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의 나
아사오 하루밍 지음, 이수미 옮김 / 북노마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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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달라지는, 3시의 나

 

이번에 읽은 아사오 하루밍의 <3시의 나>는 꽤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담아낸 책이다. 매일 같은 시각, 오후 3시에 어떤 일들을 했는지 쓰고, 일러스트를 그리는 프로젝트. 얼마전 아사오 하루밍의 책을 읽고 그녀의 다른 책들을 보다가 고양이에 관계되지 않아보이는 제목의 이 책이 궁금해서 책 소개를 봤더니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이 쓰여있어 호기심에 읽어보기에 이른 책이었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매일매일 3시의 모습이 담겨 있다. 3시에 딱 글을 쓰기도 했고, 좀 지나서 기억을 되살려 쓴 글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매일매일 달라지는 저자의 모습이 일러스트로, 글로 담겨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저 평범한 매일의 일상을 담았을 뿐이다.

그래서 중간에는 조금 버거워지기도 했다. 나의 일상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일상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건 조금 힘들었다. 예전에 타인의 꿈 해석을 읽었을 때 느꼈던,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좋게 평하게 된 것은, 저자가 시도한 이 프로젝트의 매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완벽히 같은 하루는 아니다. 아사오 하루밍처럼 같은 시각 무얼 하고 있었는지 매일 적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사실은 하루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매일매일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음을. 얼마나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이 모일 때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변화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작은 변화가 모여 큰 변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일기를 마무리한 후 그동안의 하루하루가 한 가닥 실처럼 이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미래는커녕 고작 하루 뒤인 내일조차 어떤 날이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이 책은 지금의 나에게 타임머신이 될 수 있겠지요? (p.392~393)

 

중간중간에 마음에 들었던 글들에 공감을 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게다가 이 책은 문고본 크기로 자그마한 편이다. 옷에 약간 큰 주머니가 달려 있다면 그 속에 쏙 들어간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나도 이 프로젝트 꼭 시도해 봐야겠다고! 다만 시간대는 다른 시간대로 해보면 어떨까 생각중이다.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프로젝트이지 않을까? 벌써부터 두근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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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CEREAL Vol.7 - 영국 감성 매거진 시리얼 CEREAL 7
시리얼 매거진 엮음, 이선혜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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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마음에 드는, 시리얼 vol.7

 

시리얼 7호의 표지는 사막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그 아래의 모래 언덕, 가운데 홀로 걷고 있는 사람.

지평선이 너무 깨끗해보여서 혹 이미지를 편집한 사진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만큼 깔끔하게 잘 떨어져 있다.

보면 볼수록 편안해졌던 과거 시리얼의 표지들처럼, 이번에도 역시, 표지부터 정화되게 만드는 느낌이 좋았다.

 

시리얼도 벌서 8권째 읽고 있다. 이 책이 7호이긴 한데, 국내에서는 1호가 나오기 전에 8호를 동시발매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8호를 보고 빠지는 바람에 계속해서 구매해서 사보고 있는 독자 한명이 여기... 그 동안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높은 만족도였다. 글 내용도 마음에 들었지만 시리얼이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사진과, 여백이었다. 책을 읽다가 잠시 쉬어가는 느낌으로 볼 수 있다고나 할까.

특히 이번 시리얼 7호는 정말 만족도가 높았다. 여기 소개된 세 지역인 뉴욕, 브리스틀, 마라케시 모두 다른 매력인데 그 매력들이 다 마음에 들었다! 시리얼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도시에서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소개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몰랐던 도시는 그 도시의 매력을 가득 꺼내놓는다. 게다가 분야도 다양해서 새로운 지식을 쏙쏙 흡수하는 느낌이 든다.

 

가장 먼저 소개된 지역은 뉴욕. 뉴욕부분에서는 공연이 열리는 장소인 링컨 센터, 조각 디자인 미술관인 노구치, 편집숍 어파트먼트 바이 더 라인, 주말의 브런치 유행, '스티븐 앨런'이라는 인물의 인터뷰, 그리고 뉴욕에 대한 에세이인 '마음속의 뉴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뉴욕하면 금융지구와 브로드웨이만 떠올렸었는데, 다른 장소들에 대해 좀더 깊이 알게되었던 점이 좋았다. 그러나 뉴욕 부분에서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마지막에 실려있던 일종의 에세이 같았던 기사였다. 글쓴이는 뉴욕에 대한 생각을 '마음속의 뉴욕'이라는 글에 꼭꼭 담아냈다. 뉴욕만이 가진 매력들이 무엇인지, 왜 사람들은 그토록 뉴욕에 끌려버리는지... 물가도 비싸고, 사람들이 많아 여러 불편사항이 가득한 뉴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떠나지 못하는지. 뉴욕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느낌들,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글을 읽으니 어쩐지 뉴욕이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전까지는 어쩐지 딱딱하고 닿을 수 없는 번화한 도시의 느낌이었는데, 뉴욕도 사람 사는 공간이라는 점이 강하게 느껴졌다.

