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 - 수학을 품은 우리말 223가지
김용관 지음 / 생각의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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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 수학이 가득하다! 어느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

 

제목에 '수학사전'이라는 말이 들어간다. 수학적 용어가 난무할 것만 같다.

책 소개 내용이 없었다면 읽기를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수학 공부에 대한 부담이 없는 지금도 수학은 어려운 존재로 뇌리에 박혀 있으니까.

하지만 '일상'에 녹아든 수학 용어라고 하니, 부담감이 덜어지고 호기심이 솟았다.

<어느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첫장을 열자마자 깔끔한 편집이 눈에 띈다.

표제어는 사전이니만큼 가나다 순으로 되어 있다.

표제어를 굵은 글씨체로 한 글자씩 둥근 원 안에 넣어 눈에 확 들어오게 한다. 옆에는 작게 한자와 영어표현도 적혀있다.

바로 설명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설명 내용의 요점을 정리한 제목을 달아둔 점도 좋았다.

내용도 디자인만큼이나 좋다.

수학 관련 용어는 당연히 포함이고, 수와 관련된 표현들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흥미를 끈 것은 한눈에 수학과 관련 있다 여겨지지 않는 용어들이다.

예를 들면, '모호하다'. 모호는 불교문화권에서 아주 작은 크기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옛날 책에 그 크기의 양이 적혀 있기도 하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서 신기하기도 하다. 자주 쓰는 표현이 사실은 수와 관련된 표현이었다는 게 신기했다.

한자 표현 중에 수학과 관련된 한자가 들어간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학이 단순히 숫자 계산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점, 선, 면에 관한 문제나 역설 문제 같은 것도 수학이다.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학창시절 이후 멀어졌다고 생각했던 수학이었는데, 일상에서 매일같이 쓰고 있었다니.

어떤 분야든 파고들다 보면 의외의 매력을 발견하는 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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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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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그 후의 이야기, 우리와 당신들

 

<우리와 당신들>은 <베어타운>의 후속 이야기다.

하키가 전부인 마을 '베어타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전작 <베어타운>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그림자는 여전하고, 새로운 사건마저 일어난다.

 

당신은 한 마을이 무너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우리 마을이 그랬다. 나중에 우리는 이해 여름에 폭력사태가 베어타운을 강타했다고 얘기하겠지만 그건 거짓말이 될 것이다. 폭력의 조짐은 그전부터 있었다. 왜냐하면 서로를 증오하는 것이 워낙 쉬운 일이 되어놔서 증오가 아닌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처사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p.13)

 

<베어타운>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와 당신들>의 첫 부분도 의미심장하게 시작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살짝 보여준다. 담담한 어조로.

이 내용을 읽고 한참을 망설였다.

이 이야기 역시, 읽는 내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흔들겠구나 싶어서.

<베어타운>을 읽을 때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당신도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용감하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당신도 스스로 바라는만큼 우리와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p.14~15)

 

<베어타운>을 읽으며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독자조차도 그렇다. 그들의 입장이 아니니까, 안전한 위치에서 그들의 행동을 나무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와 당신들>에서 화자는 그 부분에 대해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도 우리와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고.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세세하게 펼쳐진다.

다수의 생각때문에 소수가 상처받는 내용들이 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서양은 개인주의라고 하던데, 이 책을 보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와 다른 존재를 배척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걸까.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만든 이를 미워한다.

'우리'와 다른 성향을 가진 이를 비난한다.

'우리'가 원하는 목표와 다른 목표를 가진 이를 나무란다.

내 편과 네 편. 우리 편이 좋은 편. 당신 편은 나쁜 편.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다.

'하키'라는 스포츠 경기와 맞물려 그 대립이 강렬하게 보인다.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쓰레기를 벗겨내고 애초에 그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들만 남기면 단순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P.616)

 

하지만 결국 하키는 단순히 스포츠일 뿐이다. 하키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에 덧씌워진 다른 생각들이 문제였던 거다.

하키는 위로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서로의 마음을 묶어내는 수단이 되기도 하니까.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어떤 것이든지 선악을 규정해둘 수 없는 것 같다.

이번에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책이다.

두꺼운만큼 아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입장이 펼쳐지는데, 그때마다 계속해서 마음에 파문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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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홍차 - 생활밀착형 홍차만화
김줄 그림, 최예선 글 / 모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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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 가지고 싶어지게 하는 만화, 오늘은 홍차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쓴 책을 읽는 것은 즐겁다.

