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센스 노벨
스티븐 리콕 지음, 허선영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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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난센스를 담은 단편집, 난센스 노벨


책소개에 따르면 이 소설은 '북미식 유머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한다. 북미식 유머는 어떨까 호기심에 읽게 되었다.

오랜만에 문화의 벽을 느꼈다. 곳곳에서 난해함과 어색함을 느꼈다. 제목대로, 『난센스 노벨』은 난센스한 소설이었다.

난센스. 국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이치에 맞지 아니하거나 평범하지 아니한 말 또는 일'이라고 한다.

책에 실린 8편의 단편 모두 난센스한 내용을 담고 있다.


1화는 보물을 독차지하기 위해 같은 배에 탄 선원들을 한 명씩 제거하는 선장과 그의 공범이 되는 항해사의 이야기이다. 요약해놓으니 평범해보이는 스릴러같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스릴러가 아니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언어유희 같은 면이 있어선지 가벼운 분위기로 흘러간다.

2화는 블랙유머 스타일의 이야기다. 주인공이 선하게 살려고 했을 때는 모두 외면하고 냉정하게 대했는데, 잔혹하게 범죄를 저지르자 관심을 받고 그를 바탕으로 성공의 단계를 밟아가게 되는 내용이다.

3화는 주인공 여인이 너무나 어리석은 것이 너무 뻔히 보이는 내용이다.

4화는 무인도에 남녀 둘만 표류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반전까지 있다.

5화는 가문간의 오래된 악연을 배경으로 하는 내용인데, 현재 일어나는 상황은 사실 그다지 낭만적이진 않다.

6화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려는 기자의 이야기이다. 단서를 다 찾아놓고서는 범인을 잡아내진 못했다.

7화는 크리스마스 배경에 딱 어울리는 타입의 이야기였다.

8화는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는데, '석면' 때문에 계속 몰입감이 떨어졌다. 석면은 몸에 해롭다는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 바람에.


언어유희, 반어법, 때로는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대놓고 부정하는 내용도 있다. 그런 난센스함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이다.

8편은 모두 난센스를 담고 있지만 각기 다른 난센스함을 보여준다. 장르와 분위기가 다르다.

이야기는 독특함이 있었지만, '유머'라고 생각하던 이미지와 거리가 있었다. 유머는 '웃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에 뭔가 애매했다. 선하지 않은 인물, 어리석은 인물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라 등장인물들에 호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북미식 유머는 비판을 가득 담은 풍자에 가까운 내용들을 다루는 게 아닌가 싶다. 냉소보다는 따뜻한 웃음을 원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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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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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에 곁들이고 싶은 독서 에세이, 다정한 매일매일


이 책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책이구나, 읽지 않았을 때부터 직감했다.

이유가 세 가지나 있었다.

하나. 작가의 소설집을 인상깊게 읽은 기억이 있다. 한국 작가의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지만, 가끔 읽고 '좋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을 읽으며 글의 분위기에 끌렸었다. 글의 분위기는 문체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이 에세이도 기대될 수밖에.

둘. 표지부터 마음에 든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화사한 색감. 복숭아 빛 같은 연한 다홍색은 책 표지에 쓰인 건 처음 본다. 그 신선한 색감이 깔끔한 디자인과 제목 글씨체, 중간에 보이는 표지 일러스트와 잘 어울렸다. 실제 책을 만졌을 때는 보들보들한 촉감까지 마음에 들었다! 표지는 책의 '이미지'를 형성해주는 가장 처음의 요소. 두근두근하고 따뜻한, 설렘을 담은 이미지를 주었다.

마지막. 소재도 좋았다. 에세이인 것도 좋았는데, 알고보니 독서 에세이였다! 책을 소개하는 책은 언제나 마음이 향한다. 거기에 빵과 함께 소개한다니, 둘의 조합을 기대했다.


『다정한 매일매일』은 '책 굽는 오븐'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책을 소개하기 위해 연재했던 짧은 원고들을 묶어낸 책이다.

하나의 이야기마다 한 종류의 빵과 한 권의 책을 연관지었다. 여기서 빵은 책 내용 속에 등장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작가의 개인적인 감상에 의해 선택된 경우이기도 하다. 빵과 책은 서로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덕분에 먹어 보고 싶은 빵도 많이 생기고, 읽고 싶은 책도 가득 생겼다.