 

다음 지역은 브리스틀. 영국의 자전거 도시다. 브리스틀, 어감부터 마음에 드는 도시 이름이다. 그런데 이 도시는 자전거가 다니기에 좋은 지형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시민들이 자전거에 아주 익숙해졌다고 한다. 부러웠다. 자전거를 잘 타지도 못하는데도 말이다. 자전거는 어쩐지 매력적인 탈것이다.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 느껴지는 바람. 그리고 적당히 빠른 속도.

그런데 이 도시에서 주목했던 부분은 자전거보다는 초콜릿이었다. 브리스틀에 대중을 위한 고형 초콜릿을 만든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초콜릿이 음료로만 보급되었는데, 현재 많이 먹고 있는 판 형태의 초콜릿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담은 글 옆에 있는 초콜릿 사진들이 매혹적이라 당장 초콜릿을 한입 베어물고 싶을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초콜릿이 곁에 없어서 먹지 않았지만.

이어지는 브리스틀의 마지막 부분은 비트&베이스라는 제목으로 브리스틀의 음악 역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는데, 다른 나라의 음악 역사를 읽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모르는 음악들이 많으니까,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하지만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국내에 나와 있을까? 유투브라도 찾아봐야 할까.

 

그리고 중간의 인터루드에서는 의자, 포트메리온, 에버레인, 시리얼의 선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의자'의 경우는 올해 읽었던 디자인 관련 책에서 의자에 대해 이야기했던 부분이 생각나 더 흥미롭게 읽었다. 포트메리온은 어쩐지 이름에서 찻잔이 떠올랐다. 비슷한 이름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곳은 웨일스의 해변 마을이었다. 푸른빛과 흰빛이 있는 건물 등 너무 아름다운 공간이 많았다. 왜 그 곳의 주인이 사람들을 잘 들이고 싶어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세번째로 다뤄진 '에버레인'은 흥미로운 판매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좋은 취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도 들어와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마지막의 시리얼의 선택은 화보였다.

 

세번째로 다뤄진 지역은 마라케시. 모로코였다. 모로코는 꽤 들어본 이름의 나라지만, 아프리카 지역의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이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단편적인 정보들만 알 뿐이다. 메종 드 라 포토그라피, 마조렐 정원, 테 알 라 망트, 사하라로 구성되어 있는 글들은 그래서 다 놓칠 수 없었다. 몰랐던 정보들이니까.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지면 '마조렐 정원'이었다. 파란색이 잘 어우러진 정원. 비록 그곳을 소유했던 인물들은 그곳에 끝까지 머물 수 없었고 다른 곳에서 죽게 되었지만, 그곳에 바친 애정들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사진을 봐도 정원의 식물들과 파란색의 어울림이 참 멋졌다. 언젠가 그곳을 관광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오랜만에 정말 가고픈 곳이 생긴 것 같다.

한편 '테 알 라 망트'라는 음료도 꼭 마셔보고 싶었다. 시리얼에서 다루는 음료를 포함한 음식 관련 기사는 다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것 같다. 일종의 박하차인데, 만드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어 박하잎을 구하게 되면 꼭 만들어 마셔보고 싶다. 물론 만드는 기구가 없는게 아쉽긴 하지만. 이 음료는 '차'라는 점에서 확 끌렸다. 차를 좋아하니까. 이름도 예쁜 이 음료는 어떤 향과 맛을 선사할지. 모로코에 가면 꼭 마신다고 말하는데, 궁금하다 정말로.

마지막의 마지막은 사하라 포토에세이였다. 시리얼의 이전 호에서도 포토에세이들을 봤는데, 사막은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하늘의 파란빛과 노랗게 빛나는 모래언덕. 하늘이 너무 파랗게 보여서 그런가, 덥게 보이지 않았고 은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르르 떨어지는 모래알들이 떠올랐다. 너무 곱게 보여서 만지면 그 촉감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아무튼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각각 다른 매력으로 사로잡았던 시리얼 7호도 다 읽어버렸다.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또 다음 호에서는 어떤 곳들이 다뤄질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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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의 노인 사건집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에마 오르치 지음, 이경아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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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의 정체는? 구석의 노인 사건집

 

구석에 있던 노인은 자신의 잔을 옆으로 치우고는 테이블에 몸을 기댔다.

