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커 N.W. 2 - 무림을 뒤흔드는 새로운 물결!
전극진 지음, 박진환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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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강호' 의 전극진 선생님이 스토리를 담당하셨던 현대적인 무협물 [브레이커].

 소심한 고딩 왕따 소년 [이시운]이 절정 고수의 선생님 [구문룡]을 만나 무공을 전수받고, 혼란한 무림세계에 뛰어들어 점차 강해지는 내용의 이 작품은 무협물의 대가의 작품답게 시종일관 흡입력있고 완성도 높은 이야기들로 큰 사랑을 받았더랬다.

특히, 우리가 살고있는 이 현실의 보이지 않는 면에 무림 고수들이 암약하며 또하나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 조금은 진부한 설정속에서도 전혀 진부하지 않은, 아주 전통적이고 보편적이면서도 뚜렷한 이야기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거릴만 했다.

마치 조폭이나 기업들처럼 각자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무림의 일파들. 무협지에서 주로 나오는 무당파, 소림파, 화산파등과 같은 일대 문파에서부터, 씨족 중심으로 이루어진 중소 가문들, 그리고 각 문파와 가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무공까지, 현실세계에 적절하게 잘 스며들어 있었다.

 이야기의 큰 줄기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는 조폭들의 이야기와, 일반 무협소설, 그리고 한 소년의 성장기이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했듯 이러한 보편적인 이야기의 줄기들이 굉장히 탄탄하고 흡입력있는 흐름을 만들어내는데, 박진환 작가의 유려한 작화 역시 크게 한 몫 하고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브레이커] 의 후속 작품이다.

다시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온 이시운. 하지만, 그와 그의 스승인 구문룡이 무림세계에 일으켰던 평지풍파는 그를 가만놔두지 않는다. 전작에서 일으켰던 사건들과 그로인한 은원들이 얽혀 시운이에게 몰려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운이는 단전이 파괴되어 더이상 무공을 쓸수 없는 상태. 그리고 그의 단단한 보호벽이자 듬직한 스승이었던 구문룡은 무림세계에서 잠적한지 오래. 정말 평범한 소년이 되어버린 시운을 무림인들이 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구문룡을 신처럼 받드는 사설조직 [S.U.C]가 존재하고 있다.

 무림인들은 현실세계에 간섭하지 않는것이 원칙이지만, 이 S.U.C 멤버들은 그런 규칙에 아랑곳 않고 자신들의 세를 떨치고 있다. 일반인들마저 무림인들의 만행에 고통당해서는 안된다. 구문룡을 받드는 S.U.C 그리고, 이들을 단속해야 할 무림연합. 그리고 연합 내의 일파들이 구문룡의 제자였던 이시운을 두고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과연 이시운은 어떻게 이 은원들을 풀어낼 것인가.

무공의 근원인 단전을 파괴당한 평범한 육체로 강인한 무림인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또, 어떤 기연을 만나게될까.

그야말로 무협물의 정수를 고스란히 담고있는 멋진 작품이다.

 

 

 [브레이커NW] 는 [다음] 이라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연재되고 있는 작품이다.

기존에 웹툰에서 인기를 얻으면 단행본이 제작되던 것과 달리, 애초부터 단행본화를 염두에두고 제작된 작품이다. 잡지에 연재를 하고 연재분량이 모이면 단행본으로 엮여서 나왔던 것과 비슷하게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잡지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형식 역시 이 작품의 제목인 [NW] - 뉴 웨이브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으리라.

 한국의 출판만화는 시장자체가 일본만화에 거의 다 잠식당해 있지만, 대원, 서울문화사, 학산등과 같은 뿌리깊은 한국 만화 전문 출판사들로 인해 그럭저럭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만화잡지마저 줄줄이 폐간된 마당에 포털 사이트와의 연계로 인한 새로운 연재지면의 확보에 대한 시도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여진다.