표지에 그려진 일러스트처럼, 홍차 한 잔과 가벼운 티푸드와 함께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소설가로서 나는 언제나 서사의 매끄럽지 않은 부분, 커다란 구멍으로 남아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마음을 주는 사람이다. 소설에서도, 그리고 인생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은 그런 지점들이 아닐까? 우리는 삶과 세계를 하나의 매끄럽고 완결된 서사로 재구성하려 애써 노력하지만, 사실은 끝끝내 하나가 될 수 없는 단편적인 서사들을 성글게 엮으며 살아갈 뿐이니까. 그리고 바로 거기, 언어로 설명할 수 없고 때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도 없는, 서사와 서사 사이의 결락 지점. 그런 지점이야말로 문학적인 것의 자리일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p.89)


이 독서 에세이는 현재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가 쓴 글이어서인지, 소설가의 관점에서 바라본 감상들이 있다. 삶과 이야기의 비슷한 점에 대해 표현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소개한 책들 중에는 읽어본 책도 있고, 들어본 책도 있고, 처음 알게 된 책도 있다.

이미 알던 책이어도 『다정한 매일매일』에서 소개하는 글을 읽으며 미처 생각치 못했던 감상과 매력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다른 독서 에세이를 통해 접했던 책이 또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좋은 책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건가 싶었다.

그런 책이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 이 중 『디어 라이프』는 읽었던 책이고 다른 두 책은 언젠가 꼭 읽어봐야지 하던 책이라 이렇게 만나니 반가운 느낌이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은 이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글로 담아내야할지 모르겠어서 항상 서평 쓰는 게 힘들다.

이 책도 그렇다. 책을 읽으면서 줄곧 느꼈던 그 행복한 두근거림을 이거다, 싶게 쓸 수 없어서 아쉽다.

책은 아쉽지 않은데 내 필력이 아쉬울 따름이다.

어린 시절 나를 무섭게 만드는 것은 비현실의 세계였다. 귀신이나 지옥처럼, 누구도 명료하게 그 존재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것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너무나 명료한 것들이 더 두려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칼로 벤 자국처럼 선명한 말이나 확신에 찬 주장 같은 것들.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음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이상한 신념들. - P54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나를 어떤 단어로도 포착할 수 없으나 분명 거기에 존재하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하곤 한다. 때로는 우리를 압도하고, 송두리째 다른 사람으로 변모시키기까지 하는데도 타인에게는 결코 말로 설명할 수는 없는 감정에 대해서. - P94

사람들은 쉽게 타인의 인생을 실패나 성공으로 요약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좋은 문학 작품은 언제나, 어떤 인생에 대해서도 실패나 성공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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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책 미스터리
제프리 디버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김원희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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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스타일의 책 미스터리를 모았다! 세상의 모든 책 미스터리


매년 연말이 되면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만들어온다는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시리즈. 올해로 4년째인 이 시리즈의 신작! 『세상의 모든 책 미스터리』를 읽었다. 뉴욕에서 미스터리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주인이 매해 크리스마스마다 주제를 정해 작가들에게 원고를 부탁해 매년 만든다는 미스터리 앤솔러지 시리즈. 시리즈 첫번째 책부터 매년 출간되는 이 시리즈 책들을 재미있게 읽고 있었기에 이번 책도 기대가 한가득이었다. 게다가, 이번 책의 주제는 '책 미스터리'였으니 더욱 더!

 

책을 소재로 한 책들을 워낙 좋아해 그런 종류의 책들을 많이 읽어왔다. 추리 소설도 좋아하기 때문에 책과 미스터리를 합친 이야기도 즐겨 읽었다. 그 이야기들은 '책'이 주는 이미지가 녹아든 듯한 미스터리가 대부분이었다. 이야기에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날 것 같은 이야기. 책장에 빼곡히 글자가 적혀 있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이야기 같은 느낌.

그런데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마주할 줄이야. 소재를 활용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엔 한계란 없다는 걸 보여주듯, 신선함을 계속 느끼게 한 『세상의 모든 책 미스터리』였다.


"시간이 흐르면 책도 숨을 쉬어야 합니다. 걔네는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요. 갇힌 채로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겁니다. 딱 봐도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걔들을 읽어주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읽기는커녕 펼쳐 보지도 않았다는 걸." (p.33)


이번 책은 총 8편의 단편을 담았다.

첫번째 단편, '세상의 모든 책들'.『세상의 모든 책 미스터리』를 읽기 전까지 가졌었던 책 미스터리에 관한 이미지에 가장 부합했던 이야기다. 서점에서 책이 자꾸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범인을 찾아내는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범인의 거처 묘사가 선명한 이미지를 새긴다.

바로 이어진 두번째 단편 '모든 것은 책 속에'가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 강렬한 충격을 준다. 이 스타일 때문에, 범죄와 얽힌 '책'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이 효과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번째 단편인 '용인할 만한 희생'은 읽으면서 책 속 특정 등장인물에 대해 계속 재평가를 하게 되었고, 네번째 단편 '제3국의 프롱혼'은 배경이 주는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다섯번째 단편 '유령의 책'은 거짓말이 진실이 되어버린 아이러니, 우연의 이야기였고, 여섯번째 '죽음은 책갈피를 남긴다'는 익숙한 느낌의 추리물이었다.

