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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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이 하루아침에 멸문지화를 맞고 말았다.

임금은 벼르고 있었다.

완고하고 숙련된 정치꾼인 임금은 이 일이 본보기가 되기를 바랐다.

연홍은 그 집안의 여식이었다. 아비와 오빠들은 참수당했을 터다.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살아온 어미와 관비로 떨어졌지만, 이제 그 어미 역시 호역에 걸려 썪어가는 시체로 눈 앞에 놓있었다.

연홍의 눈앞에 까만 나비 한마리가 눈에 들어왔고, 그 순간 연홍은 빛을 잃었다.

 

임금에게 지을 상소를 글로 옮긴이는 수강이었다.

연홍의 정혼자이자, 장인의 수제자이기도 했던 수강은 스승의 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 역시 참수당할 운명이었으나, 아버지가 세웠던 공 덕분에 그것을 면할 수 있었고, 사위이자 제자였던 불편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 참작되어 눈을 잃는 것 또한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죄는 벌로 갚아야 하는 법. 수강은 혀를 잃고말았다.

그와함께 수강은 소리도, 그리고 글도 잃어야 했다.

 

우재는 징신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래서 죽었다.

그리고 그는 차사를 택했다. 차사는 일종의 안내인이었다. 차사는 죽은 넋을 걷어오는 일을 해야했다.

차사가 실수하면, 그 넋은 육체에 더 머물게 된다. 전에 차사의 실수로 어떤 넋은 토막난 육체 안에서 고통스럽게 얼마간의 시간을 더 붙어있어야 했다. 넋은 강하다고, 훈육차사가 말했었다. 수습차사인 징신은 첫 넋걷이를 하는날 연홍과 눈이 마주쳤다.

연홍의 눈의 빛을 빼앗은건 바로 우재. 저승이름인 '화율' 이었다.

 

"-저도 차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남아서 배운다면, 그리고 이긴다면.

-무엇을 이겨야 합니까?

-네 기억.

-그렇게 간단합니까?

-간단? 오만하구나. 쉽지 않다.

-해보겠습니다. 이곳에 남겠습니다.

그렇게 우재는, 모호함과 애매함을 품고 수습차사가 되었다."

p. 124

 

 

 

 

 

김진규 작가의 작품은 쉽지 않다.

여기서, 쉽지 않다는 의미는 가볍지 않다, 불친절하다, 난해하기도 하고, 한번에 잘 읽혀지지 않는 문장들이 있으며, 서사구조나 인물간의 상관관계도 친절하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내가 김진규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 것은 '달을 먹다' 였다.

수많은 인물들이 촘촘하게 등장하고, 관계가 있는듯, 없는듯 세밀하게 짜여져있는 인연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의 인생에 얽혀드는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이 갖고있는 절절한 감정들이 깊이 배여있었다.

그녀의 작품은 한번으로는 다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두번읽고, 세번 읽으니 시대의 흐름속에 끈끈하게 녹아붙은 사람들간의 감정들이 가닥가닥 내 마음에 와닿았다.

 

이번 작품인 '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은 '달을 먹다' 보다는 친절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쉽지않다.

연홍과 수강의 삶, 우재와 징신의 사랑, 염색장과 수강의 대화도 쉽지 않다.

영조의 삶도 쉽지 않고,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삶 역시 쉽지 않다.

 

김진규 작가의 문장은 끈끈하다.

뭐라고 딱 잘라서 그 느낌을 설명할 수 없겠지만,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렇다.

그녀의 문장은 가슴이 오그라들만큼 정련되고 정련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날카롭지 않다.

섬세하고 세밀하지만, 묵직하고 끈끈하다. 살을 녹이고 피를 끓여 정련한 쇳물로 만들어낸 에밀레종처럼 그녀의 글들에는 피와 살이 묻어있다. 그래서 끈끈하다. 되씹으면 되씹을수록 아름답고, 읽으면 읽을수록 와닿는다.

긴 시라고도 할 수 있을정도로 세밀하게 계산된 문단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며, 단락마다 문장의 완성도가 뛰어나다.

섬세하고 풍성한 내러티브를 넘어서서, 문장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서사가 시작되고 완성된다.

 

인간은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저승차사들이 이겨내야 하는것은 스스로의 기억이었다.

그 기억은 자신이 되풀이해 왔던 모든 생애에 대한 기억이었다.

우재는 사라지고 화율이 되어, 이승이 아닌 저승의 존재가 되었지만, 어느곳에서도 화율은 화율이 될 수 없었다.

우재의 기억, 그 전. 그 전의 기억들까지 화율을 괴롭혔다.

그는 징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징신을 찾기 시작한다. 어리석게도. 어리석게도.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기억이 감정과 마음까지 아우른다면, 그것은 잊는다고 잊히는 것이 아니며, 이긴다고 잊히는 것이 아니므로.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은, 말해야 했지만 말하지 못한, 그런 여분의 말이 또하나 늘어서 화율은 무거웠다.

- 말, 말... 이승도 저승도, 결국 말 때문에 어지럽혀지는거야.

말하지 못했더나 말하면 안 되거나 말하지 않거나, 하는 이유로 나타나지 못한 말들과 그럼에도 해버려서 드러난 말들이 늘 충돌했다.

하나 말들의 다툼에서 다치는 쪽은 말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p. 288 "

 

 

 

 

 

모든 삶은 과거의 되풀이에 불과하다.