 특히 [브레이커 NW] 는 그러한 여러 시도의 좋은 흐름들을 이끌어내고 있는데, 웹에서의 흑백만화가 출판만화와 만나 이뤄내는 시너지도 상당할 듯 하다. 확실히 종이만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확대로 인한 역동성은 확대가 가능한 큰 모니터를 통해 느낄 수 있고, 웹만화가 가지고 있는 저해상도의 단점을 출판만화로 인해 커버한다. 이 작품의 경우엔 철저히 단행본화를 염두에 둔 작품이라 출판에 특화되어있어서 만화의 퀄리티는 책으로 볼때 더욱 뚜렷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단행본으로 묶인 연재분량은 한권씩 묶어 2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서비스함으로써 유료화에 대한 파장도 지혜롭게 넘기고 있다. 역시 만화산업에 특성화된 회사의 역량이라고 해야 할터다.

 

 한국 출판만화의 건승을 기원한다.

앞으로도 쭈욱!!! 이런 양질의 만화를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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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 제16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황현진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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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소년, 아니, 청년? 음 - 암튼 애매한 포지션의 남자가 있다. 

아마 나이를 말하면, 모두가 '애매한 포지션' 이라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아, 여기서 말한 포지션은 '어른' 과 '아이' 의 포지션을 말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되는, 사실 어른과 아이를 나눈다는 개념도 조금은 모호하지만 이 나이대의 남녀들만큼 애매하지는 않을터다. 아직 교복을 벗지는 않았으나, 세상과 학교에 반쯤 걸쳐있는 고3. 그것도 취업을 앞둔 실업계 고등학교의 3학년 남학생. 

 한국에는 공고와 상고가 있다. 최근에는 정보고교등의 세련된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할 수 있는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이다. 대학으로 치면 칼리지, -전문대 정도로 말할 수 있겠으나, 어차피 우리나라에서의 대학교육이란 학문을 연구한다기 보다는 취업을 위한 통로이므로 사실 개념상의 큰 차이는 없을터다.


 암튼, 전문대도 마찬가지지만 이러한 실업계 고등학교의 경우 졸업반의 경우엔 2학기가 되기 전에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대학과 실업계 고교의 구분이 명확했던 적이 있었다. 대다수의 기업들에서 실무직은 실업계 고교 출신 고졸자들로 채워넣고, 관리직은 대학출신 대졸자들로 채워넣던, 그런 시절 말이다. 실업계 출신 학생들은 당연하게 취업했더랬다. 

 살기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겠지만, 우리 아버지 시절만 해도 그랬다. 대졸자보다는 고졸자들이 훨씬 많던 그런 시절. 일찌감치 산업 일선에 뛰어든 19살 소년들은 소년이 아닌, 어른이었다


공고생 태만생. 

바로 위에 구구절절하게 언급한 바로 그 시기, 진로를 선택하는 그 시기에 "취업" 을 택함으로써 만생은 '사회' 라는 망망대해에 휙 하고 던져지게 된다. 그리고, 부모님은 태평하시게도 외아들을 한국에 휙 떨궈놓고, 태평양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휙 올라타게 된다!! 

이제 태만생에게 주어진 것은 옥탑방과, 매달 꼬박꼬박 들어올 얼마간의 부모님이 남기고 가신 집의 월세.

그리고, 태평양처럼 넓은 '자유'!!!


 대한민국에 홀로 남겨진 태만생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장기' 보다는 '성숙담' 에 가까워보인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고3 - 19세의 나이면 성장은 끝난 상태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유독 자식을 오랫동안 품안에 가둬두려 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미 수많은 외국의 19세들은 어른대접을 받는다. 무한한 자유와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되는 어른. 

