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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4월
평점 :
나에겐 이런 기대를 갖게 해주는 작가군은 있다.
"아, 이 작가는 대충써도 이만큼은 해줄거야."
전작인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가 너무 강렬한 작품이어서 그랬을까??
이번작품은 솔직히 평하면 딱 그만큼이다. "이만큼".
그렇다고 작가가 대충 썼을리는 없다. 오히려 너무 부담을 가진게 아닐까 싶다. 작품을 다 읽은 뒤 정보들을 찾아봤더니 모 인터넷 북 쇼핑몰에 연재되었던 작품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물론 연재된 텍스트들을 그대로 옮겼을리는 없다. 퇴고의 과정을 거쳤겠지만, 이젠 확실히 그런 작품들은 태가 난다고 해야할까. 일단 장은진 작가의 전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작품은 지나치게 전작과 비슷하다. 거기에 감동은 덜 하고, 메시지는 더 많다. 아니, 메시지가 너무 많아서 감동이 덜하다고 해야 할까, 메시지를 위해 감동을 포기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페이지는 더 적으며 연재되는 글을 읽는 독자들을 위한 듯한 일종의 패턴이 있다. 전작인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와 비슷한 패턴이지만, 전작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할 때 마다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서 이야기 전체가 역동성이 있었던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비슷한 분위기가 반복되며 이야기는 갈수록 더 정적이 된다.
결국 이 작품은 '이야기' 자체보다 '인물' 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작가는 '사건' 이 아닌 '인물' 에 집중을 했고, 서로간의 관계와 대화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영화로 따져보면 일종의 로드무비, 버디무비에 가까운 작품으로서 이야기 자체를 즐기기보다 '캐릭터' 한명 한명에 집중해야 작가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작가의 전작 역시 그랬지만, 이번 작품은 인물들간의 관계가 보다 농밀하고 끈적하다.
이야기의 화자는 지금 어떤 여자와 마주하고 있다.
여자의 이름은, 그래, 화자는 그녀를 "제이" 라고 불렀다. 필연적이라고 해야 할까, 우연히라고 해야 할까. 무튼, 그녀 제이는 주인공의 집에 숙식하고 있다. 20대의 열쇠장이인 화자. 한때 소설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열쇠가게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한때는 절친한 사이였으나 연인을 몇번이나 빼앗긴 뒤 절교하게 된 "케이". 부잣집 아들로 한때는 화가가 꿈이었으나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으며, 최근 고흐처럼 자신의 한쪽 귀를 도려내기까지 했다. 케이는 화자를 "와이" 라고 부르게 된다. 케이와, 화자인 와이는 제이의 집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힌트는 무성한 숲과 구름다리. 케이가 제이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린 그림 한 장. 그 한 장을 들고 우리나라에 있는 구름다리가 놓여있는 숲을 찾아 무작정 떠나게 된다.
이런 간단한 줄거리만으로도 책을 많이 읽어보신 분들은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어 나갈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두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자. 그렇다. 가장 안정적이라고 하는 구도로 자리잡고 있는 이 삼각 관계가 얽히고 설킴과 함께, 각각의 과거와 현재가 얽혀들어 갈 것이다. 이 작품안에서는 여 주인공인 제이를 꼭지점으로 한 감정적인 삼각관계와 절친한 친구였던 케이와 와이의 과거가 드러나며 서로가 가지고 있던 오해와 갈등들이 해소된다. 결국 그 여행은 제이의 집을 찾아주기보다 케이와 와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여행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 한가지가 더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탁월한 음악적인 감각까지 가지고 있는 그녀 - 제이는 문명의 소산을 먹어야만 생존이 가능하지만, 그것때문에 사회에서 격리되고 만 존재였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도시로 들어가야 하지만, 도시 안에서는 숨어 지내야 하고, 자연을 사랑하지만 문명의 이기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아이러니 덩어리의 혼란스러운 존재.
한편, 제이의 반대편에서 각 점을 이루고 있는 케이와 와이는 '돈' 을 기준한 위 아래 두 계층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매일매일 죽을만큼 일해서 한달 간신히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버는 열쇠장이 와이. 매 시간 돈에 쫓기듯 살아야 한다.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삶의 한 부분 한 부분을 돈과 연관시키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연인들이 돈이 많은 절친한 친구였던 케이에게 달아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케이에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고, 부조리한 사회 자체에 대한 불만과 미움, 증오가 있지만 그런 것들을 미워하고 증오할 여유는 없다. 당장 오늘 일해야, 다음 달에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케이는 엄청난 부잣집의 막내아들이었다. 생존은 물론 일체의 모든 것들이 여유있게 보장된 케이. 그 엄청난 부유함의 댓가는 '자유' 였을터다. 케이는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했으나, 너무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미치도록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케이를 미국으로 보내버린다. 결국 우울증에 걸린 케이는 미친척 연기를 하고 자해를 해서야 간신히 아버지의 눈 밖에 나게 되지만, 그동안 깊어진 우울증은 그를 끊임없이 자살충동 속으로 몰고간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제이" 이다.
제이를 둘러싼 두 남자. 와이와 케이는 제이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과정을 통해 사랑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미 여자들에게 상처를 받은 와이는 제이를 짐덩어리 취급하고 불필요한 것으로만 인식한다. 즉, 사랑에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밀어낸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도 그러하지만, 상대적으로 세상에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새로운 감정을 품는 것을 두려워한다.
꾸준히 언급하고 있지만, 난 인간에게 가장 큰 적은 외로움, 고독함이라고 생각한다.
