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반성 많이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언제쯤인가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병원에도 다니고 약도 먹었습니다.
그런데 괜찮다 싶다가도 잊을만하면 다시 귀가 먹먹해집니다.

꼭 높은 산에 올랐을 때처럼 먹먹해지면
주변의 소리들이 선명하지도 않고 아주 답답합니다.
그럴 때마다 짜증도 내고 성질도 부리지만
그렇다고 별반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보기에는 멀쩡하니 속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이유를 알 수 없어 당황스럽기만 하고
제 못된 성질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문만 날뿐입니다.

어느 날은 성당에 앉아 있으려니 물속에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모두 숨죽여 조용히 기도하다 보니 큰 소음은 없고
작은 소음은 저의 귀 덕분에 들리지 않으니
꼭 물속 같았습니다.

그 물 속에서, 마치 고래 뱃속에 앉아 있던 요나처럼 기도하다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반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조금 피곤하다 싶거나 귀찮은 마음이 들면
제일 먼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저 그냥 건성으로 듣거나 무시해 버립니다.
그리고는 입을 꾹 다물어 버립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지 않음을 몸으로 확실하게 말합니다.
그 다음은 사람의 소리가 없는 곳으로 피해 다니며
말 많은 사람들의 지치지 않음을 판단했더랬습니다.

그래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제가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려버린 말들이
제게 따끔하게 야단을 치는 중인가 봅니다.
남의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말이라고 하찮게 여기고
버려버린 무책임함을 자꾸만 떠 올려줍니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정말 깊이 있게 배우는 시간입니다.
귀를 닫아버리고 듣지 않으려 거절했던 마음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이제 6월, 예수성심성월입니다.
사랑한다고 늘 우리를 향해 고백하시는 예수님의 말을
이대로 가다가는 하나도 못 알아들을 듯싶습니다.

귀를 닫아 버리는 못된 버릇 고치면
사라졌던 소리들이 다시 들릴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경청은 곧 받아들임이라는 것을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


바오로딸 홈지기수녀 드림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10-06-02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대구 출장 세미나가 생각나네요.
서울에서 성취도 평가 꼴찌인 전문계고 여선생님이 학습부진아 사례 발표를 하면서 "이 아이들은 내가 그동안 인문계고에서 한 두명씩 무관심하게 흘리고 다닌 아이들에 대한 벌로 이렇게 한 곳에 모아두고 가르치게 했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님 행복한 6월 되세요.
 

수녀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처음 집으로 휴가를 갔었습니다.
신호등을 건너려는데 어떤 젊은 남자분이 제게 다가오더니
“도를 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아,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도를 아십니까?” 종교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사람은 바짝 다가오더니 제게서 영의 기운이 느껴진다며
대화를 이어가고자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당시엔 수녀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은 수녀가 아닌지라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도 수수한 아가씨정도의
느낌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화장기 없는 얼굴은
상대하기 만만한 순진한 아가씨로 보였을 법도 합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 안에서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영이 느껴지세요?”
그랬더니 그 사람은 마치도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는다며 예수를 잡으러 온 로마 병사가
예수님의 “나다” 소리에 놀라 뒤로 넘어지려는 듯한 표정이더니
아무 말 못한 채 놀라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한 번 이야기했습니다.
“제 안에 계신 하느님의 영이 느껴지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예?”하고 놀랍니다.
제가 다시
“우린 모두 영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영에 대적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요즘 제가 했던 그 말들이 떠오릅니다.
장난기 어린 제 반응이었지만 제 안에서 나온 말들은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이었습니다.
지금 그때 제가 했던 말들로 제 자신을 성찰해 봅니다.
“하느님의 영에 대적하지 말라.”

얼마나 자주 하느님의 영에 대항해서 살고 있는지요.
알면서도 고집을 피우고, 성령의 뜻에 마음을 두기보다
스스로 하려고 애쓰는 제가 아직도 너무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활시기를 보내는 요즘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 더 많이 느끼고 삽니다.

