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굽달린 포유류인 유제류有蹄類에는 두 집단이 있다. 우제류偶蹄類는 발굽의 수가 짝수 개이거나 발굽이 갈라진 유제류이고, 기제류奇蹄類는 발굽의 수가 홀수 개인 유제류이다.
우제류에는 돼지와 낙타 그리고 모든 반추동물(영양, 사슴, 기린, 소, 염소, 양)이 포함된다. 반추동물은 질긴 풀을 분해해야 하는 문•제를 위에서 새김질감을 게워내 다시 씹고, 4개의 위 중 첫 번째위인 혹위에서 세균을 이용해 식물 물질을 발효시킴으로써 화학적으로 분해하는 데 도움을 받은 뒤, 나머지 소화계를 지나가게하면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방법으로 대응한다(앞에서 보았듯이 인류는 동일한 생물학적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다). 우제류는 오늘날 지구 에서 가장 많이 존재하는 대형 초식 동물이다. 갈라진 발굽은 2개의 발가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들은 우리 손의 세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에 해당한다.
기제류에는 말, 당나귀, 얼룩말, 맥, 코뿔소 등이 있다. 기제류는 코뿔소처럼 발가락이 3개인 종도 있고, 말처럼 1개뿐인 종도있다. 말은 우리가 남을 모욕하려고 할 때 치켜세우는 가운뎃손가락으로 뛰어다니는 셈이다. 기제류는 반추反芻동물과는 대조적으로 위는 단순한 반면, 창자 뒤쪽에 발효조가 있다. 음식물을 발효시키는 세균이 막창자(맹장)라는 아주 큰 주머니에서 식물 물질을 발효시켜 영양분을 추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난 1만 년 동안 우리가 가축화하여 인류 문명이 그 고기와부산물과 근육의 힘에 의존해온 대형 동물 중 대다수가 단 한 종류의 포유류 집단에 속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 P120

이때 온도가 급상승한 정도가 크긴 했지만, 지속 시간은 지질학적 관점에서 볼 때 아주 짧았다. 대기와 지구 기후는 약 20만1년 이내에 다시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이 지구 온난화-바다에 쌓인 막대한 양의 메탄이 배출되면서 일어난 짧지만 강렬했던 전 지구적 발열 상태는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세포유류 목을 탄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우제류와 기제류와 우리가 속한 영장류는 모두 팔레오세-에오세 최고온기가 시작된 직후에 갑자기 나타나 아시아와 유럽, 북아메리카로급속하게 퍼져갔다.
이 온도 급상승이 APP 목들의 출현을 이끌었다면, 우제류와기제류가 살아갈 생태계를 만든 것은 지난 수천만 년 동안 일어난 지구 냉각화와 건조화였다. 건조한 기후로 변해가는 대륙들에서 초원이 확대됨에 따라 초식 유제류가 그 뒤를 따라가면서 소와 양, 말의 조상을 포함해 많은 종으로 분화해갔다. 따라서 우리가 재배하게 될 곡류를 공급한 초원은 우리가 가축화한 대형유제류 종들의 출현을 위한 진화의 무대도 제공했다.  - P124

따라서 농업과 문명이 시작된 순간부터 유라시아에는 우리가순화시켜 증가하는 인구를 부양하기에 적절한 야생 초본 식물종이 풍부하게 널려 있었다. 유라시아는 우연히 이러한 생물학적 풍요를 선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대륙이 늘어선 방향도 먼지역들 사이에 곡류를 확산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초대륙 판게아가 열곡들을 따라 쪼개질 때, 유라시아는 동서 방향으로 길게 늘어선 땅덩어리로 남게 되었다. 유라시아 대륙은 지구 주위를 3분의 1 이상 빙 두르고 있지만, 남북 방향으로는 비교적 좁은범위에 분포하고 있다. 기후형과 계절의 길이를 결정하는 주요인자는 위도이기 때문에, 유라시아의 한 지역에서 순화馴化된 작물은 같은 대륙의 다른 곳으로 옮겨 심더라도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는데 그다지 큰 부담이 따르지 않는다. 예컨대 밀 재배는 터키고지대에서 메소포타미아를 지나 유럽과 인도까지 곧장 쉽게 확산될 수 있었다. 두 쌍둥이 대륙으로 이루어진 아메리카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록 파나마 지협으로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남북 방향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한 지역에서 길들인 작물이 다른 곳으로 확산되려면 다른 생장 조건에 재적응하는훨씬 힘든 과정이 필요했다. 판의 활동과 대륙들의 이동이 낳은구세계와 신세계의 이러한 기본적인 구조적 차이는 역사를 통해 유라시아의 문명들이 발달하는 데 큰 이점이 되었다. - P125

