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관람차 살림 펀픽션 2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전작인 '악몽의 엘리베이터' 가 '엘리베이터' 라는 협소한 공간과 예기치 못한 상황속에서 터져나오는 사건과 사고들에 대한 고찰이었다면, 이번 작품인 '악몽의 관람차' 는 촘촘하게 짜여진 트릭과 캐릭터들의 관계속에서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다.

 

전작인 '악몽의 엘리베이터' 와 달리, 이번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니나' 라는 여인에게 데이트 약속을 받아낸 '다이지로'.

다이지로는 니나와 함께 일본에서도 손꼽힐만큼 규모가 큰 관람차 안에 탑승한다.

니나와 다이지로가 탄 관람차의 캐빈이 정상에 올랐을 때쯤, 다이지로가 갑자기 니나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한다.

어리둥절한 니나에게, 폭탄이 든 서류가방을 보여주는 다이지로. 곧 이어 관람차의 주차장에서 차 한대가 전소될 정도 규모의 폭발이 일어나고, 관람차는 정지하게 된다.

그렇다.

다이지로는 니나는 물론, 관람차의 모든 승객들을 인질로 잡은 폭탄 테러범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폭탄테러의 주 타깃은 바로 니나의 아버지.

즉, 니나가 가장 중요한 인질이었던 것이다.

다이지로는 당대 최고의 성형외과 원장인 니나의 아버지에게 현금 6억엔을 요구한다.

 

왜?

무엇을 위해?

다이지로는 이런 어마어마한 인질극을 계획한 것일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지된 관람차. 다이지로와 니나가 갇혀있는 캐빈의 바로 앞과 뒷 캐빈에 타고 있는 두 남자와, 네 가족의 이야기가 섞여 나온다.

 

 

이야기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에 대한 회상장면이 등장하다가, 결국은 처음 일어난 사건보다 진전된 시간에서 결말을 내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 확실히 연극과 영화의 배우이자 극작가였던 커리어 답게, 그의 작품은 효과적인 시각적인 묘사와, 영화적인 장치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특히, 다이지로의 과거 회상부분에서 부모님의 기억과 함께 등장하는 영화[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는 왠만한 영화기법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여러번 봤을 정도의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단순한 시퀀스와 묘사를 활용해 대단히 복잡한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표현해 낸 명 씬들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 안에서도, 작가인 기노시타 한타가 지극히 복잡한 갈등들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그것들을 단순하게 표현하기 위한 공간으로 관람차의 캐빈을 선택했다.

 

각 캐빈 안에 들어있는 주인공들, 아사코의 단란한 네 가족과, 다이지로와 인질인 니나, 그리고 왕년의 명 소매치기였던 긴지와 그를 추종하는 하쓰히코. 이들 모두 각자가 내적인 갈등과 개인적인 갈등, 그리고 개인을 초월한 환경적 갈등을 골고루 가지고 있다.

 

예를들어, 아사코는 살인 청부업자였던 자신의 과거와 그 과거를 버리고 싶어하는 갈등이 캐빈 안의 단란한 네 가족들을 통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과거를 보듬어 안으면서 현재의 가족들을 지키고 싶어하는 환경적 갈등을 가지고 있으며,

다이지로와 홀로 죽은 다이지로의 형 니시이치로에 대한 연정과, 버리고 싶은 과거라는 개인적인 갈등이 뒤섞여 있다.

 

아사코는 이 모든 갈등들 때문에 결국 현재, 정지된 관람차의 캐빈 안에 가족들과 함께 들어있으며, 고소공포증인 남편과 어린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과거와 현재의 극심한 격차로 인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마치 흔들리는 작은 캐빈처럼 위태롭게 말이다.

 

그리고, 작가가 이들의 복잡한 갈등들을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회상' 이라는 도구를 가져왔다.

이러한 구조적 연출법 역시, 소설보다는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많이 쓰여지는 방법으로 효과적이고도 빠르게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역시나 지나치게 재미를 추구했다는 점이랄까?

너무 스피디한 전개와 연출은 독자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단점은 비단 이 작품 뿐 아니라, 최근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장르소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단점이자 장점이다.

쉽게 읽히는 대신, 읽고 나면 남는것이 없다는 푸념은 괜한 것이 아닐터다.