일곱번째 단편 '망자들의 기나긴 소나타'는 제목이 연상시키는 음울한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 내려앉아 있었고, 마지막 '이방인을 태우다'는 누군가의 삶, 그의 인생의 선택,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역자 후기에서는 '뜻밖의 발견'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고 했는데, 이 이야기에 동의한다. 각각 반전을 품고 있었다. 단편이니만큼 이야기를 천천히 쌓아올리기보다는, 반전이 녹아든 스토리가 어울린다.

책을 제각각의 관점으로, 방법으로 아끼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애정과 집착이 만들어낸 사건들, 수수께끼들, 비극들.

역시, 책을 소재로 한 책은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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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조금씩 쓰고 버린다 -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비움의 기술
후데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좋은생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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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의 시작은 쓰기부터! 매일 조금씩 쓰고 버린다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들, 정리에 관한 책들. 관심있게 보곤 한다. 실생활엔 좀처럼 적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에 『매일 조금씩 쓰고 버린다』를 알게 되었다. 최근 TV프로그램 '신박한 정리'를 가끔 보면서 정리 의욕을 다시 살리던 중이었다. 


부제가 있다.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비움의 기술'. 그보다 눈에 띄는 건 표지 아래쪽에 있는 내용이다.

모든 '버리기'의 시작은 '쓰기'다. '쓰기'가 '사용하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그 아랫줄을 보니 '글쓰다'의 의미였다.

노트를 쓰는 것이 정리에 도움이 될까? 옅게 의문을 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생각을 구체적으로 종이에 써서 가시화하면 이제껏 의식하지 못한 것들이 보인다. (p.20)

책에서 소개하는 네 가지 노트 활용법은 '관리 노트', '스트레스 노트', '감사 노트', '일기&수첩'이다.

네 가지를 모두 쓸 필요는 없다. 자신이 필요한 것만 쓰기 시작하면 된다.

부담을 가지지 않을 것.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튼 뒤죽박죽된 생각을 글자로 쓰는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47)

이 말이 인상적이다. 뒤죽박죽인 생각을 그냥 두면 흘러가버린다. 일단 눈에 보이게 실체화하는 게 중요하다. 뒤죽박죽인 생각을 글자로 쓰다보면 어느 정도 정리되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든 쓰는 것이 마음을 한결 개운하게 해요. (p.115)

굳이 정리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쏟아내듯이 쓰는 것도 괜찮다고 책에서 말한다. 그 말대로다. 속으로 삭이지 않고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글자로 쏟아내다보면 머릿속이 비워지는 느낌이다. 전에 일기를 쓰며 생각했던 것이 떠올라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책에서 소개하는 노트를 쓰는 방법을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스트레스는 가급적 낮에 기록하자. 잠자기 전에는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하루 중 가장 기분 좋았던 일을 써야 수면에 도움이 된다. (p.127)

스트레스 노트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책을 읽으며 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적는다는 게 머릿속에 남게 되는 것이니 스트레스 받는 일을 굳이 적어야 하나? 싶었는데, 쓰는 시간대를 조절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스트레스들까지 토해내듯 종이에 쓰면서 마음 속의 잡동사니들을 털어내고 싶어진다.


만일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일 10~15분 시간을 내어 감사한 일을 10개 정도 노트에 써 보자. (p.128)

감사노트도 활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 감사한 일을 생각하는 것이 자존감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비관적인 마음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꾸기에 좋은 감사하기! 특히 감사노트를 쓸 때 감사할 일이 중복되든, 중복되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일단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모닝 페이지를 쓰는 순서는 간단하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나는 것을 노트에 3페이지 정도 자유롭게 쓴다. 이것이 전부다. 무엇을 쓰든 상관없다. 아무튼 생각난 것을 쓰면 된다. (p.145)

'모닝 페이지'도 해보고 싶어졌다. 머릿속의 잡동사니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비우고 하루를 살아간다면 쾌적한 기분으로 보내 삶의 질이 높아질 것 같다. 의외로 아침엔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잠든 사이에 꾼 꿈 생각이 나기도 하고, 오늘 할 일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고. 내용에 제한을 두지 않아서 도전해보기 좋을 것 같다.


