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 아웃케이스 없음
마크 웹 감독, 조셉 고든 레빗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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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20대 후반부터 나를 알아온 사람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깜짝 놀랄지도 모르지만,

나도 운명같은 사랑을 꿈꾼 시절이 있다.

한 여자만 만나서, 평생 그 여자만 사랑하고, 결국은 그 여자랑 죽고싶다는... 꿈을 꾼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정말 얼굴만 보면 '이 여자가 내 여자!' 라는 도장이 쾅 찍혀있을 줄 알았다.

내 눈에 만큼은 김태희보다, 전지현보다 더 예뻐보이는 여자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정말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난 한 여자만 사랑하고 싶었지만, 사랑이란 건 절대 일방적일 수 없는것 아닌가?

세상에 60억의 인구가 있다.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지구 위에 60억개의 또다른 지구가 있다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딱히 이티나 에일리언을 떠올리지 않아도, 외계인과의 만남. 미지와의 조우에 필적하는 어마어마한 대 충돌인 셈이다. 하물며 남자와 여자, 게다가 연애라고 한다면 이건 뭐 거의 '지구 최후의 날' 수준일거다.

나의 사랑이 그녀(들)의 언어로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해!!"  가 "싸울래?" 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흐규~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대충 추측할 수 있을터. 암튼, 20살때 첫 연애를 시작으로 가장 최근 연애인 28살까지(그래 햇수로는 2년. 실제로는 3년가까운 시간동안 솔로를 만끽하는 중이다. 참고로 마지막 연애는 100일도 못채웠다능!!!), 약 8년간의 시간동안 그닥 많은 여자들을 만난건 아니지만, 짧게 했어도, 횟수는 적었어도 연애는 연애. 어느정도 하고나니, 나의 꿈들은 여지없이 뭉개졌다.

 

<500일의 썸머> 라는 묘~한 제목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우리의 주인공 '톰' 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있었다.

그도 운명을 믿었고, 운명의 여인을 믿었다.

근데, 그런 그가 첫눈에 보자마자 '오! 저 분이 나의 운명의 여인이야!!' 라고 느꼈던 여성이 하필이면 '썸머' 였다.

왜, '하필이면' 이었냐면, 이 썸머라는 아가씨는 부모님의 결혼 생활이 파탄으로 이어진 이후, 사랑으로 이어진 관계 자체에 대한 부정을 하게 된 여성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두 남녀가 만나도, '지구 최후의 날' 인데, 썸머와 톰의 만남은 '빅뱅'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다.

아니, 어쩌면 썸머와 톰도 그냥 평범한 남녀이지만 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세계관이 있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세계관과 완벽하게 대척점에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톰과 썸머는 그랬다.

 

운명적인 만남을 굳게 믿는 톰과, 운명은 커녕 사랑과 그 결실도 믿지 않는 썸머.

둘의 연애는 겉보기엔 엄청나게 평범하다.

성인 남자와 여자의 데이트는 겉보기에는 모두다 비슷하기 마련이다.

자주 만나서 대화하고, 함께 영화를 보거나 전시회를 가고,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스킨쉽을 하고, 키스를 하고, 그 이상의 것도 하고.

하지만, 문제는 둘의 관계를 '규정' 함에 있어서 썸머는 톰을 '그냥 친구' 라고 생각하고, 톰은 '연인' 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톰은 시간이 지나면 썸머도 자신과의 관계를 인정하리라고 생각한다.

그의 관점에서 둘의 관계는 아무리 봐도 그냥 친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썸머는 '관계'를 규정짓는 행위 자체를 거부한다. 서로에게 종속된 관계를 원치 않기때문이다.

할건 다 하지만, 떠나고 싶을때 훌쩍 떠날 수 있는 관계.

썸머는 그런 관계를 원했다.

 

난 예전엔 연애의 결실은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애란 언제나 상호간의 사랑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전제로 시작한 교제가 연애이고, 그것이 깊어지면서 현실이 되면, 결국 결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경험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내 경우에 대부분은 일방적인 사랑으로 연애가 시작됐다.

운명적인 연애라고 믿는 나의 사랑이 상대방의 관점에서는 무엇이 되어 다가갈지 전혀 알지 못했을 무렵이다.

난 나의 사랑을 맹목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을 터.

받은만큼 돌려줘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할 수 없기때문에 부담은 배가 되었을터다.

연애에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이 작품은 결국 연애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 '남녀관계' 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올바를터다.

물론, 남녀 관계에 연애와 결혼말고 무엇이 더 있겠냐마는. 그래서 결국 그 이야기가 주가 될 수 밖에 없지만서도.

작품 안에서는 남자인 톰이 좀 더 관계에 집착하고, 썸머가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며 욕구에 솔직한편이지만, 딱히 남녀의 역할 구분은 짓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이 작품 안에서는 줄곧 상충되던 두 세계관이 존재한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톰의 세계관과 그것을 절대 믿지 않는 썸머의 세계관.

이 둘은 성인이지만, 사실 자기만 고집하는 아이들과 같다.

 

결국 톰과 썸머의 애매모호한 관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삐걱거리게 된다.

톰은 자기 스스로에게서 문제점을 찾고 그 부분을 고치길 원하지만, 남녀간의 관계에서 사랑도, 문제도 모두 상호간에 일어나는 일이고, 반드시 둘이 함께 풀어나가야만 풀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소통' 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톰은 이 소통을 겁낸다.

톰은 분명 자신들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고, 이것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쉽게 그 문제를 끌어 올리지 못한다.

그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 올렸다가, 오히려 배가 가라앉아 버릴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제는 각자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었다.

안정적인 관계에 정착하고자 하는 톰, 그런 관계를 거부하는 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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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처음 해보는 톰에게 가장 이상적인 조언자는 어린 여동생이다.

(영화 '킥애스' 에서 나쁜놈들을 썰고 총알을 박아넣던 귀여운 꼬맹이가 여기서는 연애상담을 해주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꼬맹이...입술이 너무 예쁘다. 부디 이대로 잘 자라주길...)

이 거대한 문제 앞에 직면한 톰이 어린 여동생에게 묻는다.

 

톰:  내가 어떻게 하면 돼?

레이첼: 물어봐

톰: 왜? 왜 잘 가는 보트를 세우냐는 거지.

    내 말은 다 잘 되고 있는데, 거기에 이름표를 붙이기 시작하는건 죽음의 키스같은거야.

    그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

레이첼: 무슨 얘긴지 알아. 나하고 션이 그랬거든.

톰: 션이 누군데?

레이첼: 남자친구, 마크 전에.

톰: 그래서 무슨 얘길 하려는거야?

레이첼: 가서 물어봐야 한다고.