아무리 어리석은 짓이라 할지라도, 그게 인생이라면 되풀이 한다.

아무리 큰 실패라 할지라도, 그게 인생이라면 되풀이 한다.

그것을 '업' 또는 '살'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살이란 거짓이라고 말한다.

그건 단지 인간을 협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정해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달을 먹다' 에서 '숙명' 에 대해 이야기 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선 그 숙명또한 자신의 '선택' 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차사, 살 따위는 없으이.

이런 살 저런 살, 그런 것들은 그저 협박일 뿐이지.

인간이 인간을 협박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핑계 말이야.

겁을 줘서말을 듣게 하거나 협박을 해서 뭔가와 통해보고자 하는 건 그게 뭐든 가짜네.

일면 정연해 보이나 잡설도 못 되지.

삶은 자연이네.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일물一物로 차사 스스로를 바라보시게.

 

일물. 하나. 세상의 단 하나.

화율은 유일함의 가치를 생각했다.

하지만 가치가 있는 것이 유일할 수 있다고 해서 유일한 것에 저절로 가치가 부여되는 건 아니었다.

자신처럼.

p. 175" 

 

 

작품 안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찾아다닌다'

'선택의 때'.

누구에게나 선택의 때는 있다. 그것은 단순히 삶의 이정표에서 길을 찾는 선택의 때가 아니다.

한 사람은 이미 죽어있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태어날때마다 전생의 기억을 안고 태어나는 사람이다.

한 사람은 혀를 잃은 사람이고, 한 사람은 넋의 반을 저승에 두고 온 사람이다.

 

 

'저승차사'. 죽은 뒤의 세계가 나오고, 이미 죽은 인물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판타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사후에 대한 부분은 이미 죽은 화율의 입장에서도 생각보다 '별 게 없다.'

작가는 화율이나 저승이라는 존재를 통해 사후세계에 대해 그리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삶' 을 가장 잘 조명할 수 있는 비교대상은 당연하게도 '죽음' 이다.

삶과 죽음은 절대로 떼어낼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고,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인간이 자신의 삶. 생애를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유일한 순간은 죽음에 임박했을 순간일테고, 결국 삶을 가장 잘 비춰볼 수 있는 입장은 죽음뿐인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결국 삶이란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존재들에게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저 아이도 결국은 사람을 기대하는 거겠지. 사람한텐 사람밖에 없으니가.

여기 있는 사람들. 이 마을 말이야.

신은 멀었다. 사람을 위로하는 건, 사람을 돕는 건, 결국 사람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 멀리 있는 신도 아니고 죽어 가버린 사람도 아닌, 살아남아 곁에 있는 사람.

p. 337"

 

그리고, 당연하게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살아있는 사람뿐이다.

죽은 기억에 얽매이고, 지나간 시간들에 얽매인다면 그것은 올바른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닌것이다.

 

"-많이들 미치느니. 미칠 것들이야 널렸으니 말이다.

--나도 이젠 미쳐야 하는데.

-하나 사람에 미치면 그게 끝인게야.

p. 286"

 

염색장 채관은 사람에 미치면 그게 끝이다고 말했다.

모든 이야기의 막바지에서, 염색장 채관이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듯 읊조렸던 그 구절을 읽는 순간,

'달을 먹다' 에서 난이가 희우를 보았을 때의 구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희우.

오라버니를 보자마자 나는 그냥 울었다. 울 수 밖에 없었다.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너로 인해 죽겠구나.

그게 어떻게 알아졌는지 모르지만 저절로 알아진 걸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달을 먹다 - 김진규 2007' p.156"

 

채관은 그랬다. 찾고 찾았다. 윤회하는 그녀를 찾아 수 번의 삶을 살았지만, 그 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가 온 순간, 채관은 놓아버린다.

 

"-부럽구나

--내가?? 무엇이?

-내겐 남은 것이 없거든. 해줄 것이 없어. 하나 수강, 너는 다르느니.

--기다리는 것?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의 길이?

-수강아.

--알아줄까? 내가 그리하면...... 기다리면 연홍이 알아줄까?

-마음과 겨루지 마라. 세월이 바쁘다.

....

-하고자 한다고 명분이 생겨나지 않고, 피하려 한다고 변명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하니 마음과 겨루지 마라.

...

나는 이제 기다리지 않을란다. 여기... 다신 오지 않을란다.

 

p. 301~302"

 

 

-하나의 선택이 다른 하나의 때를 만드는구나.

 p.320

 

선택이 때를 만든다.

화율이 생전의 기억에 떠밀려 눈을 떴고, 그와 눈이 마주친 연홍이 빛을 잃었다.

연홍이 겁탈을 당함으로 인해 아이를 가졌고, 채관의 손에 이끌렸고, 수강의 손에 이끌렸다.

선택, 선택.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선택. 또 선택.

 

삶이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인연이란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켜, 누군가의 어떤 선택이, 다른 누군가의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바로 그 선택이 바로 삶의 증거이리라.

그 선택의 결과가 바로 삶의 징표이리라.

 

선택은 때를 만들고, 사람들은 그 안으로 녹아든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죽고, 살고, 사람에 미치고, 색에 미치고, 글에 미친다. 혹은 얻고, 혹은 잃는다.

 

-그래, 수강도 살아남은 사람이지.

p. 337"

 

나의 때는 언제가 될 것인가.

난  아직 때를 기다린다.

미칠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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