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도널드 리치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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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예민한 사람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음. 이견은 당신말이 다 맞음.


※서평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에게 제공받았습니다.

만... 정말 이 책을 읽은 기록을 남길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다른 분들이 올린 서평들을 보니, 아주아주 우호적인 평들이 많아 마음 편히 이런 뉘앙스의 독서감상을 올려도 좋겠다, 싶었다.)


그 탓에 제공받은 지 2주만에 올려야 하는 이 글을 약속 기한보다 한참 늦게야 올리게 됐다.

본격적으로 이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전에 내가 너무너무 감명깊게 읽었던 동 출판사의 [일본의 굴레] 이야기를 잠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이다.

아주 일찍부터 일본 만화를 접해왔고, 일본 게임을 즐겨왔다. 내가 생업을 위해 살짝 발을 담그고 있는 이 바닥도 결국엔 일본 만화의 영향을 엄청나게 많이 받기도 했다. 나의 먹고사니즘은 결국, 재패니즘에서 태동했달까.


다른 쪽으로는, 개인적으로 대하 소설을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역사물에 심취했다가, 중국 역사물 맛을 살짝 봤다가, 서양 역사물에도 빠지고, 일본 역사물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 다음 수순은 당연히 세계대전사였고, 러일전쟁부터 시작되는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가 중일전쟁을 넘어 조선을 식민지화 하고, 나아가 아시아를 집어삼키는 장면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아니, 이런 만화를 만들어내는 나라에서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던걸까??

더 많은 책을 읽으며 일본이 제국주의의 광기에 빠져드는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영국이 되고 싶었던 프로이센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이었다.

전범국으로 각각 아시아와 유럽에서 대 학살을 저질렀던 일본과 독일은 같은 전철을 밟았다.

아니, 전후 재건의 상황에 관해서는 일본이 독일보다 나았다고 볼 수도 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독일은 동서로 나뉘어 미국과 소련의 지휘를 받으면서 이념갈등의 소용돌이 그 중앙에 있었던 반면, 일본은 맥아더의 지휘 아래 발빠르게 민주국가로 변화해 나갔다. 이후 미국의 우호적인 손길 아래 서독과 일본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주아주 간략하게 압축하자면, 독일은 오일쇼크와 함께 휘청이기 시작한 소련 덕에, 일본은 베트남 전쟁과 한국 전쟁 덕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이 지나온 전쟁을 바라보고, 피해국가에 대해 배상하는 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독일은 직시했고, 일본은 회피했다. 어떻게, 왜 그리 되었을까??


[일본의 굴레] 는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그들의 정치, 이념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인문학적으로 고찰해 나가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나니, 일본이 왜 그토록 전쟁 배상에 소극적이었는지, 아직까지도 어떻게 해서든 그 과거를 지우기 위해 애쓰는지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나 나름대로의 독서 흐름에 비춰본다면,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이하 일본 미학) 은 정확히 그 대척점에 있는 책이다.

[일본의 굴레] 가 현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상처를 들쑤셔가며 진단하는 책이라면, [일본 미학]은 일본 문화의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잘 포장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도널드 리치'라는 외국인-이지만 사실상 일본인인-의 입을 빌려 일본의 문화를 개인적인 경험에 녹여내고 있다. 외국인이 다른 국가에서 반평생을 살아간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나라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쉽지 않을 터이고, 도널드 리치는 일본 문화(영화) 평론가였다. 게다가 이 책은 그의 본업인 평론도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에세이 모음'이다. 일본에 대해 우호적일 글일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유튜브나 TV프로그램 나오는 외국인들을 떠올리면 쉽다.

이탈리아인 알베르토 몬디가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방송용이다 아니다를 떠나,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것 처럼. 일본이나 우리나 외국인-특히 우리보다 더 선진국- 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건 매한가지다.

오히려 그건 일본이 원조다.

오죽하면, 걔네는 인정받으려고 러시아에 전쟁걸고, 중국에 전쟁 걸었던 글로벌 관종이었다.

후발주자들은 언제나 선발주자를 따라잡기를 갈구하고, 결국 그들이 돌아보며 인정해주기를 갈구하기 마련이다.

TV 패널로 일본말 잘하는 외국인들을 앉혀 자기네 영화나 노래에 대해 구구절절 떠들게 하는 포맷의 원조가 그들이다.

'국뽕 마케팅' 이 돈이 된다는 것 역시 그들이 먼저 알았던 것이다. 그건 외국인이 해줄때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이 책을 이렇게 평가한다면 다소 박할 수도 있겠으나, 결국 그러한 마케팅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영화 평론가 외국인 아무개씨가 반평생 살며 느껴온 OO의 미학."

