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터머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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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코끼리는 안녕] 이라는 특별한 소설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없어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이었다.

이 책은, 지금도 가끔 출석중인 월례 독서 토론 모임에서 다룬 적이 있기도 했는데,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책이었다.

유독 그 날은 출석자도 많고, 강성(?) 패널들이 참석한 덕에 이 책이 수상한 상을 비난한 내용까지 있었고, 그 저주(?)덕인지 상 자체가 사라졌다.

나 역시 처음 읽기시작했을 땐, 이미지 과잉에 어디서 본듯한 캐릭터들의 향연처럼 느껴졌는데, 읽어가는 내내 묘한 매력을 느꼈더랬다.

뭐랄까, 강풀 작가나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작화의 미숙함을 의도적 단순화를 통해 장점을 극대화하고, 그와 견고하게 맞아 떨어지는 연출과 이야기를 본 느낌.

의식의 흐름에 따라 아무렇게 연결한 것 같은데, 결국은 듬성듬성해 보이지만, 잘 짜여진 큰 바구니 같은 느낌. 


그로부터 약 5년 후에 발표한 [커스터머]는 보다 세련된 문장과 안정된 연출을 이용해 '여전히' 통통 튀는 아이디어들을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갈음하는 기술을 선보인다.


판타지 문학의 오랜 팬으로써 이 작품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나 세계관이 막 '엄~~청나게' 신선한 것은 아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관이나 돌연변이, 의도적인 신체 개조 등은 고전적이랄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소재다.

하지만, 누누히 언급해왔지만, 특정 장르의 문학들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장르적 한계가 존재한다.

클리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엄연히 공공재, 누구에게나 허락된 이야기의 '재료' 로 취급받는다.

판타지에서의 클리셰는 배추로 김치를 담그거나, 전을 부치거나, 쌈채소로 이용하거나의 차이에 불과하다. 심지어, 김치로 전을 부치거나, 찜을 쪄먹거나, 볶아 먹거나, 찌개를 해먹는 정도까지도 이해된다.

아주 약간의 새로운 것만 있어도 응원을 받을 수 있다.

김치 치즈 탕수육처럼.


그래, 이 작품은 딱 그렇다.

김치 치즈 탕수육 같은 책이다.


아주 신선하지는 않지만, 아주 새로운 조합이다.

익숙한 맛들의 조합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다.



'모래폭풍' 이 있었다.

그 이후 인류의 삶은 크게 변했다.

'재건' 이후, '모래' '비취' '태양' 이라는 세개의 구역으로 크게 나뉘었다.

모래구역은 일종의 슬럼가로, 가장 가난한 계층이 거주하는 구역이었다. 사막에 세워진 도시였고, 일년내내 모래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공기중엔 모래가 가득해서,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고, 집 안에서는 언제나 창문을 꼭꼭 닫아놓고 살아야 했다.

태양구역은 이름 그대로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햇살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사람들이 태양구역을 보고 '자연을 독점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비취구역은 모래구역 인근에 위치한 곳으로, 거대한 유리돔과 동굴 구역, 둘로 나뉘어 있었다. 유리돔 안은 인공태양을 통해 빛과 온도를 조절할 수 있었고, 동굴 구역 사람들은 지하 깊숙한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자신들만의 룰로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이 세 구역은 사실상 계급이나 다름없었다.

모래구역 사람들은 모래 폭풍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버텨낸 이들이었지만 '웜스' 라고 불리며 경멸당했고, 비취구역 사람들은 모래 폭풍 동안 방공호에 숨어있던 사람들로 '뻔뻔한 병신' 취급을 당했다. 모래폭풍 당시 가장 피해가 적었던 태양구역 사람들은 그것이 특권인양 누리며 모래인들과 비취인들을 한껏 경멸하고 천시했다. 

모래구역의 중학생 '수니' 는 통합 정부의 지역간 화합 정책의 일환으로 태양구역의 중심이자 수도인 '시드' 의 중앙 고교로 진학하게 된다. 룸메이트는 돌연변이 '중성인' 으로 남녀가 한몸에 있는 '안' 으로 배정되어 수니의 생활은 하루아침에 180도로 바뀌게 된다.

한편, 이 세계는 유전학과 의학이 극도로 발달해 사람의 신체 일부를 자유롭게 변형시킬 수 있었다.

몸에서 꽃이 자라게도 할 수 있었고, 피부를 비늘로 덮거나, 레이스 무늬를 넣거나, 눈동자를 바꾸거나, 다른 목을 달거나, 날개를 달 수도 있었다.

이런 행위들을 '커스텀' 이라 했고, 이렇게 신체 일부를 변형한 이들을 '커스터머' 라고 불렀다. 

커스텀은 일종의 패션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사회적으로 찬반이 나뉘는 중이었고, 일부 커스터머들을 혐오하는 일파도 생겨났다. 그들을 '커스터비아' 라고 불렀다.

수니는 열렬한 커스텀 애호가로, 커스텀은 자신의 외모를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라 여겼다. 언젠가 반드시 커스텀을 하고 말리라는 굳은 결심을 한 터였다.

하지만, 뜻밖에 자신이 머리에 뿔이 있는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새 학교 생활에 혼돈이 끼얹어진다. 

    


 작품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해리 포터' 시리즈와 '바스라그 연대기' 시리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서 학창생활을 한다는 점이나, 마법과 같은 과학기술들이 휘황찬란하게 펼쳐진다는 점, 온갖 괴이한 신체 개조인들이 등장한다는 점 등에서 비슷한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들은 단순히 재료에 불과하다. [커스터머]는 완벽하게 그 작품들과 궤를 달리한다.

