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자라는 것은 무엇이든 예외예요." 대화의 주제가 빙하기 이후 애추 사면의 역사로 바뀌었을 때 대니얼이 말했다. 툰드라종은 현재 침엽수가 활엽수 사이에 끼어들어 간 것처럼, 브리스틀클리프에 침엽수가 자리 잡은 후에도 한참을 더 버텼을 것이다. 저장소는 온난화의 영향에 휘둘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차가운 공기가 완충 역할을 해 소위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고 있을뿐이다. 브리스틀 클리프의 애추가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깊고그늘진 계곡, 또는 직사광선을 덜 받는 북향(남반구에서는 남향)의 사면처럼 환경이 비정상적으로 시원한 곳에서는 어디든 비슷한 원리가 적용된다. 담수계의 냉천이나 눈 녹은 물은 바다의 한류나 심해용승과 비슷한 효과를 미칠 수 있다. 이상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처럼 특별한 지역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물이 격리된 소규모 개체군으로나마 버틸 수 있게 해준다. 언젠가 기후변화에 따라잡히는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최대한 시간을 늦추다가 때마침 기후가 안정되거나 추세가 역전되면 결과적으로 종의 지속을 돕는다는 게 지금까지의 역사가 시사하는 바다. 과학에서 한 개념에 대한 열정을 가장 크게 드러내는 방법이 있다면, 그 개념을 기술하는 용어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레퓨지아는 브리스틀 클리프의 애추 같은 장소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용어로서, 주변 환경이 열악해졌을 때 종이 멀리 떠나지 않고도 피난처로 삼을 수 있는 곳을 가리킨다 - P201
카오스이론의 시작이 날씨 연구였다는 사실은 기후 관측자들에게 뜻밖의 일이 아니다. 로렌즈의 유명한 이력은 기상학자라는 직업이 주는 좌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확한 장기예보는 왜 그리도 어려운가. 생물학자도 기후변화의 결과를 예측할 때 같은 난관에 봉착한다. 물론 모두가 동의하는몇 가지 예상 행로가 있다. 많은 종이 이동할 것이고, 일부는 적응할것이며, 나머지는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군집이 형성될 것이다. 유연성이 뛰어난 일반종은 까다로운 전문종보다 많이 유리하다. 기타등등. 그러나 자연 시스템은 날씨만큼이나 복잡해 비유로든 실제로든 펄럭대는 날개가 도처에 있다. 실로 무한한 나비효과의 잠재력은생물학 분야의 확률 분석가에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예측하게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기대하라. - P246
키가 최대 2.7미터, 무게가 250킬로그램을 넘는 성체 샤스타땅늘보는 높은 곳의 열매를 따 먹기에 딱 좋은 크기다. 실제로 이 짐승의 똥 무더기에서 나온 화석 증거를 살펴보면 그랜드캐니언을 비롯한 미국 남서부 사막 전역에서 조슈아나무 열매를 따 먹으며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땅늘보는 열량을 얻고, 조슈아나무는믿을 만한 장거리 종자 배포자를 얻었다. 이 협업 관계를 통해 조슈아나무의 분포 범위는 기후 패턴의 리듬에 따라 확장하거나 수축했다. 콜은 과거 조슈아나무의 분포 지도를 그리고 예측 모델을 만들어 기후가 따뜻해지기 시작한 이후 어디로 이주했는지 살펴보았다. 그러자 지도교수의 말처럼 땅늘보의 마지막 똥이 떨어졌을 때 조슈아나무의 확산도 멈추었음이 드러났다. 사방으로 수 킬로미터씩 돌아다니는 거대한 생물이 사라지자 조슈아나무는 숲쥐를 비롯해 고작 종종걸음이나 치는 설치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확산 속도가 1년에 기껏 2미터 정도로 곤두박질쳤다. 기후변화가 현재 서식지를 점점 더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드는 상황에서, 조슈아나무는 과거에까지 발이 묶여 시원한 북쪽으로 이동하지 못한 채, 이제는 제 이름을 걸고 있는 국립공원에서조차 사라질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 P260
그들은 "잎의 가장자리가 백악기와 제삼기의 전반적인 기후 조건을 가늠하는 손쉬운 도구를 제공한다"라고 썼다. 두 사람의 논문이 발표된 이후 20세기를 거치며 잎 가장자•리 분석법이 개발되고 다듬어져 지질시대의 기온을 측정하는 정확한 온도계가 탄생했다. 이제 화석의 양만 충분하다면 가장자리가 매끄러운 잎과 거친 잎의 비율을 계산해 고대의 기온을 몇 도의 오차내로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추가로 다른 세부 사항이 예측의 디테일을 살린다. 예를 들어 끝으로 갈수록 길게 가늘어지는 잎은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아주 흔하다. 러브가 설명을 이어갔다. "고대의 사료는 기후가 지속해서 변화해왔다고 말합니다. 잎의 모양이 그 역사를 말해주고 있어요" 손끝을 스쳐간 많은 잎 화석을 토대로 러브는 팔레오세-에오세극열기에 내 고향의 기후가 현재보다 평균 8~12도나 더 더웠다고계산해주었다. 놀라운 수치는 아니다. 당시는 행성 전체가 뜨겁게 달궈져 러브의 표현대로라면 "적도에서 극지방까지 어디든 똑같이" 푹푹 쪘다. 그 지속적인 열기는 미국 북서부 태평양 연안 같은 온대지방의 식생만 바꿔놓은 게 아니었다. 아열대숲이 북쪽으로는 그린란드, 남쪽으로는 남극대륙을 가로질러 퍼져나갔다. 온실 세상에서는 길을 가로막을 빙하도, 만년설도 없었다. - P270
당시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화산활동, 또는 해양 침전물에 축적되어 있던 메탄의 방출 등 아직 전문가들도합의하지 못한 모종의 사건 때문에 오늘날의 세 배, 심지어 네 배나되었다. 참고로 메탄CH은 그 자체로도 강력한 온실가스지만, 분해되면서 방출하는 탄소가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를추가하기도 한다. 고배출 기준 전망치 모델에 따르면 현대의 온난화는 다음 세기 중반이면 에오세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이며, 그렇게 되면 러브의 연구는 과거는 물론이고 미래를 보여주는 창이 될것이다. 그런 수준의 온난화가 반복될 때 어떤 결과가 예상되냐고묻자 러브는 즉각 대량 멸종이라는 말을 꺼냈다. 러브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 사건이 일어났고, 현재 진행 중인 것까지 치면 모두 여섯 번입니다"라면서 "적어도 절반은 기후 때문에 일어났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처음 네 번의 멸종은 모두 지구 기온이 극도로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면서 일어났다. 그 많던 공룡을 모조리 쓸어간 소행성도 아마 충돌의 충격 자체보다는 그로써 발생한먼지가 햇빛을 가리며 전 지구에 드리운 길고 긴 겨울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대규모의 기후 변동은 많은 종의 적응 능력을 동시다발적으로 망가뜨려 멸종의 무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러브는 "생물은 반응합니다"라며 대량 멸종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하고는 화석 기록에서 관찰한 것들을 줄줄 읊어댔다. 모두 이 책의 앞부분에서 다뤘던 생물학적 반응의 고대 버전이었다. "생물은 돌아다닙니다." 러브가 이어서 설명했다. "기회주의자들은 잘 지내고 멀리 확산합니다. 고통받는 쪽은 전문종들이에요."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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