 육체적, 지식적으로 어른인 만생은 부모의 품안에서 벗어남으로써 진정한 어른으로 성숙되어가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 작품의 주된 배경 공간인 옥탑방과 이태원은 서로 양 극단에 처해있는 장소이다. 옥탑방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 이태원은 모든 욕망을 갈무리하고 수많은 책임들이 흐르는 냉혹한 사회. 모든 어른들이 생활하는 바로 그러한 공간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며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일터와, 한 몸 뉘일수 있는 휴식공간. 대한민국의 모든 어른들이 그러하듯, 만생도 이 두 공간을 넘나들며 자유와 책임의 인과관계를 깨달아간다. 

 

 서두에 언급했듯, 만생과 그 주변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애매'하다.

유진의 육체를 탐하게 된 만생의 마음도 아직은 오선과의 사이에 애매하게 걸려있다. 친구 태화는 또 어떤가. 태화는 성 정체성이 애매하다. 만생의 입장에서는 오선도 애매하기만 하다. 대체 그녀는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 결핍된 무언가를 찾아 헤매이는가. 

심지어 이야기의 종반에는 부모님의 행방조차 애매해진다. 온통 애매한 속에서, 결국 '애매리카'!! 까지 외치게 되는 만생.


작품 안에서 애매하지 않은 것은, '확실한 것' 은 딱 두가지이다.

할머니처럼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는 것과 미미형님은 세상의 모든 편견을 떨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선택' 했다는 것.

그로 인해 미미형님은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포기' 했다는 것. 

 

만생은 그 무엇보다 가장 애매한 현상을 맞이한 순간, 그 애매한 것을 확실한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강릉으로 향한다.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언제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만생이 진실을 찾아 강릉으로 떠나는 순간, 만생은 한층 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을 찾아낼 공간인 강릉.

만생은 이 작품 안에서 가장 애매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미미형님의 이미지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는 애매한 것을, 애매한대로 넘기는 선택을 하게 된다.용기를 가지고 진실을 마주할 준비를 했지만, 결국 그는 진실과 마주하지 않는다. 미미형님이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여자라는 환상을 선택해 현실로 끌어내렸듯이, 만생은 애매함은 애매한대로 놓아두는 쪽을 선택한다. 삶과의 타협.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아프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자신과의 타협. 살기위해서 찾아낸 자신의 삶과의 타협점.

그 타협점을 찾아내는 순간 만생은 한층 더 어른이 된다.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어른'. 


 

유머러스한 문장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디테일함이 캐릭터들에게 대단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만생과 태화, 오선, 유진은 물론이고, 만생의 부모님과 개사장, 싱싱회수산 아저씨와 미미형님, 이태원 매장에 들르는 일본인 관광객 아주머니들까지. 인간 군상의 특징을 정확히 잡아내 종이 위에서 펄떡펄떡 뛰게 만드는 능력은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듯 하다. 이 작품엔 딱히 서사라고 부를만한 큰 이야기의 줄기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시트콤처럼 작은 에피소드들이 모이는데, 얼핏 정신없고 산만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나, 이 작품은 이야기의 줄기를 따라가는 류의 작품 자체가 아니다. 

 작가는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시선을 화자이자 주인공인 만생의 감정의 흐름으로 유도해내는데, 그 '유혹의 기술' 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도 모르게 술술 끌려가고 있었다' 고 할 만하다.

 이러한 기분은 천명관 작가님의 '고래'를 읽었을때와 비슷하다. '고래' 가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시선을 이야기의 줄기 깊숙히 깊숙히 빨아들이는 유혹의 기술을 선보인다면, 이 작품은 완벽히 그 대척점에 서있는 셈이다. 


확실히 이 작품의 작가인 황현진님은 세상을 보는 눈이 굉장히 좋은 듯 하다. 이런 디테일한 인물묘사력에 흡입력 있는 문장력, 그리고 아직 본격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서사를 얽어나가는 뜨개질 실력까지 발휘한다면 정말 무지막지하게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듯 하다. 이 작품보다 앞으로의 작품이 훨씬훨씬 더 기대된다. 






PS.

