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5월 14일 김근태와 닌청련 회원들은 광주항쟁 4주년을 앞두고 버스 두 대로 광주로 내려가 오후 2시 망월동 묘소에 분향하고 추모식을 거행했다. 김근태는 「오! 영원한 민주화의 불꽃이여!」라는 추모사를낭독했다.
추도식을 마친 일행은 광주 금남로에서 스크럼을 짜고 <5월의 노래>를 부르면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많은 광주시민들이 지켜본 이날의 시위는 이후 광주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에 새로운 불씨를 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민청련은 서울로 올라와 5월 19일 오후 서울 홍사단에서 ‘5월과 민족의 혼‘이라는 주제로 광주민주화운동 추모식을 거행했다.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진혼굿과 더불어 광주항쟁의 사진·판화전도 열었다. 또 광주시민 학살 사진과 함께 수기와 일지 등을담은 자료집 <광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를 제작 배포했다. 광주학살 사진 전시와 자료집 발간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날 추모식이 끝난뒤 경찰이 들이닥쳐 폭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30여 명의 참석자가 부상을 당했다. - P86

김근태는 이 성명에서도 밝혔듯이 민주화운동 조직과 단체가 "특정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을 극력 반대했다. 개인 우상화를 철저하게 반대한 것이다. 그는 5공 시대 최초로 공개적인 반정부 단체를 이끌면서, 청년민주화운동의 리더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특정 개인의 명망에 단체가 귀속되는 것을 한사코 막았고, 그 전범을 보였다. 그리고민주화운동가들의 겸손한 처신을 강조했다.
실제로 1985년 2월 12일 제12대 총선이 실시될 때 민추협 공동의장인 김영삼이 민청련의 투쟁 성과를 높이 평가하여 김근태 의장에게 종로 출마를 종용했는데, 김근태는 민청련의 성과를 자기 혼자서 차지할수 없다는 것과, 아직 청년운동의 역할이 남았다는 이유를 들어 고사하기도 했다. 그의 언행일치와 겸손함이 묻어나는 ‘비화‘다 - P91

민청련은 80년대 초기 민주화운동의 전초기지가 되었고, 김근태와간부, 회원들은 전위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민청련의 투쟁이 강화될수록 정부의 탄압도 가중되었다. 김근태를 비롯하여 집행부의 연행 횟수가 늘어나고,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는 경우도 잦았다. 정부는 각 부문운동 단체들과 연대투쟁의 발원지가 민청련이라는 사실을 알고 강도높은 탄압을 자행했다.
1985년 10월 14일 민청련 지도위원(계훈제 · 백기완 • 이우정• 고은·김병걸 등 32인)들은 ‘민청련은 우리 민족의 희망이다 모든 민주 세력과 더불어 민청련 파괴음모를 저지할 것을 결의하며‘라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정부의 민청련 탄압· 파괴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우리 지도위원들은 전두환 정권에게 엄숙히 경고한다.
민청련을 비롯한 애국적인 학생. 노동자들에 대한 모든 폭력적 이데올로기적 탄압을 즉각 중지하라. 학생들의 정당한 주장 중 극히 일부분만을뽑아서 용공으로 매도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난 2년여 동안 공개적으로 활동해온 민청련을 학생들의 배후로 조작하여 탄압하려는 한심스런 작태에 우리는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배후 및 용공조작이 애국적인 청년·학생들을 탄압하려는 명분의 조작일 뿐 아니라, 모든 민주화운동 세력을 단계적으로 분리, 탄압하려는 간교한 술책임을 직시한다. 따라서 우리는 민청련에 대한 탄압이 계속될 경우 그것은 전체 민주화운동권에 대한 군사독재정권의 전면적 파괴공작의 명백한 신호로 간주하고 즉각적이고도 단호한 공동대처를 모색할 것임을 천명한다.
이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전두환 정권에게 간곡히 충고한다.
민청련을 비롯한 모든 민주화운동 세력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지하고 광주민중학살을 비롯한 자신의 과오를 분명히 시인하면서 스스로 퇴진하는 길만이 민족사에 속죄하는 유일한 길임을 깊이 깨닫기 바란다. - P99

김근태가 주도하는 민청련은 그동안 금기시되어 그 누구도 꺼내지못했던 문제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전두환 책임 추궁‘을 이슈화한 것이다. 그리고 겸양과 포용 정신으로각급 부문운동 그룹과 연대하여 5공 정권과 대결하면서 전두환 세력을코너로 몰았다. 그렇지 않아도 2.12 총선과 제12대 국회에서 야당의활동으로 전두환 정권은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들은 청년학생들의 반독재 투쟁의 배후 조종자로 김근태를 찍었다.