           틀림없어. 오빠는 자기가 바라지 않는 대답을 들을까봐 무서운거야.

           그래서 지난 몇 달 간의 아름다운 환상에 숨으려는거지.

           하지만 봐, 만약에 내가 오빠라면 당장 물어보겠어.

           쉽게 생각해, 오빠.

           겁내지 말라고.

 

 

사랑에 빠진 남자는 어린아이가 된다. 남자는 '관계' 에 있어서는 정말 세상 없어도 단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명적인' 여인을 만났다고 생각하는 톰은 더더욱 단순하다.

반면, 연애를 하는 여자는 정말 복잡하다.

초등학생에 불과한 여동생 레이첼이 자신의 경험(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연애를 한다!!OTL)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주는데, 톰의 상태는 정말로 레이첼이 사귀는 초등학생 남자들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ㅋㅋㅋㅋ

고집쟁이에,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겁이 많으며, 대화를 두려워하는 부분들이 말이다.

 

운명을 믿지 않는 썸머는 사실, '관계' 라는 것을 겁내고 두려워 하는것이 맞을 것이다.

그녀는 관계가 언젠가 반드시 끝나게 되있고, 그 순간의 고통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마음의 벽을 이중 삼중으로 둘러치고, 타인이 그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마치 휴전선 부근의 군인들처럼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라도 쏘아 죽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서로에게 종속된 관계를 깨뜨린다는 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럴 바엔 애초부터 그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썸머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확실하게 연애를 '즐기는' 쪽을 택한 것이다.

 

연애에는 정말 다양한 모습들이 있다.

10명의 커플이 있다고 친다면, 최소한 10개 이상의 케이스가 생성된다.

이것들은 얼핏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완벽하게 다르기도 하다.

그런 반면에, 잘 들어보면, '어? 나도 그랬는데!' 라는 부분이 있다. 그게 남자든 여자든.

연애란 전쟁이다.

 

남자와 여자. 기본적으로 남자는 정자를 '방출' 하는 종족이고, 여자는 그것을 '받아서 품는' 종족이다.

일단 이런 기본적인 역할 자체의 차이가 남성성과 여성성의 기본을 결정한다. 완벽하게 차별화된 남성성과 여성성은 2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동안 완벽하게 다른 가정에서 자라난다. 보고, 듣고, 느끼고, 먹고, 입는것이 모두 다르다. 다닌 학교, 사귄 친구들, 선생님과 부모님..더 말 할 것도 없을터다.

그 환경은 고유의 남성성과 여성성에 수많은 다른 것들을 첨가하여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남자라고 무조건 '싸지르는' 법을 배우지 않고, 여자라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남성성은 여성성과 융화되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면서 각자 자기의 고유한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톰의 세계관과 썸머의 세계관인 것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남성과 여성의 만남은 일종의 문명의 충돌, 문화의 충돌, 종교의 충돌, 물리적 충돌이다.

 

그리고 그 충돌, 그 전쟁은 자신의 모든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전쟁이다.

유치하고, 치졸하고,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남자와 여자의 내면 깊숙한 모든것들이 몽땅 드러난다.

이런 처절한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정도는 다 비슷하다.

그리고, 누구나 연애하면서 겪는 부분이다.

 

결국은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톰과 썸머의 경우 같은 케이스라면 과연 그것이 불가능하다. 애초에 자기 세상을 양보할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자기가 스스로 구축해 놓은 세계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것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세계를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톰과 썸머의 소통은 절대 합치될 수 없는 소통이다.

톰이 용기를 내서 썸머에게 "우리 어떻게 되는거야?" 라고 물었을때, 썸머는 "몰라, 무슨 상관이야. 난 행복해, 자긴 안 행복해?" 라고 되묻는다.

톰은 "행복하지." 라고 말하자, 썸머는 "됐네, 그럼" 이라며 소통을 단절시킨다.

톰에게 일방적으로 자기의 세계관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면, 서로의 관계를 끊임없이 규정하려 앴는 톰 역시, 썸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하지만 결국은 자기의 세계관을 요구한다.

마치 초딩들이 책상에 선을 그어놓고, 넘어오면 죽어!! 라며 투닥거리는 것과 똑같다.

 

결국은 각자의 세계관이 와르르 무너져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이 둘은, 진정으로 상대방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어리다.

자기의 세계관만을 고집하고, 상대방의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인들은 지하철 안이건 화장실 안이건, 배고프면 밥달라고 죽어라 울어대는 어린아이들과 다름없다.

 

 

실연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톰의 모습은, 자신의 세계관이 깨진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과 같다.

운명이라고 믿었던 사랑이 깨지는 것은 미치도록 힘든일이다.

 

그 순간  또 어린 여동생 레이첼의 한마디가 톰의 가슴을 파고든다.

"오빠가 썸머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는 건 알겠는데, 난 아니라고 봐.

지금은 그냥 좋은 점만 기억하고 있는거야.

다음번에 다시 생각해보면 오빠도 알게될거야."

 

 

그렇게 상실의 고통을 마주하고, 톰은 아주 조금 성장한다.

 

 

운명은 있다, 없다고 단정짓긴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한가지는, 그것은 우리가 하루에 겪는 수많은 우연들을 통해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톰은 500일만에 자신의 세계관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다.

 

톰과 썸머.

둘 중 옳은 사람도 없고, 그른 사람도 없다.

남자든, 여자든. 만남은 필연적으로 헤어짐을 낳고, 헤어짐은 또다른 만남을 낳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정말 보면 볼수록 새롭게 다가온다.

작년에 봤을때 다르고, 올해 볼 때 또 다르다.

누군가가 마음속에 있을때 다르고, 없을때 역시 또 다르다.

과거의 실연들을 추억할 때 다르고, 잊었을때 역시 또 다르다.

 

 

하지만, 이 엔딩만큼은 언제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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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대부분의 날들은 평범하다.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나고.

그 사이에 남겨지는 추억도 없이

대부분의 날들은 인생에 있어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는다.

톰이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면,

그건 전 우주적 의미를  단순히 지구적 이벤트로 치부래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우연

 

항상 일어나는 그것이다.

 

우연,

 

그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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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쓰기 - 전방위 문화기획자를 위한
장상용 지음 / 해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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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고, 듣는것은 모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인간은 유희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즐거움을 추구하고, 이야기란 즐거움을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도 단순한 방법이다.

이야기, 즉 '스토리' 를 통해 무생물은 생명을 얻고, 찰나의 순간은 명확한 서사를 가진 영원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찰나의 순간에 영원이라는 시간을 불어넣는 과정을 '스토리 텔링' 이라고 부를 수 있을것이다.

