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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 제16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황현진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9월
평점 :
여기 한 소년, 아니, 청년? 음 - 암튼 애매한 포지션의 남자가 있다.
아마 나이를 말하면, 모두가 '애매한 포지션' 이라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아, 여기서 말한 포지션은 '어른' 과 '아이' 의 포지션을 말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되는, 사실 어른과 아이를 나눈다는 개념도 조금은 모호하지만 이 나이대의 남녀들만큼 애매하지는 않을터다. 아직 교복을 벗지는 않았으나, 세상과 학교에 반쯤 걸쳐있는 고3. 그것도 취업을 앞둔 실업계 고등학교의 3학년 남학생.
한국에는 공고와 상고가 있다. 최근에는 정보고교등의 세련된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할 수 있는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이다. 대학으로 치면 칼리지, -전문대 정도로 말할 수 있겠으나, 어차피 우리나라에서의 대학교육이란 학문을 연구한다기 보다는 취업을 위한 통로이므로 사실 개념상의 큰 차이는 없을터다.
암튼, 전문대도 마찬가지지만 이러한 실업계 고등학교의 경우 졸업반의 경우엔 2학기가 되기 전에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대학과 실업계 고교의 구분이 명확했던 적이 있었다. 대다수의 기업들에서 실무직은 실업계 고교 출신 고졸자들로 채워넣고, 관리직은 대학출신 대졸자들로 채워넣던, 그런 시절 말이다. 실업계 출신 학생들은 당연하게 취업했더랬다.
살기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겠지만, 우리 아버지 시절만 해도 그랬다. 대졸자보다는 고졸자들이 훨씬 많던 그런 시절. 일찌감치 산업 일선에 뛰어든 19살 소년들은 소년이 아닌, 어른이었다.
공고생 태만생.
바로 위에 구구절절하게 언급한 바로 그 시기, 진로를 선택하는 그 시기에 "취업" 을 택함으로써 만생은 '사회' 라는 망망대해에 휙 하고 던져지게 된다. 그리고, 부모님은 태평하시게도 외아들을 한국에 휙 떨궈놓고, 태평양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휙 올라타게 된다!!
이제 태만생에게 주어진 것은 옥탑방과, 매달 꼬박꼬박 들어올 얼마간의 부모님이 남기고 가신 집의 월세.
그리고, 태평양처럼 넓은 '자유'!!!
대한민국에 홀로 남겨진 태만생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장기' 보다는 '성숙담' 에 가까워보인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고3 - 19세의 나이면 성장은 끝난 상태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유독 자식을 오랫동안 품안에 가둬두려 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미 수많은 외국의 19세들은 어른대접을 받는다. 무한한 자유와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되는 어른.
육체적, 지식적으로 어른인 만생은 부모의 품안에서 벗어남으로써 진정한 어른으로 성숙되어가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 작품의 주된 배경 공간인 옥탑방과 이태원은 서로 양 극단에 처해있는 장소이다. 옥탑방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 이태원은 모든 욕망을 갈무리하고 수많은 책임들이 흐르는 냉혹한 사회. 모든 어른들이 생활하는 바로 그러한 공간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며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일터와, 한 몸 뉘일수 있는 휴식공간. 대한민국의 모든 어른들이 그러하듯, 만생도 이 두 공간을 넘나들며 자유와 책임의 인과관계를 깨달아간다.
서두에 언급했듯, 만생과 그 주변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애매'하다.
유진의 육체를 탐하게 된 만생의 마음도 아직은 오선과의 사이에 애매하게 걸려있다. 친구 태화는 또 어떤가. 태화는 성 정체성이 애매하다. 만생의 입장에서는 오선도 애매하기만 하다. 대체 그녀는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 결핍된 무언가를 찾아 헤매이는가.
심지어 이야기의 종반에는 부모님의 행방조차 애매해진다. 온통 애매한 속에서, 결국 '애매리카'!! 까지 외치게 되는 만생.
작품 안에서 애매하지 않은 것은, '확실한 것' 은 딱 두가지이다.
할머니처럼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는 것과 미미형님은 세상의 모든 편견을 떨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선택' 했다는 것.
그로 인해 미미형님은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포기' 했다는 것.
만생은 그 무엇보다 가장 애매한 현상을 맞이한 순간, 그 애매한 것을 확실한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강릉으로 향한다.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언제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만생이 진실을 찾아 강릉으로 떠나는 순간, 만생은 한층 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을 찾아낼 공간인 강릉.
만생은 이 작품 안에서 가장 애매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미미형님의 이미지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는 애매한 것을, 애매한대로 넘기는 선택을 하게 된다.용기를 가지고 진실을 마주할 준비를 했지만, 결국 그는 진실과 마주하지 않는다. 미미형님이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여자라는 환상을 선택해 현실로 끌어내렸듯이, 만생은 애매함은 애매한대로 놓아두는 쪽을 선택한다. 삶과의 타협.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아프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자신과의 타협. 살기위해서 찾아낸 자신의 삶과의 타협점.
그 타협점을 찾아내는 순간 만생은 한층 더 어른이 된다.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어른'.
유머러스한 문장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디테일함이 캐릭터들에게 대단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만생과 태화, 오선, 유진은 물론이고, 만생의 부모님과 개사장, 싱싱회수산 아저씨와 미미형님, 이태원 매장에 들르는 일본인 관광객 아주머니들까지. 인간 군상의 특징을 정확히 잡아내 종이 위에서 펄떡펄떡 뛰게 만드는 능력은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듯 하다. 이 작품엔 딱히 서사라고 부를만한 큰 이야기의 줄기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시트콤처럼 작은 에피소드들이 모이는데, 얼핏 정신없고 산만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나, 이 작품은 이야기의 줄기를 따라가는 류의 작품 자체가 아니다.
작가는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시선을 화자이자 주인공인 만생의 감정의 흐름으로 유도해내는데, 그 '유혹의 기술' 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도 모르게 술술 끌려가고 있었다' 고 할 만하다.
이러한 기분은 천명관 작가님의 '고래'를 읽었을때와 비슷하다. '고래' 가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시선을 이야기의 줄기 깊숙히 깊숙히 빨아들이는 유혹의 기술을 선보인다면, 이 작품은 완벽히 그 대척점에 서있는 셈이다.
확실히 이 작품의 작가인 황현진님은 세상을 보는 눈이 굉장히 좋은 듯 하다. 이런 디테일한 인물묘사력에 흡입력 있는 문장력, 그리고 아직 본격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서사를 얽어나가는 뜨개질 실력까지 발휘한다면 정말 무지막지하게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듯 하다. 이 작품보다 앞으로의 작품이 훨씬훨씬 더 기대된다.
PS.
책 날개에 붙어있는 작가소개를 안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중반쯤 넘어서서, '작가가 여자였어??????" 를 10번쯤 외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대체 남자들의 '이런 거' 를 어떻게 잡아냈을까?? 만생과 유진간의 첫경험이나, 화장품 냄새를 맡고 만생이 흥분하는 장면이라던가, 184페이지 11~13번째 줄에 묘사된 그런 심리..... 이런건 단순히 상상으로 될 부분들이 아니다.
황현진 작가님이 기혼이시라면, 배우자의 내밀한 부분까지 심층 인터뷰를 했을수도 있겠으나....
암튼....184페이지 보고 다시한번 책날개의 작가님사진을 보고, 문동 카페에서 작가와의 인터뷰 장면도 찾아봤다.
이분 여자 맞으시다.
근데. 아무래도, 한밤의 아이들 '살림 시나이' 급의 능력을 타고나신게 틀림없다. 레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