총선의 패배로 휘청거리던 5공 정권은 점차 활성화되어가는 학생, 재야, 민중운동의 도전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다시 탄압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첫 타깃은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의 연결고리인 민청련이었다. ‘학원안정법‘을 통과시키려다가 국내의 반발과 미국의 불승인으로 철회돼, 정치적 위신이 실추된 전두환 정권은 그 제물로 민청련과 김근태를 선택한 것이다.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은 김근태 전 의장을 서부경찰서에서 구류 만기일인 9월 4일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 참혹한 고문을 했다." - P100

뒷날 김근태는 자신을 체포해온 이 자들에 대해 "무슨 열정에 불타오르는 모습도 아니고 눈빛에도 오직 회색빛의 냉담함,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더군"이라고 회상했다. 그만큼 이들은 외견상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다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그는 순수하다는인간의 본성을 믿었다. ‘수심(獸心)을 간직한 인면(人面)‘만 본 것이다.

백남은은 김영두, 정현규, 최상남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내 옷을 벗기라고요. 처음에는 약간 저항을 하였으나, 몰려서이기도 하지만 아직 살아남은 오기가 발동하여 스스로 옷을 벗었습니다. 팬티만 남기고 모두 벗었습니다. 초라함, 빈약함이 덮쳐오더군요. 추워지기도 하고요. 아직 한참 남은 더운 여름이고 더구나 골방에 갇혀 있어 절대로 추울 수가 없는데도,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데도, 가슴의 한기가 온몸에 퍼져버렸습니다.
발가벗었을 때 오는 당황함과 이 한기가 뒤섞여 몸을 오그라들게 하더군요. 이 사람들은 분주하게 들락날락했습니다. 6시 반쯤, 정리된 것처럼 조용해지면서 위험이 닥쳐오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김수현이 들어와서 "진술 거부를 잘한다지, 여기서도 할 거야? 경찰과는 달라." 이어 본인에게
"당신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어디가 아픈가?"라고 물었습니다. "피로의 누적이다. 또 방금 구류 살고 나오는 길이어서 더욱 그렇다. 민청련대표직을 그만두어서 어디 휴양지로 가서 몇 달 쉬려고 하였다" 하자 "그렇다면 그 몸으로 견딜 수가 있겠는가. 당신 많이 깨져야겠구먼" 하였습니다. "내 의지가 살아 있는 한 진술을 거부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
"늦가을 초겨울 문턱에서 바싹 마른 낙엽들이 바람에 휘날려 올라가다가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발자국에 밟혀서 바스러지는 것이 자주 어른거리기도 했고", 김근태는 고문이 시작될 순간의 심경을 이렇게 그렸다. 그는 낭만파 시인이었다. 그리고 순간, 아우슈비츠, 나치 수용소에 갇혀 고문당한 유대인들을 떠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 P110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이 유대인과 사회주의자들을 고문하고 집단학살하면서 고전음악을 듣거나, 일요일에는 오페라 구경을 가자고 가족과 약속했듯이, 한국의 고문 기술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라디오에서 왈츠를 듣거나, 군대 간 아들 걱정, 박봉에 대한 불평, 대학 진학을앞둔 자녀 문제 등을 화제로 대화를 나누는 등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치사상가로 평가받는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6백만 명의 학살 책임자 아이히만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였다는 점에서 ‘악의 평범성‘을 지적했다. ‘악의 평범성‘은 히틀러 독일에서만이 아니라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한국에서도 벌어진 현상이었다.
김근태는 1985년 9월 4일부터 22일 동안 10차례에 걸쳐 상상하기어려운 고문을 당했다. 김근태를 고문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는 그로부터 2년이 채 안 되는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21세) 군을 고문으로 죽였다. 수사요원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 등이 고문살해범이다. 김근태가 그 끔찍한 고문을 당한 뒤에라도 야수적인 고문이 근절되었다면 박종철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 P111

