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은 순간을 팝니다
정은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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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공간이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하다, 『머물고 싶은 순간을 팝니다』

 

『우리는 취향을 팝니다』의 후속작으로 나온 『머물고 싶은 순간을 팝니다』는 코로나 시대 이후 오프라인 공간이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공간은 어떤 요소들을 품고 있을까, 공간 브랜딩이 어떤 것인가 알고 싶은 마음에 읽기로 했다.

 

코로나는 다양한 오프라인 공간들이 그동안 본질적인 역할 외에도 많은 부수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죠. 평소 당연하게 행하던 것들에 제약이 생기면서 행동 반경이 작아지고, 자유 또한 축소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p.7)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꾸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공간에 가는 것을 망설이게 되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으로 많은 일을 처리하려 한다. 그 상황은 우리가 그동안 무심하게 누리던 것들이 특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만들었다. 그 중의 하나가 다양한 오프라인 공간이었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유롭게 새로운 공간을 방문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것들을 누릴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소중해졌다. 사람이란 역시 무한히 주어지는 것보다 한정적인 것에 끌리는가 보다.

 

전보다 더 적은 기회 속에서 최대한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소비자들이 공간을 선택하는 건 더 신중해졌다.

오프라인 공간을 신경 써서 구성해야 할 필요가 높아진 것이다.

침대 없는 침대 브랜드의 오프라인 공간, 손님이 직접 뭔가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공간, 다양한 전시가 함께하는 공간.

『머물고 싶은 순간을 팝니다』는 매력적인 오프라인 공간들을 소개하고, 그 공간들이 왜 매력적인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오프라인 공간이 온라인과 다르게 '차별화'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오래 머무르고 싶어하는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공간 인테리어와 관련된 것에 직원들의 서비스 같은 인적 측면도 포함되어야 한다.

한 순간 반짝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쭉 방문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취향이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취향을 판매한다는 것은 운영하는 주체가 그 취향 자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추천한다는 것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운영자의 풍부한 경험이 더해질 때 진정성을 가질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p.150)

 

책에서 팝업스토어와 카멜레존의 사례를 이야기한 내용이 기억에 남았다.

팝업스토어는 많이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카멜레존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용어였다.

카멜레존(chamelezone)은 공간 안에 일정 부분을 다른 콘텐츠에 할애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서로 다른 것들의 이종결합을 위한 공간이라고 한다. 원데이클래스나 서점의 북토크, 독서모임도 여기에 속한다. 주로 판매하는 제품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진행해 소비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변화를 주는 카멜레존. 이름만큼이나 매력적인 공간활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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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 안전가옥 쇼-트 9
류연웅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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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소설,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


류연웅의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는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9번째 작품이다.

자그마한 문고본에 얇은 사이즈로 가지고 다니며 간편하게 읽기 좋았던 책.

가독성도 아주 좋다.

표지는 연둣빛이라 안정감을 주는 느낌이 있다.


주인공이 대학 한 학기 수업 동안 자업자득으로 독박써버린 조별과제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등장인물들의 회상과 언급을 통해 자유롭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들이 속속 발견된다.

무엇보다 시원시원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점이 가장 큰 매력!

주인공의 행적을 정신없이 따라가는 가운데 종종 마주치게 되는 주석들.

숫자를 보고 페이지 하단에 눈이 향하면, 설명이 적힌 때도 있지만 '복선입니다. 기억하세요'라고만 쓰인 때도 있다.

그 모든 복선이 어떤 식으로 실행되었는지, 마지막에 '복선 회수 목록'으로 정리까지 했다.

중간중간 그 목록을 보고 어떤 식으로 복선이 회수되었는지 보며 페이지를 넘나드는 재미도 있다.


총 3부로 나눴다. 맨 앞에 강의 계획서가 있는데, 1주차부터 16주차까지 진짜 계획서처럼 정리했다.

1~8주차의 이야기를 담은 근본론.

9~12주차의 이야기를 담은 근절론.

13~16주차에 그 이후 이야기까지 담은 뇌절론.