 

세상 모든 것에는 '스토리' 가 있고, 세상 어떤 것에도 '스토리' 를 부여할 수 있다.

생판 모르던 두 남녀가 스토리를 통해 어린시절 헤어진 남매가 되기도 하고, 전생에 연인이거나 혹은 원수였던 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 뿐이랴, 정체를 숨긴 스파이나 외계인이 되기도 하고, 철천지 원수 사이로 만나 복수를 꿈꾸기도 한다.

이 남녀를 그런 사이로 만드는 과정이 바로 스토리 텔링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로미오와 줄리엣 답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숱한 '스토리' 들이다.

철천지 원수간인 두 가문. 그 가문의 비슷한 나이대의 청춘 남녀. 서로 한눈에 반할만한 외모, 그리고 그 순간을 이끌어내는 가면무도회에서의 첫 만남. 여기에 둘의 관계를 알고 도와주는 줄리엣의 유모, 성당의 신부, 그리고 그 관계를 방해하는 줄리엣의 사촌오빠.

관계를 파국으로 이끄는 치명적인 결투, 그리고 신부가 구해주는 수면제와, 로미오가 구하는 독약.

이 모든 요소들이 인과적으로 명확히 연결되고, 그 과정들의 디테일이 설득력이 있을때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 이 완성된다.

 

이 책은 이렇게, 이야기를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만드는 기본적인 방법들이 모여있다.

 

개인적으로 영화나 연극 시나리오를 공부한 적이 있었기에 처음 이 책의 내용을 들었을때, 굉장히 두껍고 전문적일 것이라는 예상을 했었다. 게다가 단순히 영화나 연극 뿐 아니라, 만화, 드라마, 게임등 제목 그대로 '전방위' 적인 장르들을 담기만 하는데도 상당한 분량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깜짝 놀랄정도로 얇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다 가벼운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 책은 그야말로 일종의 '다이제스트' 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영화, 드라마, 만화, 연극은 물론 소설까지 다양한 장르를 모두 관통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요소들만 뽑아서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 정리한 카테고리와 뽑아낸 요약본도 쉽고 알차서 한 부분도 놓치고 싶지 않을정도이다.

 

우선 카테고리들은 크게 '구성' 과 '연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잡는 방법을 제시한 뒤에, 그 캐릭터를 활용하는 연출기술의 몇가지를 보여주고,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구성방법을 알려준다. 캐릭터의 주변 인물들을 배치하는 연출기술을 제시하고, 사건을 나열하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기본적으로 스토리를 '구성' 하는 기술의 엑기스들을 알려준다.

 

이 과정도 크게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다. 저자는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최근의 드라마나 소설, 영화의 킬러씬들을 예로 들기때문에 대중문화에 관심깨나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것이다.

 

이 두 부분 사이에, 최근의 유행대로 원소스 멀티유즈의 방법, 즉. 각 장르에 따른 각색 요령을 간단히 정리해 준 뒤에 본격적인 연출 기법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 역시 굉장히 쉽고 명징하게 설명하고 있다.

관객들을 캐릭터에 감정이입시키고, 그 감정을 따라 흐르게 만드는 다양한 기법들이 역시 위와 같이 크게 히트한 작품들의 킬러씬들을 예로 들며 또박또박 짚어나간다.

 

'스토리 텔링' 은 '문학' 과는 차별을 두어야 하는 분야임은 확실하다.

비록, 그 뿌리는 같다고 하더라도, 스토리 텔링은 엄연히 '대중' 을 타겟으로 한 철저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일종의 기술이다.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식상한 것을 식상하지 않게 다듬고 꾸미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책을 보면,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소위 '막장' 드라마를 볼까?

왜 그렇게 욕을 많이 먹으면서도 작가들은 끊임없이 '막장' 드라마 대본을 쓸까?

라는 의문은 어느정도 해답을 얻을 수 있을것이다.

 

사실 해답은 우리도 다 알고 있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미' 를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도 유익한 지침서를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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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 Incepti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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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보다 전염성이 강하고, 기생충보다 떼어내기 힘든 것이 무엇일까?
그는 그것이 '아이디어' 라고 했다. '생각'. 그것은 떼어낼 수도 없고, 버릴수도 없다.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어딘가에는 있기마련.
타인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계를 이용해 그런 아이디어를 훔쳐가는 이들이 생겼다. 그리고 그것은 온갖 기업 기밀들과 국가기밀들을 훔쳐내는데 사용되었고, 꿈을 통해 드러나는 그런 무의식의 세계에 효과적으로 침입하는 기술과 그것을 막아내는 가술들이 고안되고 발전되었다. 
 
'돔 코브' 는 꿈을 통해 그런 생각과 아이디어를 훔쳐가는 이들로부터 그것을 방어하는 훈련을 시켜주는 트레이너인 동시에, 반대로 자신이 그런 아이디어를 훔쳐내는 최고의 '추출자' 이기도 하다.
 
코브는 자신의 팀들과 함께 '사이토' 라는 인물의 꿈속으로 들어간다. 글로벌 기업의 거물중의 거물인 사이토가 가지고 있는 기밀 정부를 뽑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꿈속의 꿈을 이용한 트릭으로 사이토가 무의식 깊숙히 숨겨놓은 정보를 거의 손에 넣으려던 찰나 조금씩 어긋난 어떤 것들의 방해로 작전은 실패하고 만다.
 
코브를 고용해 사이토로부터 정보를 추출하려고 했던 기업인 '코볼' 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무리들이었다.
사이토에게서 정보를 추출하는 것을 실패한 코브는 이제 코볼에게 쫓기는 신세가 될 터였다. 하지만, 이 작전은 애초부터 실패할 것이었다. 팀내에 배신자가 있었던 것이다. 사이토는 이를 역이용하여 자신의 정보를 보호함과 동시에 코브의 실력을 테스트 한 것이었다.
사이토는 코브의 보호와 동시에, 그가 미국 정부에 수배된 몸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새로운 일을 의뢰한다.
 
그 의뢰는 바로 '인셉션' . 즉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생각' 을 심는 일이었다.
꿈을 이용해 '표적' 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서 생각, 아이디어를 훔쳐내는 '추출' 말고, 무의식이라는 밭에 생각의 씨앗을 심어 그것을 자라나게 하여, 결국  그 본질이 되게 하는 기술인 '인셉션' 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기술이었다.
그가 심어놓은 생각이 어떤 식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예츨할 수 없기때문에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기술이었다.
 