홍차에 관한 책을 종종 읽었다.

국내 책은 주로 에세이들이 많았다. 그러다 <오늘은 홍차>를 발견했다. 부제는 '생활밀착형 홍차만화'였다.

홍차 만화라니, 어떤 내용일까 기대 가득이었다.

 

이 차를 마시면 오늘 당신의 마음속에 자라난

모든 근심과 걱정, 기대와 실망, 즐거움과 슬픔들이 조금씩 사라지게 될 거에요.

마치 한 순간의 꿈처럼. (p.30~31)

 

완전히 만족스러웠다. 책을 읽는게 마치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차분하고, 마음 편안해지는 내용.

홍차를 마실 때의 느낌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이렇게 표현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깨달았죠.

작은 것 하나가 바뀌면 다른 것들도 조금씩 바뀌어서

결국엔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게 아닐까? (p.72)

 

미스터리한 과거가 있는 듯한 마담이 운영하는 티룸은 보석같은 공간이다.

등장인물들은 그 티룸에 찾아들게 되면서 고민으로 엉망진창된 마음을 편안하게 늘어트린다.

어려움을 헤쳐나갈 마음을 얻는다.

 

차를 마시는 건 내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 같아요.

코에 닿는 향, 혀에 닿는 맛, 목을 넘어가는 물줄기를 가만가만 더듬어보면

아주 세밀한 향기와 미묘한 감촉이 느껴져요.

아, 좋다.

몸과 마음이 밀착되는 느낌이 들면서 내 마음이 말하는 게 조금씩 들리기 시작해요.

이 감각이 바로 '나'구나.

내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어져요. (p.78~79)마음에 와닿는 글이 많았다.

 

가만히 읽어본다. 위화감 하나 없다. 차를 마시며 떠올릴 법한 생각들이다.

내가 차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야기에 빠르게 빠져들 수 있기도 했다.

만화의 그림체도 차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사랑이건, 일이건 타이밍이 있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급하게 결론지어야만 할 때

사람들은 꼭 남들이 정해둔 방식대로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좋은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서 일을 완전히 망치는 건 아니에요.

타이밍을 놓친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밀크티를 마실 수 있잖아요?

천천히 해답을 찾아요.

미우 씨 마음속에 있는 단단한 심지를 믿고서. (p.111~112)

 

티룸을 찾아오는 이들의 고민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나이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하다.

그녀들은 차를 마시며, 자기 안에 이미 나와있는 답을 찾아낸다.

 

찻잔을 바라보는 시간이 참 좋아.

고운 선과 세심하게 그린 무늬... 시간이 멈춘 것 같아.

홍차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이 찻잔에 고였다가 살그머니 흘러서 내게로 전해지는 기분이랄까? 좋은 기억들, 감동 어린 이야기들, 행복한 사연들...

찻잔을 모으는건 세상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일이야. (p.190)

 

책에 나온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차를 마시는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 분위기에 머물렀던 것이, 치유의 과정이었음을.

 

외로움은 말이야. 뭘로도 채워지지 않더라.

그냥 평생 같이 가는 건가 봐.

그래서 이젠 외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견뎌내려고. (p.202)

 

차는 누군가와 수다를 떨면서 마실 수도 있지만, 혼자 마셔도 좋다.

홀로 있음을 절절히 느끼면서.

 

우리에겐 추억이 있잖아.

좋은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으니까 또 견뎌지고

남들 살아가는 얘기를 유심히 들어보면 말야,

모두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갖고 있어. 각양 각색의 찻잔과 홍차들처럼.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기쁨과 고민들을 가지고 제각각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거...

그 당연한 사실이 왠지 위로가 되더라고. (p.203)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그랬다지, 마들렌 향기에 추억을 떠올린다고.

차는 맛보다는 향을 즐기는 음료다.

여러 회사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향을 더해 새로운 홍차를 만든다.

수많은 홍차가 있는 것처럼,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그건 모두 특별한 기억들의 모음일 것이다.

차에 대한 행복한 생각들을 계속 떠오르게 만드는 책이다.

 

"차를 마시면, 우린 서로 이어져 있는 거예요."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언제를 살든... (p.263)

 

후기에서는 말했다.