전 세계에 퍼져 사는 대형 동물들의 분포 역시 불균일한데, 여기에서도 유라시아의 사회들은 추가로 이점을 누렸다. 가축화를용이하게 하는 야생 동물의 속성 중에는 영양분이 많은 식품 제공, 유순한 성격, 사람에 대한 선천적 두려움 부족,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선천적 습성, 사육 상태에서도 잘 번식하는 능력 등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야생 동물은 매우 적다. 전세계의 대형 포유류(몸무게가 40kg 이상 나가는) 148종 중에서 유라시아에 사는 좋은 72종인데, 그중에서 가축화된 것은 13종뿐이다. 아메리카에 사는 24종 중에서는 오직 야마(그리고 가까운 친척인 알파카)만이 남아메리카에서 가축화되었다. 북아메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가축화된 대형 동물이 하나도 없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가장 중요한 동물 다섯 종양, 염소, 돼지, 소, 말과 특정 지역에서 운송 수단을 제공한 당나귀와 낙타는 유라시아에서만 살았으며, 가축화되고 나서 수천년 이내에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산되었다. 역사를 통해 고기뿐만 아니라 부산물(젖, 가죽, 털)과 근육의 힘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미친 동물은 대형 포유류 종들이다.
말과 동물은 북아메리카의 풀이 자라는 평원에서 진화했지만, 마지막 빙기가 끝날 무렵에 살아남은 말과 동물 집단은 넷뿐이었고 유라시아에서만 살았다.  - P126

아메리카 문명들이 감수해야 했던 이러한 생물학적 빈곤은 어떻게 보면 큰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는데, 유라시아에서 운송과 교역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이 두 동물 집단이 사실은 아메리카에서 진화해 베링 육교를 건너 유라시아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얼마 후 말과 낙타는 자신의 고향에서는모두 사라졌는데, 아마도 최근의 빙기 때 반대 방향으로 베링 육교를 건너간 초기 인류가 지나치게 남획을 하는 바람에 멸종했을 것이다. 최초의 아메리카인은 자기도 모르게 그 대륙에서 미래의 문명 발달을 크게 저해하는 짓을 저질렀다.
당나귀와 말과 낙타는 유라시아와 아라비아와 아프리카의 스탭과 사막, 산길을 지나가는 여행로와 무역로에서 매우 중요하게 쓰이면서 구세계에서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사람과 자원과사상과 기술의 전달을 용이하게 했다. 반면에 아메리카는 생물학적으로 빈곤하여 이러한 혁명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유의미한 수의 낙타가 아메리카로 되돌아온 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은16세기 초에 에스파냐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에 발을 디뎠을 때 고향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16세기에 두 세계 사이의 접촉이 재개되었을 때, 아메리카의 문화를 지배한 것은 축적된 유라시아의 풍요를 물려받은 유럽 국가들이었다. - P128

중국이 티베트 고원을 지배하려고 하는 데에는 중요한 전략적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군사적 이유 때문이다. 인도가 티베트 고원을 차지해 문자 그대로 중국 심장부가 내려다보이는 요지를 차지하고, 그와 동시에 그곳을 그 아래의 평원을 침공하는전진 기지로 삼을 가능성을 중국은 좌시할 수 없었다. 설사 인도가 티베트 고원을 점령하지 않더라도, 만약 티베트에 정치적 자치를 허용한다면, 티베트 정부의 허락을 받아 인도가 그곳에 군사 기지를 건설할 가능성이 있어 중국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는 티베트 고원이 공급하는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자원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물이다.