 

'악몽의 관람차'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일본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여럿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자라기 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한 소품과 같은 느낌이 크다.

그것은 빠른 이야기 전개를 위해, 캐릭터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행동들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실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인물을 묘사할때는 물론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표현이 효과적이겠지만, 때로는 독자가 인물들과 함께 생각하고, 고뇌하고, 고통스러워 하고, 불편해 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기도 하다.

 

어찌보면, 이러한 방식이 기노시타 한타가 스스로 작가의 역량을 실험해 보고 있다고 봐도 될 듯 싶다.

전작에서는 충분히 캐릭터의 묘사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편에서는 캐릭터와 호흡하는 법을 연구했고, 관람차 편에서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법을 연구했다고 한다면, 그 두 종합편이 될 다음 '악몽' 시리즈 는 충분히 기대할 만 하다.

 

무엇보다, 무거운 주제에 비해 밝고 가벼운 터치와 위트있는 문장들이 쏙쏙 들어온다.

 

전작이 '가이 리치' 스타일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치밀한 이야기 구조와 인물간의 관계가 돋보이는 '브라이언 싱어' 스타일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다음 작품은 '악몽의 드라이브' 라고 하는데, 과연 또 어떤 스타일의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 가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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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눈을 뜨니, 엘리베이터 안이다.

사방이 막힌 밀폐의 공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폐쇄된 공간 안에서 아늑함보다는 공포감을 먼저 느낀다.

게다가 그 공간안에, 타의로 유폐된다면 그 공포감은 더더욱 심해질 것이다.

또한, 그 공간 안에 정체를 모르는 낯선 타인들과 함께 있다면 그 공포감은 무한대로 증가될 것이리라.

 

예로부터 많은 작가들은 이러한 공포들을 많이 다루어왔다.

인간의 진정한 내면을 끌어낼 수 있는 극한의 상황. 바로 이러한 밀폐된 공간이다.

 

이 생각만해도 불쾌하기만 한 상황속에 놓인 오가와.

눈을 뜨니 좁은 공간안에 세명의 남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말쑥한 정장차림에 턱수염이 지저분한 한 남자와, 생긴건 멀끔하지만 왠지 어색한 느낌의 호리호리한 남자. 그리고 검은 공주풍 드레스에 지저분한 곰인형을 들고있는 자그마한 소녀.

정장차림의 사내가 엘리베이터가 멈췄다고 일러준다.

아, 그래.

오가와는 엘리베이터를 탔었다. 그리고 뒷통수에 충격을 느끼고 기절했었다.

엘리베이터가 급정거 하면서 뒷통수를 벽에 강하게 부딪히고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있을법 한 일이다.

아차, 이럴때가 아니다.

오가와는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임신 9개월의 아내에게 받은 마지막 전화가 떠올랐다.

"진통이 시작되었어!'

나가야 한다. 홀로 고통스러워 할 사랑스러운 아내를 생각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빨리 나가야 한다.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건드리는 이 작품은 일종의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미국에서도 유행했던 이런 류의 작품은 한 사건을 덮기위해 벌인 일이 더 큰 사건을 불러 일으키고, 그 사건을 덮기위해 또 다른 일을 벌이면, 그 일이 더 큰 사건을 불러 일으키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가이리치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베럴즈R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 나 '스내치Snatch' 등의 영화가 연상되는 이야기 구조이다.  쉽게 봤던일, 가볍게 봤던 일, 치밀하게 계획했던 일들이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며 주인공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상상외의 반전이 있는 그런 스타일의 작품들.

 

기노시타 한타의 작품이 위에 언급한 영화들과 다른 점은, 좀 더 우리의 실생활에 밀접한 소재를 주 재료로 썼다는 점일 것이다.

초반의 신선함은 이야기가 지속될수록 결국 클리셰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해 결국엔 진부한 주제로 막을 내리고 말지만, 그것들을 상쇄하는 것은 역시 캐릭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장르소설과 미국 장르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캐릭터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장르소설들이 아주 사소하더라도 일반적이지 않은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을 내세운다면, 일본 장르소설들은 언제나 아주 일반적이고 평범한 캐릭터들을 내세운다.

