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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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비약, 빈곤, 어설픔, 필력 부족, 오탈자, 통계 및 검색오류, 스압 주의 





쇼군 해임, 막부철폐, 사실상 왕정복고. 

메이지 연호 발표, 도쿄 천도 - 1868

서남(세이난) 전쟁- 1877(메이지 '유신'의 끝)

헌법발표 - 1889 

청일전쟁 - 1894년(~1895)

러일전쟁 - 1904년(~1905)

을사늑약 - 1905년 

진주만 공습 - 1941년


19세기 말~20세기 초.

근대 일본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이 작품은 대략 1908년쯤부터 정확히 1912년까지, 몇 년 동안 교류한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화자인 주인공은 도쿄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고향에서부터 막 상경한 참이다.

해수욕장에서 한가롭게 바다를 즐기던 중, 서양인이 눈에 띄었고, 그 옆에 있던 '선생님' 이 시야에 들어왔다.

당시 일본에서도 서양인을 구경하기란 그렇게 흔치만은 않았을터다.

그렇게, 서양인에게 눈을 빼앗기고, 그 옆에 서 있는 선생님을 발견했다. (아...이 이미지의 함의도 이제 알겠다. 밑에 설명하겠다.)

주인공은 마치 영혼의 동반자인마냥, 정해있던 인연이었던 것처럼, 이유없이 호감을 느꼈고, 맹목적인 경애를 느낀다.


화자와 선생님과의 교류 과정은, 일방적으로 구애하고, 거절하는 듯하게 흘러간다.

연애물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밀고 당기는 과정을 통해 '나' 는 결국 '선생님'의 마지막 편지를 받는 관계에까지 이른다.


선생님은 고학력자임에도 현실을 등진 인물이다.

그 이유를 줄곧, '나는 저열한 인간입니다' 류의 이유로 설명한다.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지금의 열정은 언젠가 사그라들 것이다. 나를 존경한다며 좇지만, 언젠가는 등지게 될 것이다.  

도쿄 대학 출신에 수많은 책을 섭렵하고 온갖 지식으로 꽉꽉 채웠지만, 그는, 한마디로 '한량' 이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재산으로 한가롭게 산책을 하고, 해수욕을 하고, 독서를 하며 지낸다.

세상으로 나갈 이유는 없다.

인간은 원래 믿을 수 없는 존재이고, 선생님 자신 역시 그러하기 때문. 선생님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시대가 생명을 소흘히 여기곤 한다.

수많은 역사가 '대의' 라는 실체 없는 정신 하에 수많은 젊은이들을 불쏘시개처럼 전쟁터에 쏟아부었고, 지금도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애국, 애족, 신앙...어떤 단어도 좋다. 모두 실체 없는 '정신' 을 위해, '실체' 를 쏟아붓는다.

제 2차 세계대전은 단순추산으로 5천만명 이상이 죽었다. 몇 년 간 한국 국민 전체가 다 죽었다. 

이것은 단순추산이라, 전쟁 후 그로 인한 후유증은 아무것도 집계되지 않았다. 전쟁 후 외상이나, 전쟁 중 부상의 후유증 등은 아무것도 집계되지 않은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후로 집을 잃고, 고향을 잃어 빈곤 속에서 아사하고, 동사했다. 전쟁 고아들은 대부분 죽었다. 특히 원자폭탄을 직격당한 일본 국민들의 후유증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 뿐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은 단순히 추축국과 연합군의 협정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중동을 안정시키고 이스라엘의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영국은 조약들을 남발했다. 결국 터키와 시리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통해 중동 분쟁의 불씨를 제공했고, 일본이 철수한 뒤의 만주를 둘러싼 중국과 소련의 영토분쟁, 나아가 중국 내부의 국공 분열에 영국과 미국이 깊숙히 개입했다. 결국 한국전쟁의 가장 큰 빌미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 뿐 아니다. 프랑스가 약해진 틈을 타 베트남의 독립전쟁이 시작됐고, 남북으로 분단된 베트남에 소련과 미국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의 단초도, 흐름으로 보면 제 2차 세계대전이다. 넓게 보면1차 세계대전의 연장선이기도 하므로, 이 모든 비극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이다. 

