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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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불의의 사건으로 고등학생이던 딸을 잃은 우진. 여전히 괴롭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아내마저 자신의 눈 앞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황망하게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와중에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입었던 상복 주머니 안에서 누가 넣었는지 모르는 메모를 발견한다.

"진범은 따로 있다." 

딸의 죽음에 관련된 메시지였다. 딸의 죽음과 아내의 자살에 연관이 없을 리 없다. 우진 자신도 괴롭게 살아왔으므로.

하지만, 아내는 그 시간동안 딸의 상실은 물론, 암까지 이겨낸 여자였는데... 

왜 지금, 그렇게 삶을 놓아버렸을까?

이것과, 연관이 있는걸까?

딸을 죽인 '진범'.

3년 전, 딸은 살해당했다. 사건의 당사자들은 딸과 같은 고등학생들. 재판을 받았고, 판결도 났다. 

하지만, '진범'이 따로 있다고?

진범이 있다면, 그 때 처벌받았던 그 학생들은 뭐였을까? 

그렇다면, 우리 딸은, 어떤 진범에게 '왜' 죽은거지? 

그 과정에서 딸을 죽인 고등학생들이 모두 단순한 보호감찰 정도로 쉽게 풀려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경악하는 우진.

우진은 다시 3년 전 사건의 관계자들을 한명씩 대면하고자 한다.

딸이 죽은 이유와, 아내가 죽은 이유. 우진은 이 모두를 알아야겠다.

딸도 잃고, 아내마저 잃은 우진에게 더이상 잃은 것은 없다.

진실을 향해, 생애 마지막 불길을 내뿜는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거침없이 읽어내렸다.

볼륨도 생각보다 아주 얇은 편이었다. 두께에 비해 판형도 작고, 폰트는 크고, 여백도 많았다.

술술 읽힐 좋은 조건들은 모두 가지고 있다. 


 솔직히 이 작품을 읽으며 미야베 미유키나 이사카 코타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많이 떠올랐다. 물론 정유정의 '7년의 밤' 같은 작품도 떠올랐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10대의 살인사건,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미스테리, 추악한 공권력의 실체와 피해자의 아버지, 그리고 가해자의 아버지.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소재들이었다.

전체적인 서사를 놓고 보아도, 특별한 반전이나 트릭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드라마들을 떠올려보면, 비슷한 작품들을 몇분안에 두손 가득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류의 작품들은 사실 소재가 한정적이다.

여러번 언급하지만, 장르문학은 경계가 뚜렷한 공간 안에서 트릭의 아이디어와 주요 인물들의 캐릭터성, 그리고 연출만으로 진검승부를 펼치는 대전장이다. 마치 독자들과 묵찌빠를 하는 듯, 아슬아슬한 게임이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물이다. 뻔하디 뻔한 가위, 바위, 보로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한순간에 호흡을 뺏는 장르인 것이다.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두개의 무기는 '아내가 죽은 이유' 와 '딸이 죽은 이유' 이다.

이것들을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식으로 내보일 것인가. 그리고 그 내용은, 우리의 뒷통수를 어떻게 가격해줄 것인가.



술술 읽히긴 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의 미덕인 '서스펜스' 와 '카타르시스' 가 거의 실종됐기 때문이다.

비록 연출상 의도였다지만, 우진이 누군가를 차에 태우는 순간, 모든 내용이 너무 쉽게 예상됐다.

그 시점 자체가 너무나 빨랐다.

우진이 사건의 당사자들을 하나하나 쫓아가 따져 물은 과정들을 모두 생략했다는 것과 맥이 연결되는데, 작가의 선택이라는 의도는 알겠으나, 이해는 잘 안된다.  

추격과 탐문은 미스테리-추리 소설의 핵심이자 꽃이다. 이 부분들을 몽땅 생략해버리니, 재혁과 우진이 쫓고 쫓기는 추격장면에서도 전혀 서스펜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추격과 탐문 자체가 너무너무 쉽게 술렁술렁 이뤄져버린다. '미스테리' 를 풀어나가는 '과정' 이 거의 생략되어 있고, 있어도 마치 흐름의 이해만을 위한 요약본 같은 서술로 그치고 만다. 아내가 자살한 이유는, 충격적이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이었다. 밝혀지는 과정의 개연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지나친 우연에 기댄 설정이라 크게 와닿진 않았다. 

재강이라는 인물의 활용도 아쉬웠다. 

싸이코 패스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이 인물은, 비록 전형적이지만, 매력적인 카리스마와 광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소모해야 했을까?? 더 결정적인 순간에, 더 강렬한 서스펜스를 주며, 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었을텐데.


시간을 뒤섞은 연출도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짧은 서사에서 시간까지 뒤섞여 버리니 오히려 우진의 감정에 이입되기 어려웠다.

오히려 서사대로 흘러갔으면 우진의 감정변화가 더욱 절실하게 와닿지 않았을까?