그 덕에 이야기는 남지 않더라도, 캐릭터는 남는다.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오가와나 사부로, 마키와 가오루 모두 평범하면서도 확연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

그 아이덴티티 또한 확연하지만, 아주 일반적인 것들이다.(적어도 일본문화 안에서는) 독자들은 일견 특이해 보이기도 하는 캐릭터들에게 흥미를 갖게 되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의외로 평범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좀 더 몰입하게 된다.

기노시타 한타의 문장들은 단순하고 명료하게 사건만을 전달함으로서 독자들의 몰입을 부추긴다.

 

 

누구나 인생 속에서 예기치 못한,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게다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리곤 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인생 매 순간순간들이 그런 상황들의 연속이기도 하다.

치밀하게 세운 계획들은 아주 쉽게, 그리고 아주 연약하게 무너지기 일쑤이니까.

심지어 일일 스케줄 하나도 정확히 지키지 못하는 인생 아닌가?

 

얼핏 보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작은 사건 하나로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결국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순간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선택에 '하나님의 인도' 가 있기를 바랄 것이고,

조상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 선택에 '조상신의 점지' 가 있기를 바랄 것이다.

 

하나님이든, 조상신이든,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마도 선택을 하는 주체자의 인격일 것이다.

지혜와 지식을 떠나 양심과 도덕에 따른 선택은 대부분 올바르기 마련이고, 그것은 대부분 그 사람의 인격에서 우러난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과, 돌발상황과, 선택의 기로와, 선택의 결과가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

매 순간마다 갈림길이 존재하고, 예상을 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

예상과 다른 돌발상황이 튀어나오고, 또 갈림길이 나타나고, 또 예상을 하고, 또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롯히 자신의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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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예언자 4 - 오드 토머스와 흰 옷의 소녀 오드 토머스 시리즈
딘 R. 쿤츠 지음, 김효설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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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국내에도 어느정도 매니아층이 형성되어있는 딘 쿤츠의 '오드 토머스 시리즈' 의 4번째 권을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미국 소설들은 '폴 오스터' 이후로 꾸준하게 작가를 찾아가며 본 작품은 없다.

한때 로빈 쿡 이나 존 그리샴 등의 장르소설에 몰두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비슷한 내러티브가 반복되어 서너권쯤 읽으면 흥미가 떨어지곤 했다.

 

미국은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의 천국이다. 모든 컨텐츠들이 미국에서 시작되고, 미국으로 모여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문화 종사자들은 돈을 벌수 있는 구조는 결국 옴니버스식 구성을 가진 이야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미국은 말 그대로 '이야기의 천국' 이 되었다.

 

작가는 먼저 한 주인공을 내세워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여러 출판사의 검증을 거쳐 책이 나오고, 그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먹히면, 이 주인공을 꾸준하게 생을 영위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10권까지 살아남을 수도 있고, 운이 없으면 1,2권에서 사장되어 버리기도 한다.

 

'오드 토머스' 라는 딘 쿤츠의 수많은 주인공들 중 한명은, 대단히 운이 좋은 케이스였을 터다.

북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트왈라잇의 '에드워드' 가 4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렸던 '해리포터' 가 7권의 생을 얻은데 반해, 오드 토머스는 이미 10권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니 말이다. (집필 의도가 어쨌던 건 말이다.)

 

오드 토머스의 4번째 시리즈인 '살인예언자4' 는 '오드의 시간Odd Hours' 라는 원제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시리즈의 통일성을 위해 1권의 제목이었던 '살인 예언자' 를 큰 제목으로 잡고 '오드 토머스와 OOO' 라는 식으로 부제를 잡고있다. (아무래도 해리포터 시리즈와 같은 뉘앙스를 주고 싶었던 듯....)

 

오드는 아주 평범한 젊은이였다.

즉석요리사였고,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으며, 20세를 막 넘긴 전형적인 미국의 젊은이였다.

단, 그에게는 죽은자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뺀다면 말이다.

죽은자들을 볼 수 있는 그의 능력은 오드라는 사람의 인격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언제나 남과 다른 능력은, 남과 다른 인생을 살게 하는 법.

수많은 사건을 거치면서, 4권에서의 오드에겐 이미 사랑하는 여인도 불의의 사고로 잃고 말았고, 기이한 사건들에 휘말려 일종의 과대망상증까지 앓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은, 아니 그의 운명은 언제나 그를 알 수 없는 가혹한 운명 속으로 밀어 넣는다.

 

 

사람에게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그것이 정말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바꿔나갈 수 있을까?