사이토는 모든 경비부담은 물론 코브에게 내려져있는 수배령을 풀어주겠다고 한다.
코브는 사랑하는 두 아이들을 다시 만난다는 일념으로 그의 위험천만한 임무를 수락한다.
그의 표적은 세계 굴지의 에너지 기업의 후계자인 '피셔'. 그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코브는 함께 일해온 꿈의 '설계자' 인 '아서' 외에 새로운 설계자인 '애리어드니' 를 추가 영입하고, 꿈 속에서 표적을 혼란시킨 '페이크 맨'인 '이미스' 와 꿈속으로 들어가는데 도움을 주는 '약물' 을 개발하는 약쟁이'유수프'를 영입해 팀을 꾸린다.
 
하지만, 코브의 무의식 속에는 언제나 코브의 작전을 방해하는, 부인 '멜' 이 있었는데...
 
 
 
 
 

 
 
 
 
 
 
크리스토퍼 놀란은 '메멘토' 라는 깜짝 놀랄만한 작품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데뷔작인 '메멘토' 와  후속작 '인썸니아' , 그리고 본 작품인 '인셉션' 은 개인적으로는 '죄책감 연작' 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메멘토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역시간순으로 엮어내며 자신이 저지른 죄를 잊고, 그 죄책감마저 잊으려는 주인공을 그려냈다면, 인썸니아는 실수로 동료 경관을 죽인 형사가 자신의 죄를 쫓고있는 살인자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조여오는 죄책감과 그로인한 불면을 그려냈다.

그리고 본 작품인 '인셉션' 은 자신의 무의식 깊숙히 숨겨진 죄책감을 형상으로  등장시킨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꿈 = 무의식의 발현' 이라는 프로이트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깊은 상처나 과거의 기억등이 무의식에 깊이 아로새겨져, 그것이 발현되는 곳.
 
정말 신선하고 재미난 발상들이 가득가득 메워져 있다.
아마도 엄청나게 디테일하고 복잡하기 짝이없는 설정들이 논리적으로 짜맞춰져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사실 영화의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건 왜? 저건 뭐? 이게 무슨말??
이런 부분이 여러번 등장하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등장인물간의 대화나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나가면 이야기를 이해할만한 정보들을 충분히 제공된다.
 
예로부터 꿈은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온 소재이다.
인생은 백주 대낮에 꾼 부귀영화를 누리는 아홉가지의 꿈과같은 것이라고도 하고, 내 인생은 나비가 꾸고있는 꿈에 불과한 것이라고도 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을 기반하고 있다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동양적인 이것에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공 코브는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으며, 아내에 대한 사랑 역시 버릴수가 없었다.
그 두가지는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증오와 타인에 대한 사랑. 이 둘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다.
 
언제나 인간의 본질을 깊이있게 탐구하며, 그를 위해 충돌하는 두가지 요소를 대립시키는 놀란 감독은 이번에도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냈다.
메멘토와 인썸니아를 통해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도 충분히 '재미있게' 꾸밀 수 있음을 증명했던 그는 '배트맨 비긴즈' 와 '다크 나이트' 를 통해 '공포' 와 '복수', '합법' 와 '비합법' 의 충돌 안에서 살고있는 배트맨을 리얼하고 섬세하게 그려냈었다.
그리고, '인셉션' 을 통해 '무의식' 의 세계를 구체화 시켰다.
 
탁월한 상상력과 짜임새 있는 이야기, 치밀한 설정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역작중의 역작.
개인적으로는 가슴이 조여지는 열린 결말도 너무너무 좋다.
 
한 두번은 더 보고싶다.
 

 

 

 

 

 

 

 

 

 

 

 

 

 

 

 

 

 

 

 

 

 

 

 

여기부터 스포일러 주의!!!!!!!!!!!!!!!!!!!!!!
 
 
 
 
 
 
 
 
 
 
 
 
일단 이 작품을 즐기기 위해서는 몇가지 팁이 필요하다.
 

 

[1]. 꿈 속에는 어떻게 들어가는가??

 

정확히 명칭이 나오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떤 기계와 약물이 있다. 정맥부근에 미세한 침으로 약물을 주입하는 튜브가 달려있는 듯 하고, 크기는 철제 서류가방 크기이다. 이 약물과 기계에는 타임 리밋을 설정할 수도 있다.

 

 

[2]. 꿈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가??

 

꿈속에서 죽으면 깨게 된다. 

 

꿈속에서 받는 고통은, 그 안에서 고스란히 느끼게 되지만, 꿈속에서 죽으면 잠에서 깨는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꿈을 꾸고 있는 본체가 충격을 받거나, 흔들리면 깬다. 특히 크게 넘어지거나 떨어지는 느낌이 가장 효과적인데 이것을 '킥' 이라고 부른다.

 

꿈꾸는 기계에도 자체적인 타임 리밋 장치가 되어있는 듯 하다. 약물의 지속효과 시간도 영향이 있어서, 시간이 다 되면 저절로 깨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인셉션을 행하는 팀원들은 왠만한 충격에는 잠에서 깨지 않도록 강력한 약물을 주입받아, 꿈속에서 죽으면 곧장 '림보' 라고 불리우는 무의식의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3]. 꿈 속에서 어떻게 정보를 추출하는가??

 

먼저 정보를 추출해내는 능력을 지닌 '추출자' 가 있다. 그리고 꿈속의 세계를 설계할 수 있는  '설계자' 가 필요하다.

정보를 빼낼 대상인 '표적' 이 존재하며, 추출자를 도와 표적을 혼란시키기 위해 '페이크 맨' 이라는 역할도 필요하다.

 

설계자는 꿈속의 세계를 설계한다. 미궁처럼 복잡하게 설계한 꿈 속 세상의 도면은 꿈 속에서 그대로 구현된다.

그리고 이 공간에 표적이 되는 인물의 무의식을 채워넣는다.

이 과정중에 표적이 자신이 현재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서는 안된다. 표적이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아채면 표적의 무의식들이 침입자를 공격하려고 한다.

 

먼저 이 작품에서 오프닝으로 진행됐던 '사이토' 에게서 정보를 추출하는 과정으로 설명해 보겠다.

사전에 코브는 고용된 회사로부터 사이토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뒤, 설계자인 내쉬와 아서가 그것을 토대로 꿈속의 세계를 설계한다.

표적이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몰라야 하기 때문에, 모든건 정말 현실과 완벽히 똑같아야 한다.

집, 소품, 구조, 자연 현상까지 모두 일치해야 표적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꿈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터.

코브가 빼내야 할 정보는 회사의 1급기밀사항. 사이토가 자신의 기밀을 넣어놓는 금고까지 완벽하게 구현된 꿈 속 세상에서, 코브는 금고를 열어 그 내용을 확인한다.

 

그런 식으로 중요한 정보들을 추출해 내는 것이다.

 

때로는 이런 의도적인 침입을 막기 위해 무의식을 훈련시키곤 한다.