우선 [커스터머]의 주인공인 '수니' 와 '안' 은 사실상 인격적으로 상당히 성숙되어 있다. 예를들어, 수니는 안에게 '비취구역 사람들' 에 대한 편견을 무심결에 표출해버리지만, 안의 상처받은 표정은 단박에 알아채고, 자신의 실수를 인지, 만회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고등학교 1학년 치고는 지나치게 성숙한 인격이다. 해리포터처럼 좌충우돌하며 인격적, 육체적 성장을 세세히 담을 의도가 아예 없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이 작품은 고등학생 수니의 성장담이 아니라, 성숙된 자아를 찾아내는 일종의 성숙담으로 보인다. 

때문에, 책을 읽다보면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라기보다 대학생, 성인들의 이야기로 읽히고, 수니와 안의 관계에 대한 묘사도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사실은, 그 페이지들을 넘긴 뒤에야, '어, 얘네는 미성년자인데? 고작....고1인데?? 라며 흠칫 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나도 별 수 없는 아재구나, 싶기도. ㅋㅋㅋ )

수니가 자신의 뿔을 알아채고, 뿔이 피부를 찢고 자라나는 과정 역시 성숙의 메타포로 읽힌다. 

아주 거칠게 예로 들면, 성장의 플롯은 애벌레가 고치를 만드는 과정이고, 성숙의 플롯은 나비가 결국 그 고치를 찢고 날아오르는 과정이랄 수 있는데, 수니의 내적 갈등과 외면의 변화는 후자로 읽힌다. 

커스터머가 일종의 성인식처럼 그려지는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주인공들은 어린아이에서 성인이 되는 의미의 성인식이 아니라, 이미 성인이지만, 그것을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의미의 성인식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수니와 안이 좀 더 미성숙한 모습으로 좌충우돌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읽고 싶기도 했다.

고1치곤, 너무 어른스러워~ 아니, 내가 '고1'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이 깊은 것일수도 있겠고.

물론, 그만큼, 이야기 안에 푹 빠져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물들이 너무 성숙하다보니, 내-외적 갈등들이 너무 고상하게 풀려나가서 탁월한 흡입력에 비해 이야기의 흐름에 있어 응축과 폭발이 약하게 느껴져서, 그 부분이 아주 조금 아쉬웠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작가의 의도였으리라.)

전체의 흐름에 군더더기도 거의 없고, 다음장이 궁금해서 몇 페이지는 대각선으로 후다닥 읽고, 마지막 장까지 덮은 뒤, 다시 돌아가서 천천히 숙독을 하기도 했다.


그 밖에 이야기 할 메타포들도 정말 많다.

세대차별, 인종차별, 젠더차별, 계급차별, 외모차별 등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디테일하게 녹여낸 세계관이 정말 멋졌다.

작가가 이렇게 만든 세계관을 이 책 한권으로 끝낼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연작의 형태든, 연속의 형태든 많이 나올 것 같다.

오노 후유미의 십이국기처럼, 세계관 안에서 단편과 장편이 교차되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형태도 좋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작가가 세계관과 서사에 얽매이지 않는 듯, 아니, 이미 자신의 세계관에 완벽히 적응한 듯한 인상이 좋았다.

또렷하게 구성된 이세계 안에서, 역시 뚜렷한 인상의 캐릭터들을 자유자재로 풀어놓을 수 있는 대담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세계관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 엿보였다는 의미다.

게다가 나보다 훨씬 어린 작가다.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겠지??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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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학사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18
윌리엄 바이넘 지음, 박승만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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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근 '더 닉' 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서양 의학의 역사에 대해 조금 관심이 생겼다.

1900년대 미국 뉴욕. 닉커버커 병원의 전설적인 외과의 태커리 박사의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평범한 의학드라마 같지만, 1900년대는 공기 중의 세균 감염에 대한 개념과 항생제도 없던 시절이다. 수혈에 대한 개념도 이제 막 정립되기 시작해서, 아직 대중적으로 퍼지지 않았던 시기이다. 

코카인 중독을 헤로인으로 치료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정신병에 대해 수많은 비인간적인 치료가 시도되는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드라마 1시즌의 1화에서 태커리 박사를 가장 괴롭히는 일은 제왕절개술이었다.

당시 제왕절개술의 성공률은 1% 남짓이었다. 그나마 태커리 박사는 그의 두배인, 2%의 성공률을 '자랑' 하는 전설적인 외과의였다.

가장 큰 문제는 혈액손실이었다. 태커리는 그나마 동맥을 피하는 기술이 뛰어나서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지만, 드라마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실패하고 만다. 실패가 당연했기에, 그것이 태커리의 명성에 해가되지 않았다.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당시 미국 사회 경제 전반을 살펴볼 수 있음은 물론, 인종차별과 성차별 등 의학사 뿐 아니라 미국사 전반에 대한 이슈들이 골고루 등장한다. 병원 내 자본에 관련된 다양한 권력관계와 주요 인물들의 로맨스도 등장하는, 아주 재미있는 드라마였다. 


드라마를 보면서, 의학사 자체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간단하게 그 맥이라도 짚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구글링을 통해 수집한 정보들은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어서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볼 수는 없었기에, 도서관에서 여러 책을 훑어보던 도중, 인문교양 입문서로 잘 알려진 교유서가의 '첫단추 시리즈'가 떠올랐다.


아니나다를까, [서양의학사]가 있었고, 역시 기대대로 고대 그리스의 의학부터 현재의 의학까지 빠르고 간결하게 훑어볼 수 있었다.

철학자에서부터 히포크라테스로, 그리고 도서관으로, 실험실로, 병원 진료실을 거쳐 대학 강의실로, 결국은 전쟁터와 지역사회로 의학의 패러다임이 탄생한 '장소' 를 중심으로 거침없이 서술해 나간다. 청진기나 현미경, 세균과 바이러스, 우두와 종두, 흑사병, 콜레라, 수혈과 신경정신과, 탄저균과 에이즈까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재들을 예로 들어 정말정말 쉽게 잘 읽힌다. (청진기가 발명되는 과정은 정말 재미있었다.) 

