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니가 보고 싶어 tam, 난다의 탐나는 이야기 1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재화' 는 3년간 몇편의 단편소설을 낸 소설가이다. 

3년이라는 시간, 작품수가 많아도 중견작가라고 부르기에는 짧은 시간. 신출내기, 신인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잘 어울릴터다. 그녀의 작품들은 소위 '장르' 그러니까, 그녀가 만난 문단 소설가의 입을 빌리자면 "부적절한 주제에 대해 모나게 쓴 이야기' 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의 위치는 '등단했다' 고 하기도 뭐하고, '등단도 못했다' 고 하기도 뭐한, 대체적으로 뭐~한 포지션인 셈이다. 그리고 그녀는 전남친인 '용기' 의 입을 빌리자면, '안고 있을 때도 안고 있는 것 같지 않고, 만지고 있을 때에도 만져지지 않던' 게다가 '피스타치오인지 피스타키오인지 그런 알 수 없는 초록색 맛' 도 날 뿐더러, 표정까지도 '떨떠름한 초록색', '미로' 같은 심지어 '부비 트랩이 가득한 미로' 같은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쓰는 소설들에는 용도 나오고, 차원 이동 포탈이 등장할 뿐 아니라, 늑대족, 로봇, 얼음여왕, 물고기 왕자, 공주 등등 온갖 판타지스러운, 아니 그러니까 '장르 문학' 스러운 - 아니, 장르 소설가가 맞으니, '장르 문학에 걸맞는' 캐릭터들이 한가득 등장하고, 그에 걸맞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런 그녀에게는 '용기' 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회사 동료였다가 절친한 사이로 발전한 '선이' 가 소개시켜 주었던 용기는 재화와 헤어진 뒤 발랄하고 어린 여자친구와 함께 재미나게 연애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럭비선수 출신이기도 했던 그는 지금은 사설 경비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빡빡한 근무환경 속에서도 무던한 성격의 충실한 연인이었고, 착한 남친이었다.


 이야기는 여주인공인 재화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재화' 챕터와 남주인공인 용기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용기' 챕터가 교차되며 등장한다. 재화의 이야기는 재화 주변의 이야기들과 함께 자신이 쓴 단편소설이 소개되며 마무리된다. 즉, '재화' 챕터는 모두 동일하게 재화가 하룻동안 겪는 일들이 나오고, 결국엔 자신이 쓴 단편소설을 교정하면서 마무리 되는 플롯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재화가 쓴 단편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전남친 '용기' 이기 때문이고, 재화는 소설속에서 전남친 용기를 대부분 죽였기 때문이다.



 

 작품속의 '재화' 라는 인물은 그 독특한 개성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잘 이입되는 편이다. 재화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주변 일들의 세세함과 디테일함이 충분히 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재화를 독촉하는 선배 편집자, 작품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주는 명품조연 선이, 그리고 그녀가 써내려가는 소설의 내용이나 말투, 대사들이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다. 인물 자체의 매력이 충분히 발산된다.

 반면, '용기' 라는 캐릭터는 시종일관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는 느낌이다. 그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가 마치 가상인물처럼 허공에 붕 떠있는 느낌이다. 특히 용기와 친밀한 관계인,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여자친구' 는 더더욱 그렇다. 마치 모니터속의 애인같은 느낌이랄까. 용기와 '여자친구' 의 관계는 디테일함이나 세세함이 재화와 주변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그것들의 반의 반도 못미친다. 때문에 용기와 여자친구가 헤어지는 장면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고, 헤어지게 되는 이유까지도 물음표를 던지게 만든다. 이 둘의 관계과 그 어그러짐이 너무 단편적이고 이차원적인 느낌이다. 

 때문에, 용기의 행동과 생각, 인과관계까지 모두다 조금씩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예를 들면, 재화의 성격이나 특이점들이 주변인물들과의 관계, 일과 행동등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 용기의 일상이나 마음은 주로 용기 자신의 독백을 통해 나타난다는 점을 짚어볼 수 있다. 용기의 일상과 용기라는 인물 자체가 재화에게 있어서는 가상의 존재, 꿈속의 존재와 같은 느낌이다.  