훈련받은 사람의 무의식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도, 침입자를 공격하는 경호원들이 나타나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한다.

 

인셉션의 대상이었던 '피셔' 는 이런 훈련을 받았던 인물로서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끊임없이 경호원들이 나타나 인셉션 팀원들을 괴롭히다.

 

만약 '꿈을 꾸고 있는 대상' 이 죽으면(깨어나면) 그 꿈속의 세상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오프닝에서 코브는 사이토의 비밀금고를 열어 기밀서류를 확인하지만, 설계자이자 꿈꾸는 자였던 아서가 죽음으로서 꿈속 세상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4] 꿈을 통해 몇 단계의 무의식까지 침입할 수 있는가??

 

꿈의 단계는 4단계로 구분한다.

 

먼저 현실에서 첫번째 꿈을 꾸는게 1단계이다. 이 작품 안에서는 시가전이 벌어지는 곳이다.

2단계는 꿈 속에서 드림 머신을 이용해 또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즉, 꿈 속의 꿈이다. 이 작품 안에서는 호텔방이다.

3단계는 2단계에서 한번 더 꿈을 꾸면 된다. 이 작품안에서는 설산의 요새이다.

마지막 4단계는 '림보' 라고 불리우는 무의 공간이다. 진정한 무의 공간으로서 이 영역에 도달한 사람은 자신이 현재 꿈을 꾸고 있는지, 현실에 있는지 전혀 구분해 내지 못한다.

 

 

 

[5] 꿈속에서의 시간개념은 어떻게 되는가??

 

꿈속에서는 현실보다 훨씬 느리게 시간이 흐른다. 그것은 약물과 드림머신으로 인해 뇌가 활성화되어 연산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인데,  단계별로 그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느려진다.

즉, 1단계에서의 몇시간은 현실에서는 단 몇분에 불과하지 않으며, 2단계에서는 며칠, 3단계에서는 몇달,  림보에서는 몇년에 해당된다.

 

 

 

[6] '림보' 란 무엇인가?

 

누구의 꿈 속으로 들어가든, 꿈 속 세계로 이동하는 것은 한 인간의 '무의식' 이다.

림보라는 영역은 아마도 꿈꾸는 기계인 드림머신과 그것을 도와주는 약물로 인한 부작용, 혹은 반작용의 산물로 보여진다.

 

이 공간은 한 인물에게 특정된 공간이 아니다.

 

원래는 꿈에서 깨어나면, 그 사람이 창조한 꿈속의 세계는 모두 붕괴되어야 하는데, 코브가 멜과 함께 창조했던 세계가 그대로 세월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이것은 림보가 인물과 관계되어있지 않은 별개의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림보에 빠진 사이토와 피셔 역시, 그들 각자의 꿈이 아니라 코브가 자신의 꿈속으로 들어가서 구해오는 과정을 봐도 알 수 있다.

 

일단 '꿈 속  세상' 이라는 영역을 독립된 영역으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꿈 속 세상은 하나의 또 다른 세상이고, 이 세상에 기계와 약물을 통해 나의 '의식' 을 실체화 시켜 던져넣는 것이다.

 

이 과정을 되풀이 하다보면, 자신의 의식과 동화되는 영역이 나타난다.

이 영역에서는 도달한 의식이 마치 신처럼 모든 것들은 조종할 수 있으나, 그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멜과 코브에게 그곳은 파라다이스나 다름 없었지만,

 

만약 자신의 의식이 림보의 영역에 있는 상태에서 억지로 깨어나게 된다면, 그곳에 '의식' 을 그대로 두고 현실로 돌아오는 셈이 된다.

'의식' 이란 것을 정의할 수 없지만, 그 존재를 이루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것들임은 자명한 일.

깨어난 사람의 거의 치매 노인에 가까운 상태로 반 식물인간처럼 살아가게 되며, 그의 의식은 림보의 공간을 영원히 떠돌게 될 것이다.

 

림보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드림머신에 연결되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해야만 한다.

드림머신의 타임리밋이나 약효가 다하기 전에, 그 안에서 죽음을 택해 잠에서 깨어나는 방법으로 의식을 끌어 올려야 하는 것이다.

 

 

 

 

[7] 그렇다면, '설계' 란 무엇인가?

 

이것 역시 꿈의 영역을 별개의 영역으로 상정하면 이해가 된다.

꿈을 꾸는 사람은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공간을 '창조' 해 낸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렇기때문에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한다.

설계란 '표적' 이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이 아닌, 현실에 있다고 믿도록 할만큼 정교한 세계를 창조하는 일을 해야 한다.

때문에, 설계자의 기억에 의존한다면 표적에게 들킬 가능성이 있다.

철저하게 정보와 자료, 그리고 창조력을 발휘하여 꿈속의 세상을 창조해 내야만 한다.

완벽하게 현실같은 공간이거나, 표적이 한번도 본 적 없는 곳. 둘 중 한 곳이어야 완벽하게 표적을 속일 수 있다. 

 

설계를 한 사람이 꿈을 꾸지 않아도, 그 세계를 구현시킬 수 있다.

에이드리네는 자신이 설계한 세계의 도면을 각 레벨에 꿈꾸기로 담당했던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1레벨에서는 약쟁이 유수프가 에이드리네의 도면으로 꿈을 꾸었다. (시가전이 벌어졌던 도시)

2레벨에서는 설계자 아서가 에이드리네의 도면으로 꿈을 꾼다.(호텔)

3레벨에서는 페이크맨 에미스가 역시 에이드리네의 도면으로 꿈을 꾼다.(설산 기지)

 

학생 신분인 에이드리네는 사실 인셉션 팀에 합류해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에이드리네가 설계했던 꿈의 세상은 각각 꿈을 꾸는것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깨어나면서 모두 붕괴된다.

 

 

 

[8] 인셉션 작전의 과정

 

인셉션의 목표는 상속자인 피셔가 아버지의 그룹을 물려받으면 그것을 쪼개게 하는 생각을 심어내는 것이다.

즉, 사이토는 경쟁사의 회사를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고, 그 시발점을 상속자인 피셔가 하게 만드려는 의도.

코브는 그것이 긍정적인 의도로 심어져야 효과가 있으며, 피셔에게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말고 새로운 회사를 개척하라' 는 생각을 심어주고자 한다.

 

 

A. 현실.

표적인 피셔가 오랫동안 잠을 잘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마련한다.

(사이토가 간단히 해결하며, 시드니에서 미국까지의 비행을 이용한다.)

유수프가 만든 약물로 깊은 잠에 빠져들고, 이 약물로 인해 일행들은 꿈속에서 죽으면 깨어나지 않고 림보의 영역으로 직행하게 된다.