책 날개에 붙어있는 작가소개를 안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중반쯤 넘어서서, '작가가 여자였어??????" 를 10번쯤 외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대체 남자들의 '이런 거' 를 어떻게 잡아냈을까?? 만생과 유진간의 첫경험이나, 화장품 냄새를 맡고 만생이 흥분하는 장면이라던가, 184페이지 11~13번째 줄에 묘사된 그런 심리.....  이런건 단순히 상상으로 될 부분들이 아니다.

 황현진 작가님이 기혼이시라면, 배우자의 내밀한 부분까지 심층 인터뷰를 했을수도 있겠으나....

암튼....184페이지 보고 다시한번 책날개의 작가님사진을 보고, 문동 카페에서 작가와의 인터뷰 장면도 찾아봤다.

이분 여자 맞으시다.

근데. 아무래도, 한밤의 아이들 '살림 시나이' 급의 능력을 타고나신게 틀림없다. 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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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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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에서 '인상주의' 의 등장은 대단히 중요했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의 봉건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도래하며 당시 주류 화가들의 주 고객이었던 귀족들이 몰락해갔다. 이제 '주류' 화가들은 왕족과 귀족보다 부유한 상인들의 그림을 그려줘야 했다. 그림은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일종의 선전 도구였다. 인상주의는 그런 주류 미술사회를 풍자하고 비틀면서 시작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의 '인상' 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사물이나 자연을 보고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을 색채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찬란하게 반짝이는 물결을, 온 몸으로 빛을 반사해내는 수련을, 흩날리는 풀잎을, 인생 전체가 담긴 누군가의 얼굴을, 대기를 흐트러뜨리는 바람을 그려냈다. 

 지금 이 순간 느끼는 내 감정을 화폭에 담아내려 했던 것이다. 

인상주의는 후대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 표현주의, 추상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인상주의 그림을 처음 보고 공부할때 문학, 특히 '시' 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의 감정을, 그 감정을 잊기 전에 재빨리 표현해낸다. 화가는 색채로, 시인은 단어로. 

감정을 담은 색채를 얽어 그림을 그려내듯, 이미지를 담은 단어를 얽어 문장을 적어낸다. 

참 닮아있지 않은가? 화가의 눈이 보는 세상을 그리는 것과, 시인의 눈이 보는 세상을 적어내는 것.


'희랍어 시간'을 읽어가면서, 마치 인상주의 화가의 화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붓질 하나, 쿡 찍은 색 하나가 온갖 감정을 담아내듯, '희랍어 시간' 에는 감정이 가득 녹아있는 단어들이 수많은 인상을 그려내며 얽혀있었다.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의 이야기.

두 화자의 비중은 거의 비슷하지만, 내가 남자여서였을까...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가 말을 잃은 여자를 만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시력을 잃는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시각은 그 무엇보다 중요할터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 는 시각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자아가 어떻게 붕괴되는지 [눈먼 자들의 도시] 라는 작품을 통해 그려낸 적 있다. 온 지구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시각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희랍어 시간' 을 읽어가는 도중에 우연히 틴틴파이브 라는 그룹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개그맨  이동우씨의 기사를 접했다. 아마도 책속의 주인공과 개그맨 이동우씨가 앓는 병은 비슷한 병일터다. 이동우씨도 현재 빛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한다. 책속의 주인공이 안경 없는 상황을 묘사할 때와 상당히 비슷하다. 감동적인 내용의 기사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소름이 오소소 돋아날 정도로 섬뜩했다. 그의 인터뷰에는 시력을 잃은 삶의 공포가 절절이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속의 남자 역시 이동우씨처럼 패닉-거부-분노-수용 의 과정을 겪었을까? 

그가 사랑했던 여인을 잃었던 것은 그가 '거부' 와 '분노' 의 과정속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결국 어린시절에 떠나온 조국으로 돌아가는 결정에서 '수용', '체념'의 느낌이 묻어났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작품속의 남자는 익숙한 외국을 떠나 생경한 조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역시 그는 한국인이었고, 그에게는 한국사회가 편했다. 그는 암흑이 된 조국을 원했다. 타인에게 애써 웃지 않아도 되는. 조국.   

