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빠를 그 전해에는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뒤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낯선 사람 같았고,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내 세상의 많은 부분과 무관하게 느껴졌다. 나는 정말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두려운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바턴 집안의 식구들. 우리 다섯명-줄곧 그랬듯 정상적이지 않은-이 하나의 구조물로 내 머리 위에 떠 있고, 심지어 다 끝날 때까지 나는 그것이 거기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셨을때 오빠와 언니가 어땠는지, 두 사람의 얼굴에 떠올랐던 당혹감이 자꾸 생각났다. 우리 다섯 식구가 정말로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러다 어느순간 나는 우리의 뿌리가 서로의 가슴을 얼마나 끈질기게 칭칭감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남편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가족들을 좋아하지도 않았잖아." 그뒤로 나는 더더욱 두려워졌다. - P194

야구장! 내가 야구장을 보고 감탄했던 게 기억나고, 선수들이안타를 치고 달리던 게 기억나고, 관리인들이 밖으로 나와 흙을판판하게 고르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가장 생생한 기억은 해가지면서 햇빛이 근처 빌딩들, 브롱크스 지역의 빌딩들에 가 닿던장면이다. 그렇게 햇빛이 그 빌딩들을 비추고 나면, 이어 여기저기 도시의 불빛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내 앞에 그 세상이 돌연 펼쳐진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말은 그것이다.
남편과 헤어지고 여러 해가 지났을 때, 나는 72번가를 걸어 이스트 강까지 산책을 하러 다녔다. 그 길을 따라가면 이스트 강이 바로 나오는데, 나는 거기서 그 강을 바라보며 오래전에 우리가 함께 구경하러 간 야구 경기를 떠올렸고, 내 결혼생활의 다른기억들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종류의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그런 행복한 기억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양키스 경기에 대한 기억은 그렇지 않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나는 전남편과 뉴욕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부푼다. 나는 지금도 양키스의 팬이지만, 내가 야구장에 다시 갈 일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은 다른 삶이었다. - P203

대학 시절 내 룸메이트는 자기 엄마가 자기한테 잘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룸메이트는 엄마를 유난히 싫어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 그애 엄마가 치즈를 소포로 보냈는데, 우리 둘 다 치즈는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룸메이트는 그 치즈를 없애지 못했고, 다른사람에게 줘버리지도 못했다. "이 치즈를 그냥 둬도 괜찮을까?" 그녀가 물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준 거라서." 나는 이해한다고말했다. 그녀는 치즈를 바깥 창턱에 올려놓았고, 치즈는 그렇게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마침내 치즈 위로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우리 둘 다 치즈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었는데, 봄이 되자 치즈가 다시 형체를 드러냈다. 결국 그녀는 자기가 수업을 들으러갔을 때 치즈를 치워달라고 내게 부탁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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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지구는 왜 이렇게 생겼는가?
이 질문은 철학적 의미 ("왜 우리는 존재하는가?"와 같은)에서 던진것이 아니라 깊은 과학적 의미에서 던진 것이다. 표현을 바꾸어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지구의 주요 특징들, 즉 대륙과 바다와 산맥과 사막 같은 물리적 풍경을 낳은 원인들은 무엇인가? 지구의 지형과 활동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서 우주의 환경은 우리 종의 출현과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또 사회와 문명의 역사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지구는 인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주도적인 주인공(독특한 생김새와 변덕스러운 기질을 가진 데다가 가끔 성질을 부리며 폭발하기도 하면서) 역할을 했을까? - P12