 쥐가 발가락을 파먹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참호 안에서 젊은이들이 어이없이 죽어갔다. 

실제로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병사의 절반은 진창으로 걸쭉해진 참호의 바닥을 통한 수인성 전염병이나 작은 부상으로 인한 패혈증과 같은 합병증이었다. 아군의 어이없는 폭격으로 사망했고,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자국의 젊은이들의 머리에 아낌없이 총탄을 쏟아부었다. 자국의 귀족들이. 소위 '지도층' 들이. 


 총과 대포가 아닌, 칼과 창 같은 냉병기의 시대에도 전쟁터는 죽으러 가는 것이었다.

로마에서 첫번째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다음 번 징집때 십부장(10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대장)으로 승진했다. 그 전투에서도 살아남아 다음번에 또 징집되면 백부장(10명의 십부장을 지휘하는 대장)으로, 그 다음번엔 천부장(10명의 백부장을 지휘하는 대장) 으로, 그 다음번엔 만부장(10명의 천부장을 지휘하는 대장) 으로 징집됐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보면, '그러면 부대에는 천부장 만부장이 신병만큼 많겠다!!' 고 생각하지만, 그렇게까지 승진하는 베테랑 병사는 거의 없었다. 백부장에 이르기 전에 모두 죽었다. 지난 전쟁에서 우리집 아들이 죽었으면, 이번엔 우리집 아들이 죽을 차례였다. 그 시대엔 모든 평민들이 그렇게 받아들였다.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였다. 그 시대의 종교는 오로지 전쟁터에서 죽는 영혼들을 위한 종교였다.

모든 늙은이들이 젊은이의 죽음을 찬양했고, 선동했다. 

천부장, 만부장은 거의 귀족 자제들이 내리 꽂혔다. 이런 낙하산 인사들이 뜻밖의 지휘력을 발휘해 백부장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풀잎관을 받았다. 이런 사례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귀족 자제들은 백부장들 덕분에 목숨을 구제하곤 했다. 처음 소집되어 훈련받고 배치된 신병들은 베테랑 병사 뒤쪽 열에 위치했음에도 대부분 그 전투에서 사망했다. 


 총과 대포의 시대에는 그 규모가 훨씬 커진다.  

러일전쟁, 특히 그 시작점인 뤼순 전투는 '20세기 첫 전쟁, 첫 전투' 로도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노기' 장군이 출전한 그 전투다. 10개월간 '5만 9천명' 의 일본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뤼순 항구는 러시아의 몇 안되는 부동항이었다. 일년 내내 쓸 수 있는 부동항구는 바다까지 얼어붙는 혹한의 러시아에서 정말 중요한 항구였고, 러시아와 일본군들은 이 항구를 두고 지리한 소모전을 펼쳤다. 뤼순 항 부근에는 전략상 중요한 고지가 있었고, 러시아는 이 곳에 단단한 요새를 구축하고 있었다.

노기장군은 지리한 소모전 끝에 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무모한 돌격 작전을 시도했고, 엄청나게 많은 병사들이 거의 맨몸으로 달려들어 이 고지를 손에 넣었다. 그 과정 속에 노기 장군은 자신의 두 아들을 잃었고, 성공은 했지만, 무리한 작전을 감행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고 할복 하려 했으나, 메이지 일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전쟁의 광증 속에서, 나쓰메 소세키는 무엇을 느꼈을까?

아니, 당대에 도쿄 대학을 나온 지식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도쿄 대학은 일본 유일의 제국대학이었다. 거의 아시아 유일의 근대 대학이었다. 일본은 서양 문물과 지식을 통해 '근대' 를 이룩하고자 했다. 지식들을 닥치는대로 수집했다.