티베트는 세상에서 가장 높고 넓은 고원이며, 이곳에 있는 수만 개의 빙하에는 북극 지방과 남극 대륙을 제외하고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빙하 얼음과 영구 동토층이 있다. 그래서 이 높은고원은 지구의 세 번째 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빙하와 눈에서 녹은 물은 황허강, 양쯔강, 메콩강, 인더스강, 브라마푸트라강, 살원강을 포함해 동남아시아 전체로 부챗살처럼 뻗어나가는 큰강 10개의 원류가 된다. 이 큰 강들은 모두 산에서 침식된 엄청난 양의 퇴적물도 실어가 주변의 범람원과 논을 기름지게 만든다.
따라서 티베트 고원은 전체 대륙 지역의 급수탑 역할을 하는데, 소중한 자원을 저장하고 이 강들을 따라 그것을 분배하면서 2억 명 이상의 사람에게 식수와 관개용수, 수력 발전 용수를 공급한다.  - P130

대양과 바다는 지표면의 약 4분의 3을 차지한다. 아서 클라Arthur C. Clarke가 우리가 사는 행성을 지구地球, Earth가 아니라 수구水球Ocean라고 불러야 한다고 농담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리고 바다는 우리 세계의 생명과 깊은 우주 사이의 긴밀한 연결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지구에서 물은 모든 생명에게 필수적인 것이지만, 원시 태양 주위를 빙빙 돌던 먼지와 가스 원반에서 처음 생성될 때 지구는 매우 건조한 상태였다. 지구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초기에 서로 충돌하면서 들러붙어 지구를 만든 암석질 물질에 얼음이 별로 많지 않았고, 생성될 당시에 발생한 높은 열은 지구 전체를 녹이면서 물과 그 밖의 휘발성 화합물을 모두 증발시켜 버렸을 것이다. 따라서 바다를 채우고 있는 물은 지구가 탄생한 후에 우주에서 왔는데, 태양계 바깥쪽의 차가운 지역에서 날아와 지구에충돌한 (마치 깊은 우주에서 날아온 눈보라처럼) 혜성과 소행성에 실려 왔다. - P134

석유는 현대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연료일 뿐만 아니라, 기계에 윤활유를 공급하고, 도로를 포장하고, 플라스틱과 의약품의 원료로 쓰이고, 식량 생산에 도움을 주는 인공 비료와 살충제와제초제 생산에 쓰인다. 전 세계의 석유 공급 중 절반 이상은 해상운송망을 따라 유조선이 실어 나른다. 따라서 도중에 천연 해협들을 지나간다. 앞에서 보았듯이,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래 다르다넬스 해협(또는 헬레스폰트 해협)과 보스포루스 해협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이었다. 우크라이나의 곡물은 아직도 흑해를 통해 수출되지만, 러시아와 카스피해 지역에서 남유럽과 서유럽으로 화석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매일 약 250만 배럴의 석유도 유조선에 실려 터키의 이 두 해협을 지나간다. 폭이 1km도 안되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주요 선박들이 지나다니는 해협 중 세계에서 가장 좁은 해협이다.