지구의 맨 바깥쪽 피부에 해당하는 지각은 부서지기 쉬운 달걀 껍데기와 같은데, 그 아래에는 뜨겁고 걸쭉한 맨틀 층이 자리잡고 있다. 지각은 많은 팬들로 쪼개져 있고, 판들은 지표면 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지각은 크게 대륙 지각과 해양 지각으로 나뉘는데, 해양지각이 대륙 지각보다 더 두껍다. 대륙 지각은밀도가 작은 암석들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해양 지각은 밀도가큰 암석들로 이루어져 있어 대륙 지각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 있다. 대부분의 판들은 대륙 지각과 해양 지각으로 이루어져 있고, 뜨겁고 유동적인 맨틀 위에서 떠다니면서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늘 경쟁을 벌인다.
두 판이 충돌하는 지점인 수렴 경계에서는 어느 한쪽이 양보해야 한다. 한 판의 가장자리가 다른 판 밑으로 밀고 들어가 맨틀의 뜨거운 열(암석도 녹이는)에 노출되는데, 이 경계선에서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활화산들이 띠를 이루어 생겨난다. 대륙 지각의 암석들은 밀도가 낮아 위로 떠오르는 성질이 있으므로, 판들이 충돌할 때 다른 판 밑으로 가라앉는 쪽은 거의 항상 해양 지각이다. 이 섭입 과정은 사이에 있는 해양 지각이 판 밑으로 완전히들어가고 두 대륙 지각이 합쳐질 때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두 판이 충돌한 경계선을 따라 거대한 습곡 산맥이 생긴다 - P22

발산 경계는 두 판이 분리되면서 서로 멀어져가는 일이 일어나는 경계지점을 말한다. 베인 상처가 난 팔에서 피가 나오는 것처럼 갈라진 틈을 따라 깊은 땅속에서 뜨거운 맨틀 물질이 올라오는데, 이것이 식어 굳으면 새로운 암석 지각이 생긴다. 대륙 가운데에서 새로운 균열이 생기고 양쪽으로 뻗어나가면서 대륙을둘로 쪼갤 수도 있지만, 이 새로운 지각은 밀도가 커서 아래로 가라앉고, 그래서 물이 흘러와 그곳을 가득 채운다. 발산 경계에서는 새로운 해양 지각이 생겨난다. 중앙대서양 해령은 이러한 해저 확장 열곡이 생기는 대표적인 곳이다. - P23

이러한 지각 용기와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높은 산맥이 가져온 한 가지 주요 효과는 대다수 동아프리카 지역에 비가 내리지않게 된 것이다. 인도양에서 습기를 많이 머금고 불어오는 공기는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지형 때문에 더 높은 고도로 상승하다가 냉각되면서 응결해 해안 지역에 비를 뿌린다. 이 때문에 내륙지역은 비가 내리지 않아 건조한 기후가 나타나는데, 이것을 비그늘ain shadow 현상이라고 부른다. 그와 동시에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고지대는 중앙아프리카 우림 지역의 습한 공기가 동쪽으로이동하는 것을 차단한다.
이러한 팬들의 활동-히말라야산맥 생성, 인도네시아 해로 봉쇄, 특히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높은 산맥 융기ㅡ은 동아프리카지역의 기후를 건조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생성은 기후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자연 경관까지 변화시켰다. 무성한 열대숲으로 뒤덮여 있고 균일하게 편평한 지역이던 동아프리카는 고원과 깊은 골짜기가 곳곳에 널려 있는 울퉁불퉁한 산악 지역으로 변모했고, 식생도 운무림에서 사바나와 사막 관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포하게 되었다.
거대한 열곡은 약 3000만 년 전부터 생기기 시작했지만, 융기와 기후의 건조화는 대부분 지난 300만~400만 년 동안 일어났다. 우리가 진화한 것과 같은 시기인 이 기간에 동아프리카의 풍경은 <타잔>의 무대에서 <라이언 킹>의 무대로 변모했다. 나무에서 살아가던 유인원으로부터 호미닌의 분기를 촉진한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장기간 지속된 동아프리카의 건조 기후와 그로 인해 숲 서식지가 감소하고 쪼개지거나 사바나로 변모해간 환경 변화였다. 또한 건조한 초원 지역의 확대는 대형 초식 포유류, 즉 사람이 사냥할 수 있는 영양과 얼룩말 같은 유제류의 번성에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 한 가지 요인만으로 그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판의 활동으로 생겨난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숲과 초원, 산맥, 가파른 경사면, 언덕, 고원과 평원, 골짜기 그리고 동아프리카 지구대 바닥의 깊은 민물 호수 등 다양한 지형들이 인접해 나타나면서 아주 복잡한 환경이 되었다. 이 모자이크 환경은 호미닌에게 다양한 식량원과 자원과 기회를 제공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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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빙하기 말, 얼음이 후퇴하고 지구가 대략 지금 정도로 따뜻해졌을 때 거대동물 150종 이상이 갑자기 사라졌다. 멸종은 대부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유라시아에서 발생했는데, 마스토돈,
동굴곰, 털코뿔소 같은 유명한 짐승부터 과거 조슈아나무 종자를 퍼뜨리던 샤스타땅늘보처럼 덜 알려진 짐승까지 깡그리 절멸했다. 과거에 저 종들은 비슷하거나 더 심한 온도 변화에서도 살아남았기때문에 전문가들은 기온 변화만으로 대규모의 죽음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플라이스토세 대살육, 즉 인간이 공격적으로 사냥에 나선 일이 다른 주요 요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사냥 활동의 상대적인 중요성은 뜨겁게 논쟁 중이고, 아마 종과 상황에 따라 정도가 다를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교훈은 상호작용 그 자체에 있다.
기후변화가 급격한 시기에 생물이 받는 영향은 다른 환경적 스트레스 요인으로 증폭된다. 이 사실은 왜 과거의 어떤 기후변화는 종의 미미한 재정비를 촉진하는 수준에서 그친 반면에 다른 경우는 대량멸종으로 이어졌는지를 그리고 왜 서식지와 집단에 따라 영향을 받는 정도가 달랐는지를 설명한다(예를 들어 에오세 초기의 해양 플랑크톤). 탄력성이 발휘되는 데는 상황이 중요하다. 자연이 창을 든 소수의 사냥꾼 무리보다 훨씬 더 끔찍한 스트레스 요인을 맞닥뜨린 오늘날의 위기 상황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 P277