이런 사실들에 누구보다 밝았을 그들은, 오히려 무력감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지식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였다. 학문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세상은 전쟁의 시대였다. 


일본은 실제로 전쟁으로 이루어진 국가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 을 통해 일본인을 '누구나 칼을 지니고 다니는 늑대같은 호전성을 가진 민족' 이라고 표현했다. 

막부 말기, 일본 사회에서 무사계급은 신분상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다. 

상급 무사가 길을 걸을 때, 하급무사는 길 아래, 논이나 밭으로 내려가 상급 무사가 지나갈 때 까지 기다려야 했다.

농민들은 고개를 조아려야 했고, 상급 무사는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자는 마음대로 베어 죽일 수도 있었다. 사무라이 정신은 희미해진 지 오래였고, 칼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이 계급 구조는 오히려 공고해지고 있었다. 사실상 일본의 모든 권력이 모든 사무라이들의 사무라이인 '막부' 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막부의 수장인 쇼군은 관직상 왕 밑이었지만, 모든 군사력을 틀어쥐며 사실상 백여년간 일본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이러한 불의한 신분제로 이루어진 사회 구조에 분노한 대표적인 인물이 조슈 번의 하급 무사 '사카모토 료마' 였다. 메이지 유신의 아이콘과도 같은 인물인 사카모토 료마는 혁신적인 개혁을 통해 정부 형태의 변화에 크게 기여한다.

 비록 일본 전체가 막부파와 일왕파로 나뉘어 치열한 내전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탁월한 책략가이자 실용주의자였던 사카모토 료마의 활약으로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왕파에 의해 막부는 해체되고, 쇼군이란 관직 자체를 없에는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의 첫 장을 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메이지 정신' 이라고 부르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메이지 정신이란 '일본식 근대화' 라고 할 수 있겠다.

왕정 복고를 어떻게 근대화와 연결시키는지, 왕을 천황으로 칭하는 신격화가 어째서 근대화와 맥이 닿는지 명확히는 모르겠지만, 전제 군주를 넘어 신격화된 왕을 섬기며, 신식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유행했던 일본식 근대화의 표면적인 모습이었다. (이것을 '화혼양재' 라는 논리로 설명하기도 하더라. 화혼, 즉 일본의 혼과, 양재, 서양의 재산이 양립, 조화를 이룬다는 논리이다. 고로, 천황을 신처럼 섬기며 충의를 다하고, 서양의 문물과 지식들을 흡수하는 것이 일본의 메이지 정신의 거친 요약이다. )

이러한 지식들은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몰아가고, 국부는 서양 무기를 수집하는데 쓰였다.

지식은 무기를 개량하는데 쓰였고, 국력은 오로지 조선을 병합하고, 청나라로 향하는 길을 뚫는 것에 쏠렸다. 

결국,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하며 조선을 흡수했고, 중국 대륙에 만주국을 세웠다.

화혼양재란 결국 일왕을 충심으로 섬기고, 서양식 무기를 들고 전쟁터로 나가는 것이었다.

오직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히는 것만이 근대국가 일본, 일등국가 일본의 모토였다. 당시 일본의 권력층은 오직 그것을 위해 똘똘 뭉쳤다.



당대 일본인 지식인들이 '모두' 이러한 불합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외국의 지식을 흡수한 지식인들이라면, 시민의식과, 민주의식, 전체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커다란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예민한 지식층, 문인들이라면 더욱 그러했을터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생님' 은 어떤 포지션이었을까??

무력감에 빠진 지식인의 모습 속에 넣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만약 노기장군과 병렬로 세운다면, 더 볼만하다. 무력감에 빠진 당대 지식인의 모습과, 성과를 이루었으나 죄책감에 사로잡힌 삶을 산 군인. K는 무력감 속에서 무력하게 희생된 평범한 사람들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선생님과 노기 장군을 실체 없는 '근대성', 메이지 '정신'의 아이콘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서양인' '옆'에 서 있었던 '선생님' 의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 경우에도 K는 무력한 희생자다.