 그는 앞으로 내일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의 눈은 언제나 과거를 향해 있을 것이고, 그가 보는 모든 것들은 과거의 것들일터다.

작가는 마치 그런 그의 삶을 위로하듯 매 순간 그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정성껏 제련해서 아름답게 주조해낸다. 


작가는 시간과 공간속에 흐르는 남녀의 감정들을 굉장히 농밀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시력을 잃고, '삶'을 지나온 시간속에 얼리고 있는 중인 남자와 삶을 잃고 그 반동으로 말까지 잃어버린 여자의 이야기.  


'삶' 이란 무엇일까? '살아가다' 는 것 은 무엇일까.

눈금이 빼곡하게 적힌 자 위를 걸어가는 느낌일까. 

아니면 한없이 뒤로 미끄러져가는 레일 위에서 제자리걸음 하는 중인걸까.

살아'가는'  것일까 살아 '오는' 것일까 살아 '내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삶이란 감정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흘러가든, 흘러왔든, 30년을 살았든, 10년을 살았든, 각자가 살아온 시간들 속에는 감정들이 빼곡하게 묻어있다. 

한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의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을터다.


수용이란 체념과 비슷하다. 놓지 않으면 채워넣을 수 없다.

버리지 않으면 잡을 수 없다. 

나는 삶 속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채워넣고 있는가.


어차피 삶이란 잔뜩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놓아가는 과정이다.

꿈도, 사랑도, 추억도, 욕망도, 그리고 종국에는, 호흡까지도. 


시력을 잃은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

그들은 그 빈 자리를 무엇으로 메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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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니가 보고 싶어 tam, 난다의 탐나는 이야기 1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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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 는 3년간 몇편의 단편소설을 낸 소설가이다. 

3년이라는 시간, 작품수가 많아도 중견작가라고 부르기에는 짧은 시간. 신출내기, 신인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잘 어울릴터다. 그녀의 작품들은 소위 '장르' 그러니까, 그녀가 만난 문단 소설가의 입을 빌리자면 "부적절한 주제에 대해 모나게 쓴 이야기' 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의 위치는 '등단했다' 고 하기도 뭐하고, '등단도 못했다' 고 하기도 뭐한, 대체적으로 뭐~한 포지션인 셈이다. 그리고 그녀는 전남친인 '용기' 의 입을 빌리자면, '안고 있을 때도 안고 있는 것 같지 않고, 만지고 있을 때에도 만져지지 않던' 게다가 '피스타치오인지 피스타키오인지 그런 알 수 없는 초록색 맛' 도 날 뿐더러, 표정까지도 '떨떠름한 초록색', '미로' 같은 심지어 '부비 트랩이 가득한 미로' 같은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쓰는 소설들에는 용도 나오고, 차원 이동 포탈이 등장할 뿐 아니라, 늑대족, 로봇, 얼음여왕, 물고기 왕자, 공주 등등 온갖 판타지스러운, 아니 그러니까 '장르 문학' 스러운 - 아니, 장르 소설가가 맞으니, '장르 문학에 걸맞는' 캐릭터들이 한가득 등장하고, 그에 걸맞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런 그녀에게는 '용기' 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회사 동료였다가 절친한 사이로 발전한 '선이' 가 소개시켜 주었던 용기는 재화와 헤어진 뒤 발랄하고 어린 여자친구와 함께 재미나게 연애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럭비선수 출신이기도 했던 그는 지금은 사설 경비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빡빡한 근무환경 속에서도 무던한 성격의 충실한 연인이었고, 착한 남친이었다.