격렬한 전기고문을 길게, 아주 길게 가하여 온몸이 고문대 위에서 오그라들어버리는 것 같았고 핏줄은 물론 모든 살이 마침내 다 타버려 누리끼리한 살가죽과 뼈만 남아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쉬지 않고, 조금도 쉬지 않고 이튿날 새벽 1시경까지 계속했습니다.
고통을 못 이겨 소리소리 질러 목 안에서는 피 냄새가 역하게 올라오고콧속에서는 단내가 계속 피어올랐습니다. 물고문으로 인해 속이 빈 위는계속 헛구역질을 해대고, 처음에 나는 저항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결과는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고문자들의 요구에 굴복하는 것 그것뿐입니다. 이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각오하고 저항을 하지만 고통과 공포에 짓눌리게 되면 곧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하는 내면의 외침에, 이것은 고문자들의 또 다른 협박이며 유혹이 내면화된 것이지만 부딪히게 됩니다. 아,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원통해서 이렇게 개죽음을 할 수는없다. 내가 저항을 하면 이들은 정말 죽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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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은 이미 이에룬의 지위를 시험해보기 시작한 듯했다. 왜냐하면 암놈들에 대한 그들의 공격이 위험할 정도로 이에룬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보호를 받으려고 이에룬에게 도망쳐서 그를 포옹한 암놈들조차 니키와 라윗의 공격으로부터 늘 안전하지는 못했다. 그런상황에서도 이에룬이 강력하게 반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른 두 수놈의 판단에 중요한 지표가 됐을지도 모른다. 자기의 부하를 지키는 것을 머뭇거리는 리더는 자신을 지켜내는 데에도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 P151

라윗과 이에룬이 공공연하게 충돌을 거듭하던 당시, 니키가 두 라이벌의 대결에 직접 개입한 것은 단 한 차례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때 니키는 라윗에게 맞섰다. 이 사건은 권력투쟁의 초기, 즉 라윗이 니키와 스핀이 사랑 행위를 나누는 것을 무력으로 중단시키고 나서 10분쯤뒤에 벌어졌다. 이는 대단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라윗이 니키와 직접 싸울 만큼의 여유가 없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날에도이와 매우 흡사하지만 그리 명확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도 성적경쟁심이 원인이었다. 라윗에게 혼쭐난 니키는 비명을 지르면서 이에룬에게 다가가 연대를 형성하며 라윗을 위협했다. 라윗은 서둘러 사육장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두 사건은 라윗이 왜 니키와 적이 되는 것을일부러 피했는지를 설명해준다. 니키가 자신에게 대항하지 않게 하려면 라윗은 관용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했다. 니키의 원조가 절실히 필요했던 라윗은 그와 소원해질 위험을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니키가 공개적으로 라윗에게 대든 적은 딱 한 번뿐이다. 오히려 그는 이에룬의 지지자들인 암놈들을 물리침으로써 간접적으로 라윗의 편을 들었다. 니키의 도움이 없었다면 라윗은 어떤 수를 쓴다 해도 이에문을 물리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상호작용의 통상적 패턴은 다음과 같다. 라윗이 이에룬의 주변에서 위협 과시를 시작하면 이를 더이상 묵과하지 못한 이에룬은 도움을 청하려고 비명을 지른다. 이에룬은 암놈들에게 도움을 간청하든가 아니면 직접 가서 암놈들을 끌고 온다. 이에룬과 그 지지자들이 라윗에게 접근하면 그때부터 니키가 나서서 이에룬 지지자들 가운데 한 놈, 특히 마마나 호릴라 가운데 어느 한쪽을 겨냥해서 공격한다. 이런 개입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효과를 불러온다. 즉, 이에룬과 라윗 사이의 충돌이 계속되는 동안 암놈들은 연합해서 니키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에룬과 라윗 사이의 싸움은 대개 마른 떡갈나무 가지 위에서 종료된다. 거기에서 라윗은 자기 과시를 하고, 이에룬은 비명을 지르며 아래에 있는 암놈 지지자들을 향해 한 손을 뻗는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다. 나무 밑의 암놈들은 지칠 줄 모르는 니키를 상대하는 것만도 벅찼기 때문이다. - P151

그러나 니키는 손과 발만을 사용해 싸울 뿐, 결코 송곳니로 물지 않는다는 규칙을철저하게 지켰다. 수놈들이 간혹 암놈을 무는 경우가 있지만 앞니만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커다란 송곳니를 가지지 못한 암놈들의경우에는 다른 암놈과 싸울 때나 수놈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할 때 수놈들보다 신중하지 못하게 이빨을 사용하기도 한다.  - P154