우리는 인공 요충지들도 만들었는데, 바다들을 연결해 직항로를 만들려고 건설한 운하가 바로 그것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가 있다. 1956년에 수에즈 운하가 6개월동안 닫히는 바람에 배들이 남아프리카 주위를 빙 둘러가게 되자, 유럽 전역에서 연료 부족 사태가 일어났다. 하지만 현재의 석유시대에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해협은 호르무즈 해협이다. - P167

시간이 지나자 이 해저 점토층이 셰일층으로 변했다. 해수면이 다시 낮아지자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은 미국의 윤곽이 드러났고, 지표면이 침식되자해저에 퇴적된 이 퇴적층 띠가 연안 평야 위에 다시 드러났다. 이셰일 기반암 띠에서 유래한 토양은 어두운 색이고 영양 물질이많았는데, 그 물질이 원래 산맥에서 침식된 것이기 때문이다. ‘블랙 벨트 Black Belt‘라는 용어는 원래는 앨라배마주와 미시시피주를지나가며 뻗어 있는, 농업 생산성이 높은 독특한 색의 이 띠를 가리켰다.
백악기의 셰일에서 유래한 어두운 색의 이 비옥한 토양은 농작물을 재배하기에 이상적이었는데, 특히 목화를 재배하기에 좋았다. 산업 혁명이 진행되고 목화를 옷으로 만드는 과정이 가속화되면서 (목화 섬유를 씨에서 분리하고 실로 자은 뒤에 천으로 만드는 과정이 기계화됨으로써) 목화 수요가 크게 치솟자 목화는 중요한 환금 작물이 되었다. 하지만 목화 재배는 매우 노동 집약적인 일이었다. 탈곡기를 사용해 식물 줄기에서 낟알을 쉽게 훑어낼 수 있는 곡물과 달리 초기에 목화를 재배할 때에는 목화솜이 붙은 꼬투리를 일일이 사람의 민첩한 손가락으로 떼어내야 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부터 남부 주들에서는 그 노동력을 노예들이 제공했다.
1830년경에 노예 제도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미시시피 강주변 지역에서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고, 1860년경에는 앨라배마주의 멕시코만 해안 지역에서 위쪽으로 그리고 조지아주까지 퍼져갔다. 노예의 노동력을 이용한 목화 농장이 전성기를 누리던시절에 ‘블랙 벨트‘라는 용어는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되었는데, 디프사우스Deep South (미국 남부의 여러 주를 통틀어 이르는 말. 주로 남부의특징이 두드러진 루이지애나주, 미시시피주, 앨라배마주, 조지아주의 네 주를 가리킨다. 옮긴이)에서 많이 발견되는 인구 집단이 분포하는지역을 가리켰다. 즉, 미시시피강 양안을 따라 그리고 땅 밑에 백악기 암석층의 띠가 늘어선 곡선을 따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을 가리켰다.
••••••
경제적 생산성이 높았던 이 지역은 이후 산업이나 관광을 통한 큰 발전이 일어나지 않아, 높은 실업률과 빈곤, 낮은 교육 수준, 부실한 보건 관리 등의 사회경제적 문제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왔다. 따라서 이 지역의 유권자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정책과 공약에 표를 몰아주는 경향을 보이면서 대통령 선거지도에서 선명한 파란색 띠를 드러냈다. 따라서 오늘날의 정치와 사회경제적 조건을 역사적 농업 시스템에 내재하는 그 뿌리와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우리 발밑의 땅속에 숨어 있는 지질학적 구조와 연결하는 인과론적 사슬이 분명히 존재한다. 먼 옛날 바다에 쌓인 진흙층의 띠는 지금도 우리의 정치적 지도에 새겨진 채 나타나고 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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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안 해도 돼." 비키가 차 한 대를 앞지른 다음 원래 차선으로 되돌아갔다. "아무튼 그애가 약을 한 알 먹었어. 그리고 공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뭐 그런 말을 했는데…… 그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좀 차분해지더니 차를 갓길에 대라고. 우리가 시카고로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어. 하지만 피트, 슬프더라. 그애는 너무 작아, 그애는…… 그애를 인터넷으로 보면…" 비키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허리를더 펴고 한 손으로 운전했다. 다른쪽 팔꿈치는 바로 옆 팔걸이에내려놓은 채 손으로 턱을 만졌다.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달렸다.