 이야기는 여주인공인 재화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재화' 챕터와 남주인공인 용기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용기' 챕터가 교차되며 등장한다. 재화의 이야기는 재화 주변의 이야기들과 함께 자신이 쓴 단편소설이 소개되며 마무리된다. 즉, '재화' 챕터는 모두 동일하게 재화가 하룻동안 겪는 일들이 나오고, 결국엔 자신이 쓴 단편소설을 교정하면서 마무리 되는 플롯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재화가 쓴 단편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전남친 '용기' 이기 때문이고, 재화는 소설속에서 전남친 용기를 대부분 죽였기 때문이다.



 

 작품속의 '재화' 라는 인물은 그 독특한 개성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잘 이입되는 편이다. 재화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주변 일들의 세세함과 디테일함이 충분히 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재화를 독촉하는 선배 편집자, 작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주는 명품조연 선이, 그리고 그녀가 써내려가는 소설의 내용이나 말투, 대사들이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다. 인물 자체의 매력이 충분히 발산된다.

 반면, '용기' 라는 캐릭터는 시종일관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는 느낌이다. 그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가 마치 가상인물처럼 허공에 붕 떠있는 느낌이다. 특히 용기와 친밀한 관계인,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여자친구' 는 더더욱 그렇다. 마치 모니터속의 애인같은 느낌이랄까. 용기와 '여자친구' 의 관계는 디테일함이나 세세함이 재화와 주변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그것들의 반의 반도 못미친다. 때문에 용기와 여자친구가 헤어지는 장면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고, 헤어지게 되는 이유까지도 물음표를 던지게 만든다. 이 둘의 관계과 그 어그러짐이 너무 단편적이고 이차원적인 느낌이다. 

 때문에, 용기의 행동과 생각, 인과관계까지 모두다 조금씩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예를 들면, 재화의 성격이나 특이점들이 주변인물들과의 관계, 일과 행동등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 용기의 일상이나 마음은 주로 용기 자신의 독백을 통해 나타난다는 점을 짚어볼 수 있다. 용기의 일상과 용기라는 인물 자체가 재화에게 있어서는 가상의 존재, 꿈속의 존재와 같은 느낌이다.  


이 작품은 재화-용기, 용기-여자친구 의 두 관계가 가장 중심이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세명의 관계를 일종의 삼각관계처럼 풀었어야 했는데, 용기와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단순하게 접근함으로서 균형을 잃고 말았다.

 결국 이러한 부분들이 재화와 용기 사이의 관계까지도 조금씩 무너뜨려서,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줘야 할 클라이맥스가 밍밍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만약, 이런 장치가 작가의 의도였을수도 있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특성' 상, '재화' 챕터의 느낌과 '용기' 챕터의 느낌을 의도적으로 이질적으로 가지고 갔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외려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재화' 라는 인물을 묘사하는데 있어 자기 자신과 주변환경, 인물들을 적절히 활용한 데 반해 '용기' 라는 인물을 묘사하는데는 거의 대부분을 상상과 간접경험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되기도 한다. 아마 이러한 단점은 여성독자들에게는 큰 무리가 없겠지만, 남성독자들에게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지점이 될 터이다. 


 이 작품속의 볼거리는 용기와 재화의 이야기 말고도 재화의 챕터에만 들어있는 재화의 단편소설들도 큰 몫을 한다. 이 단편은 재화와 용기 모두에게 적용시켜 볼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재화가 썼다는 점에서 재화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 통통튀는 여덟편의 작품들은 판타지, SF, 동화와 우화를 넘나들며 재화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전 남자친구' 용기의 모습과 그 종말을 그려낸다. 


