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도널드 리치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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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예민한 사람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음. 이견은 당신말이 다 맞음.


※서평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에게 제공받았습니다.

만... 정말 이 책을 읽은 기록을 남길까 말까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다른 분들이 올린 서평들을 보니, 아주아주 우호적인 평들이 많아 마음 편히 이런 뉘앙스의 독서감상을 올려도 좋겠다, 싶었다.)


그 탓에 제공받은 지 2주만에 올려야 하는 이 글을 약속 기한보다 한참 늦게야 올리게 됐다.

본격적으로 이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전에 내가 너무너무 감명깊게 읽었던 동 출판사의 [일본의 굴레] 이야기를 잠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이다.

아주 일찍부터 일본 만화를 접해왔고, 일본 게임을 즐겨왔다. 내가 생업을 위해 살짝 발을 담그고 있는 이 바닥도 결국엔 일본 만화의 영향을 엄청나게 많이 받기도 했다. 나의 먹고사니즘은 결국, 재패니즘에서 태동했달까.


다른 쪽으로는, 개인적으로 대하 소설을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역사물에 심취했다가, 중국 역사물 맛을 살짝 봤다가, 서양 역사물에도 빠지고, 일본 역사물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 다음 수순은 당연히 세계대전사였고, 러일전쟁부터 시작되는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가 중일전쟁을 넘어 조선을 식민지화 하고, 나아가 아시아를 집어삼키는 장면들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아니, 이런 만화를 만들어내는 나라에서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던걸까??

더 많은 책을 읽으며 일본이 제국주의의 광기에 빠져드는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영국이 되고 싶었던 프로이센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이었다.

전범국으로 각각 아시아와 유럽에서 대 학살을 저질렀던 일본과 독일은 같은 전철을 밟았다.

아니, 전후 재건의 상황에 관해서는 일본이 독일보다 나았다고 볼 수도 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독일은 동서로 나뉘어 미국과 소련의 지휘를 받으면서 이념갈등의 소용돌이 그 중앙에 있었던 반면, 일본은 맥아더의 지휘 아래 발빠르게 민주국가로 변화해 나갔다. 이후 미국의 우호적인 손길 아래 서독과 일본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주아주 간략하게 압축하자면, 독일은 오일쇼크와 함께 휘청이기 시작한 소련 덕에, 일본은 베트남 전쟁과 한국 전쟁 덕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이 지나온 전쟁을 바라보고, 피해국가에 대해 배상하는 방법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독일은 직시했고, 일본은 회피했다. 어떻게, 왜 그리 되었을까??


[일본의 굴레] 는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그들의 정치, 이념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인문학적으로 고찰해 나가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나니, 일본이 왜 그토록 전쟁 배상에 소극적이었는지, 아직까지도 어떻게 해서든 그 과거를 지우기 위해 애쓰는지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나 나름대로의 독서 흐름에 비춰본다면,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이하 일본 미학) 은 정확히 그 대척점에 있는 책이다.

[일본의 굴레] 가 현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상처를 들쑤셔가며 진단하는 책이라면, [일본 미학]은 일본 문화의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잘 포장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도널드 리치'라는 외국인-이지만 사실상 일본인인-의 입을 빌려 일본의 문화를 개인적인 경험에 녹여내고 있다. 외국인이 다른 국가에서 반평생을 살아간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나라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쉽지 않을 터이고, 도널드 리치는 일본 문화(영화) 평론가였다. 게다가 이 책은 그의 본업인 평론도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에세이 모음'이다. 일본에 대해 우호적일 글일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유튜브나 TV프로그램 나오는 외국인들을 떠올리면 쉽다.

이탈리아인 알베르토 몬디가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방송용이다 아니다를 떠나,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것 처럼. 일본이나 우리나 외국인-특히 우리보다 더 선진국- 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건 매한가지다.

오히려 그건 일본이 원조다.

오죽하면, 걔네는 인정받으려고 러시아에 전쟁걸고, 중국에 전쟁 걸었던 글로벌 관종이었다.

후발주자들은 언제나 선발주자를 따라잡기를 갈구하고, 결국 그들이 돌아보며 인정해주기를 갈구하기 마련이다.

TV 패널로 일본말 잘하는 외국인들을 앉혀 자기네 영화나 노래에 대해 구구절절 떠들게 하는 포맷의 원조가 그들이다.