 

모든 꿈은 에이드리네가 설계.

 

B. 1단계 꿈속 - 도시

꿈꾸는 사람: 유스프

표적: 피셔  - 현실이라고 인지

피셔는 자신이 현실에 있다고 인지하고 있지만, 무의식을 방어하는 법을 훈련받았기 때문에, 무의식 사이에 숨겨놓은 방어자들이 나타나  침입자인 인셉션 팀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사이토가 총상을 입고 죽어간다.

 

C. 2단계 꿈속 - 호텔

꿈꾸는 사람: 아서

표적: 피셔  -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피셔에게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더 깊은 무의식의 세계인 꿈속의 꿈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시 꿈을 꾸게 만든다.

 

D. 3단계 꿈속 - 설산 요새

꿈꾸는 사람: 이미스

표적: 피셔 -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 세상이 자신의 꿈속이라고 알고 있다.

피셔는 1단계부터 계속된 암시로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메시지가 있으며, 그것이 이 요새 안에 있다고 알고있다.

1단계의 꿈속에 있던 사이토가 죽으면서 림보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피셔마저 금고 문 앞에서 멜에게 살해당함으로서 림보의 영역에 빠져버린다.

 

E. 4단계 꿈속 - 림보

꿈꾸는 사람: 코브

림보의 영역에 들어온 이상 표적은 무의미. 이미 한번 와봤던 곳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에이드리네가 함께 있기 때문인지 코브는 자신이 림보의 영역에 있음을 인지하고있다. 피셔를 림보의 영역에서 탈출시키고, 에이드리네도 림보의 영역을 떠나지만 코브는 사이토를 찾기위해 남기로 한다.

 

F. 3단계 꿈속  - 설산 요새

꿈꾸는 사람: 이미스

표적: 피셔

피셔는 금고를 열어 확인함으로서 인셉션 팀의 작전이 성공한다.

이미스가 요새를 폭파시킴으로서 3단계 꿈속에 있던 이미스. 피셔. 에이드리네, 사이토, 코브에게 킥을 행한다.

사이토와 코브는 림보의 영역에 있기에 깨어나지 못하고, 에이드리에는 적절한 타이밍에 탈출해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G. 2단계 꿈속  - 호텔

꿈꾸는 사람: 아서

표적: 피셔

아서는 1단계에서 꿈꾸고 있는 일행들이 자유낙하 하는 바람에 그 영향으로 중력을 잃은 세상에 있게 된다. 때문에 킥을 행하는데 문제가 생기는데, 엘리베이터 안에 꿈꾸는 일행들과 자신이 탑승하고, 외부에 폭탄을 설치에 폭발의 팽창력을 이용해 킥을 행한다.

사이토와 코브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한다.

 

H. 1단계 꿈속 - 도시

꿈꾸는 사람: 유수프

표적: 피셔

유수프는 꿈꾸는 일행들이 탄 차를 통째로 강으로 추락시킴으로서 킥을 행한다. 물에 충격되는 순간 일행들이 모두 깨어나고, 탈출해 나오지만, 역시 깨어나지 못하는 사이토와 코브는 차 안에 그대로 두고 나온다.

 

I.4단계 꿈속 - 림보

코브와 사이토는 림보의 영역에서 조우한다. 사이토나 코브나 둘 다 기억이 혼란스러운 상태이지만, 코브는 자신이 갖고있던 토템을 봄으로서 꿈속 세상임을 인지, 곧 림보라는 상황을 인지하며, 림보의 영역에서 노인이 다 된 사이토 역시 코브를 실마리로 기억을 되살려낸다.

 

 

[9]. 애매모호한 엔딩

 

이미 엄청나게 많은 '설' 들이 존재한다.

엔딩 시퀀스만으로도 성공과 실패, 두가지의 설이 가능하고, 그것을 통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 흐름의 의도에 대한 가설들이 가능하다.

일단, 가장 큰 논쟁거리는 공항에서 나오는 코브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존재다.

프랑스 파리에 있던 아버지가 지명수배중이던 아들 코브가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고 신분이 복구되 돌아올 줄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보게 된  두 아이 필리페와 제임스의 뒷모습과 옷. 영화 중간중간 회상처럼 등장하고, 코브의 기억의 영역속, 그리고 림보의 영역에 있던 아이들의 모습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옷도 완전히 똑같다.

만약 그것이 실제였다면 아이들도 많이 자라있어야 하고, 적어도 옷이라도 다른 옷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유수프의 지하 꿈 공유장에서 황망하게 일어났던 코브가 그 뒤로 토템을 사용하는 모습이 한번도 안나왔다는 점 역시 엔딩의 의문을 가중시킨다.

 

 

 

 

위에 정리한 것들은 조조로 영화보고, 집에온 내내 머리 써가며 정리한 것들이다.

아마 인터넷을 좀 뒤져보면 훨씬 더 많고 다양한 정보들이 있을것이다.

아마 영화를 본 평범한 사람들은 딱 요정도는 정리할 수 있을것이고,

영화를 본 뒤에 알쏭달쏭해 하는 사람들은 이정도 설명으로 어느정도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매트릭스 이후 아주 오랫만에 수많은 설들로 영화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줄 작품이 나온 것 같아 아주 즐겁다.

아마 상영 기간이 더 길어지고, 관객들이 더 많아진다면 훨씬 재미있는 설들이 많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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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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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이 하루아침에 멸문지화를 맞고 말았다.

임금은 벼르고 있었다.

완고하고 숙련된 정치꾼인 임금은 이 일이 본보기가 되기를 바랐다.

연홍은 그 집안의 여식이었다. 아비와 오빠들은 참수당했을 터다.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살아온 어미와 관비로 떨어졌지만, 이제 그 어미 역시 호역에 걸려 썪어가는 시체로 눈 앞에 놓있었다.

연홍의 눈앞에 까만 나비 한마리가 눈에 들어왔고, 그 순간 연홍은 빛을 잃었다.

 

임금에게 지을 상소를 글로 옮긴이는 수강이었다.

연홍의 정혼자이자, 장인의 수제자이기도 했던 수강은 스승의 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 역시 참수당할 운명이었으나, 아버지가 세웠던 공 덕분에 그것을 면할 수 있었고, 사위이자 제자였던 불편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 참작되어 눈을 잃는 것 또한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죄는 벌로 갚아야 하는 법. 수강은 혀를 잃고말았다.

그와함께 수강은 소리도, 그리고 글도 잃어야 했다.

 

우재는 징신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래서 죽었다.

그리고 그는 차사를 택했다. 차사는 일종의 안내인이었다. 차사는 죽은 넋을 걷어오는 일을 해야했다.