드라마 '더 닉' 을 보다보면, 많은 의사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을 하곤 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도 알 수 있었고, 병원과 공중보건, 위생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이 기껏해야 150여년 전 안팎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특히, 책 안에서 '도서관 의학' 과 '실험실 의학' 을 큰 챕터로 소개해주는데, 드라마 안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 역시 이해가 쏙쏙 됐다. 책은 아주 얇은 편이고, 판형도 작지만, 생각보다 도판도 많이 실려있어서 좋았다.

(역시, 최초의 청진기로 진찰하는 기록화는 정말이지, 빵 터졌다.ㅋㅋㅋ)



이 책은 말 그대로 '흐름' 을 보여준다. 

연대나 숫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일련의 인과관계를 뚜렷하게 서술해주며, 고대의 의학이 어떻게 도서관 의학으로 변화하고, 또 어떻게 실험실 중심으로, 병원 진료실 중심으로 축이 옮겨가는지 명확하게 알려준다.

딱히 외우려 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흐름이 그려지는 것이다.

첫단추 시리즈의 특징이다.

이전에, 이 시리즈의 '로마' 와 '로마공화정', '철학' 등을 읽었는데,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 같다.

동시에, '내가 중 고등학교때 이 책들을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하고.

'학문' 에 대한 전반적인 의식 자체를 바꿔주었을텐데.

지금이라도 읽기 시작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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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8-03-18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닉을 보셨군요.
저는 너무 징그러워서 보다 껐어요.ㅜㅜ

열혈명호 2018-03-20 13:26   좋아요 0 | URL
제 동생도 보다가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더군요. 저는 아무 이상 없이 시즌2까지 완주했습니다. 시즌2 마지막 장면은...정말 역대급 호러쇼 수준이에요. ㄷㄷㄷ
 
바늘구멍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4
켄 폴릿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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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묘하게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 책을 연달아 읽고 있다.

지난번엔 일본이었다면, 이번엔 런던이다. 

됭케르크에서 참혹한 패배를 겪고, 병사들은 거의 맨몸으로 바다를 건너 필사적으로 탈출했다.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의해 점거되어 유럽의 중서부는 독일 천하였다. 

영국은 그야말로 국가 전체가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모든 철강소와 공장들은 군수물품을 찍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됭케르크에 버리고 온 것들을 충당해야 했다. 군수품이 부족했다. 미국의 참여가 절실했다. 영국의 모든 외교력이 동원됐다. 이스라엘,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 중동의 민족들에게 조약을 남발했다.

영국의 금융, 경제시장은 사실상 정지되고, 모든 생산활동은 군인들을 위해 쓰여졌다. 파이프 공장에서는 지금까지 만들어낸 파이프들을 이용해 기관단총을 개발해냈다. 짧은시간동안 급조한 것 치고 고장률이 적어서 꽤 오랫동안 쓰였다. 


그리고 그 안에, 그들이 있었다.

나치 독일의 스파이들. 

지금은 탐 크루즈 덕분에 잘 알려진 MI+n 이 이 시기에 활약햤다.

영국군사정보총국 MI5. 탐 크루즈가 활약한 MI'6' 는 대외정보활동을 했고, MI'5' 는 국내방첩활동이 주 임무다.

당시 MI5는 영국내에서 활동 중인 독일 스파이들을 이미 모두 꿰고 있었다. 이들을 이용해 역정보를 흘리는, 소위 '이중스파이' 작전이 이들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MI5의 그물망을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독일의 특급 스파이가 있었다. MI5의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도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오직 두가지. 그가 엄청나게 유능하다는 사실 하나와, 암호명 '바늘' 뿐이었다.

그는 실제로 바늘처럼 포위의 그물망을 잘도 피해나갔다. 


이야기는 세 방향으로 진행된다.

먼저 독일 스파이 암호명 "니들"; 페이브스. 페이브스를 통해 당대 평범한 영국인들의 생활상과 그 안에 숨어든 스파이들의 활동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때도 정보국에서 활약했던 MI5 소속의 중세사학자 고들리먼과 경찰 출신의 파트너 블로그스. 고령의 고들리먼은 머리, 젊은 블로그스가 손과 발처럼 움직인다. 고들리먼과 블로그스는 나이 차이는 꽤 나지만, 얼마전 아내를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치열한 추격 속에서도 이 두 콤비가 보여주는 파트너쉽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세번째로 신혼여행에서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잃은 전도유망한 장교였던 데이비드와 그의 아내 루시의 이야기가 다소 생뚱맞게 들어가 있다. (물론, 장르문학을 많이 접한 독자들은 이들의 역할을 바로 알아챌 수 있다.)

'과연 이 세 방향으로 달려가는 기차들이, 어떤 시점에서, 어떤 식으로 화학반응을 일으킬 것인가?' 가 이 작품의 궁극적인 포인트고, 그 포인트까지 가는 과정은 쫓고 쫓기는 서스펜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은 그야말로 첩보 장르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작가가 필사적으로 수집했을 사료들과 타고난 스토리 텔러로서의 센스가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첩보물은 많다.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많다.

'제임스 본드'의 원작인 로저 무어의 '007' 시리즈는 물론이고, 비록 국내에 활발하게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세계의 초기를 장식한 것이 하드보일드한 형사들과 냉전시대를 누빈 스파이들이 펼치는 스릴과 서스펜스였다.

이 작품엔 형사물로서의 탐문, 추적과 스파이들간의 치열한 정보전이 모두 녹아있다.

반면, 장르물로서의 한계 역시 명확하다.

