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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서양 미술사에서 '인상주의' 의 등장은 대단히 중요했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의 봉건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도래하며 당시 주류 화가들의 주 고객이었던 귀족들이 몰락해갔다. 이제 '주류' 화가들은 왕족과 귀족보다 부유한 상인들의 그림을 그려줘야 했다. 그림은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일종의 선전 도구였다. 인상주의는 그런 주류 미술사회를 풍자하고 비틀면서 시작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의 '인상' 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사물이나 자연을 보고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을 색채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찬란하게 반짝이는 물결을, 온 몸으로 빛을 반사해내는 수련을, 흩날리는 풀잎을, 인생 전체가 담긴 누군가의 얼굴을, 대기를 흐트러뜨리는 바람을 그려냈다.
지금 이 순간 느끼는 내 감정을 화폭에 담아내려 했던 것이다.
인상주의는 후대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 표현주의, 추상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인상주의 그림을 처음 보고 공부할때 문학, 특히 '시' 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의 감정을, 그 감정을 잊기 전에 재빨리 표현해낸다. 화가는 색채로, 시인은 단어로.
감정을 담은 색채를 얽어 그림을 그려내듯, 이미지를 담은 단어를 얽어 문장을 적어낸다.
참 닮아있지 않은가? 화가의 눈이 보는 세상을 그리는 것과, 시인의 눈이 보는 세상을 적어내는 것.
'희랍어 시간'을 읽어가면서, 마치 인상주의 화가의 화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붓질 하나, 쿡 찍은 색 하나가 온갖 감정을 담아내듯, '희랍어 시간' 에는 감정이 가득 녹아있는 단어들이 수많은 인상을 그려내며 얽혀있었다.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의 이야기.
두 화자의 비중은 거의 비슷하지만, 내가 남자여서였을까...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가 말을 잃은 여자를 만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시력을 잃는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시각은 그 무엇보다 중요할터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 는 시각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자아가 어떻게 붕괴되는지 [눈먼 자들의 도시] 라는 작품을 통해 그려낸 적 있다. 온 지구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시각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희랍어 시간' 을 읽어가는 도중에 우연히 틴틴파이브 라는 그룹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개그맨 이동우씨의 기사를 접했다. 아마도 책속의 주인공과 개그맨 이동우씨가 앓는 병은 비슷한 병일터다. 이동우씨도 현재 빛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한다. 책속의 주인공이 안경 없는 상황을 묘사할 때와 상당히 비슷하다. 감동적인 내용의 기사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소름이 오소소 돋아날 정도로 섬뜩했다. 그의 인터뷰에는 시력을 잃은 삶의 공포가 절절이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속의 남자 역시 이동우씨처럼 패닉-거부-분노-수용 의 과정을 겪었을까?
그가 사랑했던 여인을 잃었던 것은 그가 '거부' 와 '분노' 의 과정속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결국 어린시절에 떠나온 조국으로 돌아가는 결정에서 '수용', '체념'의 느낌이 묻어났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작품속의 남자는 익숙한 외국을 떠나 생경한 조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역시 그는 한국인이었고, 그에게는 한국사회가 편했다. 그는 암흑이 된 조국을 원했다. 타인에게 애써 웃지 않아도 되는. 조국.
그는 앞으로 내일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의 눈은 언제나 과거를 향해 있을 것이고, 그가 보는 모든 것들은 과거의 것들일터다.
작가는 마치 그런 그의 삶을 위로하듯 매 순간 그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정성껏 제련해서 아름답게 주조해낸다.
작가는 시간과 공간속에 흐르는 남녀의 감정들을 굉장히 농밀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시력을 잃고, '삶'을 지나온 시간속에 얼리고 있는 중인 남자와 삶을 잃고 그 반동으로 말까지 잃어버린 여자의 이야기.
'삶' 이란 무엇일까? '살아가다' 는 것 은 무엇일까.
눈금이 빼곡하게 적힌 자 위를 걸어가는 느낌일까.
아니면 한없이 뒤로 미끄러져가는 레일 위에서 제자리걸음 하는 중인걸까.
살아'가는' 것일까 살아 '오는' 것일까 살아 '내는' 것일까.
확실한 것은, 삶이란 감정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흘러가든, 흘러왔든, 30년을 살았든, 10년을 살았든, 각자가 살아온 시간들 속에는 감정들이 빼곡하게 묻어있다.
한 사람의 삶은 그 사람의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을터다.
수용이란 체념과 비슷하다. 놓지 않으면 채워넣을 수 없다.
버리지 않으면 잡을 수 없다.
나는 삶 속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채워넣고 있는가.
어차피 삶이란 잔뜩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놓아가는 과정이다.
꿈도, 사랑도, 추억도, 욕망도, 그리고 종국에는, 호흡까지도.
시력을 잃은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
그들은 그 빈 자리를 무엇으로 메꾸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