 대체 무엇을 위한 인생이었는지 돌이켜보는 시간에 지나지 않아. 신은 죽은 사람에게 그렇듯 부조리한 시간을 주는 아주 매정한 존재야."
그렇지만.
몇 번이고 듣고 싶어지는 다정한 음색으로 하나모리는 말을 자아냈다.
"그렇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p.109)
그럼에도 사신 아르바이트를 제안해 같이 일하던 하나모리는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 의미가 바로 사쿠라가 마지막에 말하는 '소중한 무언가', 희망이라는 것이리라.
관계.
사자의 미련은 대부분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그건 사신인 '사쿠라'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신은 비슷한 문제를 겪는 사자를 배정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더 돕고 싶어지게 만드는 걸까. 공감이 생기도록 해서.
사쿠라는 사자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면서, 그들이 각자의 결말을 짓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바꾸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사신이 '사자'를 구원한다.
덧붙여 '사자'를 통해 사신도 구원받는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진실이 아닐까. (p.183)
불가능.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극복은 없다.
'사신'이 된 이에게 특별한 능력은 없다. 특별하다면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만큼은 수정되지 전의 일들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뿐.
그것도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모두 잊게 된다.
사자들의 에피소드도, 로맨스쪽도, 상실을 인정하며 거기서 의미를 찾아낸다는 느낌이다.
최근 읽은 일본 라이트 노벨 작품들은 이런 전개가 많았떤 것 같다.
시한부라서 헤어질 수밖에 없거나, 아예 만날 수 없는 존재를 좋아하는 것.
결국 잃어버린 후 홀로 의미를 되새기는 것.
그런 점에서 <너는 기억못하겠지만>은 더 잔혹하다. 기억조차 할 수 없으니까.
행복은 뭘까. 먼 기억 속 누군가가 물었다.
이제는 안다. 지금이 행복함을 아는 게 행복임을.
잃기 전에 깨닫는 것.
잃었더라도 행복함을 기억하는 것.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기억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분명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진실이다. (p.334~335)
존재 이유.
기억을 잃는다는 설정은 존재에 대한 생각도 하게 만들었따.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시간도 의미가 있을까?
그 시간에 존재하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이 의문에 책 속의 누군가가 답하는 이 말이 좋은 답이 되어준 것 같다.
"이제 생각이 안 나겠지만 예전에 당신에게는 소중한 사람이 있었어요. 이 이야기는 제가 사라지면 다시 투명해지겠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제 인생의 큰 의미는 거기에 있어요." (p.361)
지금은 기억해내지 못하더라도, 어느 순간만큼은 행복하게 만들 수 있었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무의식에 남겨져 있을거라는 나름의 해피엔딩이었다.
책은 잘 읽히는 편인데, 생각하게 되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흐트러진 생각을 그냥 차례로 썼다. 하나하나 더 파고들 수도 있었는데 싶어 아쉽다.
로맨스는 굳이 필요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맞는 반전들도 적절히 있었다.
무엇보다 사신 아르바이트라는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