마침내 비키가 눈앞의 도로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애는 또라이가 아니야, 피트, 그저 이곳에 돌아온 걸 참을 수 없었던 거야. 그애한테는 너무 힘든 일이었어."
거프틸 부부와 함께 칼라일의 무료급식소로 가는 길에 피트는 그 부부가 서로에게 얼마나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지 보았다.토미가 운전하는 동안 셜리는 종종 토미의 팔에 손을 얹었다. 피트는 궁금했다. 그렇게 편안한 것, 누군가를 그렇게 편하게 만질수 있다는 것은 어떤 걸까. 지금 이 순간 그는 동생의 팔에, 유명해진 루시를 만나려고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고 나타난 이 동생의 팔에 손을 얹고 싶었다-정말로 그러지는 않았지만. 그러는대신 그는 조용히 그녀의 옆에 앉아 있었다. - P244

그들은 침묵 속에 한참을 더 달렸다. 피트는 곁눈으로 동생을보았다. 그는 그녀가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체격 좋은 몸이 좋았고, 차 안에 듬직하게 앉아 당당하게 운전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는 그녀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대단하다는 말 이상을 해주고 싶었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비키, 지금보면 우리가 그렇게 나쁘게 된 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그녀가 그를 흘끗 보고 눈을 흘겼다. "그래, 맞아."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뭐, 우리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진 않지. 그게 하고 싶은 말이라면." 그녀가 내면 깊숙한곳에서 올라온 듯한 짧은 웃음소리를 냈다.
피트는 영원히 이렇게 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이렇게 달리고 또 달리는 동안 그는 거기 동생 옆에 앉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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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는 지리적 환경과 기후가 가져다준 제약과 기회가•결합해 문명의 발달에 어떻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아주 분명하게보여주는 사례이다. 리본처럼 사막을 가로지르며 뻗어 있는 오아시스인 나일강은 여름만 되면 어김없이 범람하는데, 에티오피아고원의 발원지를 침식해 내려오는 강물은 미네랄을 듬뿍 함유한 퇴적물을 강 양안에 쌓아 평야 지역에 생기를 다시 불어넣는다. 거대한 나일강은 또한 단순한 운송 수단도 제공했다. 북아프리카의 이 위도대에서는 늘 북동 무역풍이 부는데(더 자세한 내용은 8장에서 다룰 것이다), 그래서 배들은 바람을 타고 상이집트로 갈 수 있다. 그리고 부드럽게 흐르는 나일강의 물살을 타면 하류 쪽으로도 쉽게 갈 수 있다. 이러한 자연적 양방향 운송 체계는 곡물과 목재, 석재, 군인의 수송을 용이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 방향을 따라 이집트 전역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해 통일 국가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나일강 양편에는 건너기 힘든 사막이 길게 뻗어 있는데, 이천연 장벽은 오랫동안 외적의 침공을 막아주었다. 하지만 이 환경조건은 이집트가 영토를 확장해 제국으로 발전하는 것도 막았다. 기원전 2000년대 후반에 레반트 해안으로 팽창한 것 말고는이집트는 나일강 주변의 지역 강국에 머물렀다. 나일강 유역은 곡물 생산에는 아주 좋았지만(이 지역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을 먹여 살리는 데 도움을 주었고, 나중에는 로마 제국에 식량을 공급하는 곡창지대가 되었다), 나무가 부족했다. 삼나무 목재는 레반트에서 수입했지만, 그 비용이 너무 비싸 이집트의 군사력을 지중해 전역이나 홍해 너머까지 과시할 만큼 거대한 규모의 해군을 육성할 여력이 없었다.