이런 플롯의 작품은 만화, 영화, 드라마까지 확장한다면, 대충 생각해도 여러개가 떠오를 정도다.

켄 폴릿은 클리셰가 주는 진부함과 전형성을 정면돌파한다. 오로지 필력과 탁월한 연출, 구성으로 지루함을 이겨내고, 진부함 속에서도 빛나는 '재미' 를 선사한다. 

특히 데이비드와 페이브스, 루시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클라이맥스는 그야말로 백미였다. 

비밀, 불륜, 액션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그야말로 '섹시하게' 엔딩으로 달음박친다. 



무엇보다, 켄 폴릿이라는 작가의 팬으로써 비교적 초기작인 이 작품 안에서 후속작들의 원형이 되는 듯한 인물과 소재들이 보여서 재밌었다.

고들리먼과 페이브스가 성당에서 만나 건축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대지의 기둥]이 떠올랐고, 데이비드와 루시 부부의 모습에서는 '근대 3부작' 의 3부 [영원의 끝] 에서의 레베카 부부가 떠올랐다. 그리고, 회상 장면에서 등장하는 고들리먼의 아내는 역시 근대 3부작의 2부 [세계의 겨울] 에서 폭탄이 떨어진 런던 시내에서 앰뷸런스를 운전하던 데이지가 보였고. 


전쟁은 정상적인 인간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든다.

때로는 그러한 절박함이 혁신적인 사고를 이끌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진보를 이뤄내기도 하지만, 인간적인 사고를 할 수 없도록 몰아친다. 식민국과 자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몰아붙여, 쏟아지는 총탄 앞으로 뛰어들게 만들고, 폭탄실은 비행기째로 전함에 들이받게 만든다. 비상식적인 명령을 반복하면서, 명령에 불복종하면 아군이라도 가차없이 청년의 머리에 총알을 박는다. 집단적 광기. 그것은 민족과 국가, 애족과 애국, 숭고와 희생이라는 단어로 공허하게 메아리친다.

수백번, 수천번, 수만번 되풀이되도 좋은 이야기가 있다.

아니, 그렇게 영원히 되풀이 되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 안에서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한가지는,

우리는 언제나 불의한 폭력에 항거해야 한다는 사실이고, 전쟁이란 그런 불의한 폭력의 집합체라는 점이다.



 







ps.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점.

일단,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주요 소재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위해 영국과 미국이 준비했던 수많은 기만 작전들 중 하나인 "남 포티튜드 작전" 이다. 당시 서부전선의 독일군은 막강했지만, 동부전선의 러시아와 양면전쟁을 치르고 있는 터라 병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상륙작전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작전이다. 단단한 해안진지가 구축되면 상대보다 다섯배가 많은 군세로도 상륙하기 쉽지 않다. 독일은 영미 연합군의 대규모 상륙작전을 알아냈다. 유력한 장소는 칼레와 노르망디였으나, 이 두 장소를 두고 히틀러와 휘하 장군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전쟁 초기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으나, 당시의 히틀러는 군수뇌부로부터 점점 신용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 대립에 영국과 미국이 수행한 수많은 기만작전이 유효했다.

라디오를 통해 일관된 거짓 정보들을 흘렸고, 조작된 암호를 독일의 감청망에 퍼뜨렸다. 뿐만 아니었다. 독일의 항공사진을 대비해 헐리우드 특수효과 팀을 섭외하여 영국 켄트주에 대규모 진지를 구축하고, 탱크와 전차 모형들을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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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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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비약, 빈곤, 어설픔, 필력 부족, 오탈자, 통계 및 검색오류, 스압 주의 





쇼군 해임, 막부철폐, 사실상 왕정복고. 

메이지 연호 발표, 도쿄 천도 - 1868

서남(세이난) 전쟁- 1877(메이지 '유신'의 끝)

헌법발표 - 1889 

청일전쟁 - 1894년(~1895)

러일전쟁 - 1904년(~1905)

을사늑약 - 1905년 

진주만 공습 - 1941년


19세기 말~20세기 초.

근대 일본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이 작품은 대략 1908년쯤부터 정확히 1912년까지, 몇 년 동안 교류한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화자인 주인공은 도쿄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고향에서부터 막 상경한 참이다.

해수욕장에서 한가롭게 바다를 즐기던 중, 서양인이 눈에 띄었고, 그 옆에 있던 '선생님' 이 시야에 들어왔다.

당시 일본에서도 서양인을 구경하기란 그렇게 흔치만은 않았을터다.

그렇게, 서양인에게 눈을 빼앗기고, 그 옆에 서 있는 선생님을 발견했다. (아...이 이미지의 함의도 이제 알겠다. 밑에 설명하겠다.)

주인공은 마치 영혼의 동반자인마냥, 정해있던 인연이었던 것처럼, 이유없이 호감을 느꼈고, 맹목적인 경애를 느낀다.


화자와 선생님과의 교류 과정은, 일방적으로 구애하고, 거절하는 듯하게 흘러간다.

연애물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밀고 당기는 과정을 통해 '나' 는 결국 '선생님'의 마지막 편지를 받는 관계에까지 이른다.


선생님은 고학력자임에도 현실을 등진 인물이다.

그 이유를 줄곧, '나는 저열한 인간입니다' 류의 이유로 설명한다.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지금의 열정은 언젠가 사그라들 것이다. 나를 존경한다며 좇지만, 언젠가는 등지게 될 것이다.  

도쿄 대학 출신에 수많은 책을 섭렵하고 온갖 지식으로 꽉꽉 채웠지만, 그는, 한마디로 '한량' 이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재산으로 한가롭게 산책을 하고, 해수욕을 하고, 독서를 하며 지낸다.

세상으로 나갈 이유는 없다.