일기를 쓸 때 '이날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꼭 정해진 규칙은 없다. 새해 첫날부터 쓸 필요도 없다. 일기는 매일 쓰지 않아도 괜찮다.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않는다. 내용도 짧든 길든 상관없다. 자신만 보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니까…….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자유롭게 쓰면 된다. (p.165)

마지막으로 나온 일기와 수첩. 최근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최근 본 책에서 일기 쓰기에 대해 말하는 걸 읽으니 일기를 꾸준히 쓰고 싶어졌다. 이 책에 나온 일기 쓰기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 읽었던 일기 쓰기에 관한 이야기와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일기 쓰기엔 정해진 규칙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것. 일기는 가장 편한 마음으로 써도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버린다'는 말은 현재 상태를 부수는 것이다. 지금의 상태를 부수지 않으면 새로운 생활도, 새로운 자신도 만들 수 없다. 인간은 늘 성장하기를 꿈꾼다. 더 나은 상태로 변화할 수 있도록 펜을 들고 종이에 기록하자. 본문에서 말했듯 규칙이나 형식은 의식하지 말자. (p.191)

책을 읽으면서 '매일 조금씩 쓰고 버리는 생활습관'이 내게 잘 맞는 정리 방법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버릴 수 있을까? 일단 시도해보자. 지금의 상태를 부수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자. 더 나은 내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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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제작자들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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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우연은 누군가가 만들어냈다, 우연 제작자들


늘 그렇듯 여기서도 타이밍이 모든 것을 좌우했다. (p.12)


요아브 블룸의 『우연 제작자들』은 우연을 만드는 '우연 제작자들'의 이야기다. 이 소재에 흥미가 생겨 읽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임무를 받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우연을 제작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 상세하게 조사하고 파악해 움직인다.

우연 제작자들이 우연을 제작하는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앞부분이 기대했던 내용에 가까웠고, 뒤로 갈수록 우연 제작자들 사이의 교류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 종점은 로맨스였다. 그 전체적인 흐름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은 우연으로 가득하다. 그중 압도적 다수는 그야말로 우연이다 - 다른 일도 일어나는 바로 그 시간에, 단순히 확률에 따라 일어나는 일, 좋은 타이밍이라는 맥락 안에서 벌어지는 놀랍도록 일상적인 일 말이다. 그리고 맥락이 그런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며, 의미가 그 사건을 중요하게 만든다. (p.92~93)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의 갈래가 뻗어나갔다. 하나는 이 책을 만나게 된 '우연'에 대한 생각이었다. 어느 시와 관련된 우연.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우연 제작자들이 설계한 것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시집들을 읽고 있는데, 얼마 전 접한 시가 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첫눈에 반한 사랑'.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연인은 사실 옛날부터 무수히 많은 접점이 있었다는 내용의 시였다. 때로는 멀다가, 때로는 가까워졌다가.

우연들이 이어져 인연이 된다는 내용이 이 책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만 같았다.

더 흥미로운 건 이 시를 접한 상황 자체도 우연이라는 점.

처음 이 시를 읽은 건 류시화 시인의 시선집 『시로 납치하다』에서였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인에 호감이 있기도 했고 시 내용 자체도 매력적이라 기억에 남았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읽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에서 또 만났다. 당시엔 그저 반가울 뿐이었는데... 길지 않은 기간에 서로 다른 책에서 2번 만난 시라 선명히 기억할 수 있었고 이 우연이 『우연 제작자들』에서 꽃피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로 '우연'의 강렬함을 느끼게 되는 게 벌써 두 번째. 이것도 우연 제작자들의 소행인가?


"세상에는 늘 더 큰 그림이 있다. 너희들이 집중하고 있는 체계 이상의 무언가가 항상 있기 마련이지. 그 점을 잊지 마라. 선명한 경계선이란 없다. 인생은 당구대의 경계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공이 들어갈 구멍이 포켓 여섯 개뿐인 경우도 없다. 언제나 그 이상이 존재한다. 늘, 항상, 언제나." (p.184)


또 다른 생각의 갈래. '더 높은 차원'에 대한 생각. 그건 1차원과 2차원과 3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차원에 존재하면서도 더 커다란 무언가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쩌면 일종의 액자 소설일지도 모른다. 마치 프랙탈 같기도 한 것. 어떤 행동이 더 큰 사건의 조각이 된다는 것.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이뤄내는 나비 효과 같은. 이 이야기의 끝을 읽으며 소설 앞부분을 다시 살피게 된다. 실제 삶이라면 되감아 보기는 불가능하고 기억은 불완전하니 이런 상황이 존재했는지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가이가 소리쳤다. "영혼을 잃고 세상을 당신처럼 보게 되느니, '작고 무의미한' 존재로 남는 게 낫겠습니다. 우연을 만들 방법은 선택하는 거예요. 선택하는 거라고요. 알아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나는 내가 우연을 만들 방법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p.341)


마지막으로 하나.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 당사자들만의 순수한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우연 제작자들이 대상자에 대해 세세하게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만든 우연의 영향이라면. 우리의 감정조차 타인이 만드는 조건에 통제 가능한 것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씁쓸해진다. 미래에 가능해질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에 더욱. 지금도 빅데이터로 사용자에 맞춰 정보 큐레이션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러나 이 소설 속 등장인물이 이야기하듯이, 인간의 자유의지, 우리의 '선택'이 결국은 가장 중요한 요소일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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