이후에 관찰되는 패자의 ‘떼쓰기‘ 행동은 종말의 시작을 고하는 또하나의 특징적 현상이다. 충돌이 있은 후 대략 한 달 정도 지나자 이에룬이 떼를 쓰기 시작했다. 라윗이 위협 과시를 하는 동안, 그는 놀랄 만한 연기력을 발휘해서 마치 썩은 사과가 떨어지듯 나무에서 떨어지더니 금속성 비명을 지르면서 땅바닥을 뒹구는 것이었다. 이런 신경질적인 감정 폭발은 흡사 절망감과 굴욕감이 억제되지 못한 채 표출된 듯한인상을 주었다. 이에룬은 어느 정도 기분을 회복하자 암놈들을 향해 깽깽 소리를 내며 다가갔다. 그리고 몇 미터 정도 떨어진 땅바닥에 드러누워 암놈들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이것은 동정을 구하는 몸짓이라기보다는 거의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수준이었다. 만약 암놈들이 도움을거부하거나 피해서 돌아서버리면 이에룬은 또다시 겁에 질려 떼를 썼다. 그럴 때면 그는 불쌍하게 비명을 지르면서 자기 근육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듯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몸부림쳤다.
만약 암놈들이 도와줄 기색을 보이면 이에룬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벌떡 일어나서 암놈들을 포옹한 다음에 자기 등 뒤로 암놈들을 - P157

떼쓰기에 관해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30대의 성숙한 이에룬이 마치 어린애 같은, 아니 완전히 유치한 퇴행적인 행동으로 다른 침팬지들의 주목을 끌고 동정을 얻으려 한 점이다. 그것은 젖 먹는 아기 때나 볼수 있는 모습이다. 어린 새끼들은 어미에게 거부당했다고 느끼면, 다시 안아줄 때까지 울거나 발길질을 해댄다. 어미가 받아주면 놀랍게도(그리고 수상쩍게도) 금세 떼쓰기를 그만둔다. 이에룬이 자신을 지도자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하는 라윗의 책동에 겁을 먹어 불안과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아기와 똑같은 행동을 연출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모른다. 말하자면 이에룬은 권력의 젖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 P158

침팬지를 제외한 다른 대형 유인원의 경우, 어른 수놈들 사이에서는 관용을 찾기 힘들며, 기껏해야 신경질적이며 비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할 뿐이다. 오랑우탄 수놈들은 다른 수놈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우림속의 넓은 세력권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같은 집단 내에서 생활은 하지만 암놈들을 독점하려 드는 것이 보통인 고릴라 수놈은 침입자를 죽음으로 몰고 갈 정도로 격한 싸움을 벌인다. 보노보 수놈은 함께생활은 하지만 매우 경쟁적이다. 그들은 침팬지 수놈들처럼 함께 사냥을 하지도 않으며, 정치적 동맹을 형성하거나 함께 세력권을 방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보노보 수놈들은 자신들의 어미를 따라 숲을 떠돌고어미에게 의지해 그들의 지위를 누린다. 어른 보노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높은 지위에 있는 어미를 둔 자식이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노보 사회는 암놈끼리의 동맹에 의해, 또 암놈의 지배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이다. 이는 그 자체로는 흥미롭지만 침팬지사회처럼 수놈 간의 복잡한 관계를 살피는 데는 적당치 않은 모델이다.
침팬지 수놈은 다른 동물들의 수놈 사이에서 나타나는 경쟁적인경향을 극복하고 높은 수준의 협력을 달성한다는 점에서 친척뻘인 다른 유인원들에 비해 독보적이다. 공동의 적에 대항해서 연합을 유지하면서도 동료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는 인간들처럼, 수놈 침팬지 역시 그들의 이웃에 대항해 공동연대를 형성할 필요성 때문에 경쟁심을 삭이고 의식화한다. 비록 아른험에는 대항해야 할 이웃 집단이 존재하지는않았지만, 몇백만 년 동안 자연 서식지에서 집단 간의 투쟁을 벌이면서형성된 수놈 침팬지들의 심리에는 경쟁과 협동 모두 겸비되어 있다. 그들 사이의 경쟁이 어떤 수준에서 일어나든 간에 수놈들은 외부 침입자에 대항해 서로를 의지한다. 이처럼 동료의식과 경쟁의식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은 다른 대형 유인원들의 사회보다 침팬지 사회를 더 친숙하게 만든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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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은 항상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나를 소개하려고 노력하는데, 문제는 가끔 그가 없을 때 (내가 접시를 치우거나 장작을 채워 넣는 걸보며) 내가 고용된 일꾼인 줄 알고 얕잡아 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것이다.
어떤 해에는, 내가 난로에 장작을 넣고 있는데 작가들의 쉼터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공짜 와인과 공짜 바닷가재를 먹고 있던 아주 유명한 신문 칼럼니스트가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고는, 테이블 위에 있던 빈 설탕 통을 가리키며 나에게 "설탕!"이라고 소리친 적도 있다.
이런 방문자는 내가 두 번째로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그것보다 더 심한 부류는, 그 집이 내 집이라는 걸 알게 된 후부터 부엌이나작가들의 쉼터에서 마리아를 돕는 사람들이나 니키, 플로, 또는 베선 을대하는 태도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돌변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손님들을 별로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들보다 크게 나은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한 번도 종업원들이나 청소부 혹은 가게 점원들에게 무례하게 대한 적이 없고, 또 이제까지 내가 누군가를사회적 약자처럼 취급한 적이 없었기를 바란다. 대신 나에게 무례하게대한 사람에게는 똑같이 예의 없게 행동한 적은 있다. 그나마 나는 무례한 손님들에게 똑같이 갚아 줄 여유라도 있지만(이건 내 서점이고, 아무도 날 해고할 수 없으니까) 서점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나와 같은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걸 악용해서 눈곱만큼의 예의도 갖추지 않는 위인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다. 물론 나도 손님의 외양을 관찰하는편이긴 하지만 그건 그저 관찰일 뿐이지 판단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 P312

