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캠퍼스 근처의 수많은 버블티 카폐 중 하나인 미미스 유리창 안으로 내 학생들이 언뜻 보였다. 열두 명이 6인용 테이블에 모여 앉아 있었다. 너무 많은의자를 끌어다 놔서 각자 차지할 수 있는 테이블 공간이 아주작았다. 하지만 노트북과 공책 위로 몸을 수그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아주 편안해 보였다. 다들 뭔가를 쓰고 있었는데, 아마 내가 내준 숙제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이 서로에게 글 일부를 보여주고, 우스꽝스러운 어구 전환에 웃음을 터트리고, 돌아가며 큰 소리로 글을 읽을 때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 너무나 그리운 풍경이었다.
글쓰기를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알고 지내는 작가들은 모두 집필 일정과 작업 진도, 판매량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더 잘될까 봐 그런지, 그들은 자기 작업의 궤적을 알리길 꺼렸다. 작업 중인 작품에 대해 세세히 밝히는 건 더 싫어했다. 누군가 자기 아이디어를 훔쳐서 자기보다 먼저 출간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 대학 시절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그때우리는 도서관 책상에 우르르 둘러앉아 은유와 캐릭터 개발, 줄거리 반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 보면 누구의 이야기가 어디서 끝나고 누구의 이야기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구분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어쩌면 시기 어린 동료들로부터 고립되는 게 직업적 성공의 대가인지도 모른다. 일단 글쓰기가 개인적 발전의 문제가되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P335

상담치료사에게서 공황 상태를 유발하는 기억을 처리하는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생각하는거라고 배웠다.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장면을 처음 볼 때 겁이나는 이유는, 순간 경계가 무너지기 때문이고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악마에게 홀린 수녀가 언제 모퉁이 뒤에서 튀어나올지 정확히 알면, 그들은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다.
나는 내가 아테나에 대해 가지고 있던 끔찍한 생각들 하나하나에 똑같은 방법을 썼다. 공포에 깊이 파고들었다. 록빌의 중국계 미국인 소셜 클럽에서 있었던 저녁 모임의 끔찍한 일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썼다. @AthenaLius Ghost 계정을 처음 온라인에서 맞닥트렸을 때 얼마나 기분이 더러웠는지, 그리고 그로 인한 후유증이 얼마나 내 정신 건강을 해쳤는지 묘사했다. 나는 아테나의 망령을 포착해 그 페이지에 새겨 넣었다. 흑백의 고정된 페이지에 갇힌 채 그것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야유뿐이다. - P369

1년 후면 모든 서점에 내 책이 진열될 것이다. 초기 언론보도는 잘하면 회의적일 것이고, 나빠도 신랄한 정도에 그칠것이다. 백인 아가씨가 다 까발렸다! 준 헤이워드는 우리 중누구도 원치 않았던 회고록을 썼다. 왜냐하면 이 정신병자는쓰는 걸 멈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이애나 추는 분통을 터트리겠지. 그리고 아델 스파크스-사토는 아예 그 빌어먹을정신을 놓아버리겠지.
하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책을 자세히 들여다볼 것이다. 그들은 그와 반대되는 리뷰를 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낚시성 글을 원하는 편집자들은 늘 반대 리뷰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완전히 잘못 안 거면 어떡하지? 의혹을 심는 데는 이거면 충분하다. 논쟁을 위한 논쟁을 좋아하는 네티즌들은 캔디스의 이야기에서 허점을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인신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우린 모두 진흙탕으로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먼지가 걷힐 때쯤엔 질문 하나만 남을 것이다. 혹시 주니퍼 송 말이 맞았던 거 아니야?
이 이야기는 때가 오면 다시 한번 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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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드러내고 하는 사업과 내놓고 할 수 없는 사업, 표면상의 얼굴과 뒷모습, 페르소나와 민낯이라는 이분법적인 인간관에 따라 ‘신용‘을 설명하는 것과 개인적으로 교제하는 타자를 ‘믿거나‘ ‘믿지 않는‘ 것은 서로 별개의 일이다. 그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서도, 또다른 얼굴에는 전적으로 신뢰가 결여되어 있어도, 특정한 얼굴은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다. ‘우정‘에 대해 생각해보면, 신뢰란 본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무관심이아니라 다양한 사정을 감안하여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기로 결심한 배려이기도 하다.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겠지만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은 탄자니아 홍콩조합을 결성하여 궁지에 빠졌을 때 서로 돕는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다. 이 커뮤니티에 모이는 사람들은 연령이 다양하며, 양복을 입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량배같이 차려입었거나 티셔츠와 샌들 바람으로 다니는 사람도 있고, 가족이 있는 사람, 독신인 사람, 이혼한 사람도 있다. 월 수입이 6만 달러가 넘는 부호도 있고 매일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제각각‘이면서, 아니,
‘제각각‘이기에 그들은 연결될 수 있다. - P60