차사가 실수하면, 그 넋은 육체에 더 머물게 된다. 전에 차사의 실수로 어떤 넋은 토막난 육체 안에서 고통스럽게 얼마간의 시간을 더 붙어있어야 했다. 넋은 강하다고, 훈육차사가 말했었다. 수습차사인 징신은 첫 넋걷이를 하는날 연홍과 눈이 마주쳤다.

연홍의 눈의 빛을 빼앗은건 바로 우재. 저승이름인 '화율' 이었다.

 

"-저도 차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남아서 배운다면, 그리고 이긴다면.

-무엇을 이겨야 합니까?

-네 기억.

-그렇게 간단합니까?

-간단? 오만하구나. 쉽지 않다.

-해보겠습니다. 이곳에 남겠습니다.

그렇게 우재는, 모호함과 애매함을 품고 수습차사가 되었다."

p. 124

 

 

 

 

 

김진규 작가의 작품은 쉽지 않다.

여기서, 쉽지 않다는 의미는 가볍지 않다, 불친절하다, 난해하기도 하고, 한번에 잘 읽혀지지 않는 문장들이 있으며, 서사구조나 인물간의 상관관계도 친절하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내가 김진규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 것은 '달을 먹다' 였다.

수많은 인물들이 촘촘하게 등장하고, 관계가 있는듯, 없는듯 세밀하게 짜여져있는 인연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의 인생에 얽혀드는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이 갖고있는 절절한 감정들이 깊이 배여있었다.

그녀의 작품은 한번으로는 다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두번읽고, 세번 읽으니 시대의 흐름속에 끈끈하게 녹아붙은 사람들간의 감정들이 가닥가닥 내 마음에 와닿았다.

 

이번 작품인 '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은 '달을 먹다' 보다는 친절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쉽지않다.

연홍과 수강의 삶, 우재와 징신의 사랑, 염색장과 수강의 대화도 쉽지 않다.

영조의 삶도 쉽지 않고,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삶 역시 쉽지 않다.

 

김진규 작가의 문장은 끈끈하다.

뭐라고 딱 잘라서 그 느낌을 설명할 수 없겠지만,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렇다.

그녀의 문장은 가슴이 오그라들만큼 정련되고 정련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날카롭지 않다.

섬세하고 세밀하지만, 묵직하고 끈끈하다. 살을 녹이고 피를 끓여 정련한 쇳물로 만들어낸 에밀레종처럼 그녀의 글들에는 피와 살이 묻어있다. 그래서 끈끈하다. 되씹으면 되씹을수록 아름답고, 읽으면 읽을수록 와닿는다.

긴 시라고도 할 수 있을정도로 세밀하게 계산된 문단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며, 단락마다 문장의 완성도가 뛰어나다.

섬세하고 풍성한 내러티브를 넘어서서, 문장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서사가 시작되고 완성된다.

 

인간은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저승차사들이 이겨내야 하는것은 스스로의 기억이었다.

그 기억은 자신이 되풀이해 왔던 모든 생애에 대한 기억이었다.

우재는 사라지고 화율이 되어, 이승이 아닌 저승의 존재가 되었지만, 어느곳에서도 화율은 화율이 될 수 없었다.

우재의 기억, 그 전. 그 전의 기억들까지 화율을 괴롭혔다.

그는 징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징신을 찾기 시작한다. 어리석게도. 어리석게도.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기억이 감정과 마음까지 아우른다면, 그것은 잊는다고 잊히는 것이 아니며, 이긴다고 잊히는 것이 아니므로.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은, 말해야 했지만 말하지 못한, 그런 여분의 말이 또하나 늘어서 화율은 무거웠다.

- 말, 말... 이승도 저승도, 결국 말 때문에 어지럽혀지는거야.

말하지 못했더나 말하면 안 되거나 말하지 않거나, 하는 이유로 나타나지 못한 말들과 그럼에도 해버려서 드러난 말들이 늘 충돌했다.

하나 말들의 다툼에서 다치는 쪽은 말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p. 288 "

 

 

 

 

 

모든 삶은 과거의 되풀이에 불과하다.

아무리 어리석은 짓이라 할지라도, 그게 인생이라면 되풀이 한다.

아무리 큰 실패라 할지라도, 그게 인생이라면 되풀이 한다.

그것을 '업' 또는 '살'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살이란 거짓이라고 말한다.

그건 단지 인간을 협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정해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달을 먹다' 에서 '숙명' 에 대해 이야기 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선 그 숙명또한 자신의 '선택' 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차사, 살 따위는 없으이.

이런 살 저런 살, 그런 것들은 그저 협박일 뿐이지.

인간이 인간을 협박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핑계 말이야.

겁을 줘서말을 듣게 하거나 협박을 해서 뭔가와 통해보고자 하는 건 그게 뭐든 가짜네.

일면 정연해 보이나 잡설도 못 되지.

삶은 자연이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일물一物로 차사 스스로를 바라보시게.

 

일물. 하나. 세상의 단 하나.

화율은 유일함의 가치를 생각했다.

하지만 가치가 있는 것이 유일할 수 있다고 해서 유일한 것에 저절로 가치가 부여되는 건 아니었다.

자신처럼.

p. 175" 

 

 

작품 안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찾아다닌다'

'선택의 때'.

누구에게나 선택의 때는 있다. 그것은 단순히 삶의 이정표에서 길을 찾는 선택의 때가 아니다.

한 사람은 이미 죽어있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태어날때마다 전생의 기억을 안고 태어나는 사람이다.

한 사람은 혀를 잃은 사람이고, 한 사람은 넋의 반을 저승에 두고 온 사람이다.

 

 

'저승차사'. 죽은 뒤의 세계가 나오고, 이미 죽은 인물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판타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사후에 대한 부분은 이미 죽은 화율의 입장에서도 생각보다 '별 게 없다.'

작가는 화율이나 저승이라는 존재를 통해 사후세계에 대해 그리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삶' 을 가장 잘 조명할 수 있는 비교대상은 당연하게도 '죽음' 이다.

삶과 죽음은 절대로 떼어낼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고,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인간이 자신의 삶. 생애를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유일한 순간은 죽음에 임박했을 순간일테고, 결국 삶을 가장 잘 비춰볼 수 있는 입장은 죽음뿐인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결국 삶이란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존재들에게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저 아이도 결국은 사람을 기대하는 거겠지. 사람한텐 사람밖에 없으니가.

여기 있는 사람들. 이 마을 말이야.

신은 멀었다. 사람을 위로하는 건, 사람을 돕는 건, 결국 사람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 멀리 있는 신도 아니고 죽어 가버린 사람도 아닌, 살아남아 곁에 있는 사람.

p. 337"

 

그리고, 당연하게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살아있는 사람뿐이다.