목적어가 "일본" 이 아니라 "한국" 이었다고 가정한다면 나의 평가를 무조건 반대할 순 없을 것이다.

예를들어, [기생충] 을 번역한 달시 파켓이 30년동안 한국에 살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에세이를 펴낸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이 과거에 우리나라에 저지른 역사에 대해 따져묻는 일은 일본이란 국가가 멸망할 때 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엔화의 강력한 힘으로 세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펼치고 있는 전범 이미지 세탁에 대해서도 치가 떨리도록 분노하지만, 일본의 문화 자체에는 호의적이다.

문화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끊임없이 교류해왔다. 떼려야 뗄 수 없고, 아니라고 무시하려야 할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호의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중국대륙 어디에선가 발원한 한자문화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면서 바뀌었고, 한강을 건너면서 또 바뀌었으며, 영산강과 낙동강을 건너면서 또 바뀌었다. 그리고 그게 다시 거슬러 올라가고, 인천을 통해, 부산항을 통해 오가는 "변형된 한자문화" 들과 얽히고 설켰다. 그 중엔 심지어 라틴어 문화도 있었고, 인더스 문명의 그것도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시간동안, 변하고, 변하고, 바뀌고, 또 바뀌고, 주고, 또 받고.

그리고 가장 가까운 일본과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하게 됐을 것이다.

엄청나게 비슷하면서, 엄청나게 다르다.

이 어찌 재밌지 않을 수 있겠나. 이 어찌 무조건 미워할 수밖에 없을까.

역사를 꾹 눌러 압축한다면,아시아의 한자문화권 나라들은 중국이라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들일 수 밖에 없잖은가.

이 어찌 무조건 배척하고, 미워할 수 있겠냐고.

어딘가에는 동질감, 유대감에서 발현되는 호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가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는 반일감정은 오로지 2차대전 이후 세대를 통해 유전자에 각인된 것일 터다.

돌아가신 우리 친할아버지만 해도 창씨개명 시대 분이신데.

나는 한번도 뵙지 못했던 친할아버지의 형님은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까지 되셨던 분이었다.

어쩌면, 일본이 딱 두번의 왜란 정도에서 멈췄다면, 나의 어딘가에 있는 대 일본 스위치가 "항일" 이 디폴트 값으로 설정되지는 않았을텐데.

그리고, 최근 10년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 결국 아베의 우리나라를 향한 무역전쟁으로 비화되는 그 사건이 아니었으면 이 책을 좀 더 기분좋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라면, 지금도 추천할 수는 있다.

글은 담백하고, 평론가답게 나름대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도 보인다.

일본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 저자가 느끼는 것들에 대한 소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트 넘치는 수기와는 다르지만, 그 나름의 맛이 있다.

다만, 노란머리 일본인(검은머리 외국인의 반대??)으로서 일본 문화에 가지고 있는 애정이 바탕에 깔려있고, 그게 내 유전자 중에서도 거의 1,2세대 사이에 각인되었을 어떤 억하심정을 건드린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워 하면서도, 그걸 흥미로워하는 내 자신을 타박하는 누군가가 발끈발끈 튀어 올라온다고나 할까.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적을지 말지 고민했던 이유다.

과연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 수 있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잘 떠오르지가 않더라.


어쩌면, 2000년생... 아니 1990년생들만 해도 이런 일본에 대한 발끈함이 없을지도 모르겠으니,

그런 친구들에겐 충분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

좋은 책이지만, 기획의도와 내용, 시기가 모두 안맞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일과 친일, 쟈포니즘과 일뽕 그 어딘가를 해매이다가 결국은 내 마음 속 어딘가 감춰있던 항일을 찾아낼 수 있었던 책.

아, 진짜 지금이 무슨 항일 독립 투쟁하던 시기도 아닌데... 왜 이래야 되냐고.


충분히 좋은 책이고, 개인적인 흥미도 있는데....


새삼스레, 죽었지만, 짜증난다. 아베시키.

그 전에 최순실박근혜도.

그 더 전에 역시 죽었지만, 개 짜증난다. 도조 히데시키. 토요토미 히데요시키.

순수하게 역사적 사건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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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일러스트 무기 아이디어 사전 쉽게 배우는 만화 시리즈 71
사이도 런치 지음, 김재훈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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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클립 스튜디오 카페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제공받았음.