‘무례하기 굴긴 싫지만...‘ 하는 식으로 말문을 여는 것은 ‘난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이라고 시작하는 말과 똑같은 경계경보를울린다. 복잡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 무례하게 굴기 싫으면 무례하게 굴지 않으면 된다.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면, 인종 차별주의자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된다. - P317

11시에 십 대 남자아이가 어색해하며 쭈뼛쭈뼛 계산대로 걸어오더니 내 앞에 ‘호밀밭의 파수꾼』과 책값으로 2.50파운드어치 잔돈을 함께 내밀었다. 내가 이 아이만 했을 때, 성인으로 성장해 가던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 책만큼 내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많지 않다. 주변 사람들이 강요하는 인생과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라는인물에 대한 샐린저의 묘사는 1951년에 이 책이 나온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십대 청소년 독자에게 무수한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 P359

한 손님이 4시쯤 조제 사라마구의 놀라운 책 ‘눈먼 자들의 도시』와 안토니오 타부키의 「페레이라가 주장하다』 한 권이 포함된 한 상자분량의 현대 소설 페이퍼백을 가져왔다. 이 두 소설은 이탈리아인 친구가 현대 유럽 소설에 너무 무지한 나에게 경악하며 보내 줬던 책이다.
「페레이라가 주장하다]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지만 눈먼 자들의 도시는 정말이지 대단한 소설이었다. 이 책처럼 몰입도가 높고 내용을선명하게 시각화시키는(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은 많지 않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추잡하고 무기력하게 변해 버린 세상, 한가지 감각의 상실로 인해 드러나는 사회계약의 허망함과 급속히 붕괴되는 사회의 모습을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 냄으로써 독자들을 관찰자의 입장이 아니라 그 세상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고, 결말에 가서는(호그의 사면된 죄인의 사적인 고백과 기록에서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 P365

그중에서도 크리스마스와 하그머네이 사이의 일주일은 확실하게 문을 열 가치가 있는 기간이다. 이때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고향으로 온다. 그리고 금세 가족들과 같은 집에서 몇 날 며칠을 같이 지낼 때보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더 깊이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감정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기간에는 일년 중 가장 어두컴컴한 달에 좁은 공간에서 가족들과 줄곧 지내다가 뛰쳐나온 사람들로 서점이 북적거린다. 어떻게든 탈출할 구실을 찾아 밖에 나온 사람들은 서점으로 몰려와 책을 뒤적이며몇 시간씩 시간을 보내다가, 대개는 책을 사 간다. - P371