우진이 재강 일행을 만나며 겪었을 일들과, 그를 통해 생겨났을 심리변화, 특히 재강 일행(사건의 1차적 범인들)이 내부에서 분열되는 과정들이 좀 더 집중적으로 조망되었다면, 이야기가 좀 더 밀도있게 다가왔을 것 같다.

짧은 분량 안에서 너무 많은 인물들의 심리 변화 양상을 보여주려다보니 너무 간단하게 처리된 것 같아 참 아쉬웠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작가의 의도가 명확히 다가온다.

이 작품은 애초에 미스테리와 서스펜스, 카타르시스에 집중한 것이 아니다.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의 특징을 모두 갖춘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들이 전형적인 위치에 놓여있지만, 전하고자 하는 감정 하나만을 위해 가차없이 버려버린다. 정말, 당혹스러울 정도로 가차없이.

이렇게 중요해 보이는 인물들을 가차없이 버린 이유는 공권력을 가진 재혁이라는 인물과, 우진이 태운 인물의 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그 관계와 이유를 알게되는 순간, 재혁의 모든 행동들이 확실히 이해된다.

 이 아버지들이 이래야만 했던 이유.


 "내 딸이 왜 죽었을까?"

 '왜??'

 아이를 잃은 아버지에게 '누가' '어떻게' 따위가 궁금할 리 없다.

우리는 이런 아버지들의 절규를 너무 오랫동안 많이 들어왔잖은가?

세월호가 이토록 오랫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되풀이될 이유는 오직 한가지이다.

"왜?"

아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떼같은 자식을 수장시킨 '이유'. 구조를 외면했던 '이유' 들에 엄청나게 많은 권력들이 가림막을 치고 있다.

세월호에 적하 제한 이상으로 실려있던 철근 구조물들, 규정을 어긴 것을 강행하게 한 권력들, 세월호 인근에 대기하던 해군과 미군 군함들과 민항 의료 헬기들이 뜨지 못했던 이유, 해경들이 선장만 구출했던 이유, 노후되어 파기되었어야 할 배가 안전검사를 매번 통과하며 운행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세월호가 국정원의 관리 하에 있었던 이유, 유병우가 변사체로 발견된 이유, 박근혜의 일곱시간을 기를 쓰고 막았던 이유.

아직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왜?" 의 힘은 강력하다.

수십만의 사람들 손에 촛불을 들게 했고, 최고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힘이 "왜?" 의 힘이다.


우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인 "왜?" 의 힘. 

하지만, 작가는 우진을 오로지 슬프고, 슬픈 아버지로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작품 안에서는 상당히 과감하게 행동하는 남성임에도, 행동 자체를 간략히 처리했다. 그저 딸을 추억하기만 하는 슬픈 아버지로 만들고 말았다. 좀 더 야박하게 표현하자면, 액션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모두 영화의 트리트먼트 같다. 분노도, 폭력도, 서스펜스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단순히 묘사할 따름이다.

우진이 아내의 자살을 목격하고, 딸의 시신을 목격하고, 딸과의 기억을 추억하는 장면들과 비교하면 더더욱 헐겁다. 물론, 그런 장면들이 아주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장면들은 눈시울이 금새 붉어질 정도로 좋은 묘사가 돋보였다.  

작가는 이렇듯, 슬퍼하고 애도하는 아버지를 그리기 위해 다른 부분들을 과감하게 쳐낸 것으로 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비소에서 기름밥 먹으면서 살던 아버지의 고통과 고뇌가 남성성으로 표출되지 않은 것은 안타깝다. 굳이 아버지였던 이유가 있었을텐데. 딸바보 아버지의 활동력보다, 딸바보적인 면만 너무 부각되서 장르의 팬으로써 많이 아쉬웠다.


결국, 이 작품을 한마디로 갈음하자면,  미스테리 스릴러의 서사를 갖고는 있지만, 미스테리 스릴러가 추구하는 장르적 가치는 모두 무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미스테리와 스릴러, 서스펜스와 카타르시스의 지점을 일부러 살짝 살짝 피한 느낌까지 든다.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보진 않았으나, 이 작품 하나에서 쓰인 장르적 장치와 기법들만 봐도, 활용에 상당히 능란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렇다면, 이 선택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참 궁금하다.

굳이 조어를 만들자면, 이 작품은 미스테리 스릴러가 아니라, 감성 미스테리 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다.

개인적인 취향에 기대 정리하자면, 병과의 구성은 너무나 좋고 강력하지만, 효과적으로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배치에는 실패한 진영이랄까.

작가의 의도는 읽히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호흡과 템포는 소설보다는 드라마에 어울리는 것 같다. 

각각의 인물들도 전통적인 장치와 세련미를 동시에 갖고 있기에, 재혁과 재강, 우진의 삼각 구도를 뚜렷하게 하면 스릴과 서스펜스를 극대화 하는 심장 쫄깃한 미니시리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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