그림을 맡은 저자는 원래 홍차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 만화를 그리면서 홍차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홍차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일단 이 책으로 홍차를 만나보게 된다면 분명, 좋아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단지 계기만 있다면, 홍차는 빠져들 수밖에 없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 만화는 누구에게나 강력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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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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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면 떠오르는 다양한 얘깃거리를 담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일단 제목에 확 끌린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책 읽는 것 좋아한다면 스멀스멀 눈이 갈만한 제목 아닌가.

표지도 심플한 흑백인 것이 깔끔하고.

하지만 읽어보면... 표지와 완전 다른 스타일이다. B급 감성이 담긴 만화!

역시 겉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학계의 정설입니다.

 

만화니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그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솔직히 막 우스운지는 모르겠다. 내가 B급 감성을 탑재하지 못했나보다.

무엇보다 메인 이야기의 황당함이 너무 강해서 그냥 웃음 아니고 헛웃음이 나온다랄까.

재미있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데 묘하게 끌린다.

아, 이런게 B급 감성이라는걸까.

원하는 이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는 독서모임.

첫 에피소드를 보면 그 말에 동의하기 살짝 애매하긴 하다.

독서모임 회원들은 서로를 익명으로 부른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들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결말의 정체를 보면 황당할 정도다. 나름 반전이라 나쁘진 않았다만.

 

아무래도 책 관련 내용들이 기억에 남는다.

작중 독서모임에서 다루는 주제들에 집중하고, 흥미를 느꼈다.

어려운 부분도 꽤나 있었긴 하다.

이 모임의 회원분들... 지금 읽고 있는 책이나 좋아하는 저자, 무인도에 가져갈 책들이 다 무게감이 가득가득하다고!

덕분에 한 명의 온전한 독서 중독자가 되기 위해서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책 고르는 법이라던가, 주로 읽는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의 책에 도전하는 법이라던가.

 

책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면 항상 있는 일이지만 읽고 싶은 책이 가득 쌓여버렸다.

물론 언제 읽을지는 모른다. 이번 책의 경우 더 그럴 것 같다. 소설 아닌 책들도 많아서.

그러다 읽은 책을 발견하면 어찌나 반가운지.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서 읽은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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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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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가득 뻗어나가는 감성 미스터리,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여러 가지 테마가 담겨 있는 것 같다고.

어느 요소에 집중하냐에 따라 감상도 여러 갈래로 흩어질 것이다.

그러니 읽고, 또 읽어봐도 좋겠지.

먼저 간단히 줄거리를 써볼까. 굳이 따로 요약할 필요는 없다. 책 뒷부분에서 주인공이 정리해서 말해주니까.

"내가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의 이야기야."

이 아르바이트는 최악이지.

시간 외 수당은 안 나와.

교통비도 없어.

아무렇지도 않게 이른 아침부터 불러내지.

게다가 유령 같은 '사자'를 저세상으로 보낸다는 상식밖의 일을 시켜.

무엇보다 시급이 300엔이야.

300엔이라고.

어이없는 수준을 넘어서 웃음이 날 정도지.

정말로 돼먹지 못한 아르바이트라니까.

"하지만 말이야."

그래.

하지만.

"그래도 너한테 이 아르바이트를 추천할게."

묘비처럼 우두커니 선 그에게 나는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 아르바이트는 최악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소중한 무언가도 붙잡을 수 있었다.

내 앞에서 사라져간 많은 사람들.

모두가 빛나는 희망을 주었다.

"알아주었으면 해. 이 세상에 멋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p.344~345)

주인공 사쿠라는 같은 반 친구로부터 '사신 아르바이트'를 제안받았다.

시급은 300엔 뿐이면서 시간외수당도 없고 교통비도 없는데 이른 아침부터 일하게 하는 최악의 아르바이트.

'추가시간'을 살아가는 사자를 도와줘야 한다.

찜찜함은 있었지만 돈이 필요했기에 그는 아르바이트를 승낙한다.

그런데, 돈만 벌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했던 아르바이트는 의외의 '계기'가 되어주었다.

기억.

사자에게 주어지는 '추가시간'은 일종의 IF의 세계. 주어진 시간이 끝나 사자가 사라지면, 세계는 수정된다.

사자가 끼친 모든 영향은 없던 일이 된다. 모두에게서 잊혀진다. 그들과 관련된 소중한 기억을 잊어버린다.

기억에 대한 의심. 혹시, 우리의 기억도 어딘가 비어있는 게 아닐까, 수정된 건 아닐까.