위에 언급한 '지적질' 은 개인적으로 저자에게 느끼는 아쉬운 부분이라면, 사실 그 밖의 부분은 대부분 칭찬하고 박수치고 싶은 것들임은 사실이다. 특히 재화와 용기 사이에 존재하는 운명적인 관계 그 자체에 대한 메타포를 담고있는 '환상적인 기현상' 은 그야말로 상상초월이랄 수 있다. 재화가 쓴 단편들 또한 간단하게 시놉시스처럼 그려지고 있지만, 그 각각의 작품들 모두 충분한 완성도와 역시 통통 튀는 상상력들이 기발하게 들어가있다. 재화와 용기뿐 아니라 주변인물들까지, 각각의 인물 자체가 갖고있는 매력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환상적인 기현상과 미스테리에 스릴러까지 넘나드는 다채로운 내러티브들도 정말 참신하다. 도저히 지루할 새가 없이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면서도, 재치넘치고 유머 가득한 따뜻한 문체도 책에서 손을 못 떼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정말ㄹ '재미있다!'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순수문학보다는 장르문학에 가까울터다.

아니, 그 둘을 나눈게 대체 누구이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톨스토이' 와 '아이작 아시모프' 의 차이를 나는 도통 정리할 수가 없다.

우리의 삶 속에는 얼마나 신비한 일들이, 판타스틱한 일들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법같은 일들이 얼마나 가득한가?

미스테리한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생명의 신비! 우리 엄마와 아빠가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까지 얼마나 많은 마법같은 일들과, 드라마같은 반전에 반전들이 거듭되었을 것인가? 


 '덧니가 보고싶어' 는 올 해에 내가 만난 가장 유쾌하고 발랄한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최근 한국 순수문학은 지나치게 무거운 감이 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많이 무겁고, 고통스럽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모든 작품들이 지나치게 현실의 어두운 부분들만을 디테일하고 깊이있게 파고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더 큰 고난과 더 큰 고통이 아니잖은가? 

 

절망을 이겨내는 것은, 바로 유머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는 유쾌하고 발랄한 이야기!! 

재화와 용기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우울함을 극뽁!!!! 하기를 바래본다.


한가지 또 아쉬운 점은, 책의 디자인과 가격이다. 

작은 판형에, 가벼운 무게에, 두꺼운 도화지 한장뿐인 앞뒷표지...

출판사에서 가격을 책정하는 과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문고판에 가까운 이 책이 무려 11000원 이라는 점은, 

솔직히 아주, 아주아주 아쉽다.ㅠㅠ 

그래서 별 하나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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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아는만큼 보인다] 로 깊은 인상을 남기신 손철주 선생님이 참여하신 미술 에세이 작품.  손철주 선생님은 동네 훈장님같은 따뜻함과 평온한 문체가 참 와닿았더랬다. [그림, 아는만큼 보인다]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엘리트 의식이나 가르치려는 듯한 느낌이지만, 정작 읽기 시작하면, 쉬운 단어와 편안한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아주 좋았던 책이었다. 이주은 선생님도 그림을 통한 에세이를 남기시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이 둘의 시너지가 어떤 효과를 일으켰을지, 궁금하기 짝이없다. 

 

 

 

 

 김재훈 작가의 캐리커쳐 2번째 책. 김재훈 작가는 최근 [나는 꼼수다] 의 공식 티셔츠와 후드티에 사용된 캐리커쳐를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김재훈 작가의 캐리커쳐는 우리가 그동안 알고있던 특징의 극대화와 과장을 사용하지 않고, 보다 카툰에 가까운 캐리커쳐를 보여준다. 쉬워보이지만 눈이 중요한 작업인 캐리커쳐. 과연 어떤 노하우들이 들어있을지 궁금하다. 

 

 

 

 

 영화평론가이자 뛰어난 인터뷰어. 그리고 맛깔나는 문장력까지 갖고 계실뿐더라, '숨이 많이 섞인' 섹시한 목소리의 소유자 김혜리 기자님의 그림 산문집. 대부분의 미술 에세이스트 들이 유명한 클래식들을 기반하는데 비해, 상당히 최근의. 그리고 대부분 유럽의 스타일리쉬한 작품들을 기반하고 있다.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타겟팅 한다. 그렇기에 당연히 잘 알려진 그림들. 특히 클래식들을 선호하게 되는데, 김혜리 기자님의 과감한 선택이 어떤 결과로 귀결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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