내가 만화를 처음 공부하던 무렵엔 정보들이 참 부족했다.

인터넷도 없었고, 외국 서적을 찾기도 어려웠다. 일본 만화는 이제야 막 정식 라이센스를 맺어 한국 이름으로 개명을 한 강백호와 서태웅이 해적판들을 몰아내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지망생들은 일본 동인처럼 소규모 그룹을 지어 정보를 공유했고, 그런 그룹에 참여하지 못하는 독학생들의 희망은 "코믹테크" 라는 잡지였고, 청계천 헌책방이나 고속버스터미널에 있는 수입서적 판매상들 뿐이었다.

확대복사된 아키라의 열화판과, 베르세르크의 해적판인 "불멸의 용병" 같은 만화들이 교과서 역할을 했다.

(핀터레스트와 구글 이미지, 아트스테이션,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어마어마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너무너무 환경이 좋아졌는데, 나는 왜 오히려 그림을 덜, 못 그리게 되었을까... ㅋㅋㅋ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당시에 가장 목말랐던 정보들은 당연히 "자료" 였다.

당대의 지망생, 만화가들은 카메라가 필수였다. 닥치는대로 사진을 찍어 배경자료들을 쌓았고, 코믹테크 잡지의 말미에는 언제나 편집부에서 직접 찍은 배경 자료 사진들을 실어주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명승지나 고적, 무기 같은 자료들은 언제나 부족했다.


오죽하면 나는 여행책자를 사기도 했다. (독학 지망생의 슬픔이었다. )

이 책을 보면서 그 시절이 많이 생각났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본격적인 무기 도감은 아니고, 간략화되어 이미지화 된 무기 일러스트들이 실려있는 책이다.

물론, 꽤 상세한 설명들이 곁들여 있다.

본격적인 무기 도감이 아니지만, 각 무기의 특징과 설명들이 허술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전설 속 무기들도 제법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무기의 동작 매커니즘과 제작원리, 방식도 간단하지만 언급하고 있다.


물론 무기를 그리는 스킬도 적당히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디자인, 그림은 피상적인 외관만 안다고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이디어" 를 추출해 내기 위해서는 겉핥기로라도 구조를 알아야 가능하다.

이 책은 기획의도인 "아이디어" 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 엿보인다.

웹툰의 열풍과 함께 지망생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한 시대가 됐다.

일본에 존재하는 엄청난 규모의 만화가용 서적 시장에 비할바는 아니겠으나, 오히려 후발주자인 덕에 검증된 좋은 서적들로 우리 시장을 채울 수 있다는 점이 참 감개무량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출간된 만화가를 위한 서적들은 대체적으로 퀄리티가 뛰어나고, 이 책 역시 그러하다.

다만, 모두 초보자용에 가깝다.

물론,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무기를 한 권에 담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다 정밀한 무기 고찰은 밀덕들을 위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겠지...


마지막으로, 이 책이 제공하고 있는 클립 스튜디오용 에셋이 존재한다.

용량이 꽤 되서, 책 뒤편에 적혀있는 링크와 패스워드를 이용하면 3D 모델 포즈와 고퀄리티 무기 일러스트 몇점을 제공받을 수 있다.


이렇게 변형이 가능한 3D 모델 포즈는 여러모로 쓸만하지만,

정작

무기일러스트는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게다가 고작 8점....

개인적으로는 책 내용보다 이 에셋을 더 기대했는데...

8점이라도 3D모델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다 평면적인 일러스트들이라 활용도도 낮고.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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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1
우오토 지음, 하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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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2020~21년 사이에 많이 들어봤다.

"진격의 거인" 의 뒷자리를 바로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

이사야마 하지메 이후 비슷한 뉘앙스의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천재나 귀재라는 표현을 우리보다 흔하게 쓰곤 한다.

마케팅의 일종이겠지만, 솔직히 이 작가들이 토리야마 아키라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들에 비한다면 천재나 귀재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작가들을 폄하하려는게 아니라, '천재'나 '귀재'가 갖춰야할 재능의 허들이 꽤 낮아보인다는 말이다.

이 작품 역시 일본에서 연재 당시에 천재적인 작가의 작품이라고 호들갑을 꽤나 떨었던지라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첫 장을 펼쳤다.


일단, 작화 수준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만화에는 다양한 기술과 재능이 필요하다. 작화, 연출, 서사, 인물 등.