 

누구나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성별, 선천적 장애, 낳아주신 부모님, 태어난 국가, 장소 등 말이다.

이것들은 단어 그대로 '운명적으로' 정해 진 것일 터다.

그렇다면, 성전환 수술을 하거나, 장애를 수술을 통해 고치거나, 부모님을 바꾸거나, 이민을 간다거나.... 한다면 운명을 개척하는 것일까?

 

결국 오드 토머스는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삶을 택한다.

그것이 때론 고통스럽고 가혹할지라도, 순응하고 받아들인다.

흐름에 따르는 삶은, 얼핏 고통과 가혹함으로 점철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만큼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들도 존재한다.

 

오드 토머스처럼 꼭 죽은자를 보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삶이 가혹한 것은 아니다.

기실, 모든 인간의 삶의 대부분은 고통이다.

즐거움과 기쁨보다는 아픔과 슬픔이 훨씬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 모든 것들을 삶의 일부분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동화되는 순간, 삶과 운명은 언제나 나 자신의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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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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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00년대 초반. 미국에 첫번째 지하철이 생기고,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던 무렵, 의학 - 신경정신학에 획기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최초로 '무의식' 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사용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바로 그이다.

그는 무의식을 통해 인간의 본능과 욕망의 가장 깊은 곳을 탐닉했고,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각종 '콤플렉스' 들의 기원을 마련했다.

 

이 작품은 1909년, 프로이트가 미국을 방문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미국은 고도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고, 수많은 돈들이 모이던 신세계였다. 유럽에서는 이미 정설로 널리 퍼지고 있던 프로이트의 이론이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주인공 스트래섬 영거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신봉하던 미국의 젊은 엘리트 계층으로서, 신경정신계통의 전문가로서 차근차근 명망을 쌓아하고 있었고, 프로이트가 미국을 방문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영거 박사가 절친한 학자인 브릴과 함께 뉴욕 호보크 항에서 프로이트를 태운 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던 그 시간들의 틈바구니속에서, 뉴욕의 휘황찬란한 마천루 꼭대기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두번째 비슷한 살인미수사건이 벌어지고, 피해자였던 소녀는 기억상실증과 함께 실어증을 앓게 된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경찰측은 소녀의 기억상실과 실어증을 치료하기 위해, 마침 뉴욕에 도착한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견해를 구하게 된다.

하지만, 대학 강의가 예정되어있던 프로이트에게는 집중적으로 소녀의 정신분석치료를 할 시간이 없었기에 자신을 초청한 스트래섬 영거박사를 추천하게 되고, 주인공인 영거박사는 이렇게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프로이트 박사 역시 미국의 알 수 없는 단체로부터, 언론을 통한 흠집내기와 함께 미국으로 왔던 수제자 칼 융, 페렌치 등과 불협화음을 조장하는 등의 우회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이야기는 크게 두 축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소녀를 둘러싼 살인사건과, 프로이트를 둘러싼 갈등들이 바로 그것이다.

 

주인공 영거의 1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되곤 한다.

영거의 이야기가 나왔다가, 살인사건의 이야기가 나왔다가, 프로이트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점의 이동과 함께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도 살짝 무뎌짐으로서 머릿속이 살짝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관통하는 큰 흐름은 놓치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로 탁월한 균형감으로 방대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55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작품의 중심은 바로 프로이트의 학설이다.

영거와 피해자 소녀 사이의 대화, 그것을 통해 이끌어낸 영거의 정신분석,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지는 프로이트의 조언을 통해 프로이트의 학설이 실재로 어떻게 증명되고, 적용될 수 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딱히 프로이트의 학설을 알고 있지 못하거나, 큰 관심이 없었더라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아마도 이 작품을 즐겁게 읽은 독자들이라면, 최소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다이제스트판 도서라도 읽고싶어질 터다.

 

'사람' 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 숨쉬는 심장과 폐, 각종 정보들을 함축하고 있는 뇌, 양심, 마음, 영혼 등등을 거론하지 않아도, 확실한 것 한가지는 바로 경험일터다.

사람은 살아오면서 축적되는 직. 간접적인 수많은 경험에 의해 구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환경을 통해 여러 모양으로 변주되어 켜켜히 쌓이고, 그것이 바로 사람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 본능은 무엇일까?