겁쟁이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도 변하지 못합니다.
두려움도 여전하고 믿음 역시 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는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성령은 그런 분이십니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께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제 안의 소리들을 잠재우고 그분의 소리에 따라 살기를 청하는 시간입니다.


바오로딸 홈지기수녀 드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나가다 2010-04-1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게도 힘이 되는 글입니다. 구절초님 감사합니다.
마음에 평안을 얻으셨으면 합니다. ^^

saint236 2010-04-13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마 도덕경 수업을 듣고 나서였을 것입니다. "도를 도라 말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도가도 비상도)" 그래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이에게 "도가도 비상도"하고 자기 길을 갔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무척 황당해 했더라는...

세실 2010-04-14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찡함으로 다가옵니다.
힘내세요 님.
날씨가 많이 추워요. 몸은 괜찮으세요?
 


요즘은 시골에 가도 보일러를 놓은 집들이 많아서
아궁이에 불 때는 풍경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밥 때가 되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나무 타는 냄새가 구수하게 나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새해를 맞이하고 한살 더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격이 유연해지기보다 다혈질적인 성격이 더 심해집니다.
며칠 전, 폭발하지 못하고 끙끙대며 화를 품고 있는 제게
강론 시간 신부님의 말씀이 새겨집니다.

‘얼마나 우리는 존재로서 잘 타고 있나요?
제대로 마르지 않은 나무를 불에 태우면 연기만 나고
잘 타지도 않아 애를 먹게 됩니다.
혹시, 우리 자신이 잘 타지 않아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연기만 피식 피워 올리며 공동체의 눈물과 콧물을 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마른 장작처럼 활활 타고 있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
그나마 불꽃을 꺼트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존재를 얼마나 잘 태워내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릴 적, 땔감 속에 덜 마른 나무가 섞여 있으면 타는 내내 연기가 나고
불이 붙지 않아 후후 불다가 눈이 벌겋게 충혈 되고 기침을 했던 기억입니다.
그래서 물기가 남아 있는 나무를 태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잘 알고 있는 터라 강론말씀이 더 깊이 다가옵니다.

방심하고 있던 틈을 타고 ‘너 때문이야’라는 물이 들이치고
마음자리가 온통 젖어 버려 자꾸만 매운 연기를 뿜고 있습니다.
애써 말려놓은 마음이 젖은 탓이 어찌 들이친 물 때문이겠습니까.
조금 더 구석구석 틈새를 살피지 못한 제 탓이 더 큰 것이겠지요.

겨울철 잘 마른 땔감을 준비해 두고 눈과 비를 대비해서
잘 덮어두거나 처마 밑에 들여놓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듯이
깜빡하는 순간 ‘화’라는 물에, ‘이기심’이라는 차가운 눈발에,
‘판단’이라는 굵은 빗줄기에 온통 젖어 버리기 쉬운 마음자리인지라
더 살뜰하게 살피고 성찰하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화를 태우느라 매캐한 연기를 내뿜고 있는 젖은 마음이 어서 마르도록
잘 타고 있는 마른 나무 곁에 살짝 놓아야겠습니다.
마음자리 잘 말려 소박하게 살라 올리고 있는 이들 곁에서
성장의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오로딸 홈지기수녀 드림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10-02-08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마른 장작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제 개학이라 바쁜 나날 되시겠네요.
건강 잘 챙기시고, 늘 행복하세요^*^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
우리의 기다림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은 한 해의 끝을 달리고 있지만
교회는 이제 막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수녀원에 오신 손님 신부님께서
미사 강론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세상보다 시간을 먼저 사는 것은
우리의 영적 시간이 육적인 시간을 앞서가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곧 우리가 세상에 살기 위해서는
영적인 성장, 육의 세계를 뛰어 넘는 영적인 세계가
우리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침 하루 종일 기도에 관한 주제로 피정을 하는 날이라
주님 안에서 저의 영적인 깊이를 바라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상 사람보다 이 세상을 먼저 살아가는 것이 바로 교회이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삶으로 초대받은 이들이 바로 오늘 나의 삶입니다.

