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처음 집으로 휴가를 갔었습니다.
신호등을 건너려는데 어떤 젊은 남자분이 제게 다가오더니
“도를 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아,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도를 아십니까?” 종교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 사람은 바짝 다가오더니 제게서 영의 기운이 느껴진다며
대화를 이어가고자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당시엔 수녀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은 수녀가 아닌지라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도 수수한 아가씨정도의
느낌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화장기 없는 얼굴은
상대하기 만만한 순진한 아가씨로 보였을 법도 합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 안에서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영이 느껴지세요?”
그랬더니 그 사람은 마치도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는다며 예수를 잡으러 온 로마 병사가
예수님의 “나다” 소리에 놀라 뒤로 넘어지려는 듯한 표정이더니
아무 말 못한 채 놀라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한 번 이야기했습니다.
“제 안에 계신 하느님의 영이 느껴지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예?”하고 놀랍니다.
제가 다시
“우린 모두 영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영에 대적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요즘 제가 했던 그 말들이 떠오릅니다.
장난기 어린 제 반응이었지만 제 안에서 나온 말들은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이었습니다.
지금 그때 제가 했던 말들로 제 자신을 성찰해 봅니다.
“하느님의 영에 대적하지 말라.”
얼마나 자주 하느님의 영에 대항해서 살고 있는지요.
알면서도 고집을 피우고, 성령의 뜻에 마음을 두기보다
스스로 하려고 애쓰는 제가 아직도 너무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활시기를 보내는 요즘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 더 많이 느끼고 삽니다.
겁쟁이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도 변하지 못합니다.
두려움도 여전하고 믿음 역시 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는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성령은 그런 분이십니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께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제 안의 소리들을 잠재우고 그분의 소리에 따라 살기를 청하는 시간입니다.
바오로딸 홈지기수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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