'국뽕 마케팅' 이 돈이 된다는 것 역시 그들이 먼저 알았던 것이다. 그건 외국인이 해줄때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이 책을 이렇게 평가한다면 다소 박할 수도 있겠으나, 결국 그러한 마케팅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영화 평론가 외국인 아무개씨가 반평생 살며 느껴온 OO의 미학."

목적어가 "일본" 이 아니라 "한국" 이었다고 가정한다면 나의 평가를 무조건 반대할 순 없을 것이다.

예를들어, [기생충] 을 번역한 달시 파켓이 30년동안 한국에 살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에세이를 펴낸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일본이 과거에 우리나라에 저지른 역사에 대해 따져묻는 일은 일본이란 국가가 멸망할 때 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엔화의 강력한 힘으로 세계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펼치고 있는 전범 이미지 세탁에 대해서도 치가 떨리도록 분노하지만, 일본의 문화 자체에는 호의적이다.

문화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끊임없이 교류해왔다. 떼려야 뗄 수 없고, 아니라고 무시하려야 할 수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호의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중국대륙 어디에선가 발원한 한자문화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면서 바뀌었고, 한강을 건너면서 또 바뀌었으며, 영산강과 낙동강을 건너면서 또 바뀌었다. 그리고 그게 다시 거슬러 올라가고, 인천을 통해, 부산항을 통해 오가는 "변형된 한자문화" 들과 얽히고 설켰다. 그 중엔 심지어 라틴어 문화도 있었고, 인더스 문명의 그것도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시간동안, 변하고, 변하고, 바뀌고, 또 바뀌고, 주고, 또 받고.

그리고 가장 가까운 일본과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하게 됐을 것이다.

엄청나게 비슷하면서, 엄청나게 다르다.

이 어찌 재밌지 않을 수 있겠나. 이 어찌 무조건 미워할 수밖에 없을까.

역사를 꾹 눌러 압축한다면,아시아의 한자문화권 나라들은 중국이라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들일 수 밖에 없잖은가.

이 어찌 무조건 배척하고, 미워할 수 있겠냐고.

어딘가에는 동질감, 유대감에서 발현되는 호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가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는 반일감정은 오로지 2차대전 이후 세대를 통해 유전자에 각인된 것일 터다.

돌아가신 우리 친할아버지만 해도 창씨개명 시대 분이신데.

나는 한번도 뵙지 못했던 친할아버지의 형님은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까지 되셨던 분이었다.

어쩌면, 일본이 딱 두번의 왜란 정도에서 멈췄다면, 나의 어딘가에 있는 대 일본 스위치가 "항일" 이 디폴트 값으로 설정되지는 않았을텐데.

그리고, 최근 10년 사이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 결국 아베의 우리나라를 향한 무역전쟁으로 비화되는 그 사건이 아니었으면 이 책을 좀 더 기분좋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라면, 지금도 추천할 수는 있다.

글은 담백하고, 평론가답게 나름대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도 보인다.

일본의 다양한 문화에 대해 저자가 느끼는 것들에 대한 소회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트 넘치는 수기와는 다르지만, 그 나름의 맛이 있다.

다만, 노란머리 일본인(검은머리 외국인의 반대??)으로서 일본 문화에 가지고 있는 애정이 바탕에 깔려있고, 그게 내 유전자 중에서도 거의 1,2세대 사이에 각인되었을 어떤 억하심정을 건드린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워 하면서도, 그걸 흥미로워하는 내 자신을 타박하는 누군가가 발끈발끈 튀어 올라온다고나 할까.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적을지 말지 고민했던 이유다.

과연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 수 있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잘 떠오르지가 않더라.


어쩌면, 2000년생... 아니 1990년생들만 해도 이런 일본에 대한 발끈함이 없을지도 모르겠으니,

그런 친구들에겐 충분히 일독을 권하고 싶다.

좋은 책이지만, 기획의도와 내용, 시기가 모두 안맞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일과 친일, 쟈포니즘과 일뽕 그 어딘가를 해매이다가 결국은 내 마음 속 어딘가 감춰있던 항일을 찾아낼 수 있었던 책.

아, 진짜 지금이 무슨 항일 독립 투쟁하던 시기도 아닌데... 왜 이래야 되냐고.


충분히 좋은 책이고, 개인적인 흥미도 있는데....


새삼스레, 죽었지만, 짜증난다. 아베시키.

그 전에 최순실박근혜도.

그 더 전에 역시 죽었지만, 개 짜증난다. 도조 히데시키. 토요토미 히데요시키.

순수하게 역사적 사건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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