"수수께끼라고! 수사에 지적 능력을 제대로 사용한다면 수수께끼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어디에도 없다네." (p.11)

 

예전부터 줄곧 읽어보고 싶었던 <구석의 노인 사건집>을 드디어 읽었다. 최근에 다시 읽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부부탐정>에서도 그랬고, 다른 미스터리 관련 책에서 '구석의 노인'이라는 독특한 탐정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도대체 어떤 책인가 항상 궁금했었다. 읽은 후의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꽤 흥미로운 미스터리였다는 결론이다.

 

<구석의 노인 사건집>은 제목의 '사건집'이라는 부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단편집이다. 실제적인 등장인물 또한 '구석의 노인'과 '이브닝 옵서버'의 여기자인 '폴리 버턴' 단 둘 뿐이다. 그들은 함께 사건을 추적하거나 하지 않는다. 사건에 대한 정보도, 그 사건의 전말도 모두 구석의 노인의 입에서 나오고, 폴리 버턴은 다만 '듣는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구성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저자 에마 오르치는 당대에(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크게 인기를 얻고 있었던 영국의 탐정 '셜록 홈즈'와 다른 스타일의 탐정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해 고심했고, 그 결과 탄생시킨 것이 바로 이 '안락의자형 탐정'인 '구석의 노인'이다. 폴리 버턴이 자주 찾는 ABC 찻집의 구석자리에 앉아 노끈에 매듭을 지으며 아무도 파악하지 못했던 진상을 꿰뚫어보는 탐정.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체는 철저하게 미스터리에 싸여있게 하고 있다. 여러모로 수수께끼 같은 인물.

 

"그게 그렇게 안타까운 일인가?"

구석의 노인은 유쾌하게 되물었다.

"글쎄, 이 사실을 알아 두게. 우선, 경찰이 내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생각하지 않네. 둘째로, 혹시라도 내가 일선 형사가 되기라도 했다면 내 취향과 의무감은 언제나 정면충돌을 했을 걸세. 나는 공권력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똑똑하고 영리한 범죄자들을 보면 오히려 공감이 가거든." (p.15)

 

그는 첫 사건에서부터 이렇게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정의로운 마음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허영심 덕분이다. 실제로 뒷부분에서의 이야기를 보면 폴리 버턴이 구석의 노인의 허영심과 자만심을 자극해 사건의 전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부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몇몇 이야기의 마무리 부분에서 등장하는 범죄사건에서 등장한 '매듭'과 노인이 만든 '매듭'의 유사성에 대한 언급은 그가 혹시 그 범죄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심어주기도 한다. 열린 결말이라 독자의 생각에 따를 뿐이지만 말이다.

 

한편 이 책의 독특한 구성, 그러니까 사건 관련 정보를 '구석의 노인'의 입으로 다시 듣고 그 전말까지 차례로 듣는 것은 일종의 서술트릭의 위험성을 품고 있다. 몇몇 서술트릭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사건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지우거나 숨겼을 가능성이 있으며, 교란을 위해 어떤 정보를 부각시켰을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인물이 바로 '구석의 노인'이기 때문에, 그의 논리가 부합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을 가능성 또한 높다. 증거없이 논리만으로 구성한 사건의 전말이 믿기는 것은 그가 너무나 매끄럽게 사건을 해결해가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가 뛰어난 인물이라는 증거일까? 아니면 그렇게 보이도록 지어낸 이야기였던 걸까? 흥미로운 것은 책 속에서 바로 이 점을 지적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는 '구석의 노인'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어쩌면 이것은 저자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그는 의문에 잠긴 나를 두고 자리를 떠났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이했고 궤변처럼 들렸다. 그는 정말로 내게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을 들려준 것일까? 아니면 단지 여자 기자가 얼마나 잘 속아 넘어가는지 실험을 해본 것일까? (p.138)

 

또 각 사건에서는 구석의 노인이 직접 법정에서 사건심리하는 것을 참석해 증인들로 나온 인물의 이야기를 들었던 경우가 많다. 이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법정에서 관련 인물들이 증언하는 내용을 듣는 것을 꼭 넣었다는 것이 특이하다.