군사 계획자들은 ‘위협 승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역사학과 생물학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기후변화에 대한 최고의 묘사다. 과학자들도 이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전략 및 외교영역에서도 차츰 쓰이고 있다. 파커가 책의 에필로그에서 강조했듯이 기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17세기의 패턴이 똑같이 기후로 스트레스를 받는 21세기에 되풀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날씨에서 극단적인 정치까지, 2000년 이후 무력 충돌이 40퍼센트나 증가한 것을 포함해 최근에 발생한 사건들의 배후에 있는 기후의 신호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일례로 시리아내전은시리아 역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무너져가는 농장에서 벗어나 붐비는 도시로 이동한 100만 명 넘는 실향민의 절망에서 부분적으로 촉발되었다. 많은 압박이 아랍의 봄이라는 저항운동을 일으켰지만 초기의 결정적인 시위는 빵이 부족해 시작되었고, 이는 전년도에 러시아와 캐나다를 휩쓴 폭염과 밀농사 실패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주는 사람들이 떠나는 곳과 가고 싶은 곳의 명백한 차이와 함께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 P283

달라지는 기후 앞에서 생물들은 손 놓고 포기하지 않는다. 조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정한다. 물론 어떤 것은 성공하고 어떤 것은실패한다. 그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예를 들어 자연에서 종의 서식범위 이동이 확산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이동이 늘어난 현상에 관해 말해준다. 물고기, 곰 등 다른 종이 적응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우리 행동의 경향에 대한 경각심을 얻게 되고, 지구가 더워지면서 인류의 놀라운 가소성이 앞으로 얼마나 더 중요해질지 깨닫게 된다. 모델과 예측은 불안정하고 심지어 혼돈의 미래를 그린다. 그러나 자연은 영감을 주는 탄력성의 예로 가득 차 있다. 위기에 반응해 나비가 더 큰 비행근을 진화시킨다면 우리도 최소한 몇 가지 행동은 바꿀 수 있지 않겠는가. 예를 들면 이동 수단을 결정하거나 온도조절기를 설정하는 방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도마뱀이 한 세대 만에 발가락 패드로 붙잡는 힘을 키워낸다면, 우리도 불필요한 비행은 취소하거나 방에서 나올 때 불을 끄는 일의 동기를 찾을 수 있을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다른 생물의 대응은 매일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는 행동을 촉구하는 지속적인 요청으로, 우리인간도 동물과 식물에 영향을 미치는 힘에 똑같이 지배받고 있다는사실을 상기시킨다. 앞으로 우리의 선택은 다음번 자연에 닥칠 일뿐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의 자리까지 결정할 것이다. - P292