구분은 아주 선명하다. 각각 그때까지의 국면을 전환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자기 비하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남을 근절할 수 없어서 자신을 근절하는 사람들, 그런 태도가 근본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며 삶에 의미 부여 하는 모습.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과거의 나 하나로 족하다. 그래서 나는 최후의 뇌절을 시전했다. (p.145~146)


빠짐없는 복선 회수와 의외의 연결로 촘촘히 짜인 이야기.

가볍게 이야기를 따라가다 문득 인식하게 되는 진지한 주제들이 있는 소설.

단편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는 『칵테일, 러브, 좀비』, 『위치스 딜리버리』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건데, 셋 다 괜찮게 읽어서 시리즈에 속한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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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마주치지 않았을 순간들
송인석 지음 / 이노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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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억을 읽으며 힐링하는 여행 에세이, 『어쩌면 마주치지 않았을 순간들』


코로나가 세상을 뒤덮기 전부터 그 이후까지, 총 582일간 여행한 이야기를 담은 여행 에세이.

하나로 쭉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다소 단절감이 있는 구성. 이야기 한 편 한 편 읽어도 좋겠다.


표지는 노을지는 풍경이다. 물결 위에 있는 건물들의 모습에서 잔잔한 여운이 전해진다.

이국적인 풍경을 보며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게 한다.


직접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간접적으로 한계가 있다. 여행이 그러하다. 세상을 마주해보고 걸으며 느끼는 감정들, 가슴으로 기억하는 것들은 직접 경험해봐야 알 수 있다. (p.91)


여행 에세이라 사진이 많다.

이국적인 풍경,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자연의 정경,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

사진들은 간접적으로 여행을 느끼도록 도운다.

간접적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저자는 말했다.

나는 이 정도로 충분했다. 나중엔 생각이 변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다. 책으로 마주하기에도 벅차다.


우리는 모두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인종, 종교, 가치관 등 사는 방식은 다르다. 하지만 어딜 가든 착한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겠다. (p.185)


1년을 훨씬 넘긴 긴 시일 간의 해외 여행.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까지 겹쳐 더 힘들었을텐데,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 대단하다 생각했다.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마주하면서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어느 곳에나 있었던 착한 사람들 덕분이기도 했다.

책 속의 에피소드들에서 사람과의 교류가 담긴 이야기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건, 그 진솔함이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 에세이는 역시 읽는 것만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직접 여행을 가지 못하더라도, 책을 통해 다른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을 상상하도록 도와주는 책.

여행에세이를 오랜만에 읽어 만족감이 더해졌던, 『어쩌면 마주치지 않았을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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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엔 라임 청소년 문학 53
김아영 지음 / 라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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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고 서늘한 감정을 남기는 소설집, 『미엔』


청소년 문학이 다양해졌다는 걸 느낀다.

이번에 읽은 『미엔』의 장르는 SF.

청소년 문학으로서의 SF는 어떤 세계를 그려낼까? 궁금한 마음에 읽어보았다.


독특한 이미지들이 모여있는 표지. 기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청소년 문학'이라는 게 영향인듯, 내용은 생각보다 분량이 많지 않다.

편집도 읽기 편하게 되었다. 글씨 사이 공간과 여백이 넉넉해 답답한 감이 없다.


총 다섯 편의 단편을 모았다.

「위기의 인간」은 외계 생명체의 침략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물원을 떠올리게 하는 씁쓸함이 있었다. 인간이 동물들에게 했던 조치들이 어떤 문제를 품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좀비 바이러스」는 가장 인상깊었다. 안드로이드가 대중화된 세계에서, 스스로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바이러스가 안드로이드에게 퍼진다. 화자가 안드로이드이다보니 안드로이드들을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맨 마지막의 반전은 슬프다.

표제작인 「미엔」은 조금 혼란스럽다. 소행성 충돌로 우주를 표류하다 지구에 정착하게 된 외계 생명체 '미엔인'은 인간을 복제해 살아간다. 복제인간 이슈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단편이다. 단편보다는 조금 이야기가 채워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유로파」는 오랜 냉동상태에서 깨어나 사이보그 과학자가 되어버린 '린'과 실험동물 '룻' 사이의 우정 이야기를 담았다. 청소년 문학인데 주요 등장인물이 청소년이 아닌 점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청소년 문학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대화」는 개인 비서 '시리'의 기억 속 인간 소년과의 교류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인간이란 종이 얼마나 오만하고 잔인한지 생각한다.