인간은 원래 믿을 수 없는 존재이고, 선생님 자신 역시 그러하기 때문. 선생님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시대가 생명을 소흘히 여기곤 한다.

수많은 역사가 '대의' 라는 실체 없는 정신 하에 수많은 젊은이들을 불쏘시개처럼 전쟁터에 쏟아부었고, 지금도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애국, 애족, 신앙...어떤 단어도 좋다. 모두 실체 없는 '정신' 을 위해, '실체' 를 쏟아붓는다.

제 2차 세계대전은 단순추산으로 5천만명 이상이 죽었다. 몇 년 간 한국 국민 전체가 다 죽었다. 

이것은 단순추산이라, 전쟁 후 그로 인한 후유증은 아무것도 집계되지 않았다. 전쟁 후 외상이나, 전쟁 중 부상의 후유증 등은 아무것도 집계되지 않은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후로 집을 잃고, 고향을 잃어 빈곤 속에서 아사하고, 동사했다. 전쟁 고아들은 대부분 죽었다. 특히 원자폭탄을 직격당한 일본 국민들의 후유증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 뿐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은 단순히 추축국과 연합군의 협정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중동을 안정시키고 이스라엘의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영국은 조약들을 남발했다. 결국 터키와 시리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통해 중동 분쟁의 불씨를 제공했고, 일본이 철수한 뒤의 만주를 둘러싼 중국과 소련의 영토분쟁, 나아가 중국 내부의 국공 분열에 영국과 미국이 깊숙히 개입했다. 결국 한국전쟁의 가장 큰 빌미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뿐 아니다. 프랑스가 약해진 틈을 타 베트남의 독립전쟁이 시작됐고, 남북으로 분단된 베트남에 소련과 미국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의 단초도, 흐름으로 보면 제 2차 세계대전이다. 넓게 보면1차 세계대전의 연장선이기도 하므로, 이 모든 비극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이다. 

 쥐가 발가락을 파먹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참호 안에서 젊은이들이 어이없이 죽어갔다. 

실제로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병사의 절반은 진창으로 걸쭉해진 참호의 바닥을 통한 수인성 전염병이나 작은 부상으로 인한 패혈증과 같은 합병증이었다. 아군의 어이없는 폭격으로 사망했고,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자국의 젊은이들의 머리에 아낌없이 총탄을 쏟아부었다. 자국의 귀족들이. 소위 '지도층' 들이. 


 총과 대포가 아닌, 칼과 창 같은 냉병기의 시대에도 전쟁터는 죽으러 가는 것이었다.

로마에서 첫번째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다음 번 징집때 십부장(10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대장)으로 승진했다. 그 전투에서도 살아남아 다음번에 또 징집되면 백부장(10명의 십부장을 지휘하는 대장)으로, 그 다음번엔 천부장(10명의 백부장을 지휘하는 대장) 으로, 그 다음번엔 만부장(10명의 천부장을 지휘하는 대장) 으로 징집됐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보면, '그러면 부대에는 천부장 만부장이 신병만큼 많겠다!!' 고 생각하지만, 그렇게까지 승진하는 베테랑 병사는 거의 없었다. 백부장에 이르기 전에 모두 죽었다. 지난 전쟁에서 우리집 아들이 죽었으면, 이번엔 우리집 아들이 죽을 차례였다. 그 시대엔 모든 평민들이 그렇게 받아들였다.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였다. 그 시대의 종교는 오로지 전쟁터에서 죽는 영혼들을 위한 종교였다.

모든 늙은이들이 젊은이의 죽음을 찬양했고, 선동했다. 

천부장, 만부장은 거의 귀족 자제들이 내리 꽂혔다. 이런 낙하산 인사들이 뜻밖의 지휘력을 발휘해 백부장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풀잎관을 받았다. 이런 사례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귀족 자제들은 백부장들 덕분에 목숨을 구제하곤 했다. 처음 소집되어 훈련받고 배치된 신병들은 베테랑 병사 뒤쪽 열에 위치했음에도 대부분 그 전투에서 사망했다. 


 총과 대포의 시대에는 그 규모가 훨씬 커진다.  

러일전쟁, 특히 그 시작점인 뤼순 전투는 '20세기 첫 전쟁, 첫 전투' 로도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노기' 장군이 출전한 그 전투다. 10개월간 '5만 9천명' 의 일본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뤼순 항구는 러시아의 몇 안되는 부동항이었다. 일년 내내 쓸 수 있는 부동항구는 바다까지 얼어붙는 혹한의 러시아에서 정말 중요한 항구였고, 러시아와 일본군들은 이 항구를 두고 지리한 소모전을 펼쳤다. 뤼순 항 부근에는 전략상 중요한 고지가 있었고, 러시아는 이 곳에 단단한 요새를 구축하고 있었다.

노기장군은 지리한 소모전 끝에 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무모한 돌격 작전을 시도했고, 엄청나게 많은 병사들이 거의 맨몸으로 달려들어 이 고지를 손에 넣었다. 그 과정 속에 노기 장군은 자신의 두 아들을 잃었고, 성공은 했지만, 무리한 작전을 감행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고 할복 하려 했으나, 메이지 일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전쟁의 광증 속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무엇을 느꼈을까?

아니, 당대에 도쿄 대학을 나온 지식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도쿄 대학은 일본 유일의 제국대학이었다. 거의 아시아 유일의 근대 대학이었다. 일본은 서양 문물과 지식을 통해 '근대' 를 이룩하고자 했다. 지식들을 닥치는대로 수집했다.

이런 사실들에 누구보다 밝았을 그들은, 오히려 무력감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지식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였다. 학문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세상은 전쟁의 시대였다. 


일본은 실제로 전쟁으로 이루어진 국가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 을 통해 일본인을 '누구나 칼을 지니고 다니는 늑대같은 호전성을 가진 민족' 이라고 표현했다. 