그 중 한가지가 매우 특출나면, 다른 부분들이 다소 떨어져도 독자들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다만, 작화의 경우 작품의 첫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다른 무엇보다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만화에서는 첫 페이지가, 그리고 첫 화가 가장 중요하다. 누구나 쉽게 꺼내서, 쉽게 열고, 쉽게 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만화를 "완독" 하겠다는 목표 따위를 갖지 않는다. 잡지에는 여러편의 작품들이 실려있고, 그 중 한두 작품 쯤은 읽지 않아도 상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격도 싸다. 그렇기에, 만화책 한권 쯤이야. 첫 에피소드만 읽고, 맘에 안 들면 쉽게 내던진다.


독자를 유혹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면서 기본적인 무기는 작화이고, 그를 보완하는 것이 연출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잡지 주간 연재만화는 2~4페이지 안에 독자를 빨아들이지 못하면 주목받지 못하고, 작가로서 데뷔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일본 만화는 그렇게 오랫동안 주간 연재 만화 시스템이 고이고 고여, 첫 페이지와 첫 화에 대한 다양한 연출기법들이 교과서처럼 정립되어 있는데, "지: 지구의 운동에 관하여" 라는 작품의 첫 페이지 역시 그런 주간 연재 만화의 공식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작화의 부족함이라는 단점을 완벽하게 숨기고, 전형적이지만 효과적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다.

"무엇을 바쳐야 이 세상의 전부를 알 수 있냐?" 는 도발적인 도입 씬 만으로 나는 충분히 빠져들어, 2권까지 정신없이 읽어나갔다.


이야기는 15세기 초반, 프랑스의 어느 한 도시에서 시작된다.

작품이 꽤나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국가 이름이나 종교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누가봐도 중세 유럽을 지배했던 가톨릭 국가들을 지칭함을 알 수 있다. 얄팍하게 감추지만, 이 작품이 주제를 진지하게 다룰 것이라는 선전포고처럼 느껴졌다.


"지地 -지구의 운동에 관하여-" 라는 제목답게 이 작품은 지동설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이단 심문관 "노바크"의 잔인 무도한 고문장면과 장래가 촉망되는 영재 소년 "라파우"로부터 이 진중한 주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이야기 전체의 도입부인 1권만으로도 구성이 매우 뚜렷하고, 사건의 개연성은 물론 캐릭터들이 획득하고 있는 핍진성도 매우 훌륭하다.

특히, 라파우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가는 모습이 상당히 진지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그 쯤 되면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인 불안정한 작화는 다소 뒤켠으로 밀려나게 된다.

만화에서 "작화" 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가독성" 때문이다.

텍스트로 이뤄진 문학작품의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첫번째 덕목은 "얼마나 잘 읽히는가" 이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해도 읽는순간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가치가 떨어지게 될 것이다. 한 문장 안에 수많은 내러티브와 함의를 담는다 해도 독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오독하게 한다면 어떠한 아름다움과 가치가 있겠는가.

만화에서 "그림" 이란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제 아무리 유려한 화력을 뽐내더라도, 독자들이 그 페이지를 통해 어떤 인물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적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좋은 "만화"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작품의 작화수준은 그림체가 안정적이지도 않고, 데셍이 정확하지도 않지만, 적어도 가독성을 망가뜨릴 정도는 아니다.

특히, 비교되는 이사야마 하지메의 "진격의 거인" 1권과 비교해본다면 더더욱.

적어도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은 공중을 붕붕 날아다니며 칼을 휘두르지도 않고, 십여명에 달하는 동료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기에 "가독성" 면에 있어서는 작화력의 우선순위가 뒤쪽으로 밀려도 크게 문제될 부분이 적다.

(오히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엽기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덜 끔찍해 보이는 장점으로 발휘되기도 한다.)



나도 가끔 생각해본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오로지 종족 번식을 위해서라면... 그래서 결혼과 출산, 양육이 유일한 이유이자 목표라면.

자식을 위해 삶을 쏟는것만이 우선순위고, 정답이라면,

지구가 돌건, 하늘이 돌건.

무슨 상관일까?


그게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기 시작한다.

성장이란, 다른말로 "살아있음" 을 소모하기 시작한다는 의미, 죽어간다는 의미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보람찼건, 허무했건, 그냥 죽음에 하루 더 가까워질 따름이다.

달리 말하면, 모든 인간은 죽기위해 살아간다.

오직 죽음을 위해 달음치는 것이 삶.

나는, 넉넉잡아 100년 뒤면,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난 적 없었던 것 처럼 완벽히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왜 살고 있지?

다른 어떤 사람들의 정답처럼 종족 번식을 위해 자식을 양육하는 것도 아닌 삶을, 왜, 영위하고 있지?