소중했던 무언가를 잊고 살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애초에 기억이라는 건 믿을 게 못된다고 한다. 자신의 관점으로 수정된다고 하니까.

"말도 안 돼. 그런."

절망하며 깨달았다. 아아, 또 실수했구나.

사람은 언제나 잃고 나서야 후회한다.

언제나 잃고 나서야 소중했음을 깨닫는다.

알고 있었는데. 행복은 반드시 망가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또 실수하고 말았다. (p.60)

생각해본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다른 미래를 맞았을까. 아니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을까.

이제는 알 수가 없다. (p.63)


후회.

등장인물들은 모두 후회를 한다. 인간이라면 끊임없이 후회하게 되는 것일까.

주인공 사쿠라는 첫번째 일을 후회로 마치게 된다.

'추가시간'을 얻은 사자들은 후회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죽기 전 간절히 원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추가시간 동안 아무리 노력한들 완벽한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없다.

그들이 죽은 후 얻은 놀라운 초능력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추가시간은 신의 선물이라 생각하기엔 가혹하다.

 

"추가시간은 몹시 잔혹해. 죽음이라는 운명에서는 절대 못 벗어나고, 아무리 발악한들 남의 기억에 남지도 못하지. 해소할 길 없는 미련을 조명해서 대체 무엇을 위한 인생이었는지 돌이켜보는 시간에 지나지 않아. 신은 죽은 사람에게 그렇듯 부조리한 시간을 주는 아주 매정한 존재야."

그렇지만.

몇 번이고 듣고 싶어지는 다정한 음색으로 하나모리는 말을 자아냈다.

"그렇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p.109) 

 

그럼에도 사신 아르바이트를 제안해 같이 일하던 하나모리는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 의미가 바로 사쿠라가 마지막에 말하는 '소중한 무언가', 희망이라는 것이리라.

 

관계.

사자의 미련은 대부분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그건 사신인 '사쿠라'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신은 비슷한 문제를 겪는 사자를 배정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더 돕고 싶어지게 만드는 걸까. 공감이 생기도록 해서.

사쿠라는 사자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면서, 그들이 각자의 결말을 짓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바꾸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사신이 '사자'를 구원한다.

덧붙여 '사자'를 통해 사신도 구원받는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진실이 아닐까. (p.183)

 

불가능.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극복은 없다.

'사신'이 된 이에게 특별한 능력은 없다. 특별하다면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만큼은 수정되지 전의 일들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뿐.

그것도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모두 잊게 된다.

사자들의 에피소드도, 로맨스쪽도, 상실을 인정하며 거기서 의미를 찾아낸다는 느낌이다.

최근 읽은 일본 라이트 노벨 작품들은 이런 전개가 많았떤 것 같다.

시한부라서 헤어질 수밖에 없거나, 아예 만날 수 없는 존재를 좋아하는 것.

결국 잃어버린 후 홀로 의미를 되새기는 것.

그런 점에서 <너는 기억못하겠지만>은 더 잔혹하다. 기억조차 할 수 없으니까.

 

행복은 뭘까. 먼 기억 속 누군가가 물었다.

이제는 안다. 지금이 행복함을 아는 게 행복임을.

잃기 전에 깨닫는 것.

잃었더라도 행복함을 기억하는 것.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기억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분명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진실이다. (p.334~335) 

 

존재 이유.

기억을 잃는다는 설정은 존재에 대한 생각도 하게 만들었따.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시간도 의미가 있을까?

그 시간에 존재하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이 의문에 책 속의 누군가가 답하는 이 말이 좋은 답이 되어준 것 같다.

 

"이제 생각이 안 나겠지만 예전에 당신에게는 소중한 사람이 있었어요. 이 이야기는 제가 사라지면 다시 투명해지겠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제 인생의 큰 의미는 거기에 있어요." (p.361)

 

지금은 기억해내지 못하더라도, 어느 순간만큼은 행복하게 만들 수 있었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무의식에 남겨져 있을거라는 나름의 해피엔딩이었다.

 

책은 잘 읽히는 편인데, 생각하게 되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흐트러진 생각을 그냥 차례로 썼다. 하나하나 더 파고들 수도 있었는데 싶어 아쉽다.

로맨스는 굳이 필요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맞는 반전들도 적절히 있었다.

무엇보다 사신 아르바이트라는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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