막부 말기, 일본 사회에서 무사계급은 신분상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다. 

상급 무사가 길을 걸을 때, 하급무사는 길 아래, 논이나 밭으로 내려가 상급 무사가 지나갈 때 까지 기다려야 했다.

농민들은 고개를 조아려야 했고, 상급 무사는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자는 마음대로 베어 죽일 수도 있었다. 사무라이 정신은 희미해진 지 오래였고, 칼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이 계급 구조는 오히려 공고해지고 있었다. 사실상 일본의 모든 권력이 모든 사무라이들의 사무라이인 '막부' 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막부의 수장인 쇼군은 관직상 왕 밑이었지만, 모든 군사력을 틀어쥐며 사실상 백여년간 일본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이러한 불의한 신분제로 이루어진 사회 구조에 분노한 대표적인 인물이 조슈 번의 하급 무사 '사카모토 료마' 였다. 메이지 유신의 아이콘과도 같은 인물인 사카모토 료마는 혁신적인 개혁을 통해 정부 형태의 변화에 크게 기여한다.

 비록 일본 전체가 막부파와 일왕파로 나뉘어 치열한 내전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탁월한 책략가이자 실용주의자였던 사카모토 료마의 활약으로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왕파에 의해 막부는 해체되고, 쇼군이란 관직 자체를 없에는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의 첫 장을 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메이지 정신' 이라고 부르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메이지 정신이란 '일본식 근대화' 라고 할 수 있겠다.

왕정 복고를 어떻게 근대화와 연결시키는지, 왕을 천황으로 칭하는 신격화가 어째서 근대화와 맥이 닿는지 명확히는 모르겠지만, 전제 군주를 넘어 신격화된 왕을 섬기며, 신식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유행했던 일본식 근대화의 표면적인 모습이었다. (이것을 '화혼양재' 라는 논리로 설명하기도 하더라. 화혼, 즉 일본의 혼과, 양재, 서양의 재산이 양립, 조화를 이룬다는 논리이다. 고로, 천황을 신처럼 섬기며 충의를 다하고, 서양의 문물과 지식들을 흡수하는 것이 일본의 메이지 정신의 거친 요약이다. )

이러한 지식들은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몰아가고, 국부는 서양 무기를 수집하는데 쓰였다.

지식은 무기를 개량하는데 쓰였고, 국력은 오로지 조선을 병합하고, 청나라로 향하는 길을 뚫는 것에 쏠렸다. 

결국,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하며 조선을 흡수했고, 중국 대륙에 만주국을 세웠다.

화혼양재란 결국 일왕을 충심으로 섬기고, 서양식 무기를 들고 전쟁터로 나가는 것이었다.

오직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히는 것만이 근대국가 일본, 일등국가 일본의 모토였다. 당시 일본의 권력층은 오직 그것을 위해 똘똘 뭉쳤다.



당대 일본인 지식인들이 '모두' 이러한 불합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외국의 지식을 흡수한 지식인들이라면, 시민의식과, 민주의식, 전체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커다란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예민한 지식층, 문인들이라면 더욱 그러했을터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생님' 은 어떤 포지션이었을까??

무력감에 빠진 지식인의 모습 속에 넣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만약 노기장군과 병렬로 세운다면, 더 볼만하다. 무력감에 빠진 당대 지식인의 모습과, 성과를 이루었으나 죄책감에 사로잡힌 삶을 산 군인. K는 무력감 속에서 무력하게 희생된 평범한 사람들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선생님과 노기 장군을 실체 없는 '근대성', 메이지 '정신'의 아이콘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서양인' '옆'에 서 있었던 '선생님' 의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 경우에도 K는 무력한 희생자다.

작품의 화자인 주인공 역시 선생님의 희생자로 전락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앞에서 메이지 일왕의 죽음과 함께 메이지 정신이 끝장난다.

메이지 일왕과 노기장군, 선생님의 죽음을 일렬로 세우면 설득력이 생긴다.

실체 없는 근대성, 전쟁터로 내몰린 군국주의, 가장 일본적인 혼인 '천황' 이라는 개념. 이 모두를 동시에 죽인다. 수명을 다한 죽음, 자살, 그리고 할복을 통해서. 자연스러운 죽음과, 부자연스러운 죽음, 그리고 오로지 일본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의식인 할복을 통해서.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나쓰메 소세키가 가장 그리고 싶었던 엔딩이었을터다.

자신의 눈 앞에서,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메이지 정신을 끝장내고 싶었던게 아닐까.



이 책을 처음 읽을 때에는, 모든 이미지들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한참을 멍~ 하니 있었다. 

일본 작가는 자신의 사회를 무조건 찬양했으리란 고정관념 때문이었을까??

일본인들이 사랑하면, 오직 일본을 찬양했을거라고 생각했던걸까?

심지어 추리 소설에서도 '사회파 추리물' 이라는 사회 비판적인 장르를 개척한게 일본인데. 왜 그런걸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을까? 

문장이 아름다워서였을까?? 

어느 사회에서도 자국에 대해 찬양 일변도인 작가는 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아무래도 난, 지독하게 편협한 관점으로 이 작품을 접했나보다.


하지만, 독서모임에서 어떤 분이 '이 선생님의 행동과 모습들이 역겨웠다' 는 표현을 아주 직설적으로 해주시더라.

그 말씀을 듣는순간, '맞아, 나도 그랬는데' 라고 퍼뜩 떠올랐다.

그리고, 사실 그 모임 안에서도, 선생님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들만 있었지, 그 선생님에 대한 '자신의 인상' 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선생님이라는 인물은 표리부동하고, 일관성이 없는 인물이다.