작품의 화자인 주인공 역시 선생님의 희생자로 전락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앞에서 메이지 일왕의 죽음과 함께 메이지 정신이 끝장난다.

메이지 일왕과 노기장군, 선생님의 죽음을 일렬로 세우면 설득력이 생긴다.

실체 없는 근대성, 전쟁터로 내몰린 군국주의, 가장 일본적인 혼인 '천황' 이라는 개념. 이 모두를 동시에 죽인다. 수명을 다한 죽음, 자살, 그리고 할복을 통해서. 자연스러운 죽음과, 부자연스러운 죽음, 그리고 오로지 일본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의식인 할복을 통해서.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나쓰메 소세키가 가장 그리고 싶었던 엔딩이었을터다.

자신의 눈 앞에서,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메이지 정신을 끝장내고 싶었던게 아닐까.



이 책을 처음 읽을 때에는, 모든 이미지들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한참을 멍~ 하니 있었다. 

일본 작가는 자신의 사회를 무조건 찬양했으리란 고정관념 때문이었을까??

일본인들이 사랑하면, 오직 일본을 찬양했을거라고 생각했던걸까?

심지어 추리 소설에서도 '사회파 추리물' 이라는 사회 비판적인 장르를 개척한게 일본인데. 왜 그런걸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을까? 

문장이 아름다워서였을까?? 

어느 사회에서도 자국에 대해 찬양 일변도인 작가는 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아무래도 난, 지독하게 편협한 관점으로 이 작품을 접했나보다.


하지만, 독서모임에서 어떤 분이 '이 선생님의 행동과 모습들이 역겨웠다' 는 표현을 아주 직설적으로 해주시더라.

그 말씀을 듣는순간, '맞아, 나도 그랬는데' 라고 퍼뜩 떠올랐다.

그리고, 사실 그 모임 안에서도, 선생님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들만 있었지, 그 선생님에 대한 '자신의 인상' 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선생님이라는 인물은 표리부동하고, 일관성이 없는 인물이다.

사교적이지 않다면서 외국인과 해수욕을 즐기고, 사람을 믿지 않는다면서, 아내의 핀잔을 듣고 싶지 않아 노심초사하는 인물이다.

재산에 집착하지 않는다면서, 재산을 빼돌린 친지를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고, 그 친지에 대한 미움을 전 인류에 대한 미움으로 확대 해석한, 일종의 과대망상적 사고에 빠져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의 지식은 쓸모없다면서, '나' 에게 훈계를 끊임없이 하고, 자신은 저열한 인간이니 '찾지 마' 라면서도 '찾아주어 기쁩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굳이 사양하는 K를 자신의 하숙집에 데리고 온 인물인 동시에, K를 죽게 만든 인물이다. 

이 행동들이 역겹게 보이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표리부동하고, 불합리한 인간을 그렸다.

그리고, 그런 인간에게 불가해하게 빠져드는 '나' 를 그렸다. 


그것이 '정신' 의 허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히, '배웠다' 는 식자층은 훨씬 더 쉽게 '허상' 에 빠져든다.

게다가 그 '배움' 이 타인과의 교류를 배재한 채 스스로에게 집중한, 편협한 배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누구나 아는 만큼 보기 마련이다.

이 책을 새롭게 읽은 나 역시 그렇다.


나쓰메 소세키는 당시의 시대를 통렬하게 비판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그린 '선생님' 은 가장 선생님이여서는 안되는 선생님이었다. 그게 작가의 의도였다.

그 시대 전체가, 그렇게 선생님이여서는 안되는 선생님을 받들어 모시고,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시대였다.

결국 그 시대는, 수십년을 이어져 하와이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폭탄을 얻어맞을 때 까지 지속됐다. 

나쓰메 소세키는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이다.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그 시대에 대한 경종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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