 

아무튼 매력적인 미스터리였다. 구석의 노인이라는 캐릭터가 왜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라고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몇몇 암시들만 존재할 뿐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탐정. 그리고 법정에 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사건 현장까지는 가지 않는 안락의자형 탐정. 셜록 홈즈와는 다른 유형의 탐정을 에마 오르치가 잘 창조해 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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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영향력 -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어떻게 나에게 스며드는가
마이클 본드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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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이 스며드는, 타인의 영향력

 

우리는 일상에서 직접 운전석에 앉아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스스로 끌어낸 감정을 느끼고, 우리가 믿는대로(또는 믿지 않는 대로) 선택한다고 여긴다. 대부분 착각이다. 지난 40여 년간 인간이 어떻게 자기 행동을 결정하는지를 살펴본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사회적 영향에 휩쓸리기 쉬운 존재다. (p.27)

 

뭐랄까, 읽을수록 좀 무서워졌던 책이다.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또 일종의 뫼비우스의 띠 같기도 했다. 내가 영향을 받는 타인 또한 나에게서 영향을 받고, 그 개인개인이 모여 전체적인 의견을 말하는 '사회'가 되는 거니까. 그러니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인데 그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이렇게 책에서는 '사회 심리학'을 다루고 있다. '개인 심리학'과는 달리, 사회와 관련된 심리학인 것이다. 때문에 제목과 같은 '타인의 영향력'에 관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이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집단의 이념에 영향을 받게 되는지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말하는 '사회', 혹은 '군중'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점만으로도, 부정적인 관점만으로도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덕분에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생각이 이리저리 널을 뛰었지만... 서로 다른 관점을 보고 생각을 확장해 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니까.

 

어떤 사회적 상황에서 강렬한 감정이 일어날 때 어떻게 생긴 감정인지 정확히 집어내지 못한다면, 주위 사람들에게서 받아들인 감정일 가능성이 크다. 그와 반대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남에게 감정을 나눠줄 가능성도 크다. (p.34)

 

'슬픔은 전염된다'는 말이 있다. 사실은 슬픈 감정 뿐 아니라 행복감과 같은 다른 수많은 감정들도 전염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말하는 용어가 바로 '감정전염'이다. 감정전염은 타인의 표정, 말투, 목소리, 자세들을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따라해 자신과 일치시키면서 감정적으로까지 동화하는 경향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2014년에 밝혀진 페이스북의 감정조작 실험의 결과로, 현대에 보편화 되어 있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서도 감정의 전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 뿐 아니라 온라인 너머의 사람들과도 동화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 감정전염을 통해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마음을 이해하는 것... 하지만 그것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감정전염을 비롯한 이 서로에 대한 '모방욕구'는 부정적인 결과로 흐를 가능성도 동시에 품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극단화라는 것이다. '극단화'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발생하게 되는데, 생각이 비슷한 집단 안에 속해있을 경우,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는 주장만 듣기 때문에 더 확고한 관점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한편 집단의 의견과 다른 소수의견을 가졌던 경우에는 남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경향 때문에 주장을 바꾸게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과정을 거치면서 선명하고 분명한 관점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를 배우며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왜 정치적인 면에서 중도주의는 실패하게 되는 걸까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어쩌면 이 '극단화'라는 문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고하지 않고 양쪽을 다 포용하는 입장은 양쪽으로부터 모두 비판받게 되고, 확고한 관점을 세워 영향력을 확장하기에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이 '극단화'와 관련된 책 속 서술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이와 관련한 인터넷의 역할이다.

 

인터넷은 오랫동안 사회를 평등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예견되어 왔지만 실제로는 내 의견과 편견을 반영해주는 사람들과 교류하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선스타인의 표현처럼 우리 자신의 가치관을 "더 크고 요란한 버전"으로 접할 수 있고, 덕분에 이념의 성 안에서 더 공고히 자리 잡는다. (p.124)

 

확실히 인터넷은 정보의 자유롭고 폭넓은 공유를 통해 '평등'의 가치를 확산시킬 것을 기대되는 기술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정보 때문에 결국은 다양한 관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관심있는 정보'만 찾아 접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극단화'가 이루어지는 첫번째 과정을 밟게 된다. 자신의 의견을 더욱 확고히 하고 다른 의견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오해는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완해줄 방법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집단'은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두번째 챕터에서 '군중'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데, 꽤 설득력있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비상사태에서 집단 속의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서로 먼저 도망치려고 싸우기보다는 서로서로 도와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연대의식이 이기심을 이긴다. (p.80)

 

'군중'에 대해 부정적인 이론은 귀스타브 르봉이 <군중심리>라는 그의 저서에서 이야기한 것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후 당대 대부분의 지식인이 '군중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유명한 지식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현대와는 달리, 그 시대에서는 교육의 격차도 있었고, 아니면 지식인들이 자신의 특권을 부각하고 싶었기 때문에 왜곡된 시선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군중이 항상 어리석고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모형들은 꽤 합리적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든 생각은, '군중 심리'라는 건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개별적인 사람들이 그렇듯이, 양면성을 가진 것 같다. 물론 <군중심리>라는 책에 대한 내용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중에 대해 지나치게 장밋빛으로 보기에는 부정적인 사례들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책속에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개인이 집단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고받게 되는 영향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내용이라 서평에는 중점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영웅'과 '악당'이 되는 사람들도 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신의 집단이 아닌 다른 집단과의 협력이 잘 이뤄지지 않아 일어났던 피해도 있었다.