사교적이지 않다면서 외국인과 해수욕을 즐기고, 사람을 믿지 않는다면서, 아내의 핀잔을 듣고 싶지 않아 노심초사하는 인물이다.

재산에 집착하지 않는다면서, 재산을 빼돌린 친지를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고, 그 친지에 대한 미움을 전 인류에 대한 미움으로 확대 해석한, 일종의 과대망상적 사고에 빠져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의 지식은 쓸모없다면서, '나' 에게 훈계를 끊임없이 하고, 자신은 저열한 인간이니 '찾지 마' 라면서도 '찾아주어 기쁩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굳이 사양하는 K를 자신의 하숙집에 데리고 온 인물인 동시에, K를 죽게 만든 인물이다. 

이 행동들이 역겹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표리부동하고, 불합리한 인간을 그렸다.

그리고, 그런 인간에게 불가해하게 빠져드는 '나' 를 그렸다. 


그것이 '정신' 의 허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히, '배웠다' 는 식자층은 훨씬 더 쉽게 '허상' 에 빠져든다.

게다가 그 '배움' 이 타인과의 교류를 배재한 채 스스로에게 집중한, 편협한 배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누구나 아는 만큼 보기 마련이다.

이 책을 새롭게 읽은 나 역시 그렇다.


나쓰메 소세키는 당시의 시대를 통렬하게 비판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그린 '선생님' 은 가장 선생님이여서는 안되는 선생님이었다. 그게 작가의 의도였다.

그 시대 전체가, 그렇게 선생님이여서는 안되는 선생님을 받들어 모시고,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시대였다.

결국 그 시대는, 수십년을 이어져 하와이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폭탄을 얻어맞을 때 까지 지속됐다. 

나쓰메 소세키는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이다.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그 시대에 대한 경종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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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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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불의의 사건으로 고등학생이던 딸을 잃은 우진. 여전히 괴롭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아내마저 자신의 눈 앞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황망하게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와중에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입었던 상복 주머니 안에서 누가 넣었는지 모르는 메모를 발견한다.

"진범은 따로 있다." 

딸의 죽음에 관련된 메시지였다. 딸의 죽음과 아내의 자살에 연관이 없을 리 없다. 우진 자신도 괴롭게 살아왔으므로.

하지만, 아내는 그 시간동안 딸의 상실은 물론, 암까지 이겨낸 여자였는데... 

왜 지금, 그렇게 삶을 놓아버렸을까?

이것과, 연관이 있는걸까?

딸을 죽인 '진범'.

3년 전, 딸은 살해당했다. 사건의 당사자들은 딸과 같은 고등학생들. 재판을 받았고, 판결도 났다. 

하지만, '진범'이 따로 있다고?

진범이 있다면, 그 때 처벌받았던 그 학생들은 뭐였을까? 

그렇다면, 우리 딸은, 어떤 진범에게 '왜' 죽은거지? 

그 과정에서 딸을 죽인 고등학생들이 모두 단순한 보호감찰 정도로 쉽게 풀려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경악하는 우진.

우진은 다시 3년 전 사건의 관계자들을 한명씩 대면하고자 한다.

딸이 죽은 이유와, 아내가 죽은 이유. 우진은 이 모두를 알아야겠다.

딸도 잃고, 아내마저 잃은 우진에게 더이상 잃은 것은 없다.

진실을 향해, 생애 마지막 불길을 내뿜는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거침없이 읽어내렸다.

볼륨도 생각보다 아주 얇은 편이었다. 두께에 비해 판형도 작고, 폰트는 크고, 여백도 많았다.

술술 읽힐 좋은 조건들은 모두 가지고 있다. 


 솔직히 이 작품을 읽으며 미야베 미유키나 이사카 코타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많이 떠올랐다. 물론 정유정의 '7년의 밤' 같은 작품도 떠올랐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10대의 살인사건,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미스테리, 추악한 공권력의 실체와 피해자의 아버지, 그리고 가해자의 아버지.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소재들이었다.

전체적인 서사를 놓고 보아도, 특별한 반전이나 트릭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드라마들을 떠올려보면, 비슷한 작품들을 몇분안에 두손 가득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류의 작품들은 사실 소재가 한정적이다.

여러번 언급하지만, 장르문학은 경계가 뚜렷한 공간 안에서 트릭의 아이디어와 주요 인물들의 캐릭터성, 그리고 연출만으로 진검승부를 펼치는 대전장이다. 마치 독자들과 묵찌빠를 하는 듯, 아슬아슬한 게임이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물이다. 뻔하디 뻔한 가위, 바위, 보로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한순간에 호흡을 뺏는 장르인 것이다.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두개의 무기는 '아내가 죽은 이유' 와 '딸이 죽은 이유' 이다.

이것들을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식으로 내보일 것인가. 그리고 그 내용은, 우리의 뒷통수를 어떻게 가격해줄 것인가.



술술 읽히긴 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의 미덕인 '서스펜스' 와 '카타르시스' 가 거의 실종됐기 때문이다.

비록 연출상 의도였다지만, 우진이 누군가를 차에 태우는 순간, 모든 내용이 너무 쉽게 예상됐다.

그 시점 자체가 너무나 빨랐다.

우진이 사건의 당사자들을 하나하나 쫓아가 따져 물은 과정들을 모두 생략했다는 것과 맥이 연결되는데, 작가의 선택이라는 의도는 알겠으나, 이해는 잘 안된다.  

추격과 탐문은 미스테리-추리 소설의 핵심이자 꽃이다. 이 부분들을 몽땅 생략해버리니, 재혁과 우진이 쫓고 쫓기는 추격장면에서도 전혀 서스펜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추격과 탐문 자체가 너무너무 쉽게 술렁술렁 이뤄져버린다. '미스테리' 를 풀어나가는 '과정' 이 거의 생략되어 있고, 있어도 마치 흐름의 이해만을 위한 요약본 같은 서술로 그치고 만다. 아내가 자살한 이유는, 충격적이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이었다. 밝혀지는 과정의 개연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지나친 우연에 기댄 설정이라 크게 와닿진 않았다. 