오늘 온 손님 중 한 명은 나이 든 남자였는데, 뭔가 굉장히 신난 표정으로 책 한 권을 움켜쥐고 계산대로 왔다. "이 책 얼마면 되겠소?" 그건 라틴어 학교 교재였는데, 그는 황급히 책을 펼쳐 면지에 만년필로적힌 이름을 가리키며 "이게 우리 아버지가 쓰던 책이오"라고 말했다. 가격은 4.50파운드였는데 나는 그 손님에게 그냥 가져가도 좋다고 말했다. 그 책이 어떻게 서점에 들어오게 됐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손님이 그 책을 발견하고는 너무 기뻐해서 그냥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켄트에서 휴가차 이곳에 왔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 캔•터베리 외곽의 한 집에서 대량으로 사들인 책 사이에 들어 있었던 것같다. - P378

책 상자를 살펴보다가 (목사에게서 사온 책이었던 것 같다) 같은 상자에서 나올 법하지 않은 책 두 권을 발견했다. 하나는 ‘나의 투쟁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만든 올리브나무로 된 성경 책이었다.
『나의 투쟁』이란 책을 만나면 뭔가 도덕적으로 껄끄러운 입장에처하게 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나의 투쟁』은 60파운드 정도의 가치가있고 많은 서적상들은 웬만해선 건드리려고 하지 않지만, 이 책에 대한수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많다고 할 수는 없어도 한 달 내에 팔릴거라는 기대를 할 정도의 수요는 있다. 문제는 과연 이 책이 어떤 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것인가이다. 극우적 성향을 가진 미친놈일 수도있고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의 오류를 밝히려는 사학자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내년에 독일에서 저작권이 만료되면 [나의 투쟁』의 판로에 변화가 올 것이다. - P384

디컨 씨가 4시쯤 앨리슨 위어의 「탑에 갇힌 왕자들』을 주문하러왔다. 팔에 깁스는 이미 푼 상태였다.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간단하고 필요한 말만 주고받았다. 적어도 디컨 씨가 나가려는 순간 내가 아주 발작적인 기침을 할 때까지는, 내가 기침하는 걸 지켜보던 디컨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런, 같은 처지라 마음이 쓰이네요. 나도 많이 아프거든요." 나는 갑자기 그가 어디가 아픈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에게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개인적인 질문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알츠하이머예요. 요즘 단어들이 생각이 잘 안나요." 그의 이런 안타까운 고백에 뒤이어, 우리는 지난번에 그가 딸들과 함께 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나눈 적이 없는 그의 삶에 대한대화를 처음으로 나누게 되었다. 그는 법정 변호사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적절한 단어를 생각해 내지 못하는 무능함을 더욱 좌절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4시 30분에 에든버러로 가기 위해 서점을 나섰다. 서점 문이 내 뒤에서 닫히는 순간 뒤를 돌아보자 니키가 집에서 만들어 온 이름표를 또 책장 한 귀퉁이에 테이프로 붙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못마땅한 ‘전시후방 소설‘이라는 이름표가 귀환한 것 같다.

매출 18.50파운드
손님 4명 - 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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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른험 침팬지들의 이름은 이곳 사육장에서 태어난 놈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서로 다른 머리글자로 시작된다. 각각의 머리글자는 관찰 중에 약칭으로 사용되는데, 이렇게 하면 집단의 구성원을 쉽게 요약할 수 있다. 장성한 세 수놈(Y, L, N), 어린 수놈 한 놈(D), 장성한 암놈 여덟M, G, F, J. K, S, T. P), 어린 암놈 넷 가운데 한 놈은 거의 어른(A), 아직 어린 나머지 셋(O.Z.H).
두 마리의 양자를 제외하고 사육장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모두 어미의 이름과 똑같은 머리글자로 불린다. 어떤 암놈의 첫 자식에게는 이름의 두 번째 문자에 ‘ㅇ‘를 넣고, 두 번째 자식에게는 ‘a‘를 붙인다. 이미(Jimmie)의 두 자식이 요나스(Jonas)와 야키(Jakie)가 되듯이 말이다.
사육장에는 모두 일곱 마리의 새끼가 있는데 그중 가장 어린 두 놈만이 암놈이다. - P121