최근에 아들러의 심리학이 유행하면서 '개인 심리학'에 더 끌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사회 심리학' 책을 읽으니 이 부분도 무시할 수 없음을 느꼈다. 아무리 개인적인 의지를 세우려 해도 결국 사회에 속한 이상 그 영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글귀로 서평을 마무리해볼까 한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사회심리학'과 '개인'의 관계를 잘 정리한 글귀인 것 같다.

 

집단 정체성이 자기 정체성에 앞서고, 협력이 자율성에 앞선다. 우리는 다양한 흐름에 휩쓸리지만,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주는 존재는 바로 헤엄치는 사람들이다.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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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양복의 사나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혜경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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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와 캐릭터의 매력, 갈색 양복의 사나이

 

남아프리카를 배경으로 '대령'이라 불리는 수수께끼의 인물을 추적하는 책이었다. 그 사이사이에 등장인물들의 비밀이 어우러져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비슷비슷한 설정이 눈에 띄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번에 읽은 <갈색 양복의 사나이>는 얼마전 읽었던 <비밀결사>와 유사한 설정이 있었다.

그건 범죄조직의 우두머리가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데, 사실은 그가 아주 가까이에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범인 외에 다른 인물들도 각자의 비밀이 있어서 수사에 혼란을 주는 것도 비슷한 느낌이다.

또 어떤 인물을 다른 인물로 착각하는 경우도 그녀의 작품에서 많이 등장하는 소재이다.

하지만 이 비슷함 때문에 익숙함에서 느껴지는 재미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은 분위기가 뭔가 매력적이다.

남아프리카가 배경인데다가 주인공 앤은 고고학자의 딸이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 있었다.

사실 아프리카와 관련된 내용이 미스터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데도, 배경인 것만으로도 색다른 느낌을 준다.

현대적인 문물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지만, 가끔은 이렇게 원시적인 생활에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것도 매력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편 이 책의 또다른 흥미로운 점은 추적이 두 명의 여성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한 명은 주인공인 앤 베딩펠드이며, 다른 한 명은 그녀가 단서를 쫓아 우연히 탄 배에서 만난 클래런스 블레어 부인, 수잔이다.

두 사람은 전문적인 탐정이 아닌 아마추어이다. 그러나 잃을 것이 없는 도전정신과 모험심을 가지고 있는 앤과 그런 그녀에게 끌린 수잔은 멋진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어 있다. 그들이 사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게임'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언급이 있는데, 그녀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사건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독자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사건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확실히 화자의 시선은 중요하다.

 

"수잔, 당신은 이 모든 일들을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도 알아. 게임처럼 보이는 건 앤 탓이야. 앤의 모험심에 내가 물든 거라고. 도무지 사실 같지가 않다니까. 내가 위험한 범인들을 쫓으면서 아프리카를 종횡무진하고 있다니. 클래런스가 알면 아마 발작을 일으킬걸." (p.203)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로맨스도 역시나 등장한다. 앤은 첫 만남부터 강렬했던 남자, 해리 레이번에게 끌린다. 그는 그녀가 살인자로 의심했던 '갈색 양복의 남자'였다. 하지만 앤은 그가 범인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의 성격이 살해방법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의 만남에서는 항상 다툼이 있다. 해리 레이번은 앤을 마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성격은 아프리카의 이미지와 닮아 있다. 가면을 쓰고 세련됨을 지키는 척 하지 않는, 자기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들. 그리고 그 뒤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다.

 

"연인들은 항상 싸워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 떄문이지요.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사랑도 식는 법이죠."

"그 반대는요? 서로 싸우는 사람들을 연인이라고 말할 수 있소?"

"잘...... 잘 모르겠어요."

나는 순간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p.258)

 

'대령'의 정체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고, 오히려 다른 비밀들이 의외로 다가온 부분이 있었다. 등장인물들도 놀랐던 '파젯'의 비밀 같은 경우가 그랬다. 그래서 미스터리의 촘촘함보다는 전반적인 분위기와 캐릭터의 매력이 더 돋보였던 책이었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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