재강이라는 인물의 활용도 아쉬웠다. 

싸이코 패스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이 인물은, 비록 전형적이지만, 매력적인 카리스마와 광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소모해야 했을까?? 더 결정적인 순간에, 더 강렬한 서스펜스를 주며, 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었을텐데.


시간을 뒤섞은 연출도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짧은 서사에서 시간까지 뒤섞여 버리니 오히려 우진의 감정에 이입되기 어려웠다.

오히려 서사대로 흘러갔으면 우진의 감정변화가 더욱 절실하게 와닿지 않았을까?

우진이 재강 일행을 만나며 겪었을 일들과, 그를 통해 생겨났을 심리변화, 특히 재강 일행(사건의 1차적 범인들)이 내부에서 분열되는 과정들이 좀 더 집중적으로 조망되었다면, 이야기가 좀 더 밀도있게 다가왔을 것 같다.

짧은 분량 안에서 너무 많은 인물들의 심리 변화 양상을 보여주려다보니 너무 간단하게 처리된 것 같아 참 아쉬웠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작가의 의도가 명확히 다가온다.

이 작품은 애초에 미스테리와 서스펜스, 카타르시스에 집중한 것이 아니다.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의 특징을 모두 갖춘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들이 전형적인 위치에 놓여있지만, 전하고자 하는 감정 하나만을 위해 가차없이 버려버린다. 정말, 당혹스러울 정도로 가차없이.

이렇게 중요해 보이는 인물들을 가차없이 버린 이유는 공권력을 가진 재혁이라는 인물과, 우진이 태운 인물의 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그 관계와 이유를 알게되는 순간, 재혁의 모든 행동들이 확실히 이해된다.

 이 아버지들이 이래야만 했던 이유.


 "내 딸이 왜 죽었을까?"

 '왜??'

 아이를 잃은 아버지에게 '누가' '어떻게' 따위가 궁금할 리 없다.

우리는 이런 아버지들의 절규를 너무 오랫동안 많이 들어왔잖은가?

세월호가 이토록 오랫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되풀이될 이유는 오직 한가지이다.

"왜?"

아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떼같은 자식을 수장시킨 '이유'. 구조를 외면했던 '이유' 들에 엄청나게 많은 권력들이 가림막을 치고 있다.

세월호에 적하 제한 이상으로 실려있던 철근 구조물들, 규정을 어긴 것을 강행하게 한 권력들, 세월호 인근에 대기하던 해군과 미군 군함들과 민항 의료 헬기들이 뜨지 못했던 이유, 해경들이 선장만 구출했던 이유, 노후되어 파기되었어야 할 배가 안전검사를 매번 통과하며 운행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세월호가 국정원의 관리 하에 있었던 이유, 유병우가 변사체로 발견된 이유, 박근혜의 일곱시간을 기를 쓰고 막았던 이유.

아직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왜?" 의 힘은 강력하다.

수십만의 사람들 손에 촛불을 들게 했고, 최고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힘이 "왜?" 의 힘이다.


우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인 "왜?" 의 힘. 

하지만, 작가는 우진을 오로지 슬프고, 슬픈 아버지로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작품 안에서는 상당히 과감하게 행동하는 남성임에도, 행동 자체를 간략히 처리했다. 그저 딸을 추억하기만 하는 슬픈 아버지로 만들고 말았다. 좀 더 야박하게 표현하자면, 액션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모두 영화의 트리트먼트 같다. 분노도, 폭력도, 서스펜스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단순히 묘사할 따름이다.

우진이 아내의 자살을 목격하고, 딸의 시신을 목격하고, 딸과의 기억을 추억하는 장면들과 비교하면 더더욱 헐겁다. 물론, 그런 장면들이 아주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장면들은 눈시울이 금새 붉어질 정도로 좋은 묘사가 돋보였다.  

작가는 이렇듯, 슬퍼하고 애도하는 아버지를 그리기 위해 다른 부분들을 과감하게 쳐낸 것으로 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비소에서 기름밥 먹으면서 살던 아버지의 고통과 고뇌가 남성성으로 표출되지 않은 것은 안타깝다. 굳이 아버지였던 이유가 있었을텐데. 딸바보 아버지의 활동력보다, 딸바보적인 면만 너무 부각되서 장르의 팬으로써 많이 아쉬웠다.


결국, 이 작품을 한마디로 갈음하자면,  미스테리 스릴러의 서사를 갖고는 있지만, 미스테리 스릴러가 추구하는 장르적 가치는 모두 무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미스테리와 스릴러, 서스펜스와 카타르시스의 지점을 일부러 살짝 살짝 피한 느낌까지 든다.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보진 않았으나, 이 작품 하나에서 쓰인 장르적 장치와 기법들만 봐도, 활용에 상당히 능란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렇다면, 이 선택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참 궁금하다.

굳이 조어를 만들자면, 이 작품은 미스테리 스릴러가 아니라, 감성 미스테리 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다.

개인적인 취향에 기대 정리하자면, 병과의 구성은 너무나 좋고 강력하지만, 효과적으로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배치에는 실패한 진영이랄까.

작가의 의도는 읽히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호흡과 템포는 소설보다는 드라마에 어울리는 것 같다. 

각각의 인물들도 전통적인 장치와 세련미를 동시에 갖고 있기에, 재혁과 재강, 우진의 삼각 구도를 뚜렷하게 하면 스릴과 서스펜스를 극대화 하는 심장 쫄깃한 미니시리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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