진정한 영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도야말로 이것을 더욱 풍성히 열매 맺게 할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를 어떻게 이끄는지, 어디로 이끄는지
기도 안으로 들어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하느님께 드리는 청원만이 아닙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는 세상을 만날 수 있고, 창조주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엔조 비앙키는 그의 책 [주님의 사제들에게]서
“듣는 것이 그리스도교 기도의 첫 번째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오로지 하느님을 향해 말만 하는 사람은 결코 미풍 속에
잠잠이 흘러 내리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저희 수도회의 설립자이신 알베리오네 신부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활동적인 바오로딸들에게
관상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시며
늘 관상하는 바오로딸이 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대도시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는 바오로딸들에게
도시 속의 관상을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바오로딸은 결코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깊어지지 않고서는 세상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대림 1주간의 이 기다림을 시작하도록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아기가 병에 걸렸습니까? 그 아기에게는 의사와 약이 필요합니다.
영혼이 병들었습니까? 고해성사를 받으십시오.
영혼이 약해졌습니까? 기도하십시오.” -복자 G.알베리오네-


바오로딸 홈지기수녀 드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0-01-06 0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5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간소식(제461호) - 오늘,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우리는 참 많은 말들을 하고, 듣고 삽니다.
요즘 내가 사람들에게 듣는 여러 가지 말 가운데
내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뭘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잘 하는구나!” “ 멋지다!” “똑똑하다!” “역시!”
예전엔 이런 말들을 은근히 바라고 기대했었지요.
하지만 지금 제가 듣고 싶은 말은 그런 말들이 아닙니다.
나를 평화로 이끄는 말...
아! 그겁니다.
“괜찮아...”

내 실수나 부족함 앞에서 누군가 들려주는 말 “괜찮아”
어렵사리 해 놓은 일의 결과 앞에서 “괜찮은데!”
내가 힘들어할 때 “괜찮아?”
이 말들은 모두 내게 평안함을 주었습니다.

사실 요즘 여러 가지 일들에 짜증을 내고, 귀찮아하는 저를 봅니다.
몸과 마음, 영적인 모든 게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겠다 싶은 마음도 듭니다.
아주 큰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에는 오히려 그것을 넘어서려
버둥거리니 그때만큼은 몸도 마음도 모두 긴장하고
영적으로도 필사적이게 됩니다.

그러나 별다른 이유 없이 요즘처럼
‘한걸음도 뗄 수 없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한고비를 넘을 때마다
그저 이것도 한 과정이려니 생각해보지만
역시 수도삶을 살고 있는 저로선
영적으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면
뭔가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그렇게 막막함을 안고 주님 앞에서
‘주님, 미지근한 저를 어찌해야 합니까?’
내내 숨죽이며 막대기 같은 제 자신을 봉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작은 한 소리
“괜찮아~” 하십니다.
주님께서 그냥 이대로 괜찮다고 하십니다.

퍼즐 맞추기를 하다가 흐트러져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면
또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혹 삶에 구멍 난 곳이 있으면
조금씩 메우면 된다고 토닥이십니다.

물론 저는 다른 이들에게
이런 말을 잘 건네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러기에 더욱더 내가 듣고 싶고,
들으면 평온해지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전해주렵니다.
“괜찮아...”


바오로딸 홈지기수녀 드림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바람 2009-07-07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으세요?

구절초 2009-07-0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근무하는 내내 오늘 저에게 주신 이말씀이 힘이 되었답니다.
함께 근무하시는 선생님은 여전히 안 괜찮으신것 같아 안스러웠습니다.

하늘바람님도 오늘 하루 괜찮으셨길 빕니다....내일도 모레도 계속~~~~

세실 2009-07-2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아...나를 믿어주는 참 좋은 말이죠.
님 오늘 님의 따뜻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선물 받았습니다.
많이 힘들었지만 만들면서 뿌듯했을 예쁜 꽃무늬 가방이랑,
마더 데레사님의 책이랑, 보림이 책까지...
한비야의 시원한 엽서랑 님의 글,,....푸짐한 쿠키까지..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