"자아" 라는 것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해주는 선물인 동시에, 인간을 언제나 외롭게 만드는 저주와도 같다. "나는 나" 라는 확고한 의식은 '남' 과 '나' 를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서 스스로를 완벽하게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게 한다. 외로움이나 고독감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고, 연인, 가족, 동호회는 물론 인스턴트 메시징,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끊임없이 "대화" 를 갈구한다.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기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다른 이가 있기를 바란다.
"문득, 사람이란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이야기하기 위해 사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자기 이야기를 쓰고 읽고 듣는 과정인 건지도 모른다고."
p.222
사람이란 한권의 책과 같다. 표지와 제목만 보고 책의 내용을 알 수 없듯 사람의 외모와 이름만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책을 펴고 꼼꼼히 읽어 나가듯,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해야 그 사람을 알 수 있게된다. 절친한 사이였던 와이와 케이가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된 이유는 '연인' 때문이었다.
와이와 케이는 좋아하는 여자의 취향이 비슷했다. 와이는 가난한 열쇠공이고, 케이는 부유한 집안의 자제였으므로 와이는 언제나 케이에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의 여자친구가 결국 케이의 매력에 이끌려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런 심각한 오해와 그로인한 갈등들은 제이의 집을 찾아주는 여행동안 나눈 많은 대화를 통해 오해가 하나씩 풀려가며 갈등들이 해소되어진다.
즉, 제이의 집을 찾아 떠난 여행은 와이에게 있어, "제이" 라는 이름의 책 한권과, "케이" 라는 이름의 책 한권을 읽는 여행이었다고나 할까.
아무리 좋은 책을 읽어도, 책 한권을 읽는다고 한 사람의 삶이 확 변하진 않는다.
하지만, 연못 한 가운데에 던진 작은 돌 하나부터 시작된 파문이 연못의 가장자리까지 닿듯이, 좋은 책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일렁거림은 언젠가는 그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있다. 와이와 케이. 그리고 제이의 삶 또한 그럴 것이다.
자, 이제 작품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파고들어 보겠다.
작품 속에는 꾸준하게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이 등장한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 의 철학이 집대성된, 어마무지하게 어려운 책이라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읽으며 집을 찾아가는 '제이'.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에는 니체가 주장한 "존재의 자기 긍정을 하는 자" 즉, '초인' 의 세가지 변용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 첫번째는 '낙타' 이다. 사막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성실히 걸어나가는 낙타는 환경에 적응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존재이다. 게다가 등지 지고 있는 짐도 자기 짐이 아니다. 자신이 왜 남의 짐을 져야 하는지, 어디까지 가고 있는지, 왜 가는지도 모르며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조물주, 신, 절대자, 공권력, 체제 앞에 무릎꿇고 짓눌려 살아가는 전체주의에 매몰된 인간상이다.
두번째는 '사자' 이다. 사자는 의욕과 자율의 상징으로, 자신이 해야할 일을 알고 있고, 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사자의 자유는 긴장된 자유이다. 사자라는 동물은 알다시피 한 영역에 한마리의 수컷만이 존재한다.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수컷 사자들은 모두가 적이다. 사자의 자유는 극도의 긴장 속에서 아슬아슬한 자유이고, 공격적이며 방어적이다.
그리고 가장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상인 '초인' 은 바로 '어린아이' 이다.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새로운 놀이이며,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움직임이며, 하나의 신선한 긍정이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상을 잃어버린 자는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획득하는 것이다. 자유롭지만 고독하지 않고, 자신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으며,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
이 초인의 단계는 어느날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낙타와 사자의 단계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위키백과, 네이버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의 사상" 에서 발췌,요약 )
작품속에 등장하는 와이는 낙타의 단계라고 한다면, 케이는 사자의 단계에 가깝다. 그리고 제이는 어린이, 즉, 초인의 모습이다.
제이를 통해 와이와 케이는 무언가 깨달음을 얻어낸다.
위에 언급했던 "좋은 책 한권" 을 읽은 정도의 파문이겠지만, 제이는 케이와 와이가 인격적 성장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결국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로 마무리 된다.
그녀의 행동과 생각, 모습은 니체가 표방했던 완전한 인간.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 '어린이' 로 변용된 초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를 통해 화자인 와이는 끊임없이 삶에 대해 생각하고, 과거에 대해 생각하며, 환희과 고통, 오늘과 내일에 대해 사색한다.
그리고 결국 생의 긍정. 삶의 긍정. 존재의 긍정을 받아들인다. "제이" 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읽는 동안 '케이' 라는 이름의 책과 '제이'라는 이름의 책을 읽어낸 화자 "와이" .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와이의 삶이 하루아침에 뭔가가 확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아침 일찍 열쇠집 문을 열어야 할 것이고, 하루종일 열쇠를 깎아대야 할 것이며, 매달 날아드는 고지서와 아슬아슬한 통장을 보며 걱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어제보다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는 눈 앞의 현실을 믿기 시작했고, 그것은 즉. 긍정했다는 의미니까.
P.S)
책을 덮고, 한번 더 읽고, 니체의 사상을 찾아보고, 요약-해설되있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까지 읽어보고서야 작품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전작만 생각하고, 인터넷에 온라인 연재되었다는 정보를 듣고, 동화틱한 일러스트 표지 아래 250여페이지의 얄팍한 두께만 보고 만만하게 덤볐다가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새삼, 장은진 작가가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아무렇지 않게 술술 풀어내는 글속에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다만, 각 챕터가 그날 그날 독자들에게 보여지니까, 자꾸 무언가를 더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조금 작위적인 느낌이랄까. 문학계에 일고있는 온라인 연재의 붐의 장단점은 곧 드러나게 될 것이다. 물론 과거부터 신문연재소설도 꾸준히 있어왔고,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들거나 명작의 반열에 들기도 한다. 하지만, 책으로 묶어낼땐 연재 기간만큼 길고 정성스러운 퇴고 과정이 있었음 또한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