 

수많은 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을 꿰뚫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누던 시기도 있었고, 경험과 환경에 의해 구성된다는 주장도 등장했었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위해 '무의식' 이라는 부분에 집중했고, 만약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할 수 있다면 인간의 본성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무의식의 세계를 어떻게 탐구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프로이트는 우선적으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 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콤플렉스들이 등장한다.

 

모든 인간들은 최소한 한가지 이상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콤플렉스는 어떠한 경험에 의해 생겨나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인 셈이다.

왜? 무엇으로부터? 어디에서부터 방어기제가 생겨나느냐?

 

치밀한 학자가 쓴 글답게, 사건의 전개나 이야기의 얼개보다는, 사건의 인과관계와 이야기간의 연관성을 치밀하게 맞추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중심추가 사건을 파헤치는 것보다,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에 중점이 맞춰져 있어서 살인사건의 서스펜스는 덜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복잡하게 얽히고 섥킨 관계들 속에서, 트릭이 좀 뻔하면서도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일종의 '심리 서스펜스' 라고 할 수 있다.

'살인사건' 그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정신분석과 대화에 집중한다면 보다 흥미로운 책읽기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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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형민우 초한지 1 : 떠오르는 태양 이문열 형민우 초한지 1
이문열 원작, 형민우 그림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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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요즘 한국의 출판만화시장은 학습만화가 대세이다.

IMF 이후 한국에 깔린 수많은 대여점과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일본의 재미있는 만화들에 의해 잠식된 한국 만화시장.

결국 만화가들은 끊임없이 '작품' 이 아닌 '생존' 을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학습만화는 만화가들에게 일종의 외도外道 였다.

정식 만화가들이 아닌, 만화가 문하에 있다가 실력이 안되 그만둔, 혹은 만화가들이 아르바이트 삼아 아이들을 대상으로 대강 그려주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출판 만화시장이 죽고, 반대로 학습만화시장이 한국 부모들의 특별한 교육열의 힘을 업어 급 성장했고, 지금은 웹을 기반으로 한 '컬러' 만화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형민우라는 작가는 한국 만화계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일종의 웨스턴 판타지를 표방한 프리스트라는 작품은 특유의 암울하고 미스테리한 이야기와 그에 어울리는 독창적인 화풍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 수출되기도 했고, '둠 슬레이브' 라는 코믹스를 미국에서 그려내기도 했다. 한국형 그래픽노블을 표방한 '고스트 페이스' 라는 작품을 내는 와중에도 '무신전쟁' 이라는 소년만화를 그려내면서, 자신의 타이틀에 충실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결국 이문열의 초한지를 각색한 학습만화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도 학습만화 시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한 작가이자 독자로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초한지는 정말 많은 버전으로 여러번 읽은 작품이다.

각색된 소설은 물론, '사기' 를 통해서는 물론 각종 만화로도 여러번 보아서 너무 익숙한 작품이다.

초한지는 '이야기' 라는 것이 가질 수 있는 재미있는 요소란 요소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항우 와 유방 이라는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캐릭터와, 그들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지략가들, 모사꾼들, 그리고 진나라 멸망 직후라는 혼란기, 하나였던 대 제국이 수백개로 쪼개지기 직전의 상황이기때문에 모든 것들이 단순하게 둘 또는 셋으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삼국지나 수호지가 지나치게 많은 국가와 지나치게 많은 등장인물들때문에 정신이 없었다면, 초한지는 모든 이야기들이 두 영웅의 단순한 경쟁구도 안에 모두 갈무리되기 때문에, 구조 자체가 이해하기가 쉽다.

그리고, 중심적인 등장인물들 역시 많지 않기때문에 각 캐릭터들을 파악하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초한지 1권도 1권 답게 등장인물 소개로 진행된다.

아이들용 만화답게, 도를 닦는 견습선인(?) 을 두마리(명?) 등장해 각자 항우와 유방 곁으로 가서 그들의 삶을 보고 배운다는 설정도 나쁘지 않다.

아이들용 컬러만화라 형민우 특유의 거친 선들은 많이 보이지 않지만,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드러나 있다.  

 

캐릭터들도 형민우만의 독창성인으로 성격이 단번에 드러나는 효과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과연 이문열의 원작을 얼마나 잘 살리는 작품이 나올지 자못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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