몸집의 크기와 사회적 서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사회적 서열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지표로 나타나는 특정한 행동 형태에 의해 더욱 확고해진다. 바로 ‘복종적인 인사(submissive greeting)‘라는 행동인데 야생에서뿐만 아니라 아른험에서도 동일하게나타난다. 엄밀하게 말해서, ‘인사‘란 헐떡이는 것처럼 짧고 빠르게 ‘아하아하‘ 하는 소리를 계속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위가 낮은 놈은 이런 소리를 내면서 ‘인사‘받는 상대를 우러러 보는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상대방에게 연신 절을 해대는데 이 동작은 ‘굽신거리기‘라고 불린다. 때로는 ‘인사‘하는 녀석이 나뭇잎이나 나무 막대기같은 것을 가져와서 지위가 높은 놈에게 건네기도 하고, 혹은 발이나 목, 가슴 등에 키스를 하기도 한다. 지위가 높은 침팬지는 이런 ‘인사‘를받으면 몸을 곧추세워 키가 커 보이게 하거나 털을 곤두세운다. 이로인해 실제 체구가 같은 놈들끼리도 외양이 명확한 대조를 보인다. 한쪽은 굴욕적으로 굽실거리고, 다른 한쪽은 왕처럼 ‘인사‘를 받는다. 또한어른 수놈들 사이에서 보이는 우열관계는 지위가 높은 놈이 ‘인사하는 놈을 밟거나 그 위를 넘어 다니는 연극적인 동작을 통해서 더욱 강조된다(소위 말하는 으름장이나 허세 부리기). 이때 지위가 낮은 놈은 몸을 웅크리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이같은 곡예 짓은 암놈이 ‘인사‘할 때는 그리 일반적이지 않다. 암놈은 대개 수놈 우위자가 자신의 성기를 검사하고 냄새를 맡을 수 있게 엉덩이를 내민다.
암놈이 엉덩이를 들어 수놈에게 성기를 보여주는 이 행동이 자세를 ‘프레젠팅(presenting)‘이라 한다. - P129

이렇듯 우열관계는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표출된다. 먼저 사회적 영향력, 즉 ‘권력‘이다. 이는 누가 누구를 이기고 누가 집단적인 갈등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지를 반영한다. 특히 침팬지들의 경우 이합집산에 능하기 때문에 이런 대결의 결과가 어떨지는 100퍼센트 예측할 수 없다. 다른 동물에 비해 침팬지들 사이에서는 사회적 서열이 일시적으로 역전되는 사태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그래서 그들의 서열 조작은 종종 ‘유동적이다‘라든지 ‘유연하다‘고 표현된다. 때에 따라서는두세 살쯤 된 어린 침팬지가 어른 암놈이나 수놈을 쫓아버리기도 하고강제로 무언가를 시키는 경우마저 있다. 그것은 단순히 놀이에 그치지않고 심각한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어린 요나스가 어미의 후광을 업고 프란예의 젖을 뺏어먹은 경우처럼 말이다.
새끼들이 어른에게 ‘인사‘를 받는 경우는 없다. 새끼들은 실제적인 권력을 누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형식적인 우위‘는 갖지 못한다. 다툼의 결과는 때때로 지도자마저 나무 위로 쫓겨갈 정도로 다양하지만 ‘인사‘ 의식은 완전히 예측 가능하다. ‘인사‘는 ‘고정된‘ 우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것은 침팬지 사회에서 유일하게 관찰할 수 있는 비상호적인 사회적 행동 양식이다. 간단히 말해, 일정 기간 A가 B에게 ‘인사‘를 하는 경우, 그 기간에는 반대의 상황, 즉 B가 A에게 ‘인사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두드러진 경직성은 일련의 낮은 신음소리를 동반하는 복종적인 인사에서만 나타난다. 침팬지들은 여러 가지방법으로 인사를 한다. 그러나 내가 인용 부호를 붙여 ‘인사‘라고 하는경우는 낮은 신음소리를 동반하는 복종적인 것을 지칭한다. 이에룬은 자신이 1인자였을 때 절대 이같은 낮은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고, 대신 집단 내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자주 그 ‘인사‘를 받았다. - P132