나의 선택은, 나의 삶은 "틀린" 것인가?


아마 이러한 질문은 인류가 "문명" 이라는 것을 시작한 순간부터, 언젠가 멸종할 그 날까지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에 적절한 의미를 부여한다. 혹은 부여받았다고 주장한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이번 생을 "태어나지 않은" 걸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 생을 온전히 타인을 위해 살기로 했다.

오롯하게 봉사단체만을 좇아다니며 희생적인 삶을 살고 있다.

어떤 이는 국가를 위해, 어떤 이는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이는 욕망을 위해, 어떤 이는 종교를 위해....

어떤 이는, 그냥, 태어났으니까.

그 무언가를 위해, 하루를 죽어간다.


문제는, 어떤 누군가는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에, 자신의 가치를 강요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진리이고, 진실이라며.

그것은 단순히 결혼과 양육일 수 있고, 삶의 태도와 죽음 후의 세계일 수도 있다.

"불신" 은 "지옥" 이라거나 "낳지" 않으면 "멸종" 이라는 협박이 들어가기도 하고, "진리" 가 아니면 "칼" 이라는 폭력이 수반되기도 한다.


과연 그러할까??

나의 삶은, 타인의 삶보다 가치있는가? 의미있는가? 숭고한가?

그런 "가치" 를 부여할 만 한 것인가?

그런 판단을 할 자격이 있는가?

그것이, 나의 신은 너의 신보다 강하다고 주장하던 그 시절의 그들보다 진리에 가깝다고 평가하는가?

지구가 돈다는 단순한 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리보다 더 진실한가?


이 작품은 한 이데올로기가 세계관 전체를 꼬챙이에 꿰어 놓았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이로 인해 진리와 진실이 왜곡되고, 새로운 시각이 세계관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실제로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이 진리였던 시대가 있었다.

아프리카인들이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는, 여성이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어린아이는 동물과 같아서 훈육에 폭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종교가 다른 인간은 마음대로 죽여도 된다는, 동물은 고통과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인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고 왕과 귀족은 하늘이 선택했다는, 대기 중에는 에테르라는 물질로 가득 차있다는, 지구는 평평해서 계속 나아가면 절벽에서 떨어진다는, 태양과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진리" 인 시기가 있었다.

불과 5~600년 전까지도 그랬고, 개중 많은 것들은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천동설들이 코페르니쿠스적 변화 뒤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인간에게 500, 600년은 너무 짧은 시간일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한걸지도.


코페르니쿠스가 발표하고, 케플러가 검증했던 지동설은 갈릴레이로 이어졌다.

1권 라파우의 에피소드는 명백히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모티프로 보인다. 마치, 갈릴레이의 선택을 변호하는 듯한 1권의 에피소드는 기대를 벗어나는 과감한 엔딩으로 나를 깜짝 놀래켰다.

2권에서 작가는 10년을 훌쩍 뛰어넘어, 역시, 대단히 흥미로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지동설이 당대의 "평범한 소시민들" 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탐구한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는 진리를 좇는, 지구는, 인간은 신이 창조한 우주의 중심이라는 세계관 속에서, 귀족도, 학자도 아닌 쓰레기 취급을 받던 절대 다수의 하층민들은, 과연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까?



기대만큼, 그리고 화제만큼 훌륭한 작품이었다.(여전히 천재나 귀재같은 표현해는 동의하지 못하겠으나.)

앞으로의 전개도 엄청나게 기대되고, 일본에서 성황리에 완결을 지었다는 사실도 반가웠다.

적어도 수년동안 애타게 기다릴 일은 없겠구나, 싶어서... 다행이었다.



마지막 사족으로, 작품을 읽는 내내 사카모토 신이치의 "이노센트" 라는 작품이 계속 떠올랐다.

역시 중세 유럽을 다루고 있고, 굉장히 하드코어한 고어씬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과 달리 어마어마한 작화력이 장점인 작품이다.

만약 이 작품을 사카모토 신이치가 작화를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더불어, 제발 이 작품을 일본에서 어쭙잖은 실사화를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차라리 판권을 해외에서 사갔으면....BBC나 HBO같은데서 만들어줘....HISTORY채널도 좋아.

제발 일본에서만 만들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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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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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접하는 이영도 작가님의 저작이다.


이영도 작가는 인터넷 이전의 멀티다중접속 온라인 매체였던 "PC통신" 시절 "하이텔" 이라는 서비스(지금으로 따지면 포털 서비스라고 할 수 있겠다.)에서 활동하던 소설가로 이우혁, 전민희 등과 함께 대한민국 1세대 장르소설의 문을 활짝 연 인물이다.