구리타는 홍콩, 중국 및 동남아시아 국가 등의 환태평양지역을 돌아다니는 탄자니아 교역인들 사례를 바탕으로,
기존 이민 연구에서는 현재 이동 중인 사람 mover이 아니라과거에 이동하여 현재는 정착한 거주자 resident가 더 주목받고 있으며, 거주자들의 커뮤니티 형성과 주류 사회와의 관계가 주요 논점이 되었고, 이동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 커뮤니티 연구의 가능성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고지적한다. 따라서 그는 ‘장기 체류자‘, ‘단기 체류자‘라는,
‘체류(혹은 정주)‘의 방식을 조명하는 호명이 아닌 ‘빈번한 이동자Frequent Travelers‘와 ‘느린 이동자Slow Travelers" 라는 구별을 제안한다. 그리고 환태평양 지역, 아랍에미리트, 아프리카 국가들과 같은 여러 대량 매입지와 판매지를 이동하는 그들의 인구 동태 및 커뮤니티가 복수의 교역 지점을 잇는 이동자移動者들을 매개로 형성되는 결절점임을밝히고 있다. 이 지적은 적확하다. 이 논고의 주요 대상은홍콩에 불안정하게 장기 체류 중인 사람들이지만, 이들역시 ‘정주자‘가 아니라 언제 어느 지역으로 이동해도 이상하지 않은 ‘느린 이동자‘에 지나지 않은 데다 이들 커뮤니티에는 ‘빈번한 이동자‘도 참여하며, 애당초 ‘안정적인 멤버십‘으로 이루어지는 커뮤니티라는 발상이 이들의 동태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들의 조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 P63

탄자니아 홍콩조합의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조합원 사망 시에 시신을 운구하는 비용의 기부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는 여행지나 돈을 벌러 간 곳에서 사망한 사람은 반드시 고향에서 매장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범이있다. 탄자니아에서도 시신을 운구하려면 트럭 수배 등에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도시로 돈을 벌러 나온 가난한 사람은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병에 걸리면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큰 병원에서 치료받기를 포기하며 스스로 버스를 탈 체력이 있는 동안 고향에 돌아가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해외에서 사망했을 때 시신운구에 드는 비용은 일반 가정이 부담하기 어려운 액수다. 타국에서의 죽음은 ‘당한 이가 누구건 동포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불행‘으로 인정받기가 비교적 용이한 사태인것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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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스틴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작가들과 이야기할 때가 가끔 있는데, 그분들은 좀…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아주 까다롭죠." 하비가 말을 받았다. "다들 영화의 한 장편한 장면이 책의 단어 하나하나와 일치하기를 원하거든요."
게다가 영화와 책은 완전히 다른 매체이고 완전히 다른 스토리텔링 기법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하지 못해요." 저스틴이 말했다. "사실상 번역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매체 간의 번역은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부정확할 수밖에 없어요. 롤랑 바르트도 말했죠. 번역은 반역이라고."
"부정한 미녀." 하비가 말을 보탰다. "아름답지만 충실하지못하다는 말입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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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곳 맨 앞줄에, 살아 있는 모습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환영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기엔 너무나 진짜 같고 현실적인 모습이었다. 특유의 진녹색 숄을 걸치고서 호리호리한 몸을 숙인 채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앉아 있으니 가늘고 연약한 어깨가 한층 우아해 보였다. 그녀는 플라스틱 접이식 의자에 느긋하게 등을 기대며 윤기 흐르는 레게머리를 어깨 너머로 넘겼다.
아테나였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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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테나 리우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그날 밤, 우리는 아테나가 넷플릭스와의 계약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던 중이었다. - P7