책 뒤표지에 적힌 것처럼, "비뚜름한 풍자와 서늘한 은유가 가득한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 그 말 대로다.

'SF'란 장르의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 안에서 독자는 익숙하게 여겼던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을 마주하게 된다. 문제를 인식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의 모습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바꾸긴 힘들다'라고 합리화하려는 마음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 오만하고 잔인한 인간의 종에 속하기 때문일까. 인간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생각이 있다.

이것 역시 인간이 정말이지 이기적인 존재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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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뷰티 (완역판)
애나 슈얼 지음, 이미영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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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 『블랙 뷰티』


애나 슈얼의 『블랙 뷰티』 완역 버전이 나와 읽었다.

동물의 관점에서 쓰인 최초의 영미 소설이다. 1877년 쓰인 소설인데,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 작가가 대단한 걸까, 아니면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너무 느렸던 걸까. 이 책이 나오는 것과 맞물려 동물 학대에 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긴 시간동안, 조금씩이라도 더 낫게 나아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본다.


표지는 심플한 디자인이다. 역동적인 모습의 검은 말의 이미지.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보면 주인공 블랙 뷰티가 떠올라 더 매력있게 느껴진다.


주인공인 검은 말 블랙 뷰티가 자신의 일생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총 4부작으로, 블랙 뷰티의 주변 환경이 결정적으로 변화하는 순간에 따라 챕터가 나뉜다.

블랙 뷰티는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말을 만난다. 블랙 뷰티는 친절한 주인 밑에서 자랄 수 있었기에 좋은 습관을 지닌 말이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주인 밑에서 만나게 된 말 '진저'로부터, 모든 말들이 블랙 뷰티처럼 좋은 주인만을 만날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블랙 뷰티는 여러 주인들을 거쳐 가면서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된다. 말을 잘 알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말보다는 유행을 더 중시하여 상처를 입히는 주인도 있었다. 가혹하게 채찍질하며 달리게 하는 주인도 있었다. 주인이 괜찮은 사람이라도 말을 돌보는 마부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말을 가혹하게 대하는 마부도 있었다. 말을 돌봐주는 이가 말에 대해 알지 못해서, 죽을 위기에 처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단지 몰라서 저지른 일이라고? 단지 몰라서? 어떻게 단지 몰라서 저지른 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세상에서 사악함 다음으로 나쁜 것이 무지함이란 사실을 모르는 건가? 아무도 모르게 제일 나쁜 짓을 하는 게 바로 무지함이라고! '아! 몰랐어요. 해를 입힐 의도는 없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p.114)


블랙 뷰티를 돌보던 조이가 말에 대해 잘 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블랙 뷰티가 죽을 뻔 하자, 존이 이야기한 내용이다. 몰랐다는 것이 면책권을 주는 건 아니다.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블랙 뷰티』를 읽으면서 말을 많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을 가혹하게 대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말을 어떻게 대해야 편안한 상태가 되는지는 알려 하지 않았다. 다른 동물들에 대해서도 모두 마찬가지다. 아끼는 마음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충분한 지식을 갖고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주인공 '블랙 뷰티'가 가혹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아닐까 했는데, 의외로 말에게 잘 대해주는 좋은 주인들과의 이야기들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다. 블랙 뷰티가 거쳐간 주인들 중 가장 인상 깊은 주인은 승합 마차를 몰던 '제리'다. 그는 다른 승합 마차 마부들과는 달리, 매주 6일만 일하고 하루는 휴식을 취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들을 자신과 다름 없이 생각하며 잘 돌봐준다. 제리와 일하는 3년간 다른 말과 나눈 이야기들, 손님과의 에피소드들 모두 흥미로웠다. 동물 복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내용,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 힘들어하는 승합마차 운전사들의 이야기들이 차례차례 이어진다.


『블랙 뷰티』는 2020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블랙 뷰티가 경험한 여러 주인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한다. 블랙 뷰티의 목소리는 그 유명한 케이트 윈슬렛이라고 하니 블랙 뷰티의 목소리를 듣는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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