단순한 국내 운송 체계, 나일강이 제공한 농업의 생태학적 지속 가능성, 사막이 제공한 천연 방어 장벽 같은 환경의 이점들이 결합된 결과로 이집트 문명은 안정 상태를 오래 지속할 수 있었다. 이 지역에 번영을 가져다준 핵심 요인은 나일강이었다. 그래서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 Herodotos는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묘사했다. - P106

앞에서 보았듯이, 야생 식물 종을 작물로 재배하면, 비록 시간과 노력은 더 많이 투자해야 하긴 했지만, 식량 생산량을 아주 크게 늘릴 수 있었다. 그리고 동물을 가축화하자, 오랫동안 사냥을해야 하는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고기를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가축화는 이리저리 떠돌이 생활을 하던 수렵 채집인은 누릴 수 없었던 다른 기회도 제공했다. 사냥해 잡은 동물로부터 고기와 피, 뼈, 가죽을 얻을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식량과도구, 몸을 보호하는 재료로 아주 유용한 산물이지만, 딱 한 번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을 보호하면서 기르면, 필요할 때 동물을 죽임으로써 이러한 산물을 훨씬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일단 동물을 가축화시켜 평생 동안 돌보면서 기르면, 야생동물에게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유용한 산물과 서비스를 연속적으로 얻을 수 있다. 가축 사육은 완전히 새로운 자원도 제공했다. 이것을 ‘부산물 혁명‘이라 부른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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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부는 과거사 청산에서 이중적인 지위에 놓여 있었다.
그동안 해왔던 판결들을 포함한 사법부 자체의 과거사를 어떻게정리할 것인지의 문제와 더불어 국가기관 전체의 과거사 문제에대한 형사 재심과 민사적 배상 및 보상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의 문제에도 직면한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5년 9월 취임사에서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법부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라고 하면서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 위에 군림하던 그릇된 유산을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과거사 정리 방법을 크게 세 가지로 보았다. 우선은 재심을 통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법원 내에서 인적 청산을 하는 방법, 세 번째는 과거사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조사하는 방법이었다". 이중에서도 "사법권의 독립이나 법적안정성 같은다른 헌법적 가치와 균형을 맞추려면 재심 절차를 통해 판결을 바로잡는 길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그는 사법부 자체의 과거사 중 그동안 선고했던 형사판결에 재심사유가 있으면 재심을 받아들여서 새로 재판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머지 문제들은법원이 할 수 있는 ‘가장 원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것이었다.
문제는 2007년 1월 진실화해위원회가 유신시절 긴급조치 판결에참여한 판사 492명의 실명을 공개한 데 대하여 ‘방식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우리 사법부의 과거를 되새기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언급한 공보관실의 보도자료 수준으로 정리되었다. 그동안 사법부가 해왔던 판결 전반에 대한 반성은 2009년 말 사법부가 『역사 속의 사법부』를 펴내면서 주요 시국사건들을 간단히 언급하는 것으로 그쳐버렸다. 과거사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논의되지도 않았다. 과거사 정리에 대한 이용훈 대법원장의 의지가 철저하지 못했다든지‘ 과거사 청산 작업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산산이 깨졌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용두사미에 그쳐버린 것이다.  - P136

그러나 ‘사법권의 독립이나 법적안정성 같은 다른 헌법적 가치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선택된 이러한 재심절차를 진정한 과거사청산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재심은 형사소송법에 명시해놓은 재심의 사유에 해당해야만 개시된다. 재심 청구가 있어서 이를 심리했더니 타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되었고, 그에 따라 재심 판결을 한 것인 이상 당연한 판결을 당연히 한 것뿐이라고 볼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조봉암 사건의 재심은 ‘원래의 사건에 관여했던 사법경찰관 등이 그 직무와 관련해 죄를 범한 것이 판결로증명되거나, 공소시효의 완성 등으로 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해야 한다는 재심사유에 따라 개시되었다. 육군 특무부대 수사관이 민간인인 조봉암 등을 수사할 권한이 없는데도 수사한 것이 직권남용죄가 되므로 재심사유인 ‘원래의 사건에 관여했던 사법경찰관 등이 그 직무에 관하여 죄를 범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재심의 법리를 새롭게 확장한 것도 아니고 과거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반성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다만 판결의 마지막 부분에서 재심 판결의 역사적인 위치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좀 특별했을 뿐이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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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이제 메리는 신중해야 했다.