이 당시에 집필했던 [드래곤 라자] 는 서양 판타지인 "D&D(Dungeons & Dragons; TRPG라는 보드게임의 설정과 스토리를 담고 있는 방대한 세계관)" 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유려한 스토리 텔링과 생생한 인물묘사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폴라리스 랩소디]와 [드래곤 라자]의 후속편인 [퓨쳐 워커]는 대여점이 난립하며 판타지 소설이 쏟아지던 소위 "양판소" 시절에도 작품의 완성도와 문학성을 인정받으며 바야흐로 "판타지" 라는 장르가 문학(비록 "경계문학" 이라며 모호하게 수식됐지만)으로 자리잡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영도 작가는 장르 문학 스토리 텔링의 기본기 중 하나라고 언급되는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기" 에 매우 능숙한 작가이다.


실제 우리가 사용하는 속담을 비틀어 드래곤이나 오크 같은 상상의 존재들을 끼워넣거나 평범한 직업들에 뜻밖의 종족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등 독자들을 설득하고, 현혹시키는 데에 탁월한 기술을 선보인다.


이는 이후 D&D의 세계관을 완전히 탈피하고 동서양의 신화속 세계관을 차용한 [눈물을 마시는 새] 와 [피를 마시는 새] 에서 극대화된다.


이영도 작가의 이러한 능력은 장편에서 폭넓게 활용되지만, 중단편에서도 제법 파괴력을 발휘한다.



이영도 작가는 [피를 마시는 새] 이후 3권 이상의 대하 장편은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최근까지 꾸준히 매 해 한두편 이상의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은 다양한 웹진에 소개되는 단편들이지만, 1권 이내의 중장편들도 존재한다.



이 작품집 [별뜨기에 관하여]는 표제작을 비롯, 이영도 작가가 2000~2012년 사이에 발표한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첫 작품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 를 시작으로 "구세주가 된 로봇에 대하여", "별뜨기에 관하여", "복수의 어머니에 관하여", "순간이동의 의미에 관하여", 이렇게 다섯작품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느슨하게나마 연작의 성격을 갖고 있는 SF소설들이고, 나머지 다섯 작품인 "나를 보는 눈", "아름다운 전통", "전사의 후예", "SINBIROUN 이야기", "봄이 왔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작품들이다.



이 작품집에 실려있는 가장 오래된 작품부터 가장 최근의 작품까지는 거의 10년에 가까운 차이를 보이는 지라 다양한 느낌을 맛볼 수 있다.


낯선 것들을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다양한 스킬들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작품집의 모든 작품들이 고르게 높은 수준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불과 몇페이지에 불과한 엽편도 있고, "복수의 어머니에 관하여" 는 이영도의 이름값 치고는 평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여전히 수준이 높고, 장르적 문법의 스킬도 무척이나 뛰어나다.



모든 작품의 감상 기록을 적기보다는 깊은 인상을 준 몇 작품만 추려보겠다.


우선, 표제작인 "별뜨기에 관하여" 를 이해하려면 첫 작품인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 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이야기는 통일 직후, 혼란기 한국의 한 언어학자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지구를 방문한 범은하 문화교류촉진위원회, 줄여서 '문교촉위'의 외계인들은 인류가 단계적으로 우주로 진출할 수 있게 도와주려 한다. 그들은 일단 중개자의 입장에서 인류와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외계 문명을 정해주고, 서로 '동화' 한 편 씩을 교환하게 한다. 그 첫번째는 "권티다" 라는 문명의 동화였으나 그들의 언어는 복잡한 구조의 화학식이었고, 인류는 그들의 언어를 번역하는 도중 단층을 자극할 정도의 폭발력을 경험하게 된다. 그 과정 중에 지구에는 외계문명에 적대적인 세력들이 생겨났고, 문교촉위는 권티다와 인류의 교류를 취소하고, "위탄" 이라는 문명과의 교류를 재추진한다. 저명한 언어학자인 주인공 화자는 한국어로 위탄인의 언어를 번역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마치 [유년기의 끝](아서 클라크) 과 어슐러 르 귄의 "해인 시리즈", 그리고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를 비롯한 다양한 SF 걸작들의 오마쥬 같은 작품으로 짧은 호흡 안에 다양한 내러티브를 함축시키고 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순간이동의 의미에 관하여" 까지 다섯작품은 연작의 형태로, 제목만 봐도 뭔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중, 표제작인 "별뜨기에 관하여" 는 첫 작품에 등장했던 위탄인과 지구인이 동화 교환을 넘어 제법 충분한 교류를 하기 시작한 이후의 시간대를 다룬다. 어쩌다 보니 거대한 우주 화물선에서 지구인과 위탄인이 동행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문교촉위의 의도대로 인류는 건강하게 성장하여 심우주로 진출하게 되었다.