사람들은 늘 질투를 아주 날카롭고 기분 나쁘고 불쾌한 감정으로 묘사한다. 쓸데없이 심술궂고 비열한 감정으로, 하지만 알고 보니 질투는, 특히 작가들에게는, 오히려 두려움에 가까웠다. 아테나가 출판 계약을 또 맺었다거나, 수상자 명단에 올랐다거나, 특별판이 출간되었다거나, 해외 판권 계약을맺었다는 성공적인 소식을 트위터로 접할 때면 심장박동수가 급격하게 치솟았다. 질투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아테나와 비교하며 패배감을 느끼게 했고, 충분히 좋은 글을 충분히 빨리 써내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리라는 예감으로 전전긍긍하게 했다. 아테나가 넷플릭스와 거액에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도 며칠간 좌절에 시달리고, 서점 진열대에서 그녀의 책을 볼 때마다 수치심과 자기혐오에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터였다.
내가 아는 작가들은 다들 누군가에 대해 이런 식으로 느꼈다. 글을 쓴다는 건 매우 고독한 작업이다. 자신이 쓰고 있는글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확신할 수도 없고, 극심한 무한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징후가 조금만 보여도 끝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그냥 쓰고 있는 글에 집중하라고, 그들은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작품이 끊임없이 눈앞에서 펄럭거리고 있는 와중에 그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P18

칵테일 때문인지, 작가로서 내가가진 과도한 상상력 때문인지, 뱃속에서 뭔가가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딸기처럼 빨갛게 칠한 아테나의 입안에 손가락을 쑤셔 넣어 얼굴을 뜯어내고 오렌지 껍질 까듯피부를 깨끗이 벗겨내고 그 안에 쏙 들어가 지퍼를 잠그고 싶다는 괴상망측한 충동이었다. - P19

문제는 내가 이 소설에 얼마나 많은 걸 쏟아부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초고를 아테나가 썼다는 사실이 새어나간다면 세상 사람들은 내가 한 작업의 결과물, 내가 써낸그 모든 아름다운 문장을 보면서도 아테나 리우만 생각하게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누가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거짓말을 감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드러내는 것이다.
소설이 출간되기 오래전, 그러니까 소설의 초안이 리뷰어와 책 전문 블로거들에게 공개되기 전에 나는 미리 기초를 다져놓았다. 아테나와의 관계를 절대 비밀로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은근히 감추거나 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나는 아테나가 사망할 당시 곁에 있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관계를 이용했다. 인터뷰 때마다 아테나의 이름을 언급했다. 아테나의 죽음에 대한 나의 슬픔은 원작의 초석이 되었다. 맞다. 세부적인 부분은 조금 과장했다. 분기에 한 번쯤 마시던 술은 한 달에 한 번, 때로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우리 둘이 같이 찍은사진은 단 두 장. 아테나 옆에 선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절대 공개하고 싶지 않았지만, 흑백으로 변환한 후 감동적인 헌사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우리는 서로의 작품을 모두 읽고 종종 아이디어를 주고받았으며, 그녀는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이고, 내 초안에 대한 아테나의 의견은 내가 작가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어줬다는 것이 내가 대중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라. 우리 사이가 가까워 보일수록 이 소설이 그녀의 작품과 닮았다는 사실이 덜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이 프로젝트 곳곳에는 아테나의 지문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깨끗이 지워내지 않았다. 그러는 대신에 왜 그런지 설명했다. - P69

내가 아는 평범한 누군가가 갑자기 유명인이 되는 모습, 세련되고 가식적인 외모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잘 아는 인물로 바뀌어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고등학교 때 친구가 음악가로 큰 성공을 거둔다든가, 섭식장애를 앓는 금발 여자애였던 대학 신입생 때 친구가 스타 배우가 된다든가 말이다. 대중화의 메커니즘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있는가? 어떻게 그는, 당신이 알고 있는 그 현실의 인물이 아닌 마케팅과 대중화의 요소가 되어 팬들에 의해 소비되고 칭송받는 인물이 되는 걸까? 팬들은 그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팬들은 그 또한 이해하며 상관없이 그를 찬양한다. - P96

이게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는 신호일까? 나는 궁금했다.
아마도 맞는 것 같았다. 내 책이 출판사에 얼마나 중요한지왜 아무도 즉시 말해주지 않았을까? 『플라타너스 너머』가 출간되기 전에는, 내가 홍보에 땀을 쏟으면 쏟을수록 출판사가 그만한 보상을 해주길 바라며 블로그 인터뷰와 팟캐스트에 필사적으로 매달렸었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작가의 노력은 책의 성공과 아무 관련이 없다. 베스트셀러는 선택되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과정에서 주어지는 혜택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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