심지어 최상의 탄소 배출 시나리오에서조차 온난화의 영향력은 오랫동안 관리되어야 할 과제로 나타난다. 이때 다른동식물의 삶은 그 과정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다른 생물의역경과 대처를 이해한다고 해서 위기를 덜 걱정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똑똑하게 걱정하게 될 것이다. 합당한 연구비를 제대로받지 못하는 과학자들에게, 기후와 보전 전략을 세우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미래의 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한 윤리적·정서적 필요를 탐색하느라 분투하는 모두에게 기후변화 생물학이 나쁜 시작점은 아니다. 이는 우리 자신과 다른 모든 종을 위한 걱정스러우면서도 흥미진진한 여행이 될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해내길 바란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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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수직적 계층화는 계약자유의 원칙과 상충하지 않으며, 경제성장속도가 빠른 나라일수록 부의 수직적 계층화에 관대하다는이언 모리스의 관점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인종•신분•종교 등 거대 범주에서의 계층화는 대부분 (현실에서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이론적으로는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귀결되어가고 있다. 이는 효율성이라는 견고한 가치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저항하면서, 또는 이원론이라는 손쉬운 분류법에 대항하면서 인류가 얻어낸 것이다. 법 또한 이런 흐름을 반영하여 변화해왔다. 가부장 질서를 토대로 하는 성별에 따른 차별 문제도 여전히 논쟁적이기는 하지만 수직적 계층화가 약화되어감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특정 사회에 지배적인 규범들이 무엇이냐‘가 판결에 영향을 미칠수밖에 없다. 우리 대법원의 판결들이 가부장 질서 내에 안주하고 있는 편이라 해도 변화의 움직임 또한 감지되고 있다고 인색하게나마 긍정해보고 싶다. - P32

연방대법원에서도 교직원들이 알몸 수색을 한 행위가 헌법에 합치하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했다. 법정에서 남성 대법관들은 이 사건에서 무엇이 잘못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질문을 쏟아냈다. 진보 성향의 대법관으로 분류되는 스티븐 브라이어 Stephen G. Breyer 대법관조차도 "속옷을 벗는 것이 어째서 이토록 중요한 문제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아이들은 체육시간마다 옷을갈아입지 않던가요? 제가 여덟 살, 열 살, 아니 열두 살 때였는지는몰라도, 하루에 한 번 옷을 갈아입던 기억이 납니다. 체육시간에 나가서 뛰어놀려고 말입니다. 아닌가요? 저 역시 그렇게 옷을 갈아입었고 친구들이 제 속옷에 뭔가를 집어넣는 장난을 치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해서 법정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당시 유일한 여성 대법관이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Ruth Bader Ginsburg가 듣다 못해 받아쳤다고 한다. "그 속옷을 남이 벗겼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브래지어까지 벗어서 흔들어보라는 요구도 받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후 긴즈버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들은 열세 살 소녀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 또래 여자아이들이 얼마나 민감한지 전혀 모른다는 거죠"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소수의견 없이 학교가 레딩을 알몸 수색한 것은 헌법에 위반되는 행위라는 판결을 내렸다. - P38