거대한 우주에서 지적 생명체들은 모래사장의 모래 한톨 정도였기 때문일까. 문명과 문명을 파괴하는 야만적인 전쟁 같은 일은 이 세계에서는 벌어지지 않는다. 물론, 문교촉위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구절들이 등장한다. 그 결과 엄격하게 문명간의 접촉을 제한하고, 관리하기로 한 것일 터. 위탄인과 인류는 한 우주선에 동승해도 될 정도로 밀접한 사이가 되었지만, 이 두 문명은 너무너무 달랐고, 신체적 특징은 인간쪽이 너무너무 불리했기 때문에 화자인 주인공은 엄청난 불편을 겪게 된다.



이제 막 심우주에 진출하게 된 인류와 이미 어느정도 수준높은 진출을 완성한 위탄인의 티키타카는 시종일관 위트가 넘쳐서 무척 읽는 맛이 좋았다.


그 중, "별뜨기" 는 점성학자에 SF적 상상력을 더한 직업으로, 인류가 심우주에 진출하게 되면서 "자식을 원하는 별자리 밑에서 태어나게 해줄 수 있다" 는 신박한 아이디어로부터 탄생했다.


주인공 화자는 문교촉위의 제안으로 특정한 행성에 사는 한 문명을 위해 "별을 뜨는" 다소 황당한 임무를 받게 된다.



이 짧은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이 신박한 아이디어에 감탄해서 육성으로 외마디 소리를 내지르며 두세번 더 완독했다.


잠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위탄인과 반드시 잠을 자야하는 지구인의 동행으로 인해 벌어지는 갈등 가득한 티키타카로 시작한 이야기는, 오히려 너무나 달랐기에 지구인인 화자를 이해하게 되는 위탄인의 통찰로 매조지된다.



이 짧은 이야기가 너무나 따뜻하게 다가온 이유다.



인류가 먼우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선도해서 이끌어줄 초월적 존재가 필요하다는 가설은 수많은 SF작품들이 차용하고 있기도 하다.


'페르미의 역설' 부터 파생된 대여과기 이론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처럼 읽히기도 하는 "문교촉위" 는 존재 자체가 데우스 엑스마키나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설득력 있고, 흥미로운 아이디어였다. 물론 어슐러 르 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 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이다.



우주.


나는 이 무한한 공간을 상상하면 공황에 가까운 공포에 빠져들곤 한다.


그리고 이 무한한 공간이 오직 "무無" 로 가득하다면 더더욱 공포스럽다.


지구와 인류는 무한에 가까운 무의미한 공간 안에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나" 는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가치한가.



SF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무한에 가까운 공간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공상. 상상. 비록 망상에 그칠 지 모르지만. 그리고 그저 발버둥치는 자위행위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이 무한한 우주 속에, 우리처럼 밤하늘을 바라보며 상상력을 펼치는 누군가가 있으리라는.


그 형태가 어떠하건. 바이러스 같은 작은 존재부터, 행성처럼 거대한 존재까지.


무한한 우주에 대해 경외감과 공포를 갖는 또다른 존재들이 있으리라는 상상만 해도, 나는, 이 공황에 가까운 공포를 간신히 극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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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그라운드 - 끝나지 않는 전쟁, 자유세계를 위한 싸움
H. R. 맥매스터 지음, 우진하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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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戰史에 해박하신 블로그 이웃 한분이 있다. 한창 제2차 세계대전사에 관심이 있던 무렵, 많은 글들을 찾아 다니다가 태평양 전쟁에 대한 글들을 읽게 됐고, 블로그를 타고 타고 들어가다가 태평양 전쟁은 물론, 중일 전쟁 등 아시아 근대 전사를 중점적으로 포스팅을 하시는 분의 블로그를 발견하게 됐다. 

바로 욱이님의 '팬더아빠의 전쟁사 이야기(https://blog.naver.com/atena02 )라는 블로그다. 한국전쟁에 대한 최근 공개된 자료와 관련된 글들도 많다. 직접 저술하신 책도 있고, 감수하신 저서들도 많은 분인데, 이 책은 마침 이 블로그를 통한 서평 이벤트로 출판사에서 받은 책이다. 