이 작품은 재화-용기, 용기-여자친구 의 두 관계가 가장 중심이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세명의 관계를 일종의 삼각관계처럼 풀었어야 했는데, 용기와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단순하게 접근함으로서 균형을 잃고 말았다.

 결국 이러한 부분들이 재화와 용기 사이의 관계까지도 조금씩 무너뜨려서,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줘야 할 클라이맥스가 밍밍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만약, 이런 장치가 작가의 의도였을수도 있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특성' 상, '재화' 챕터의 느낌과 '용기' 챕터의 느낌을 의도적으로 이질적으로 가지고 갔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외려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재화' 라는 인물을 묘사하는데 있어 자기 자신과 주변환경, 인물들을 적절히 활용한 데 반해 '용기' 라는 인물을 묘사하는데는 거의 대부분을 상상과 간접경험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되기도 한다. 아마 이러한 단점은 여성독자들에게는 큰 무리가 없겠지만, 남성독자들에게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지점이 될 터이다. 


 이 작품속의 볼거리는 용기와 재화의 이야기 말고도 재화의 챕터에만 들어있는 재화의 단편소설들도 큰 몫을 한다. 이 단편은 재화와 용기 모두에게 적용시켜 볼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재화가 썼다는 점에서 재화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 통통튀는 여덟편의 작품들은 판타지, SF, 동화와 우화를 넘나들며 재화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전 남자친구' 용기의 모습과 그 종말을 그려낸다. 


위에 언급한 '지적질' 은 개인적으로 저자에게 느끼는 아쉬운 부분이라면, 사실 그 밖의 부분은 대부분 칭찬하고 박수치고 싶은 것들임은 사실이다. 특히 재화와 용기 사이에 존재하는 운명적인 관계 그 자체에 대한 메타포를 담고있는 '환상적인 기현상' 은 그야말로 상상초월이랄 수 있다. 재화가 쓴 단편들 또한 간단하게 시놉시스처럼 그려지고 있지만, 그 각각의 작품들 모두 충분한 완성도와 역시 통통 튀는 상상력들이 기발하게 들어가있다. 재화와 용기뿐 아니라 주변인물들까지, 각각의 인물 자체가 갖고있는 매력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환상적인 기현상과 미스테리에 스릴러까지 넘나드는 다채로운 내러티브들도 정말 참신하다. 도저히 지루할 새가 없이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면서도, 재치넘치고 유머 가득한 따뜻한 문체도 책에서 손을 못 떼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정말ㄹ '재미있다!'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순수문학보다는 장르문학에 가까울터다.

아니, 그 둘을 나눈게 대체 누구이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톨스토이' 와 '아이작 아시모프' 의 차이를 나는 도통 정리할 수가 없다.

우리의 삶 속에는 얼마나 신비한 일들이, 판타스틱한 일들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법같은 일들이 얼마나 가득한가?

미스테리한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생명의 신비! 우리 엄마와 아빠가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까지 얼마나 많은 마법같은 일들과, 드라마같은 반전에 반전들이 거듭되었을 것인가? 


 '덧니가 보고싶어' 는 올 해에 내가 만난 가장 유쾌하고 발랄한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최근 한국 순수문학은 지나치게 무거운 감이 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많이 무겁고, 고통스럽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모든 작품들이 지나치게 현실의 어두운 부분들만을 디테일하고 깊이있게 파고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는 것은 더 큰 고난과 더 큰 고통이 아니잖은가? 

 

절망을 이겨내는 것은, 바로 유머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는 유쾌하고 발랄한 이야기!! 

재화와 용기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우울함을 극뽁!!!! 하기를 바래본다.


한가지 또 아쉬운 점은, 책의 디자인과 가격이다. 

작은 판형에, 가벼운 무게에, 두꺼운 도화지 한장뿐인 앞뒷표지...

출판사에서 가격을 책정하는 과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문고판에 가까운 이 책이 무려 11000원 이라는 점은, 

솔직히 아주, 아주아주 아쉽다.ㅠㅠ 

그래서 별 하나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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