보편성을 기본적인 원리로 하는 법의 해석에서도 그 보편성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되는 개별적 인간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는 감수성은 늘 필요하다. 누스바움 식으로 말하자면 ‘비대칭성에 대한 감수성‘이다. 미국 대법관의 청문회 석상에서 『제인 에어」가 언급되는 이유도 이 점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지배적인 성적 고정관념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을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라면 그때의 감수성은 피해자 감수성일 뿐 여성인 피해자의 감성을 가리키는말은 아닐 것이다. - P48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공익성을 이유로 조직 내부에 폭넓게 관여하면서,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는 그 구성원이 특수하다는 이유로 규제가 정당하다고한 것이었다. 결국 조직과 구성원을 모두 규제하는 것이어서 조직자체의 자율성이나 민주적 원칙이 발휘될 여지가 제한됨은 물론구성원의 기본권 침해도 문제된다. 조직의 민주적 운영을 보장하고 구성원의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여 조직과 구성원이 모두 민주주의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처음부터 봉쇄되어 제대로 검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P72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위험한 생활용품 등은 경우가 좀더 심각하다. 시판하기 전에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실험을 미리 거치는것보다 문제가 된 이후에 배상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면제조업체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생명이 달린 문제가 된다.
효율적 계약파기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계약이 이행되는 것과 이행되지 않는 것은 효용성의 관점에서 따져볼 문제일 뿐 도덕적인 비난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쉬피오는 "저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약속을 지키는 세상이라면 말이라는 건 이제 아무런가치도 지니지 못할 것"이고 "이런 사회에서는 가장 약한 사람들이 가장 높은 비용을 지불하게 되며 이에 따라 약자들은 정치가의 말을 조금도 신뢰하지 못하고, 법률에도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않는다"라고 한다. 법의 제도적 기능은 "각자의 행위가 상식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기준"으로서의 역할인데, 효용성이 기준이 된다면 결국 힘의 원칙만이 가치를 가질 것이다. - P84

특히 초국적 대기업은 국가의 제도적 틀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권력기법을 고안해내고 완성해가며, 대형 미디어시장을 장악하여 이미지와 사고의 세계에 대한 통제권도 거머쥐었다. 계약관계의 재봉건화는 새로운 형태의 충성서약 관계를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자유가 계약의 목적에 봉건적 구조로 예속되어있는 셈이다. " 그는 "수치로 잴 수 있는 가치의 협상을 넘어서는 모든 부분을법이 맡아줄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라고 말한다. "법이 분명히 해주어야 할 부분을 계약으로 하여금 정의하게 내버려두면 계약 당사자들은 재산상의 단순한 이해관계를넘어서는 목적들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또한 계약은 "스스로 공공선을 정의하는 데 참여함으로써 스스로 ‘공적인 것‘이 된다"라고 한다. 
노동3권을 헌법에서 보장하고 근로기준법의 많은 부분을 강행규정으로 정한 우리 법제도하에서도 근로자 측의 노동관련법상의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강행규정인 임금관련 규정을 임금협상에서 수정해버릴 수도 있는가 하면 아무런 적극적인행위를 않는 채무불이행의 형태인 단순 파업조차도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과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위법행위가 될 수도 있다고하기 때문이다. 이런 판결들의 근저에 기업 측의 입장에서 해석된계약우선주의나 효용성의 관점이 놓여 있다는 점은 부인되기 어렵다. 게다가 쉬피오의 우려처럼 그러한 계약 자체가 스스로 공공선을 정의하기까지 해버린다면 헌법 원칙마저도 뿌리째 흔들릴 수있을 것이다. 종국에는 힘의 원리만이 가치를 가지는, 우리가 간신히 건너온 전시대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염려는 기우에 불과한가.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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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순간이 내가 또 한번 그때는 왜 엄마한테 말하지못했지? 하고 생각하게 이걸 기록하면서 되는 순간이다. 엄마. 내가 배워야 할 단어는 우리가 집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 거지 같은 차고에서 다 배웠어요. 왜 나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던 걸까? 그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건, 그게 내가 평생 해왔던방식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가 그 자신은 인식하지 못한채스스로 망신거리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실수를 덮어주는 것.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 생각에, 많은 순간에 그런 사람이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도 나 스스로 망신거리가 되었음이 희미하게 인식되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어린 시절의 그느낌이 되살아난다. 다른 것으로는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이 세상에 대한 앎을 구성하는 엄청나게 큰 조각들이 빠져 있는 느낌.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주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내게 그렇게 해준다고 느낄 때에도 그렇게 한다. 그러니 그날 엄마에 대해서도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일어나 앉아, 엄마, 정말 기억 안 나요? 하고 말하지 않았을까?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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