문학동네 그룹의 인문서적 임프린트인 교유서가와는 개인적인 인연도 있는 편이라, 이렇게 한다리 건너 받게 되니 참 재미있는 일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맥 매스터는 외교안보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다.

물론, 트럼프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하다가 1년만에 당한 "트위터 해고" 로 더욱 알려지긴 했지만, 대북정책에 대한 대표적인 강경파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볓정책을 비판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유화책을 비난했던 일화도 있고, 중국, 러시아, 중동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주문했던 인물이다. 이런 그의 성향은 이 책의 서문에서부터 드러난다. 

  

이 책은 챕터별로 러시아, 중국, 남아시아, 중동, 이란, 북한 을 거쳐 최종 결론으로 향한다.

리뷰 기한인 "한달" 안에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두꺼운 첫인상이지만, 우려만큼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훠얼씬 쉽게, 정말 잘 읽힌다.

이 책은 700페이지짜리 국제 보고서가 아니라, 에세이에 가깝기 때문이다. 

평생 전쟁터를 찾아다녔던 군인의 경험이 정부의 국제외교관계 요직으로 근무하며 접한 정보들이 적절하게 조합된 훌륭한 요리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전장들이 우리나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국가들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깊은 역사를 함께 하며 수많은 질곡을 선사했던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탈출작전으로 국제무대에 우리 실무진들의 우수함을 선보였던 남아시아, 석유값과 함께 휘청이는 우리 경제의 바로미터인 중동과 이란, 그리고 가장 아픈 손가락인 북한. 어느 한 챕터도 대충 읽을 수 없었다. 

심지어 저자가 이 책의 도입에서부터 강한 우려를 보냈던 푸틴의 러시아가 실제로 얼마전,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이 책에 대한 신뢰도가 더더욱 높아졌다. 

게다가, 팩트에 기반한 수치나 전문용어들이 아닌, 저자가 직접 나눈 대화들, 경험들 위주로 서술된 그의 글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이 리뷰에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전반적인 내용들을 모두 다룰 수는 없고, 한참 뒤로 훌쩍 뛰어넘어 "북한" 챕터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챕터의 시작은 맥 매스터와 정의용 대사의 만남부터 시작된다. (박근혜의 탄핵과 함께 19대 대통령으로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면서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된 정의용 실장은 정부 출범 초기부터 미국과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양국에 우호적인 기류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당시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짤막한 소개부터, 한국전쟁 이후 현대사에 대해 간략하게 풀어내고 있는데, 한국전쟁 파병용사의 아들인 맥 매스터의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은 깜짝 놀랄 수준이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와 인권유린을 명확히 기술하고 있고,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해서도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한국전쟁 발발 직전 미국의 상황에 대한 내용도 무척 짧게 등장하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다. (나중에 관련된 서적을 찾아보고 싶을 정도였다.) 이 책이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을 위해 쓰여진 책임을 상기해보면 우리 근대사를 짧아도 정확하게 소개해준다는 사실은 고마울 따름이다.  
이어, 주한미군 철수에 관한 논쟁, THADD배치, 김정남의 사망과 남북평화공동선언, 핵미사일 개발, 핵개발을 포기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 일본과의 무역분쟁 등 우리에겐 마치 어제처럼 또렷히 기억나는 사례들이 맥 매스터의 관점에서 소개되고 있다. 읽다보면, 그가 대북 강경책을 주문한 이유가 납득이 된다. 
하지만, 북한 챕터는 김정은에게 '핵을 포기해도 내외부의 도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는 사실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내용으로 매조지 된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그의 주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설득력이 높아졌다. 
'러시아' 챕터에서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었던 푸틴의 야욕과 전쟁 가능성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을 몇번 더 펴게 되는 날이 많을 것 같다. 좋은 의미로든, 안좋은 의미로든...
책을 읽어가며 느끼는 건, 비록 강경한 대응을 주장하지만, 그 역시 결코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왔기에,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평화의 시기라고는 하지만, 그건 아주 극히 일부 지역에서나 그렇다. 이 책이 "배틀 그라운드" 로 꼽는 지역들은 지구의 2/3 정도 된다.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는 완전 배제되어 있으니, 그 부분까지 다 포함하면 열손가락 정도 빼고 다 일 것이다.
그도 우리만큼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전략적으로 전쟁을 아예 배제하지 않는, 대담함과 계획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할 뿐이다.
자유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다른 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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