이 집단에 있는 아홉 마리의 어른 암놈들이 마치 일치 단결한 것처럼 보인 것은 특이한 일이다. 그들이 실제로도 만장일치였는지는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이에룬과 라윗 사이의 우위 경쟁은 가끔 암놈들 사이에도 긴장관계를 조성했다. 그럴 때면 마마와 호릴라 같은 서열높은 암놈들이 분명하게 이에룬을 적극 지지했지만 파위스트나 이미같은 다른 암놈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파위스트는 이에룬 편이 되어 라윗에 대항하려던 마마를 공격한 적도 있다. 이후 암놈들의 공동전선이 붕괴되기 시작했을 때에는 반대의 경우도 나타났다. 결국 라윗이 최강자로 등극하자 가장 먼저 이에룬을 버리고 새로운 권력자 진영에 합류한 것은 파워스트였다. 초기에 마마는 파위스트의 탈당에 분노해서 파위스트가 공공연하게 라윗의 편을 들 때마다 그녀를 공격했다. 만일 마마가 없었다면 파워스트나 이미 같은 암놈들이 더 빨리 라윗 편에 달라붙었으리란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암놈들이 몇 달에걸쳐서 이에룬을 공동으로 지지한 데에는 자발적인 만장일치보다는 마마의 압도적인 영향력이라 할 수 있다.
혹자는 배후에 이런 강력한 지지 집단이 있는 이상, 이에룬은 무서울 것이 전혀 없지 않겠냐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첫날부터 그가 집단적인 지원을 상실할 위험성을 갖고 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마마는 그가 따라오는 것을 몇 차례 거부했고 이것은 이에룬의 권력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라윗의 전술에 의한 것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P143

나는 이에룬이 암놈 집단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떼어놓는 라윗의행위를 ‘떼어놓기 간섭(separating interventions)‘이라고 부른다. 그것의단기적인 효과는 명백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장기적으로 가져올 효과를 알아보려고 그해 말에 통계를 분석해보았다. 특히 과정 자체가 느리게 진행될 때 주관적인 인상은 확실히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방법이 반드시 필요했다. 우리는 매 5분마다 어느 놈들이 서로 어울려 소집단을 형성하는가, 즉 누가 2미터 이내에 앉아 있는지를 휴대용 테이프에 녹음해왔다. 1976년 여름에 행한 연구에서 우리는 몇백 개의 기록자료를 분석해서 이에룬이 그밖의 침팬지들과 어떤 친소관계에 있었는지를 그려냈다.
라윗이 아직 이에룬에게 주기적으로 ‘인사‘를 하던 1976년 봄, 이에룬은 자기 시간의 30퍼센트 가량을 어른 암놈들의 집단과 무리를 지어 보냈다. 그러나 처음으로 라윗에게 노골적인 도전을 받은 뒤 몇 주동안에는 그 시간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것은 당시 이에룬이암놈들과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있으려고 했다는 것을 뜻한다. 라윗의태도가 변하기 시작한 사실을 간파한 이에룬은 아마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음을 느꼈는지 자주 암놈들에게로 물러나 있었다. 당시 라윗은 이에룬에게 거의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이에룬이 폭풍 전야의 고요함 같은 시기에 암놈 무리라는 안전한 피난처를 확보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은 기록 자료의 분석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우리는 곤란한 사태가 진전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미 새로운 권력투쟁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의 데이터는 매우 현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윗이 이에룬의 리더십에 좀더 적극적으로 도전해서 수없이 ‘떼어놓기 간섭‘을 자행하고 있던 몇 주 동안, 이에룬이 암놈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차츰 줄어들었다. 급기야 가을이 오자 암놈들과의 접촉 횟수가 뚝 떨어졌고, 암놈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봄철보다 더욱더 줄어들었다. 우리가 조사한 데이터를 통해서 이에룬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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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오브위트혼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는데 독립 투표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에 떠들썩한 언쟁이 벌어졌다. 애나는 처음에는 민족주의에 대한 누구나 충분히 납득할 만한 반감(조부모님이 둘 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였고, 특히 할아버지는 해방될 당시 아우슈비츠의 수감자였다고한다) 때문에 독립을 반대했었는데 이제 민족주의와 독립이란 꼭 일맥상통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듯했다. 오늘 같이 저녁을 먹은 우리들 중 반은 독립 찬성파였고 나머지 반은 반대파였다. 만일 투표 결과가 오늘 저녁식사 때 모였던 우리처럼 반반으로 나뉜다면 18일 저녁에 개표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오늘 저녁 일어난, 생각지도 못했던 일 중의 하나는 우리가 시에관한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 우리를 저녁에 초대한 집주인 크리스토퍼는 농부이고, 대학에서는 순수 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시집 쪽에 열정을 갖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거의 평생을 알고 지냈다고 해도 될 만큼 오랜 친구인데도 그 친구가 강수량이나 수확량이외의 것에 관심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크리스토퍼가 예이츠의 「방랑자 앵거스의 노래」를 암송했다. 정말 감동적이고 훌륭한 낭송이었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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