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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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작가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책을 보아야 할까??

훌륭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보아야 한다.

글이고, 그림이고, 음악이고, 많이 보고, 듣고, 느낀것들이 작가 개인의 경험과 철학이 맞물려 상상할 수 없는 산고를 거치고 나면 새로운 작품을 낳아낸다.

 

 한국의 떠오르는 젊은 작가인 김경욱은 자신의 풍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아예 태내에 품고있는 '독서' 그 자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낳았다. [위험한 독서] 부터 [황홀한 사춘기] 까지 총 8편의 단편들이 모여있고, 모든 단편들은 창작, 글, 문장, 단어, 읽기, 이해하기 등과 같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독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차용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위험한 독서] 라는 첫 작품은 단편집의 시작답게 그 의도를 확연히 드러낸다. 

첫 단편인 '위험한 독서' 의 화자는 책치료사이다. 치료를 원하는 상대방- 환자에게 환경과 사건, 심리에 맞는 책을 소개하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트라우마를 치료해 나간다. 일종의 심리 치료자인 셈이다. 상담을 통해 적절한 처방을 내리고, 그 처방전은 바로 '책' 인 것이다.  [책] 을 이용한 [심리 치료]. '책치료사' 라는 소재는 그 아이디어 자체가 참신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의 설득력도 상당하다. 미술치료, 음악치료도 있는 마당에, 문학치료가 없을리는 없지 않은가? 

 실제로 독서는 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체 게바라는 물론 마오쩌둥과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독서는 수많은 위인들의 첫 길잡이였다. 하지만, 독서가 한 인간에게 언제나 선한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아니다. 히틀러 역시 상당한 다독가였다고 알려져있다. 지식이란  '힘' 과 같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활용되는 법. 한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책' 이다. 책이란 일종의 '간접경험' 이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이 한 사람의 사고를 바꾸기도 하지만, 간접 경험 또한 그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걸 이용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치료해주는 것이다.  

그 방식은, 환자 - 피상담자의 인생을 한권의 책에 오롯하게 대입시키는 방식이다. 환자-피상담자는 치료사의 추천으로 책을 접하고, 그 책 안에서 자신과 꼭 닮은 등장인물을 만나게 된다. 자신과 같은 일을 겪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등장인물. 그를 통해 환자-피상담자는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사건과 문제점들을 미리 알아챌 수 있고, 그것을 해결하고 이겨내는 과정들을 미리 알아낼 수 있다. 환자 자신과 같은 상처나 과거를 지닌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책을 읽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 책의 '해석' 과 '적용' 은 오롯하게 독서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책 치료사는 '안내' 만 해줄 뿐인 것이다.

  

 예로부터 '한권의 책' 은 '한 사람의 인생' 처럼 여겨져오기도 했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발터 뫼르스' 등의 작가들은 책에 생명을 부여하기도 했고, '알폰소 슈바이거트르' 역시 '책' 이 갖고있는 무한한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김경욱 작가 또한 그들처럼 '책' 그 자체에 대한 하나의 담론을 펼쳐낸 것이다.  

  


작가의 창작의 고통을 대변하는 듯한 [천년여왕] 은 극중 화자가 밝혔다시피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맥도날드 사수작전] 은 과장과 익살스러운 표현들 속에 자본주의의 허상과 언론의 기만이 절묘하게 숨겨져있고, [공중관람차] , [고독을 빌려드립니다]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 는 현 세대의 결혼, 연애, 육아 등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위트와 날카로운 풍자를 가득 담고 리얼과 판타지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아간다. 이 작품을 통해, 훗날 나오게 될 김경욱 작가의 장편인 [동화처럼] 이라는 사실주의적인 연애소설의 태동을 예감할 수 있다. 

 단편집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황홀한 사춘기] 는 한국 사회의 교육현실을 아주 냉정하게 짚어내고 있다.

군대식 기숙입시학원이라는 공간과, 권위주의로 점철되어있는 환경들은 한국의 현실을 냉정하게 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요소요소에 스며있는 절묘한 상상력들이 사실주의적인 문장들과 어우러져 상당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리얼리즘을 오히려 극대화 시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유쾌하면서도 씁쓸하고, 허무맹랑하면서도 설득력있다.

 

언제나 이런 멋진 단편들을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단편이야말로 작가의 역량을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도 효과적인 창구이다.

김경욱이라는 작가의 단편들은 지나치게 꼬여있지도 않고,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번득이는 반전들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들 속에서 주제가 정확하고도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쉽고 효과적이다.

그의 작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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