죽은 기억에 얽매이고, 지나간 시간들에 얽매인다면 그것은 올바른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닌것이다.

 

"-많이들 미치느니. 미칠 것들이야 널렸으니 말이다.

--나도 이젠 미쳐야 하는데.

-하나 사람에 미치면 그게 끝인게야.

p. 286"

 

염색장 채관은 사람에 미치면 그게 끝이다고 말했다.

모든 이야기의 막바지에서, 염색장 채관이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듯 읊조렸던 그 구절을 읽는 순간,

'달을 먹다' 에서 난이가 희우를 보았을 때의 구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희우.

오라버니를 보자마자 나는 그냥 울었다. 울 수 밖에 없었다.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너로 인해 죽겠구나.

그게 어떻게 알아졌는지 모르지만 저절로 알아진 걸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달을 먹다 - 김진규 2007' p.156"

 

채관은 그랬다. 찾고 찾았다. 윤회하는 그녀를 찾아 수 번의 삶을 살았지만, 그 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가 온 순간, 채관은 놓아버린다.

 

"-부럽구나

--내가?? 무엇이?

-내겐 남은 것이 없거든. 해줄 것이 없어. 하나 수강, 너는 다르느니.

--기다리는 것?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의 길이?

-수강아.

--알아줄까? 내가 그리하면...... 기다리면 연홍이 알아줄까?

-마음과 겨루지 마라. 세월이 바쁘다.

....

-하고자 한다고 명분이 생겨나지 않고, 피하려 한다고 변명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하니 마음과 겨루지 마라.

...

나는 이제 기다리지 않을란다. 여기... 다신 오지 않을란다.

 

p. 301~302"

 

 

-하나의 선택이 다른 하나의 때를 만드는구나.

 p.320

 

선택이 때를 만든다.

화율이 생전의 기억에 떠밀려 눈을 떴고, 그와 눈이 마주친 연홍이 빛을 잃었다.

연홍이 겁탈을 당함으로 인해 아이를 가졌고, 채관의 손에 이끌렸고, 수강의 손에 이끌렸다.

선택, 선택.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선택. 또 선택.

 

삶이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인연이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켜, 누군가의 어떤 선택이, 다른 누군가의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바로 그 선택이 바로 삶의 증거이리라.

그 선택의 결과가 바로 삶의 징표이리라.

 

선택은 때를 만들고, 사람들은 그 안으로 녹아든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죽고, 살고, 사람에 미치고, 색에 미치고, 글에 미친다. 혹은 얻고, 혹은 잃는다.

 

-그래, 수강도 살아남은 사람이지.

p. 337"

 

나의 때는 언제가 될 것인가.

난  아직 때를 기다린다.

미칠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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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가야사 - 신화 시대부터 가야의 후손 김유신까지
이희근.김경복 지음 / 청아출판사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가야.

굉장히 낯익지만,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역사.

가야에 대한 역사적인 사료들이 많지 않은것은, 한반도에 깊이 새겨있는 슬픈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한다.

일본이 야마토 정권 시대에 남부지방을 지배했었다는 주장인 '임나일본부'의 '임나'의 위치가 바로 가야가 있던 바로 그 위치였기 때문이다. 임나일본부가 성립하려면, 야먀토 정권 이전에 한국 남부지방에 그보다 앞선 문명이 있어선 안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일제 강점기 시절, 자신들의 한반도 식민지화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임나일본부설에 집착했고, 한국 남부지방, 특히 김해지방의 고고학적 발굴에 힘썼다.

하지만, 김해지방에서 나오는 가야의 유물과 유적들은 야마토 정권 당시의 일본보다 훨씬 앞선 문명의 흔적들이 발견되었고, 특히 철기문명은 동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보다 빨랐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이 왕권을 정립시키고 중앙집권의 기틀을 마련하던 시기에도 부족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치적으로 삼국보다 뒤쳐졌던 가야연맹은 백제와 신라의 치밀한 외교전략에 말리다가 결국 신라에 복속되고 말았다.

 

아마 한국 고대사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신라와 백제의 문명적 토대이기도 했던 금관가야에 대해 이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을것이다. 그리고, 가야를 통합해서 가야연맹을 이뤄냈던 가야의 왕 김수로. 다른 삼국의 태조들과 마찬가지고 알에서 깨어난 수로신화 역시 들어본 적 있을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점. 김수로가 가야의 왕으로 등극해 강력한 철기문명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남부지방을 한데로 아울러 한때 삼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강력한 연합국가를 세우는 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되고 있다.

 

이 작품은 일단 크게 네 단락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단락에서는 개괄의 의미를 갖고, 가야라는 국가가 가지고 있던 특징과 김수로의 신화가 의미하는 사실적인 것들, 그리고 가야의 철기문화와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유적과 유물들에 대해 쉽고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그렇게 가야에 대해 포괄적이고 전반적인 것을 설명한 뒤에, 두번째 단락을 통해 한국사와 일본사 사이의 핫이슈인 임나일본부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일본이 왜 그토록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지, 그 근거는 어디에 있고, 양 국 사학자들의 입장은 어떤지,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 그 허구성은 어떻게 증명하는지 등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가야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나머지 두 단락을 통해 나타난다.

전기 가야연맹과 후기 가야연맹 속에서 부족사회가 어떻게 성립되고 유지되어 왔는지, 당시의 사회 모습은 어떠했으며, 주변국가들이 강력한 왕권체제를 수립하는동안 가야연맹은 왜 끝까지 연맹체제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어 있으며, 후기, 대가야와 금관가야를 주축으로 결집되어 있던 가야연맹들이 결국 어떻게 무너져서 신라에 편입되었는지가 드러난다.

 

전반적으로 주장과 근거들이 역사적 사료와 유적, 유물들을 통해 쉽고 설득력있게 서술되고 있으나, '이야기' 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건 사실이다. 일단 가야의 역사 자체가 연합국가이기 때문에 각 연합국(부족)들에 대한 충분한 사료가 전해지지 않고 있고, 남아있는 사료라고는 신라에 편입된 이후에 단편적으로 등장할 뿐이다.

큰 흐름이라는 것을 잡아서 풀어내기가 까다로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의 고대사들에 비해 비교적 설득력있고 상세하게 풀어낸 것임은 사실이다.

우리 민족들은 예로부터 아주 뛰어난 능력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 민족적 우수함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불리함, 숫적으로 많지 않은 불리함을 딛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국가를 건설하는데 기반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과거가 없이 현재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과거는 언제나 미래의 거울이기도 하다.

이렇게 끊임없이 과거에 대한 탐구와 연구가 있을때, 우리 민족의 우수성은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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