이 아이-어른이 그녀의 딸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자신은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그것에 거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완전하게는 아니지만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이 아이--지금껏사랑했던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삶이 그녀를 마모시키고 마멸시켜 그녀는 거의 죽을 준비가 되었으며, 아마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때에 죽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몇 년이라도 더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고, 메리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혹은 정말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그랬다. 그녀는 지칠 대로 지친 느낌이었고 거의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지만, 이 아이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그 생각에 공포를 느꼈다. 그녀는 그 장면을 그려보고-그녀는 바로 이 방 이 자리에 누워 있고 파올로는 허둥지둥돌아다닌다- 겁에 질렸다. 다시는 딸들을 보지 못할 테고 남편도, 그러니까 딸들의 아버지인 그 남편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겁을 먹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장 소중하고 귀여운 딸인 에인절에게 자기가 그녀에게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아마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 P198

"그 다른 여자가 엄마라는 뜻이에요. 저는 엄마가 떠난 걸 극복할 수 없었어요.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멈출 수 없었어요. 그러자 잭이 내가 엄마와 사랑에 빠졌다고 했어요."
"오, 아가. 오, 맙소사." 메리가 말했다.
"그이가 떠난 지 일 년이 넘었고, 저는 지난여름에 엄마를 보러 오려다가, 그이가 자꾸 돌아올지 모르겠다고 해서, 여기 오지못하고 집에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잭은 이제 정말로 집에 돌아올거예요."
앤젤리나는 어머니가 자신을 안게 놔두었고,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한참을 울었다. 이따금 앤젤리나가 고통에 못이겨 소리를 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처절해서 메리는 외려 그것으로부터 떨어져나오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앤젤리나가 고개를 들고 코를 닦은 뒤 말했다.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그들은 한동안 카우치에 앉아 있었고, 메리는 한 팔로 딸을 감싸고 있었다. 메리가 반대쪽 손으로 앤젤리나의 다리를 쓸어주었다. 이윽고 메리가 말했다. "저기, 네가 이 청바지 입은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네가 혹시 다른 사람하고 바람이 났나 했어."
앤젤리나가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네?" 그녀가 말했다.
"그게 나인 줄은 몰랐구나."
"엄마, 무슨 말이에요?"
메리가 말했다. "음, 아가, 이 청바지는 네 나이의 여자가 입기엔 너무 꽉 끼어. 그래서 생각해봤지. 그러니까 혹시......"
앤젤리나가 웃기 시작했지만 얼굴은 여전히 눈물에 젖어 있었다. "엄마, 저는 여기 오려고 특별히 이 청바지를 산 거예요. 이탈리아 여자들은…… 옷을 섹시하게 입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오, 청바지가 섹시한 거로구나." 메리가 말했다. 그녀는 청바지가 섹시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는 청바지 안 좋아해요?" 앤젤리나는 금방이라도 다시울 것처럼 보였다.
"아가, 좋아하지."
그러자 앤젤리나-오, 그녀의 영혼에 축복을-가 정말로 웃기 시작했다. "음, 저는 안 좋아해요. 청바지를 입으면 머저리가된 것 같아요. 하지만 이걸 특별히 산 이유는, 이걸 입으면 엄마가 저를, 음, 세련되거나 뭐 그렇다고 생각해줄 것 같았거든요. 앤젤리나가 덧붙였다. "원피스 수영복도요!" 두 사람 모두 눈물이 고일 때까지 웃었고, 그래도 웃음이 멎지 않았다. 하지만 메리는 생각했다.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그럼에도 앤젤리나가 이 순간만큼은 평생 간직할 수 있기를.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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